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창피한 세계 대문제
지은이는 이케가미 아키라 NHK 보도국 기자 주간으로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1, 2, 3권”이 있다.
바이든 정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대통령보다 의회가 강한 나라 미국. 10년에 한 번의 인구조사로 텍사스주는 2개의 의석이 증가. 그러면 공화당이 어느 정도까지 의석을 늘릴 것인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TV 뉴스의 시청률이 하락했다. 그러면 바이든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까스로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지만, 탈레반 정권은 미군이 주둔 시 파키스탄 산악지대로 도피하여 잠복했지만, 미군 철수와 동시에 신 정권을 수립했다. 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이 이전보다 긴 전쟁을 경험하였기에 바이든은 공약으로 철수를 선언했다. 바이든은 지금 민주당 내의 중도파와 진보파 사이에 끼어 꼼짝달싹 못하는 형편이다. 이것이 국민의 눈에는 바이든이 지도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미국에서 늘어나는 ‘중절 금지’ 인정 주는 성폭행으로 임신해도 중절이 인정되지 않는다. 중절을 도와준 사람이나 방조한 사람도 미국인이면 누구나 소송의 대상이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남겨둔 선물’이 끼친 영향은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이 9명 판사인데 트럼프가 보수파 3명을 임명함으로 생긴 영향이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싸움으로 향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민주주의에 물을 넘치게 하고 바이든은 물을 닦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 후 즉각 탈레반 정권이 복귀하여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는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행사하여 중국과 각을 세웠다.
흔들이는 유럽,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세계는 주목했다. 러시아는 21년 가을부터 우크라이나의 국경 부근에 10만 명의 부대를 배치하고 군사 훈련을 진행했다.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면 푸틴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 보자.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점령했다. 푸틴은 2008년 조지아에 개입할 때부터 ‘대러시아의 부활’을 꾀하며 러시아. 키자흐스탄, 벨라루스 등과 ‘유라시아 경제연합 EAEU를 구상하였다. 푸틴은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참여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대통령이 가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EU에 가입을 찬성하는 우크라이나 ’친유럽파‘가 분노하여 ’우리는 러시아가 아니다‘ 반발한 것이다.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자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망명하고 정권은 붕괴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붕괴하자 독립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지만 주민은 대부분 구소련 시절 이주민이다. 크림반도는 소런 15개 공화국 가운데 러시아 공화국 영토였다. 그러자 ’크림 자치공화국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야누코비치’가 붕괴하자 친 유럽파 정권이 들어서고 크림반도에 사는 러시아계 국민이 억압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동요가 확산한다. 그리고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시행된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돈바스 지역에서도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제정러시아 ‘표트르 1세’를 표방하는 푸틴은 러시아의 대 부활을 위해 우크라이나는 원래 러시아의 것이니 서방의 EU에 가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자 푸틴은 벨라루스, 조지아, 아제르바이젠, 카자흐스탄 등에 우크라이나를 꼭 넣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행동 원리는 오로지 ‘남하’이다. 세계는 러시아를 침약국가로 보고 있다. 공공연히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푸틴은 독재자이다. 그러나 푸틴의 입장에서는 침략 국가는 서유럽이며 러시아는 피해국이라는 것이 푸틴의 입장이다. 제정러시아부터 남하하여 한반도를 놓고 벌린 전쟁이 러일전쟁이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60만 대군으로 침입했다. 1914년에는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했다. 장기화한 전쟁으로 국가재정은 파탄이 나고, 여성은 물론 아이도 노동에 동원되고 생필품이 동나서 국민이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이 원인이 되어 1917년 ‘볼셰비키’가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고 ‘볼셰비키’(소련 공산당의 전신)의 지도자 레닌이 자본주의 확대를 노리는 제국주의가 악이라고 규정한다. 러시아 혁명을 주도하는 적군과 혁명에 저항하는 백군의 내전은 1917년부터 1922년까지 계속되어 인구가 1,000만 명 이상 감소하고 부모를 잃은 어린이가 700만 명에 달했다. 독-소의 전쟁은 사망자 수가 세계 최고이다. 2차 대전의 일본 사망자가 330만 명인데, 소련은 2,700만 명이 죽었다. 독-소 전쟁을 소련은 ‘대조국 전쟁’이라 부른다. 이때 전쟁터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역이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중간위치라 항상 전쟁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유라시아 대륙의 실크로드로부터 북쪽 주변은 유목민족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4~7세기경, 동슬라브인이 여기에 정주하였다. 히틀러가 소련을 친 이유는, 아리아인이 열등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북방의 슬라브 민족을 노예화하여 동방에서의 정복 전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여러 민족이 섞이었는데 슬라브인이 압도적이다. 영토를 가로지르는 ‘드니프로’ 강의 북쪽에는 수도인 ‘키이우’가 있고, 흑해의 건너편은 비잔틴 제국이었다. ‘키이우’는 ‘키예프’라 불리던 지역을 수도로 삼아 지금의 러시아 북서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걸쳐서 ‘키예프 루시 공국’이 발전했는데 ‘러시아’ 국명은 이 ‘루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키예프 공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기원이며 발상지이다. 그러니 외국에 빼앗길 수는 없으므로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이다.
