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싸워라, 좀
책읽기는 싸움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책읽기 방법이 있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 그럼에도 타인의 독서취향을 흘끔거린다. 각자의 기호를 떠나 음식을 섭취하는 기본이유는 같은 것처럼 마음의 양식인 책읽기의 기본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변화지향적이라는 점에서, 책읽기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싸움이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싸움’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싸우고 싶어졌다. 책읽기를 통해 감정의 정화, 이른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수확이 아니겠는가 생각했지만, 내적인 전투와 외적인 전투를 맞닥뜨리면서 싸움에 대한 욕구가 더욱 격렬해졌다. 책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싸우고, 흥미와 재미를 얻기 위해 싸우고, 솟구쳐 오르는 내 감정과 싸우게 된다. 이 모든 싸움의 원인은 나의 ‘감정과 정서’이다.
감정은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으로,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으로 정의된다. 정서 역시 기분이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는 이 두 단어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두 단어에 대해 좀 더 열의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면*, 정서는 특정한 육체적, 심리적 반응이고 감정은 그 정서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다. 정서(emotion)는 사건이나 경험의 의식적 무의식적 해석에 대한 복잡하고, 물리적이고, 생화학적이고, 심리적인 반응으로 움직이는 것(to move)을 의미한다. 우리의 정서는 어떤 순간에 적응적, 생존적인 의미가 있는 행동을 취하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위험한 상황에서 피하도록 해주거나, 기대라는 정서가 목표달성을 위해 노력하게 하고 슬픔이라는 정서는 다른 사람의 보호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정서는 우리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이를 막는 행동 그리고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행동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정서는 우리 존재 자체의 내부에 마련된 생존의 지혜인 셈이다.
이처럼 책읽기를 통해서 얻어지는 감정과 정서는 개인의 행동력을 이끈다. 변화지향적 행동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정서를 얻어야 한다. 오래도록 나의 책읽기가 내 개인적 감정과 정서의 희로애락을 느끼는데 머물렀다면 내적인 면에 치우친 책읽기가 아니라 사회를 함께 읽어내는 책읽기로 확장된 지 오래다. 그것이 곧 정서의 확장이며 나와 타인이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라고 여겼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책 속에서―그것이 문학이든 인문학이든 자연과학류이든 책의 분류와는 상관없이, 모든 책들은 이야기로서 혹은 저자들이 보내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인 것이―글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과 구조에 대해서 읽어나가게 된다. 따라서 책읽기는 사회의 문제점과 모순을 발견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이다. 궁극적으로는 보다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욕구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사회제도와의 조화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조화를 위해서는 대립과 투쟁이 무엇인지도 찾아야 할 것이다. 보다 전투적으로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꼬박꼬박 취미와 특기가 무엇인지 묻는 란이 있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예시의 정석대로, 곧잘 ‘독서’ 아니면 ‘책읽기’라고 적어 놓고선 이것밖에 취미가 없는 나를 자책한 적 있었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찔림’으로 헛기침을 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까지 나는 책읽기에 대한 생각이 명료하지 않았던 것일 게다. 언제부터 내게 책읽기가 편안한 유희가 아니라 전투가 되었는지 알 듯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할 때마다 편안해지지 않게 되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가느다랗게 붙잡고 있는데, 잔뜩 빌린 책을 읽지도 못하고 연체하고 결국 추석 전까지 공식적으로 책을 빌릴 자격을 ‘정지’당한 나는 지난 일주일 앓고 난 후 시간이 사라져버린 기분보다 이것이 더 속상하다.
이런 기분인데, 도대체 독서 목록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여주기일 수가 있단 말인가. 대체로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과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가. 한국인의 독서량이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라는데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도서관이나 우수출판물 관련 사업 예산은 모두 없애 버리고서 평소에 책을 읽는다는데, 편하게 이런 책, 좋아요~! 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니. 다른 어떤 보여주기, “이미지 정치, 쇼 정치”보다 책을 추천하는 것이야말로 필요하고, 그나마 눈감아 봐줄 수 있는 유일한 “이미지 정치, 쇼 정치”아닌가. 대통령의 멀쩡한 싸움을 보고 싶다. 제발 제대로 싸우라고, 좀!
우리가 책에서 읽어내는 많은 감정과 정서들이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정서를 이끌어 내어 행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게 책읽기는 싸움이다.
첫댓글 또다시 다짐을 해봅니다~!!!
열심히 책을 읽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