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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카페 게시글
^^---산행 사진---^^ 스크랩 기암괴석들로 넘쳐나는 바위공원, 용암산-주마산(`14.1.25)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81 14.01.29 05: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용암산(龍岩山, 633m) - 주마산(走馬山, 544m)

 

산행일 : ‘14. 1. 25()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장수면, 안정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성곡리보건진료소집봉주마산무릎재시루봉둥지리봉용암산봉황대봉황사입구(산행시간 : 3시간50)

함께한 산악회 : 기분좋은 산행

 

: 용암산은 갖가지 전설(傳說)을 간직한 특색 있는 바위들이 많아 용암산 바위공원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산이 높지 않고 길이 험하지 않으며, 코스 전체가 소나무 숲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등산하기에 매우 좋은 산이다. 특히 어린이들과 함께 올 경우에는 효()란 무엇인지를 한번쯤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용암산에 고려장(高麗葬)의 유적지(遺跡地)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날 경우에는 요 아래 용산리에 있는 효마루체험센터에 들러볼 것도 권하고 싶다. ‘고려장 권역의 특징을 살려 효에 대해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용암산의 바위들은 대개 각자의 이름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바위들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구난방으로 얻게 된 이름들은 아니다. 이 지역에서 바위이름 공모전(2009)’에서 당당히 선정된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공모전(公募展)에는 전국각지에서 240여 작품들이 응모하였고, 대표바위로 여의주바위가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11개 바위의 이름이 지어져 기존의 자라바위, 말바위 등과 함께 20여개의 바위들이 특색 있는 이름들을 갖게 되었다. ‘바위공원이라는 명실상부한 면모(面貌)를 갖추게 된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성곡리 보건진료소

중앙고속도로 영주 I.C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하여 군도(郡道 : 충효로)를 따라 달리면 잠시 후에 우곡천(: 장수면 화기리)을 만나게 된다. 우곡천을 가로지르는 갈산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곡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성곡리에 있는 보건진료소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성곡리보건진료소 건물 뒤 수령(樹齡)이 족히 200년도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를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서는 전면에 보이는 성곡교회 건물을 목표로 삼고 진행하면 된다. 성곡교회 옆길로 들어서면 사과나무 과수원이다. 조림(造林)한지 오래된 모양으로 나무들이 고목(古木)의 수준을 넘어 아예 괴목(怪木)으로 변해 있다. 과수원 사이로 난 길은 가끔 갈림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무시하고 곧바로 직진하면 된다.

 

 

 

전신주(電信柱)가 있는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가면 잠시 후에 왼편으로 산길 하나가 열린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산악회의 시그널(signal)들이 여러 개 걸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20분 남짓 되는 지점이다.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산길의 흔적은 의외로 또렷하다. 그러나 산을 오르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물기 없는 계곡을 건너면서 산길이 상당히 가팔라지기 때문이다. 산길로 접어든지 25분쯤 지나면 능선으로 올라서게 되고, 길의 흔적은 더욱 또렷해진다. 능선에 올라서서 10분 쯤 더 걸으면 집봉이다. 집봉은 아무런 특징도 그렇다고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으니 머무를 이유가 없는 곳이다. 그냥 통과하고 본다.

 

 

 

 

집봉에서 7분 정도 더 걸으면 전망대(展望臺)이다. 영주시 방향이 잘 조망(眺望)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내리는 탓에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환호성(歡呼聲)이 들려온다. 왼편으로 소백산이 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모습이 아닌데도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것은 때를 잘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저 정도만 가지고서도 열광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전망대에서 7분 정도만 더 걸으면 드디어 주마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이 조금 더 지났다. 주마산도 역시 볼거리도 없고 조망(眺望) 또한 트이지 않는다. 다만 조금 전에 지나온 집봉과 다른 점은, 코팅(coating)지가 정상표지석을 대신하던 집봉과는 달리 주마산은 판자(板子)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오지(奧地)의 산에 갈 때마다 자주 눈에 띄는 매우 낯익은 표지판이다. ‘대구 신암산악회의 김문암씨가 직접 판각(板刻)한 작품을 가져와 매달아 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다.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같은 등산객들이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주마산에서 무릎재로 내려가는 길은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정상에서 잠깐 내려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바닥에 깔린 진행표시지가 오른편을 가리키고 있다. 선두대장의 말에 의하면 왼편으로 난 길은 경사(傾斜)가 무척 가파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상 오른편 길도 경사가 가파르기는 매 한가지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산길은 인삼밭의 밭두렁을 따라 이어진다. ‘주인이 싫어하겠네요.’ 함께 걷던 일행의 말마따나 인삼밭의 주인이라도 본다면 손사래를 치고도 남을 일이다.

