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의 중심에서 비켜난, 가와라마치 거리의 작은 찻집 로쿠요샤. 하지만 이 찻집은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 일본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이름난 ‘핫플레이스’다.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여러 책에서 로쿠요샤를 언급하며, 교토에 가면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찻집으로 꼽는다. 전후(戰後) 시대에 설립된 작은 찻집이 70년간 변함없이 사랑받아온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노포의 경영 방식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교토를 중심으로 한 잡지와 웹진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는 가바야마 사토루. 그가 로쿠요샤를 이끌어온 오쿠노 일가와 그 주변 인물들을 밀착 취재해 이 책에 로쿠요샤의 모든 것을 담았다. 오쿠노 일가는 시대에 발맞춰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되 창업 당시의 ‘고객 중심’ 가치를 지키며 가게를 운영해왔다. 이제 100년을 바라보는 로쿠요샤의 영업비밀과 함께 로쿠요샤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내밀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교토를 대표하는 킷사텐 ‘로쿠요샤’
누구도 몰랐던 오쿠노가의 카페 경영 분투기
카페는 비단 ‘커피 맛’으로만 승부하는 곳은 아니다. 맛은 물론이요, 특색 있는 공간의 멋과 그 안에서 꽃피는 문화를 향유하고자 찾는다. 이웃 동네, 심지어 먼 지역의 카페까지 애써 방문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건 그런 연유에서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카페 문화를 선도했으며, 1950년대에 창업한 카페들이 지금까지도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채 성업중이다. 그중에서 로쿠요샤는 70년 넘게 사랑받아온, 교토에서 손꼽히는 로스팅 커피 전문점이다. 로쿠요샤는 35석 규모에 3대째인 군페이가 운영하는 일층점, 로쿠요샤의 유명세를 이끌어온 2대 오사무가 운영하는 낮의 지하점, 그리고 오사무의 친형 다카시가 운영하는 저녁의 지하 바, 이렇게 시간대와 운영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오랫동안 단골의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손님을 불러들이고 있는 로쿠요샤. 작고 수수해보이는 외관으론 짐작하기 어려운 그 매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 책은 교토 역사를 살아낸 한 노포로서 로쿠요샤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교토신문』 기자인 가바야마 사토루는 일본의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오쿠노 일가가 겪은 개인적인 사건들은 물론, 로쿠요샤의 지속을 응원하고 지켜봐온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밀착 취재해 이 책을 썼다. 또한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일러스트를 싣고, 로쿠요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사진도 수록해 일본과 로쿠요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아직, 도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오늘의 단어』에서 따듯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전해온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임진아가 로쿠요샤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추천사로 로쿠요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카페 애호가들을 불러모은다.
만주의 ‘작은 커피점’에서 교토의 ‘로쿠요샤’까지
일상에 녹아든 편안한 커피점을 만들어가다
교토에는 오가와커피, 마에다커피, 스마트커피, 이노다커피 등이 여전히 활발히 운영중이지만 카페업 종사자를 비롯해 젊은 세대 중에는 로쿠요샤를 교토 최고의 커피집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로쿠요샤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 맛부터 서비스, 실내 분위기까지 오랜 시간을 거쳐 축적된 격식”(191쪽), 혹은 레트로 열풍의 영향일까? 미노루-야에코, 오사무-미호코, 군페이-아야코로 이어지는 70년을 살펴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가 보일 듯하다.
로쿠요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 패전 후 일본이라는 삭막한 풍경과 만나게 된다. 시작은 만주에서 군대가 방출한 커피 원두를 구해 ‘작은 커피점’이라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오쿠노 미노루와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 오자와 야에코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일본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상을 이어가면서 ‘레인보우’ ‘코니아일랜드’를 거쳐 ‘로쿠요샤’를 꾸려나간다. 미노루는 ‘오가와커피’ ‘이노다커피’의 창업자와 교류하면서 1950년대에 커피 문화 형성에 일조했으며, 학생운동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로쿠요샤에 드나들면서 입소문을 타고 성업을 이루기 시작했다.
미노루의 삼남인 오사무는 로쿠요샤의 DNA를 이어받으면서도 커피 맛을 한층 끌어올려 마니아층을 만든 로쿠요샤의 대표 마스터이다. 그는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않고 도쿄로 거처를 옮겨 아르바이트와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다시 커피에 빠져든 그는 로쿠요샤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로쿠요샤의 2막을 연다. 자가배전 커피를 도입하고, 아내 미호코의 도움으로 홈메이드 도넛을 메뉴에 추가했다. 로쿠요샤의 경영에 뛰어들기 전 여러 커피 전문점을 찾아가 연구를 거듭한 그는, 그 배움의 결론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의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대중적이고 제대로 맛있는 집”을 지향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오사무는 로쿠요샤의 대표 얼굴로,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로스팅 오두막에서 커피 원두를 볶고 틈틈이 음악활동을 하는 등 자신만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로쿠요샤의 3대째 경영자인 군페이는 오사무의 외아들로, 교토 3대 커피로 꼽히는 마에다커피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일을 배웠다. 이후 ‘찻집fe카펫사’를 개점해 “사려 깊은 찻집과 편안한 카페의 중간”이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험하기도 했다. 현재 ‘주식회사 로쿠요샤’의 대표로서 로쿠로샤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3대째로서 로쿠요샤에 적응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군페이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젊은 세대로서 오래된 가게를 혁신하겠다는 열정이 뒤얽힌 복잡한 감정 속에서 때로는 가족, 직원들과 불화했고 창업주 미노루의 죽음과 야에코의 병환이라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가족 및 직원들과 함께 100년 가게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속도로
변화의 시대에 작은 가게가 살아남는 법
담배 연기로 자욱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젊은이들과 문화예술계의 유명인사들이 한데 어울렸던 지하의 작은 커피점. 한국 서울에도 전혜린과 천상병이 문학을 논하고 유명 연극인들이 즐겨찾았다는 학림다방이 1956년부터 아직까지 건재하다. 이 작은 찻집들이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그 자리에 앉으면 낯선 사람과 스스럼없이 합석할 만큼 편안한 분위기와 공간이 품은 역사의 향취 덕분일 것이다. 늘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리는 마스터,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소박한 맛의 도넛, 튀지 않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 로쿠요샤는 위치도 처음 그 자리에서 바뀌지 않았고 분점도 내지 않았다. 찻집의 분위기는 주인과 손님이 시간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로쿠요샤가 잘 보여준다.
커피 브랜드는 어느덧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다.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체인은 물론, 무척 싸거나 양이 많다고 광고하는 한국의 무수한 프랜차이즈 커피점, 또 개성 강한 브랜드 이미지로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는 커피점도 있다.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고 하는 스타벅스, 기술자로서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를 중요시하는 프릳츠 등, 성공한 커피 브랜드는 커피점 경영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로쿠요샤를 운영하는 오쿠노 일가 역시 은연중에 그들의 핵심 가치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왔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각자의 용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공간도, 커피도, 주인도 철저히 배경이 되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자기 실력 이상의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오쿠노 오사무의 삶의 태도가 가게에 투영되어, 손님들도 로쿠요샤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자신의 시간에 몰두하게 된다. 요즘처럼 카페 투어와 핫플레이스 인증이 유행하고, 가게 확장과 분점화가 성공의 척도가 된 시대에 로쿠요샤의 단순하고 소박한 태도가 오히려 독특한 매력 요소가 되어 단골과 새로운 손님 모두를 끌어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기획하고 우리말로 옮긴 임윤정의 말을 빌려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직함으로 단단하게 버티며 매일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로쿠요샤의 이야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