신센구미는 1863년, 고구마 도장이라고 무시받던 천연 이심류 도장의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등이 교토에 올라와서 신센구미의 간부가 된 뒤, 68년까지 단 5년동안 교토 중심가를 호령하고 다니며 유신지사들과 피 터지게 싸우다가, 세상이 바뀌어 막부가 붕괴된 이후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유신세력과 싸우며 장절하게 최후를 장식한 비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최강의 검객집단은 드라마틱한 역사 이외에도 시대의 격변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보여주고 있어 여기저기 TV드라마나 만화의 소재로 환영받고 있는 듯 합니다.

<영화 바람의검 신선조 중>
이렇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란 요소는 다 갖춘 만큼 신센구미는 많은 작가들에 의해 상상력이라는 장식물에 덧붙여져서, 그야말로 악당일 뿐인 우익단체에서부터 그리는 이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꽃미남 집단까지 여러가지 모습을 한 채 많은 이들의 소설이나 만화 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특히 현재 켄신과 함께 맹활약 중인 사이토 하지메를 예로 들자면,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이토는 켄신만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사람에게는 의외로 느껴지도록 과묵하고 성실한 쪽으로 그려지고 있더군요.
하지만 누가 아무리 뭐라 변명을 해도, 냉정한 역사책에서 이들은 낡은 체제를 신봉하는데 앞장섰던 악명 높은 폭력집단으로 기록될 뿐 동정의 여지는 없습니다. 이런 오명의 원인은 그들 대부분이 시골 촌 구석에서 상경한 못배워 먹은 무사들인지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선견지명은 커녕 정치적 사상마저도 결여되어있어서 자신들의 행위가 과연 옳은 일인지 돌아볼 능력도 없었던 데다가, 그나마 있던 사상이라고 불릴 건덕지 마저도 오로지 장군을 모시는 일만이 무사의 도리라는 전국시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시대의 조류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 있다 하겠습니다.

<신선조의 실제 모습>
이케다야 사건
막부말 1864년, 도막을 내세우는 유신파의 선봉은 조슈와 사쓰마의 유신지사였으며,특히 조슈파는 근왕에 있어서는 선두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나치게 과격한 활동으로 황실에서까지 배척을 받게 되자 궁리 끝에 수도인 교토에 불을 지르고 천황을 조슈로 옹립한다는 이른바 교토 대 방화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계획이 곧 교토의 유신지사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도사번 등 각 유신지사들이 합류하게 되자 신선조에서도 이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챈다. 결국 조사끝에 이 교토 대방화 계획에 대해 알게 된 신선조는 전율하며 유신지사가 회합장소로 사용하고 있던 여관인 이케다야를 회합날 밤 습격, 유신지사들을 몰살한다.
피비린내나는 2시간 가량의 접전끝에 이케다야에 있던 유신지사중 살아남은 사람은 히고(肥後)의 다카기(高木) 뿐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수백년간 천황이 있었던 까닭에 막부 쪽에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교토에서 살인자집단으로 혐오 받아옴에도 불구하고 교토를 화재에서 지켜낸 신선조가 가장 자랑하는 업적이며 동시에 신선조의 막강한 전투력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이 일로 신선조는 막부와 천황에게 훈공장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막부가 조슈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슈에게 알려준 결과가 되었다.

<애니 메이션 속의 신선조>
신선조 (新撰組)
막부말에 에도(동경)에 나타난 미국함대에 의한 일본의 개항으로 시작하여 좌막파와 유신파의 대두 등 일본은 일순간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좌막파와 유신파가 대립하고 있던 교토에는 수많은 탈번무사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살인을 자행하여 교토의 분위기는 날로 뒤숭숭해져 간다.
이에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낭사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당시 에도에서 죽도검술보다는 실전검술을 중시하던 검술도장 시위관(試衛館)을 운영하던 천연이심류의 곤도 이사미(近藤勇), 히지카타 도시조,(土方歲三), 오키타 소오시(沖田總司), 이노우에 겐자부로 (井上源三郞) 등의 무사들이 교토로 상경, 초대국장을 세리자와 카모(芹澤鴨; 나중에 신선조 대원들에게 참살당함)로 하여 1963년 미부(壬生)라는 마을에서 신선조를 결성하었다. (이것이 신선조의 별명 미부로(壬生狼)의 기원)
톱니무늬의 하오리를 입고 성(誠)이란 글자가 씌어진 깃발을 내세운 이들은 막부 말의 최강의 검객집단이었다. 국장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하여 부장 히지카타 도시조, 그리고 10번까지의 행동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케다야(池田屋)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신선조의 정치적 성향은 어디까지나 구체제를 신봉하는 우익 좌막파로 교토에서 유신지사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등 1868년까지 막부말의 교토를 누비며 살벌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막부군이 패하자 북상, 마지막 하코다테전투까지 끝까지 유신에 저항하다가 비장하게 사라져간 집단이다.