 

 

 

인삼밭 아래로 내려와서 인삼밭을 왼쪽에 끼고 걸으면 포장된 임도(林道)를 만나게 된다. 사과과수원을 왼편에 끼고 조금 더 내려오면 오른편으로 산길이 열린다. 주마산 정상에서 15분 정도 되는 지점이다. 들머리에 안정의용소방대에서 만든 이정표(무릎재여륵2)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이정표를 보면 무릎재는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해야 나오는 모양이지만 산길이 이정표의 뒤편으로 또렷하게 나 있으니 구태여 무릎재까지 진행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참고로 무릎재는 안정면 너르기(여륵동 : 汝勒洞)에서 봉현면 버드랭이(노좌동 : 魯佐洞)로 연결되는 고갯마루이다. 이쪽 마을에서 저쪽 마을까지 족히 10리가 넘는다니 제법 골이 깊은 고개라 할 수 있다. 

 

 

 

고갯마루에서 용암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산길은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길이 또렷하고 거기다가 곳곳에 이정표까지 잘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무릎재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삼거리(이정표 : 누에머리 0.5Km/ 호두밭 0.4Km/ 무릎재 0.3Km)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르기가 조금이라도 버거운 곳에는 어김없이 나무계단이나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누에머리(누에밭 0.9Km, 시루봉 1.3Km)이다. 무릎재에서 15분이 걸렸다. 누에머리는 조망(眺望)이 좋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이다. 그렇게도 잘 보인다던 학가산과 조운산, 그리고 천부산과 도솔봉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구름에 둘러싸인 산하(山河)만이 그저 희미한 실루엣(silhouette)을 만들어내고 있을 따름이다.

 

 

 

누에머리에서 능선을 따라 7분 정도 걸으면 용암산의 진면목(眞面目)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 용암산은 영주시에서 바위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곳곳에 널린 기암괴석(奇巖怪石)들에게 사연 한 자락들을 얹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바위가 송이바위이다. 용암산에 자생하는 송이버섯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바위 주변에는 나이 먹은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만일 가을철에 왔더라면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을 법도 하다. 가끔 이런 지형에서 송이버섯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을 주민들이 읽기라도 한 듯, 산길의 양쪽으로 금()줄이 길게 매어져 있다. 송이버섯 채취는 애당초 생각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름표가 없는 바위 몇 개를 지나면 이번에는 거북바위다. 거북바위는 바로 앞에 있는 시루봉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형상(形象)이라고 한다. 거북이는 절을 하면서 마을의 안위와 면민(面民)들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빌고 있단다. 참 신통방통도 하다. 자기가 다 알아서 주민들의 안위까지 챙겨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거북바위 바로 위쪽이 시루봉이다. 시루봉은 안정면 사람들이 해맞이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웬 제사상이 차려져 있네요.’ 집사람의 말대로 시루봉의 표지석 뒤에 여러 가지 과일들을 담은 접시가 하나 놓여 있다. 아마 지극한 염원(念願)을 품은 누군가가 다녀간 모양이다.

 

 

 

 

 

시루봉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용수사갈림길(이정표 : 히티바위 1.5Km/ 용수사 1.2Km/ 누에머리 1.3Km)이 나오고, 이어서 조금만 더 걸으면 칠형제바위이다. 올망졸망한 바위 일곱 개가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칠형제바위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름표까지 달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칠형제바위에서 1분쯤 더 걸으면 오른편 숲속에서 상어바위가 살짝 머리를 내민다 상어바위에서 2분 정도 더 걸으면 이번에는 입맞춤바위이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바위들이 입을 맞추고 있는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바위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나서야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바위들끼리 입을 맞춘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람들이 이 바위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옛날에 나무꾼들이 나무 한 짐씩을 짊어지고 이곳을 지나다녔는데, 바윗길의 폭이 좁은 탓에 바로서서는 갈 수가 없고 옆으로 걸어야만 통과가 가능했단다. 그 때 통과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바위에다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해서 입맞춤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입맞춤바위에서 1분만 더 가면 옛날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고 해서 봉화대라고 불리기고 하는 둥주리봉이다. 둥주리봉은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나오게 한다는 둥주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도 조망(眺望)이 뛰어난 곳이다.

