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푹 쌓인 눈길을 오지사람들이 간다 (울산바위~미시령)
* 글쓴이 : 대간거사(총대장) 2016. 12. 19
ㅇ 미시령 도로에서 본 달마봉과 울산바위 전경
ㅇ산행일시 : 2016. 12. 17(토)
ㅇ산행인원 : 버들, 자연, 영희언니, 모닥불, 스틸, 한계령, 수담, 상고대,
메대장, 두루, 오모, 승연, 대포, 무불, 마초, 대간거사 (총 16명)
원래 이번 주는 소백산 종주에 나서기로 했다. 좀 달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영동에 눈이 많이 온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이버와 주고받은 문자를 솔직히 공개한다.
-가이버 ; 욜로! 낼 영동에 눈 많이 온다는 데 그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요?
-나 ; 절대찬성.
-가이버 ; 그럼 역사에 떳떳해질 수 있게 실행을 하세요.
-나 ; 나는 떳떳해. 결정은 알다시피 메대장과 상고대 소관이니 그쪽에다 말씀해주슈.
-가이버 ; 전 그런 국정농단에 휩쓸리기 싫어요.
-나 ; ....ㅋㅋ.
다행스럽게도 국정농단 운운할 것도 없이 메대장과 상고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
다. 문제는 영동 어디냐 였다. 그러나 뉴스에 의하면 미시령에 적설량 40cm, 대관령에 1
5cm라고 하니 당연히 설악산 당첨이다. 그런데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
덕소에서 한계령님을 태우고 홍천을 지나지만, 예상과는 달리 화양강 휴게소에서 보는
산천은 눈이 살짝 덮여있거나 심지어 땅이 그냥 들어난 곳도 많다. 인제, 원통 쪽으로 다
가가면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지만, 미시령 터널에 가까이 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릉, 속초에 눈이 내리면 백두대간에 막혀 서쪽에는 현저히 강설량이 적어지는 모양이다.
미시령 터널을 지나 울산바위 전망대 근처에서 황철봉 쪽으로 붙기로 합의한다. 차에서
내리니 최고속도로 지나치는 다른 차량들이 위협적이다. 다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자유
낙하하는 공수부대원처럼 신속히 난간을 넘어 학사평 계곡으로 떨어져 내린다. 바람이
약간 불지만 추운 날씨는 아니다. 백여 미터를 내려 계류에 도착하기 직전 약간의 장비
점검을 한 뒤, 얼어붙은 계곡을 조심스레 건넌다.
계류를 넘어가니 비록 수목이 꽉 들어찬 숲이지만,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학사평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이다. 눈은 발목을 넘어 아래 종아리 정도에 이른다. 다소 실망이지만,
위로 오르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오늘의 산행주제는 울산바위다. 옆모습, 뒷모습,
앞모습 순으로 다양한 자태를 감상하는 산행이었다. 무불을 앞세워 걷는다.
무불은 2015. 1월 입사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덕유산 무박에 춥고 적설량이 많아
고생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만 2년 만에 러셀을 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대견
하다. 우리 팀에 젊은 재목들이 즐비하니, 무슨 걱정이랴 !
ㅇ 차에서 내리자마자 계류를 건너, 학사평 눈길로 든다.
ㅇ 계류를 건너오는 ~~
ㅇ 눈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ㅇ 불도저 같은 힘으로 매번 산을 오르는 한계령 님, 오늘도 다름이 없다.
ㅇ 눈산행은 이맛이야 !
ㅇ 본 산행 전에 일~단 쉽니다.
ㅇ 겨울 오뎅 맛에 취해 포효하는 자연 님 !
ㅇ 아침빛을 반사하는 울산바위가 오지사람들을 반긴다.
당분간은 울산바위 위쪽으로 이어진 정규 등로를 따른다. 길은 몇 개의 시냇물을 건너 이
이어지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기억에 따르면 왼쪽으로 다시 트레버스 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가 있는 지점에서 보이는 능선이 너무 잘 생겨 보여 그냥 올라가기로 한다. 아마도 울산바위에서 오르는 능선과 황철봉에서 내려오는 백두대간이 합류하는 봉우리(분기봉) 근처로 바로 붙는 것 같다. 이제 평원은 끝나고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될 모양이다. 다시 한번 쉰다. 승연이가 오뎅국을 끓인다. 비박전문가답게 능숙한 솜씨로 금방 뜨끈한 국물이 마련되고 막걸리와 각종 안주가 나온다. 한동안 떠들다가 등정을 시작한다. 이제 울산바위는 온전히 옆모습으로 다가온다. 오전의 젊은 해가 위압적으로 곧추선 바위덩어리 상공에 힘차게 떠있다. 햇빛에 반사된 하얀 눈에 눈이 부신다. 전형적인 답설 산행의 장면이 연출된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뒷사람이 밟고, 그 발자국을 다시 뒷사람이 밟고.