주요 인물
- 곤도우 이사미
시위관 도장주이며 후의 신선조 국장. 원래 이름은 宮川勝太로, 武州多摩郡의 농가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16세때, 에도에서 도장을 열고 있는 곤도우 슈우스케에게서 "천연이심류를 상속하게 하고 싶다"는 강한 요청이 들어와 곤도우 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후 이사미가 상속한 시위관에서는, 히지가타 토시조를 비롯, 오키타 소오시, 이노우에 겐자부로 등의 천연이심류 문하의 사람을 기르고, 식객 중에서도 나카구라 신파치, 토우도 헤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야마나미 케이스케 등의 신선조 간부를 낳았다. 국장 시절에는 고토우 象二郎와 만나는 등 정치적 활동도 했다 한다. 그러나 도바 후시미 전쟁에서, 전쟁 전에 암살 당한 전 참모, 伊東 甲子太郎파의 잔당에 습격당하고 그 총탄 앞에 쓰러진다. 에도로 돌아와 상처를 회복한 이사미는 '갑주진무대'를 결성, 甲府성을 점령하기 위해 에도를 출발하지만, 시기를 타지 못한 탓에 관군에게 참패, 사실상의 신선조는 붕괴해 버린다. 그후에도 流山에서 재기를 꾀하지만 실패, 교섭을 요구해 관군에게 항복하지만 그 자리에서 포박되고 후일 그 신원이 밝혀져 참수 당한다. 쿄토 三條강가 모래밭에 목이 걸린다.
향년 35세.
- 히지가타 토시조
말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신선조 부장. 철두철미한 규칙으로 '귀신부장' 이라고 불리며 부대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출생은 多摩의 농촌.신선조 결성당시부터 부장으로서 곤도우 이사미를 돕는다. 도바 후시미에서 곤도우를 대신하여 신선조를 이끌고 싸우지만, 근대 병기의 위력에 패배한다. 에도로 달아나 갑주진부대에 참가하지만 패배하고 流山에서 곤도우를 비롯한 모두와 결별, 단신으로 아이즈로 향한다. 관군에게 이길 기회를 잡기 위해 에노모토 함대와 蝦夷의 땅, 箱館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전황은 변하지 않아 箱館전쟁 한복판, 총탄을 뒤집어쓰고 쓰러진다.
향년 35세.
- 이토우 가시타로
신선조 참모. 원래는 낭인으로, 深川 佐賀町에서 도장을 관장하는 북진일도류의 달인. 이토우는 검객으로도 유명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국학자로도 알려져 있었다. 신선조 입대 후로는 문학 사범도 겸하고, 점차 부대 안에서 자신의 파벌을 확립하지만, 후에 탈대. 사쓰마번과도 교류를 깊히 하지만, 11월18일, 곤도우 이사미의 초청에 따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선조 부대 병사들에게 습격당해 암살된다.
- 오키타 소오시
신선조 1번대 조장이자 검술 사범. 시위관 때부터의 멤버로, 물론 류파는 천연이심류이다. 불과 20세에 면허 전수를 받았다고 하는 천재 검사. 아버지는 오주번의 무사였지만 병사하고, 누나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시위관에서는 막내로 귀여움 받았지만, 그 검솜씨는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곤도우 이사미 대신 출장연습을 갔을 때는 그 힘든 연습을 겁내어 모두 숨었다고 한다. 검의 솜씨는 뛰어나도 가르치는 데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낭사대 결성 후에도 곤도우와 히지가타를 도우며, 특히 세리자와 암살 등에서 활약했지만, 이케다야 습격 시에 폐결핵이 발병, 각혈해 졸도하고 만다. 이후는 대부분 활동을 하지 못하고 병상에서 지낸다. 에도 귀환 후에도 요양소에서 안정하게 된다. 나날이 바싹 말라가는 오키타를 곤도우가 문안오는데, 그것이 곤도우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곤도우가 참수되고 오키타의 병세는 더욱나빠진다. 어느날, 툇마루 쪽에서 1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다가오고 지루함을 달래지 못했던 오키타를 기쁘게 하지만, 매일 다가오는 그 검은 고양이가 점차 사신과 같이 생각되어 오키타는 툇마루 쪽에 내려서 칼을 뽑았지만 결국에는 고양이를 칠 수 없었다. 고양이 1마리 벨 수 없게 된 오키타는 급속하게 병이 악화되고 임종을 맞이한다. 그때 오키타는 시중드는 노파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그 검은 고양이가 아직도 오고 있나요?' 오키타 소오시.
