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음식
김귀선
여탕 탈의실에서다.
진열된 옷장 사이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마루 위에는 네 명의 여자들이 편할 대로 앉아 있다. 칠십대의 늙수그레한 두 여자와 오십대로 보이는 한 명, 사십대 중반이 한 명이다. 그들은 시골 한동네 살면서 날을 잡아 목욕을 온 듯했다. 촉촉한 머리카락과 불그레한 얼굴로 보아 목욕을 끝낸 모습이다. 뻥튀기 봉지를 막 벌려놓고 하나씩 집어서는 바삭바삭 씹는다. 그들과 등을 마주하고 나는 옷을 입는다.
꼬소하네. 이거 누가 사 온 기고?
제가 샀어요. 저 앞에 리어카에서 팔긴데 한 봉지 사왔어요.
입이 궁금한데 잘 됐다. 암만 먹어도 부담 없고 군음식으로는 이게 딱 좋다카이.
글체. 심심풀이로 먹기에 이보다 좋은 게 없지를.
성님은 군음식 참 좋아 하십디다. 저는 밥 먹고 나머 다른 건 별 생각 없심니더.
아이고 이 사람아 그 긴 세월에 만날천날 밥만 묵고 우예 사노. 몸에 덕 되는 거도 묵고 덕 안 되는 것도 묵고 그렇지. 그 재미도 없이 뭔 재미로 사노. 그나저나 서리 내린다 카는데 다들 배차는 뽑았나 우옛노?
우리는 안 뽑았는데 어제 동그이집 밭에는 배차 뽑데. 배차가 짤딸막하고 오목한 거이 잘 됐더마.
저거 형수도 왔던강?
거어는 안 비이고 동그이가 여자 하나를 델꼬 왔더마.
아이구 며칠 전에 형수가 배차 뽑아갔다 안 캅니꺼. 농사 다 지아 노으머 저래 와 가지고 다 챙기간다 카이요. 동그이는 속도 읎는기라. 배차 뽑아가던 날에 저거 형수 점심까지 사 줬다 안캅니꺼.
아이구 지랄도 대에도 한다. 헛짓 참 마이 한데이. 머 잘 났다고 집 나간 형수를 그래 챙기줘샀는공.
신랑 없는 시집살이가 어데 쉬웠겠능교. 그래도 찾아오이 고맙지예. 아아들을 봐서라도 잘 하는 거구만요.
시동생 김장이야 담아 주겠지 머.
동그이 형수가 김장 해준다꼬 캤는 강?
예. 김치 담가 준다고 그랬답니더.
침묵이 흐른다. 뻥튀기 씹는 소리만 바삭바삭한다.
아이구 동그이 옆집에서는 어제 비닐하우스 정리한다꼬 온 전신에 물건을 밖에 끄집어내 놓았는데 칼이 및 개나 나오고 호미니 낫이니 수북이 나왔단다. 그집 어마이가 내에둘 도둑 맞았다꼬 케샀티만은 도둑을 지 몸에 달고 있었던 기제.
와 아이라. 자기가 정신읎이 비닐하우스에다 간직어 놓고는 남을 의심해샀코.
비닐하우스 옆에 있는 수도이집 닭장에 닭이 몇 마리 늘어져 있어가 또 난리가 안 났습니꺼.
와 닭이 늘어졌는공?
개가 닭을 물어 샀터만요. 동네에 닭을 무는 개가 두 마리 돌아다니샀는데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게 사납게 생겼더만요.
아이구 그늠의 개가 심심해도 그렇지 닭은 와 무노 말이다. 그래노으까내 우리 삽쩍꺼래도 달 터래기가 수북이 있어가 산짐스이 내려왔나 캤디마는 개가 물었는가베.
개를 붙잡아 놔야지 와 그케 풀어 놨는 공?
아매도 용산띠기 개지 싶어요. 그쪽으로 자주 들락거리는 걸 보믄요.
그 집 할마이는 와 개를 뽈끔 묶어 단도리를 안하고 그케 삼이부재 욕을 보이는 공.
참 그 희한한 이야기가 있더만요. 들었능교?
옷을 다 입고 나갈까 하는데 귀가 번뜩한다. 급한 일도 없으니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괜히 바지를 바꿔 입는 척하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꽂아둔다.
삼주이가 아래께 새 여자를 또 하나 델꼬 왔는데 이분에는 남자 딸린 여자라 캅니더.
허허 그기이 무신 말꼬?
아 여자가 지 서방을 델꼬 살러 온 거지예.
무신 그런 일이 있노? 지 서방을 델꼬 오다이. 그라머 신랑을 델꼬 살러 왔다 말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거레이.
성한 신랑이 아이고 아픈 신랑이라 안 카능교. 삼주이가 몸을 잘 만치이까내 신랑 빙 고칠라꼬 델꼬 왔다카더만요.
그라머 신랑 빙 고치러 온 사람을 와 살러온 거처럼 말해샀는 공.
아픈 남자는 황토방에 혼자 자고 삼주이와 여자가 같이 자이까내 하는 말이지예.
참말로 세상 말세데이. 무신 그런 일이 있노.
말쑥하이 생긴 게 여산내기 여자가 아이겠더라 캐삽디더.
삼주이 생각에는 다리 한쪽 아픈 빙시 여자보다는 아픈 남자 딸리더라도 똑똑 받은 여자가 더 좋았는 갑지예.
그라머 다리 저는 먼젓번 여자는 우쨌는공. 내삐리뿟는강?
그기 아이고 호부래비 재종 히이 한테 줬다카더마.
아이구 시사아 무신 그런 일이 있는 공. 사람이 어데 물건인강?
근데 삼주이는 우짜다가 마누라와 히이졌노.
하이구. 마누라가 바람피우다가 삼주이한테 쫓기났다 합디다.
아이구 아이구 버스 시간 늦겠어요.
젊은 여자의 다급한 음성이 대화를 자른다. 눈들이 탈의실 벽시계에 꽂힌다.
벌써 시간이 그케 됐나. 지어버 우짜꼬 캤디이만도.
우르르 여자들이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그 바람에 마루에 얹어놓은 내 스카프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스카프를 주워 목에 두르고 목욕탕을 나온다. 바람이 시원하다. 남의 얘기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왜 그리 재미있을까. 얻어먹은 군음식이라 더 맛있었던 것일까. 잠시나마 군음식을 즐겼던 스스로의 행동에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첫댓글
제목 조오타!
맛 있네요!
^♡^ '군 음식"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뒷담화와 군음식이 참 연결 잘되었네요 ^^ 우리, 군음식땜시 마음의 부종이 일어나는 일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