잘 생긴 능선도 고도를 높일수록 본성을 드러낸다. 잡목, 특히 철쭉과 거친 암석이 속도를 내지 못하게 제어한다. 지난 번 진고개 지나 연곡천에서 백마봉으로 무찔러 오를 때와 같이 직등하기 어려운 곳이 나타나 자주 이리저리 우회한다. 그래도 오를 때는 올라야지 왕도는 없다. 일시적으로 편해 보인다고 횡으로 진행해봐야 답이 아니다. 눈덮인 오지능선을 오를 때는 판판해 보이는 곳보다 나무를 겨냥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가는 것이 좋다. 미끄러지더라도 잡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제대로 서있을 수 조차 없다.
ㅇ 암릉 우회한다.
ㅇ 급경사 구간이라 미끄러움이 대단하다. 나무 가지 붙잡고 간신히 오른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런 곳에 16명이나 되는 대부대를 소화할 장소가 있을까. 운 좋게 칼날 같은 능선 위에서 새끼손톱만한 평지를 발견했다.
둘러앉은 뒤편으로 이동하려 해도 어렵다. 곧장 추락가능성이 있다. 끓인다. 점심때는 상고대 옆에 앉는 것이 여러모로 실익이 있다. 제수씨의 음식솜씨가 뛰어나 평범한 음식도 기발한 변용과 맛을 내기 때문이다. 늘 그렇지만 거의 산상뷔페 수준이다.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승연이가 타주는 커피도 마신 다음 다시 일어선다.
ㅇ 주능선에 올라서 본 울산바위와 속초 방향
ㅇ 화채능선, 왼쪽 뽀죽한 것이 화채봉
이제 울산바위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도 변함없이 여전히 거칠고 무뚝뚝한 암석덩이가 막아서지만 우리도 거의 다 올라섰다. 해는 중천에 떠오르고 파란 하늘이 유난히 깨끗하다. 속초시내와 동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누구는 오징어 뛰는 것까지 보았다고 우긴다. 한바탕 용을 쓰고 선두 메대장을 따라 마침내 분기봉 전위봉에 올라선다. 울산바위는 이제 뒷모습을 보여준다. 장닭의 벼슬처럼 멋진 암릉이 몇번이고 계속 이어져 있다. 미시령도로나 속초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는 오목거울이나 병풍처럼 감싸는 듯 포근하게 보이지만, 여기서는 남성적이고도 도전적이다. 감히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위엄이다. 지금까지는 눈이 장딴지까지 찼지만, 여기는 다르다. 아주 깊다. 빠지면 발을 빼기 어렵다. 사면에서는 그저 미풍에 지나지 않았던 바람도 미친 듯이 불어 제낀다. 잠시나마 씩씩하게 러셀을 하던 스틸이 뒤로 빠지고, 대포, 마초, 오모 등이 교대로 앞에 나선다. 특히나 키가 190센치에 가까운 마초도 나아가기 힘들어 할 만큼 푹푹 들어간다. 원래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하지만 올해의 첫 심설산행치고는 괜찮은 수확이라 하겠다.
ㅇ 미시령 내리는 능선길
ㅇ 눈이 허리까지 찬다 - 미시령 내리는 능선길
ㅇ 오늘 눈길 일부 구간을 러셀한 무불 님과 자연 님
ㅇ 2016년 하반기 오지 열성분자인 수백 님, 눈산행이 마냥 좋기만하다.
ㅇ 눈속 푹~ 모델 ! 모닥불 님
ㅇ 눈길은 이리 걷는거야 ! 총대장 님과 스틸영 님
우리 오지팀의 기록상 대체적으로 눈과 관련한 대첩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대원들 대다수가 볼과 코에 얼음이 들었던 덕유산, 적설을 가슴으로 밀고 올랐지만, 무자비한 칼바람에 어렵게 정상석을 알현하고는 눈물을 머금고 철수했던 점봉산, 그리고 산진이 형, 산그림애, 인샬라의 안산대첩 등등. 주된 이유는 제설작업은 우리의 몫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눈을 찾아다녀도 적설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에는 눈다운 눈이 없었다. 올해는 무불, 대포, 마초, 오모, 해피, 두루 등등 특수전 전문팀이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으니, 눈이 많이 내리기만 기다려 볼 일이다. 분기봉에 모여 단체사진 한장 박는다.
산진이 형이 격주로 토요일날 근무하게 되어 오지팀에 손실이 크다. 그래도 영희언니의 촬영으로 모두 모여 단체로 폼을 잡아본다.자연, 버들도 신설의 정기를 받아 그런지 생생하다. 황철봉을 올라 설악동 신흥사 뒷편으로 내리느냐, 미시령을 넘어 상봉으로 가다가 화암사로 내리느냐의 고민이 있었으나, 합의 끝에 미시령 방면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적설상태로 보아 황철봉까지 시간이 부족하고, 또한 너덜지대를 발이 빠지지 않고 지나려면 한층 더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결론이었다. 한마디로 눈이 깊다. 앞에서는 마초가 몸을 구르다시피 하면서 러셀을 하고, 뒤에선 무불도 덩달아 같이 구른다. 대포나 오모가 교대로 나서지만, 역시 상황은 같다. 대첩소리를 들으려면 몇 명은 죽었다 살 정도로 고생을 해야겠지만, 아쉬운 대로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디 가서 눈속에 동굴을 뚫어가며 러셀을 했다는 구라를 풀 것이 아니라면, 이것도 아주 좋다.
