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를 통해 본 인성교육 방향>
어느 페친이 1970년대 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쓴 글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새마을 운동 3대 정신인 '근면, 자조 협동'을 적어내는 시험에서 다른 답을 했다고, 그 학생을 불러다 몽둥이찜질을 해대며 내뱉던 선생의 말이 “공부만 잘하면 뭐 해? 인성이 제대로라야 사람이지”라고 했다던가. 그 이후 인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억압과 위선’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 선생은 아마 '인성'이라는 것을 정부나 선생 말을 잘 듣는 것으로 착각했던 듯하다. 인성교육을 했다고 하지만 인성교육을 해쳤다. 그 선생의 인성이 제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성(人性)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인성(人性)을 해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이태원 사고 때, 응급처치가 시급한 젊은 여인에 대한 심폐소생 처치를 주저했다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성희롱으로 엮일 가능성에 망설였다고 했다. 인성을 의식하다가 인성을 해한 경우다. 부모를 살리려고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를 먹이고 이것이 하늘을 감동하게 하여 부모를 살렸다는 삼강행실의 미담은 효(孝)에 뿌리를 두지만 효(孝)가 아닌 경우다. 아이에게 더 먹이려고 배부르다고 거짓말하는 부모가 있고, 부모가 걱정하지 않게 부모를 속이게 되는 것이 자식의 도리다. 정직(正直)이 오히려 자애(慈愛)나 효(孝)를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올린 <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이라는 글이 있다. 사람의 천성이 마음의 상태에 어떤 감정으로 발동하는지를 그림으로 설명한 글이다. 여기에 마음이 오염되면, 인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도리어 인성을 해친다는 말이 나온다.
本於仁而反害仁(본어인이반해인)
인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도리어 인을 해치고
本於義而反害義(본어의이반해의)
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도리어 의를 해치며
本於禮而反害禮(본어례이반해례)
예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도리어 예를 해치고
本於智而反害智(본어지이반해지)
지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도리어 지를 해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늘의 이치를 닮은 네 가지 성품이 있다. 그것을 천성(天性)이라 하는데, 본성(本性) 혹은 인성(人性)이라 한다. 봄의 포근함을 닮은 인(仁), 여름의 따뜻함을 닮은 예(禮), 가을의 서늘함을 닮은 의(義), 겨울의 차가움을 닮은 지(智) 등이다. 이러한 천성(天性)은 심기(心氣) 즉 마음의 기질에 따라 감정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칠정(七情)이라 한다. 칠정에는 기쁠 희(喜), 성낼 노(怒), 슬플 애(哀), 두려울 구(懼), 사랑 애(愛), 미워할 오(惡), 욕심 욕(欲)이 있으니, 여기에도 선(善)한 칠정(七情)과 악(惡)한 칠정(七情)이 있다.
칠정(七情)이 착한 것은, 맑고 밝은 마음의 기운을 타고 천성(天性)이 천리(天理)를 따라 바르게 나와 그 중심을 잃지 않았으니, 그것이 인성(人性) 즉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서인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시비지심) 등 사단(四端)이라 불리는 도심(道心)이다. 진짜 인성(人性)인 사람다운 성품이다.
칠정(七情)이 착하지 않은 것은, 비록 천성(天性)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탁하고 더러운 마음의 기운에 가리는 바가 되어 그 본체를 잃고 비스듬히 나오니, 인(仁)이라며 인(仁)이 아니고, 의(義)라고 하는데 의(義)가 아니며, 예(禮)라며 하면서 예(禮)가 아니며, 지(智)라는데 지(智)가 아닌 인욕(人慾)에 말미암은 인심(人心)이다. 가짜 인성(人性)으로 사람답지 않은 성품이다.
인욕에 바탕을 둔 가짜 인성을 버리고 천성에 바탕을 둔 진짜 인성을 드러내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그러므로 인성교육은 마음을 맑고 밝게 닦아내는 마음 수양에 두었다. 인욕 즉 욕심을 닦아내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게 되고, 사람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인다.
율곡 이이는 상소문에 “기강은 법령·형벌로 억지로 확립시킬 수 없는 것으로, 조정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공정(公正)하고, 사정(私情)이 행해지지 않아야만 기강이 서는 것인데, 지금은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正-바를 정)이 사(邪-나쁠 사)를 이기지 못하니 기강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서겠습니까”라고 우려했다. 우려한 대로 조선은 기강이 무너져 망할 뻔했다가 결국 망했다.
조정을 시민으로 바꾸고 기강을 정의로 바꾸면, 정의로운 시민이 된다. 정의로운 시민이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에 공정하고 적극적인 시민이다. 정의로운 시민이 사회를 유지하고 나라를 지킨다. 요즘 정의로운 진짜 시민을 보기가 힘들다. 국민이 두 패로 갈라쳐 극단으로 치닫는다. 47대 48의 중간층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패거리에 끼지 못하면 밀린다는 위기감이 지배한다. 자기 패거리들끼리 이익을 공유하기에, 어느 한쪽을 선택해 무조건 지지하고 다른 쪽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신자로 몰리고 주류에서 밀려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할 징조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가짜 인성을 소유한 지도자들이다. 악마는 천사의 모습으로 온다. 그들은 인을 앞세워 인을 해하고 예를 말하며 예를 해하며 의를 내세워 의를 해치는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정의를 말하지만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다. 시민이라 말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가짜 시민이다. 가짜를 가려내는 법이 있다. 그들은 포용을 말하며 배척을 좋아한다. 공익을 말하며 패거리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다. 공동체를 파괴하여 공존을 해치는 자들이다.
어떻게 보면 인성교육은 가짜를 가려내는 정의로운 진짜 시민을 기르는 일이다.
※ 이 글은 ‘세종국가경영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주간 뉴스레터 <오늘의 세종이야기>에 함께 실립니다. 많은 분들에게 세종의 지혜가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