 

 

둥주리봉에서 내려와 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장독바위이다. 계속해서 이끼 낀 바위틈을 지나면 4각으로 지어진 용암정(이정표 : 히티바위 0.5Km/ 여의주바위/ 시루봉 1.0Km)’이라는 정자(亭子)가 나온다. 정자에 오르면 전면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내려다보인다. 용암산을 대표하는 여의주바위인데, 바위의 생김새가 흡사 용()이 승천(昇天)할 때 떨어뜨린 여의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주위의 산세(山勢)도 마치 용이 여의주를 품은 채로 몸을 틀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이 바위도 신비한 얘기 한 토막을 갖고 있다. 예로부터 누구에게나 한가지씩의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것이다.

 

 

 

 

 

정자에서 2분 정도만 더 걸으면 드디어 용암산 정상이다. 용암산 정상은 의외로 시야(視野)가 꽉 막혀있다. 당연히 사각기둥을 닮은 정상표지석 외에는 아무런 보잘 것이 없다. 용암산은 용()이 여의주(如意珠)를 품은 채로 몸을 틀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무릎재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5분이 걸렸다.

 

 

용암산 정상에서 짧게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히티바위/ 시루봉/ 용암산 정상)로 나뉜다. 아까 지나온 정상표지석까지 세워진 시루봉 외에도, 용암산에는 시루봉이라는 산봉우리가 하나 더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시루봉으로 오르는 길에 만났던 이 지역 산악회가 세워놓은 이정표에서 ‘2시루봉이라는 이름을 본 것도 같다. 용암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자꾸 뒤로 돌아간다. 대충 자라바위에 가까워진 것 같은데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뒤따라오던 일행이 핸드폰으로 지도(地圖)를 검색하여 나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지도에 자라바위가 위치한 곳이 용암산 정상에서 시루봉쪽 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나쳐 버린 것이다. 산행을 나서기 전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바에 의하면 분명히 용암산 정상에서 히티바위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이상한 일이다. 검색을 잘못한 내 자신을 탓하며 조금 더 내려오는데, 반가운 것 하나가 눈에 띈다. ()가 있는 곳의 길바닥에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가 깔려있는 것이다. 표시지가 가리키는 왼쪽 방향으로 20m쯤 들어가니 커다란 바위하나가 보인다. 아까 지나쳐버린 것으로 알고 발을 동동 굴렀던 바로 그 자라바위이다. 자라바위는 금방 물에서 나온 자라의 형상이란다. 자라바위는 바위를 한 바퀴 돌며 작은 틈새를 빠져나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특히 아이가 없는 여자들이 이 틈새를 빠져나오면 아이를 가지게 된다고 해서, 한 때는 아이 갖기를 원하는 아낙내들이 몰려들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바위 아래에 낡고 허름한 당집이 지어져 있다. 자라바위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새끼자라바위이다. 두 마리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자라의 형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해도 해도 너무 많이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라며 집사람이 불평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다시 무명(無名)의 바위 몇 개를 지나면 이번에는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가 왼편에 보인다. 근처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말바위휘티재바위자라봉)들을 감안할 때 히티바위일 것이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시야(視野)가 열린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 시계(視界)가 짧은 탓에 의외로 보잘 것이 없다 

 

 

 