키예프 공국은 12세기 말 몽골제국에 멸망했다. ‘타타르’란 러시아어로 몽골인을 말한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땅에 몽골인들이 ‘킵차크 칸국’을 세웠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근처에 살던 사람 일부가 모스크바 근처로 도망갔다. 이 모스크바 공국이 오늘날 러시아가 되었다. ‘코사크’는 무장한 농민을 뜻한다. ‘코사크’는 우크라이나가 발상지이다. ‘코사크’는 군대 공동체로 발전하여 러시아가 변경의 정비를 위해 촌락을 형성하였다.
16세기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대부분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어는 폴란드 언어에 가깝고 어떤 이는 러시아 방언에 가깝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이 되자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해 황금시대를 연다. 우크라이나 남부까지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고 크림반도를 차지하여 제정러시아에 편입시켰다. 러시아제국은 크림반도의 명칭을 유래인 ‘크린 칸국’의 보호 아래 두고 흑해로 진출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원한은 1930년 발생한 기근 ‘홀로도모르’로 인해 기인한다. 1차대전 후 우크라이나에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레린은 소련에 흡수시킨다. 그리고 레린은 토지를 국유화하고 스탈린은 5개년 계획을 세워 농업의 집단화를 강행했다. 수확한 밀을 수탈하여 수출하니 우크라이나인들은 기아로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이를 스탈린의 기근이라 부른다. 소련은 처음에 4개 공국으로 시작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자캅카스 (조지아, 아르케이나, 아제르바이젠)다. 소련은 15개 공화국 연방이고 레린-> 스탈린->후르시초프->브레즈네프-> 체르넨코->고르바초프로 이어졌다. 연방정부의 소재지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이다. 러시아는 하나의 공국으로 연방정부의 명령에 따라야 하지만 영토가 광대하여 소련의 중심적이기는 하였다.
소련 붕괴의 계기를 만든이는 코르바초프다. 원인은 국민이 소련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보도하여 실상을 알리면 국민이 열심히 노력하여 경제를 재건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게레스트레이크(개혁)를 추진하고 글라노스트(정보 공개)는 통하여 국민에 소련이 얼마나 지독한 상태인질 알게 했다. 그러나 소련 국민은 속았다는 깨달음을 알고 반발하게 된다. 공산당의 권위가 흔들리자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정국은 소련 붕괴의 길로 접어든다. 강제로 편입된 발트 3국이 먼저 독립을 선언하고 공화국은 12개로 줄어든다. 1991년 12월 마침내 소련은 붕괴하였다. 소련의 동구 7개국이 결성한 바르샤바조약기구도 해체하였다. (알바니아, 불가리아, 헝거리, 동독,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2023.04.10.
모르면 창피한 세계 대문제
이케가미 아키라 지음
이정용 옮김
종문화사 간행
첫댓글
세상을
넓게 보는 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나는 하루 되세요
한 동안 뜸했었습니다.
이제 틈이 생기니 자주
뵙겠습니다
@류재훈
반갑습니다.
인류의 가치는 미래에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 어떠한 역사가 있다해도 그것은 역사의 교훈이지 ㅡ
과거에 머물러 우리 후세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들필요 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댜부분에 국가지도 자는 국민을 보느게 아니고 자신의 영예욕심에 파무혀 후손의 미래를 망치고 있습니다
촌부님
첫댓글 감사합니다
그러나 역사와 미래는 동전의 양면인지라
구획이 불가능합니다
지도자를 잘 만나러면
늘 깨여있어야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