25세에 요절한다. 천재검사도 병에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
- 나가쿠라 신파치
신선조 2번대 조장. 출생도, 자란 것도 에도이긴 하지만 대대로 가계가 松前번 에도 근무였기 때문에 松前번사라 한다. 19세 때 시위관의 식객이 된다. 곤도우 들과 함께 낭사대에 참가, 신선조 간부가 된다. 신선조의 주요 싸움에는 대부분 참가하고 있고, 오키타 소오시가 병상에 누운뒤 1번대의 지휘도 역임하고 있다. 본래부터 시위관의 동료에 무사 출신 인 것은 나가쿠라 만으로, 메이지까지 살아남은 것도 시위관에서는 나가쿠라 뿐이다. 에도에서 갑주진부대가 패배한 다음 혼자 대를 이탈, 松前번으로 돌아가 函館에 거주했다. 그곳에서 스기무라가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스기무라 義衛라 고친다. 훗카이도에서는 가라후토 감옥의 검술 사범이 되었으나, 만년에는 토쿄로 나가 신선조 부대 병사의묘비를 세우는 등의 일을 했다. 다이쇼4년, 1월5일 오타루에서 사망. 생전 입고 있었던 하오리의 안감에 먹으로 써 남긴 노래가 있다.
- 사이토 하지메
신선조 3번대 조장. 부장 대리(?). 검술 사범. 신선조 발족 전부터의 시위관 멤버는 아니지만, 쿄토에서 낭사대를 결성한 초기에 이미 들어와 있었던 수수께끼의 인물. 그 검솜씨만으로 순식간에 승진하여 조장이 되어버렸다. 검술의 유파는 불분명하지만, 소문으로는 溝口派일도류 라고도 한다. 사이토 하지메가 유명한 것은 역시 암살이다. 같은 조장인 다케다 간류사이나 타니 산쥬로의 암살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신선조 제1의 살인자'라고 해야 할지. 그 검의 실력도 오키타, 나가쿠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 인물에 이해할 수 없는 점 한가지는 또, 이토우 甲子太郎와 함께 탈퇴를 했었는데도, 처벌받지 않은 채 이토우의 암살시에 신선조에 복귀하고 있다. 첩보 활동을 위해 고의로 적중에 들어간 것인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위험한 냄새가 떠도는 인물이다. 그런 사이토우도 신선조 붕괴 후에는 에도에서 곤도우들과 결별, 아이즈로 가지만 패주. 斗南번에서 떠돌고 있을 때, 면책이 되어있었던 구 교토 순찰대의 松平容保의 중매로 결혼, 상대측의 이름을 따 '후지타 고로'가 된다. 신선조 조장의 이름을 가지고서는 언제 목숨을 위협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당시의 신선조는 유신지사에게 원한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을 고친 사이토 하지메는 경찰관으로 취직, 서남 전쟁에 참가하여 그 전공이 인정되어 경부로 승진한다. 만년에는 경찰을 퇴직한 다음 寮看守(?)등을 맡거나 하며 지낸다. 77세에 임종을 맞이한 사이토는 '도대체 몇 번 이름을 바꿔 온 지 알 수 없다. 죽어도 가짜 이름으로 남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임종은 손님방에서 정좌한 채로였다고 한다. 메이지를 살았던 미부의 늑대 이면서도 나가쿠라 신파치와는 전혀 대조적으로 검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77년이었다.
- 마츠하라 츄지
신선조 4번대 조장. 무술 사범. 신선조 내에서 부대 병사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무술 사범으로 종사하고 있었으나, 어느 사건을 계기로 곤도우, 히지가타들과 사이가 벌어져, 어느날 첩과 함께 사라졌다.
- 다케다 간류사이
신선조 5번대 조장. 시위관에서부터의 고참. 나가누마류 군학을 기꺼이 배우고, 곤도우들의 머리로써 초기때는 활약했지만, 낡은 사상과 알랑거리는 성격이 되며 점차 자신의 거처가 없어지기 시작하자, 간류사이는 사쓰마 번저에 얼굴을 내밀게 되고, 이에 의심을 받아 사이토 하지메에 의해 암살 ?聆磯?. 신선조 조장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간류사이지만 , 남색가라는 소문도 있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데, 사실이 어떤지는 불명이다.
- 이노우에 겐자부로
신선조 6번대 조장. 시위관때부터의 고참 멤버로, 곤도우들과 같이 천연이심류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신선조 중에서도 최장로 클래스로, 그 인품은 호감을 주었지만, 검의 실력으로는 상당히 낮은 편으로, 오키타가 20세에 면허 전수까지 했던 것에 비해 겐자부로는 아직도 목록이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연하인 곤도우 이사미가 천연이심류를 상속했기 때문에, 사제인데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신분이 되어 버렸지만 본인은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런 이노우에가 곤도우, 히지가타등과 함계 낭사대에 참가, 신선조 간부가 된 것은 좋지만, 맡겨진 6번대는 예비조 적인 존재로, 이노우에 자신도 평부대 병사와 싸우다 패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같은 유파의 동료임은 확실하여, 중요한 일은 곤도우, 히지가타, 이노우에, 오키타만이 의논하여 결정하였던 것 같다. 그런 이노우에도 도바 후시미 전쟁중 전사해버렸다. 에도에 귀대 가능했던 부대 병사는 20여명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