히티바위를 내려서면 히티재갈림길(이정표 : 봉황대 2.3Km/ 히티재 1.0Km/ 시루봉 1.5Km)이 나오고, 다시 7분 정도 더 걸으면 솔바위를 만나게 된다. 한 그루의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정(母情)의 바위라고 한다. 솔바위에서 5분 정도 더 걸으면 반달바위이다. 봄나들이를 나왔던 반달이 진달래가 만발한 이곳의 경치에 반하여 거리를 멈추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반달바위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미나리단지갈림길(이정표 : 봉황대 1.3Km/ 미나리단지 0.6Km/ 히티바위 1.0Km)이 나오고, 이어서 만나게 되는 것이 우뚝 솟은 말바위이다. 바위의 모양이 말()을 닮아서, 혹은 나뭇꾼들이 바위에 올라앉아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말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고 해서 말(對話)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말바위에서 5분쯤 더 내려오면 이번에는 고분군(古墳群)이 나타난다. ‘고려장(高麗葬)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삼국시대에 유적인데, 인근에 200여기가 흩어져있다고 한다. 봉암리와 용산리 일대에는 총 10여 기()가 모여 있는데, 근처에 산성(山城)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큰 세력이 존재했고, 이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軍事的 要衝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분군에서 10분쯤 더 내려오면 이번에는 봉암성터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축조된 산성(山城)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와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遺物)이 출토되었는데, 규모가 작고, 사료(史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군사적(軍事的)으로 큰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성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직진하면 전망대(展望臺)가 나온다. 풍기읍내(邑內)가 잘 조망된다는 풍기전망대이다. 오늘은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 날이니 당연히 곧장 봉황대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가끔 오른편으로 산길이 갈려나가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내려가더라도 하산지점인 봉암마을로 갈 수 있지만 곧장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봉황대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림길 두 곳을 지나면 장의자가 놓인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다시 조금만 더 내려서면 **)봉황대(鳳凰臺)이다. 봉암성터에서 10분 정도 되는 지점이다. 봉황대는 의외로 보잘 것이 없다. 집채만 한 두 개의 바위 무더기로 이루어졌을 뿐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봉암산에 왔을 때에는 이곳을 그냥 지나쳐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네 가슴에 담아 두어야할 전설(傳說) 하나를 봉황대가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바위를 돌며 이곳저곳 살펴본다. 바위에 새겨졌다는 글귀를 찾아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봉황대와 요 아래에 있는 봉암동마을에는 과한 욕심(慾心)은 화()를 불러들인다.’라는 교훈을 전해주는 전설(傳說)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봉암동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부잣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탁발승(托鉢僧)이 부잣집에 들러 시주(施主)를 청하였다. 그러나 시주를 하기가 싫은 주인이 탁발승을 곳간에 가두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욕심 많은 주인은 귀가 많이 얇았던 모양이다. 살기 위해 꾸민 스님의 계략에 넘어갔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스님의 계략에 넘어간 주인은 마을 뒷산에 있던 바위를 깨뜨리게 되었고, 그 후 봉암동에 있던 부잣집은 흔적도 없이 망해버렸다고 한다. 허황된 욕심이 불러일으킨 결과이다. 당시 바위가 갈라지면서 봉() 세 마리가 나타나 한 마리는 학가산(鶴駕山)으로 다른 한 마리는 순흥 비봉산(飛鳳山)으로 날아가고 남은 한 마리는 다리가 부러져 붉은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봉이 나왔던 바위라 하여 바위이름을 봉암(鳳岩)이라 하였고 이에 따라 마을 이름도 봉암동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마을 사람들이 그 바위를 중심으로 대()를 모으고 봉황대라 하였으며 사인(士人) 안창호(安昌鎬)가 봉황대 삼대자(三大字)를 쓰고 진석은(秦錫殷)이 글씨를 조각하였다 

 

 

 

산행날머리는 외봉암마을(봉황사) 주차장

봉황대에서 내려가는 길도 역시 고속도로 수준이다. 비록 가파른 구간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잠깐이면 끝나고, 거기다가 고운 흙길이라서 내려서는데 큰 부담이 없다. 봉황대에서 10분 쯤 내려오면 왼편에 커다란 불상(佛像)이 하나 보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돌탑 위에 커다란 부처님의 머리만 놓여있는 형상이다. 불상 방향으로 난 길을 찾을 수 없어 농로(農路)까지 내려간 뒤에 산행이 종료되는 외봉암마을 앞 주창으로 향한다. 주차장 근처에 이르니 왼편에 민가(民家)와 구분이 안 되는 사찰(寺刹) 하나가 보인다. ‘봉황사이다. 대웅전이라고 쓰여 있기에 들어가려했더니 개새끼들이 물어뜯으려고 덤빈다. 생경스러운 종단(宗團) 이름에 혀를 차며 버스로 향하면서 산행을 종료한다. 봉황대에서 20분 조금 못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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