ㅇ 미시령 내리기 직전 - 승연, 마초
ㅇ 미시령 내리기 직전 - 승연, 마초, 수담
바람이 살이 에일 지경은 아니지만, 계속 불어대니 춥다. 이제껏 버텼지만, 체면불구하고 겉옷을 꺼내 입는다. 살 것 같다. 괜히 버텼다. 건너편 상봉 쪽으로는 양지라서 그런지 아래쪽으로는 흙바닥이 들어난 곳이 보인다. 정상부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저 쪽의 상태로 보아, 만약 주중에 날이 푹했다면, 눈높이가 십센치는 내려갈 뻔했다. 이 쪽은 오후에 햇볕이 안드는 응달이고, 오른쪽 창암 계곡이나, 왼쪽 학사평 계곡에서 간단없이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아마도 눈이 모여들어서 수북이 쌓인 것 같다. 앞으로도 정히 눈을 밟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황철봉 능선을 찾을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눈처마를 피해 좌우로 어지러이 줄을 내면서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 미시령에 내려선다. 바람이 불어대는 광장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저 위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는 도로에 제설이 된 듯이 보였지만, 막상 와서 보니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여기서 상봉으로 올라 화암사로 내리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도로를 따라 내리기로 한다. 조금 가다가 설상차를 탄 일군의 집단과 만난다.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범퍼 카에 굵은 바퀴를 매단 조금 큰 장난감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대에 2,700만원이나 한다는데, 십 여대가 올라와서 놀고 있다. 사람취미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빙빙 돌아가는 도로를 중간에 가로질러 무찔러 내리기도 하면서 점차 하부로 내려가니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눈을 덮어쓰고 모든 굴곡을 드러낸 채 꿈인 듯 환상인 듯 멋진 광경을 보여준다. 천천히 걸어가며 감상하는 앞모습은 종래 차를 타고 휙 지나면서 섬광처럼 스치는 기분과 질적으로 다르다. 세상의 수많은 절경을 다니더라도 여기 이 순간의 장면을 능가할 곳은 없다는 확신이 든다. 모닥불과 두루는 작품을 남기기에 바쁘다. 그만큼 압도적이다. 다리가 뻐근하다는 기분이 들 무렵, 바람이 덜한 곳을 골라 모여 앉아 가져온 음식을 다 털어먹는다. 속초로 나간다. 기왕에 속초에 왔으니, 해맞이 공원 근처 단골회집에 가자는 무불의 강력한 추천이다. 십 년전 양양으로 귀농하신 장인이 애용하시는 곳이란다.
보람찬 산행, 아름다운 풍경에 이미 마음이 거나해졌는데, 맛있는 음식에 술 한잔이 들어가니, 백거이(白居易)가 떠오른다. 그가 대주(對酒) 제2수에서 읊은 대로 부싯돌같이 번쩍하는 순간을 사는 인생, 달팽이 뿔같이 작은 공간에서 싸우는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잘났건 못났건, 크게 웃지 못하는 자가 진정한 바보.
첫댓글 미시령에서 포효하는 바람과
그 여름 갈증을 해소해 주는 살얼은 환타 맛,
산행기의 거침없는 표현력..뭔가 닮아 있네요.
덕분에 멋진 심설산행을..또
가이버(배가 아플텐데)님의 공로가 크네요.
감사합니다!!!
이번 산행기의 게재 사진은
상고대장 메대장 모닥불 님들의 이미지를
골라서 다시 올렸습니다.
이 또한 힘든 산행과 다름이 없으며~
정말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낍니다 !!!
악수 형님의 오지산행기는
전 우주의 기운을 매번 힘들게 모아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
악수 형님 ~
언능 나오셔야 합니다 ^^^
@두루(輝輝) 네.
그토록 눈부신 산행날 악수님이 빠지셔서..
아마도 행님 마음이 콩밭(설악산 러셀산행)에 오신 것을 압니다.
가이버님 비선실세 등극이요^^ 아닌듯 뒤에서 오지를 움직이시는 마이다스이자 오지 스피드 산행의 최고 "신가이버".
총대장님의 무협지같은 산행기 잘 봤습니다...간혹가다 악수님이 빠지셔야지 무협지도 보지용감사
에궁 1Km 남진 러셀 부끄럽습니다. 조금 더 가려했지만 러셀 폭이 좁아 롱다리님들 고생하실까 자진 하차했더랬습니다.
다음에 러셀기회를 또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5년 1월 첫 심설산행 이후 많이 성장한 저를 느끼며 다시한번 오지 선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오지여 ~~~ 영원하랏!!
시작은 무불님이 러셀하는 날이였는데 교묘하게 비켜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눈속을 마음껏 걸어서 행복했습니다.
산행기 또한 감동적이구요
오지산행은 인문산행이네요. 무게감과 섬세함이 모두 느껴지는 산행기입니다. 산행기 올리는 분들 감성과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제설작업이라 하셔서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ㅎㅎ. 엄청난 압박과 공포심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