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내용 |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1일 김동훈(金東勳)의 주도하에 일어났다. 김동훈은 4월 1일 평상시 신망이 두터웠던 안정석(安正錫)·안유석(安儒錫) 등을 찾아가 거사의 뜻을 전하고 그들의 적극적인 찬동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남상권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연락을 취하여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그 준비를 서둘렀다.남상권은 태극기 제작을 위한 백지와 당목(唐木)을 자진해 내놓았고, 김동훈은 대화동(大和洞) 자기 집에서 목판(木版)을 만들어 김경두 등과 함께 종이 태극기 800여 개와 당목으로 대형 태극기 6개를 만들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4월 11일로 정하고, 4월 6일 보통학교 학생들의 거사를 찬양 선전하면서 이날 독립만세운동에 참가 할 것을 촉구하였다.4월 11일 오전 9시경, 남상권 등은 해남로(海南路) 큰 거리에서 당목으로 만든 큰 태극기를 휘두르는 것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남상권 등은 작은 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김흥룡(金興龍)이 대형태극기를 들고 앞장서 행진을 벌였다. 연도의 시민들이 대열에 참가하여 만세시위운동자는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얼마 후 일경(日警)들은 무력저지로 나섰고, 이에 남상권 등 수십 명이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같은 해 5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18面·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9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