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기>
-메니에르병과 소지라
없던 어지럼증 때문에 지난 겨울 혼쭐이 났다.
홍역바람으로 늘 그 예방에 힘써왔지만, 어지러움으로 평생 처음 119 구급차까지 타기도 했다.
석달 전이었다. 도내 서예 동호인들의 작품전이 문화예술회관 지하 전시실에서 열렸다.
예술지상주의자라고 자칭하는 나는 만사를 제치고 작품 전시는 꼭 가서 봐야 직성이 풀린다.
지난 겨울, 춥지 않던 그날 혼자 서둘러 열시쯤 전시실에서 서예작품을 관람하고, 방명록에 멋진
컷도 그리며 싸인을 하고 작품집을 받아가지고 현관을 나오던 중이었다.
갑자기 핑 돈다. 그러다 났겠지 하고 있는데 이번엔 파도가 일듯 일렁이면서 구역질까지 나는 게 아닌가!
진땀이 난다. 빈 의자를 찾아 잠시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마치 고호가 그린 하늘처럼 빙글빙글 어지러움은 이어진다. 토하고 싶다. 재빨리 정면 화장실로 달려가 토해본다.
진땀이 바짝바짝 난다. 일단 어지러우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변기에 소리내어 토한다.
아까부터 주시하던 몇명의 안내요원들이 남자 화장실까지 달려와 괜찮으냐 확인을 한다. 어느 분은 자기 엄마도 지난번 같은 증상으로 병원갔다고 빨리 병원 가란다. 엉거주춤한채 가라앉길 바라지만 시간이 갈수록 -. 생전 처음 겪는 어지러움이다. 큰일이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갑자기 생긴 변고에 마다했던 아내를 급히 부르고 긴급 도움에 청했다.
내자는 마침 미장원에서 머리를 퍼머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가 놀라, 그 채로 달려와 119를 불러
강대병원 응급실로 간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걷기조차 힘겨웠다.
정신은 말짱한데 어지럽다. 토하려는 기운은 여전하다. 응급실의 세명의 의사가 덤벼들어 눈을 까뒤집고
머리를 이리 저리 돌리며 난리를 친다. 천천히, 재빨리 좌우로 움직여 본다. 침대에서 급히 상체를 세우게 한다. 결국 그날 나는 두뇌까지 건강검진을 받고 80만원의 검사비가 납부했다. 뇌졸증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검사 결과 뇌는 아무렇지 않다는 게 아닌가! 천만다행이다.
병원서 간단한 약을 처방받고 며칠간 복용해도 어지러움증은 쉽사리 떠나지 않고 괴롭힌다.
최종 강원대 이비인후과에 등록을 하고 청각 검진을 받았다. 작성한 설문지를 보고 전문의사인 장의사는 이명중에도 메니에르병이라고 확답을 내린다. 2011년 이명으로 한림대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10명중 요즘 3명이 이 병으로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스트레스받지 마라, 물을 많이 마셔라. 피곤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분홍빛 팥알같은 약과 물약을 처방받고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고 월 2회 다시 병원을 찾곤 했다.
오른쪽 귀에서 이명소리가 난다. 치과에 다녀올 때도 어지러움이 거품처럼 인다. 어딜 다녀도 걱정이 앞선다.
두어 번 T.V에서 메니에르병이 소개되며 최근 유행병이라고 치료 잘 해야된다고 의사는 난리다.
그 후 오랜만에 고향 정족리를 찾았다. 어지러움증때문에 자주 오지 못했다고 그간의 일들을 고했다.
듣고 있던 백형(伯兄)께서 지체없이 소 지라를 먹으라고 권한다. 과학이 발달된 요즘 그런 터무니 없는 민간요법이 병을 이길 수 있을까? 모든 친척들 특히 아내는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저 걱정해주는 것만이 고마워서 네- 네 했다. 올 때도 등뒤에 대고 소리치신다.
-참지라로 사! 날로 먹어, 참기름에 소금을 쳐서 먹어, 나와 같이 갈까!
피붙이 백형의 걱정이 전해오니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고마웠다. 둘러앉은 이들이 이 시대에 무슨 소지라냐고 저마다 돌아서서 한마디씩 푸념조로 한다. 그러나 나는 왠지 미수의 어른이 처방한 것이 달다하게 느껴졌다.
예전 민간요법과 함께 살아왔다. 유년기때 해소기침으로 겨울이면 밤새워 기침하던 모친께 백형이 백방을 구해온 약은 무엇인가! 대나무 봉양을 다려 드시고 일어나셨다. 배에 꿀을 넣어 폭 다려 먹고 천식이 나았거나 푸른 수세미를 썰어 설탕에 재워 차로 마시던 것 모두 민간요법이다. 어디 그 뿐인가! 가을에 호박 줄기의 물을 받아 마신다. 초봄이면 깊은 산속에 가서 겨울잠을 막 깨고난 무공해 도롱용과 꾸러미같은 점박이 알을 구해 드린다. 호박잎 쥠손에 앉은 작은 청개구리가 어른들 신경통에 좋다고 산채로 잡아다 드리면 목울대 안으로 넘기고 꿀꺽하고 삼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두 민간요법이다.
결국 소의 비장(Spleen)인 지라를 구입했다. 풍물시장 식육점에다 소잡는 날 미리 예약을 했다. 혓바닥처럼 길쭉한 50센티, 폭 15센티, 무게 900그램의 참지라를 만5천원에 손에 넣었다. 신기했다. 선혈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지라를 보는 순간 나만의 번득이는 신뢰감을 느꼈다. 개인이 손질하기 힘들다며 칼집을 살짝 넣고 벗긴다. 질긴 흰막을 걷어내고 깍두기보다 좀 길게 썰어 준다.
이것이 참지라, 빈혈에 최고란다. 철분 함량이 매우 높아 특히 산후 빈혈 어지러움증의 처방으로 전해온단다.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느낀 아내, 귓속 나팔관의 평형감각에 문제인데 무슨 빈혈이냐고 앵무새처럼 반기를 들던 아내도 참기름 깨소금을 차려준다. 간보다 냄새가 덜하고 차진 멋이 오히려 간보다 낫다
병의 공포-. 고희로 접어드니 없던 병들이 고개를 든다. 도깨비 방망이로 때려도 자꾸 고개를 드는 놀이방같다. 병을 이겨야겠다는 일념으로 비위가 좀 상해도 생으로 순식간에 절반을 먹었다. 아내는 연실 진저리를 친다. 결국 나머지는 데쳐서 먹었다. 쫄깃하고 구수하기까지 했다. 소 한마리에 한 개이니 구하기조차 수월치 않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두어번 복용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우리 조상들이 어지러움증의 특효처방인 소지라에 강한 기대감이 마치 신들린 무속인처럼 내 마음을 동하게 했다.
석달이 지났다. 결론은 취하고 나서 거짓말처럼 신통방통 어지러움증이 사라졌다.
절대 흰소리가 아니다. 이른 감은 있지만, 혓바닥 같고 선혈이 낭자한 것이 내게서 어지러움증을 날려보낸 것이다. 반신반의하던 아내도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타온 약마저 끊고 병원도 발길을 돌렸다.
일단 안심이다. 어지러움 낌새조차 어른거리지 않는다. 그간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글쓰기에 치중해도 늘 걱정하던 것들이 사라졌다.
누군가 인생은 병이요, 세계는 병원이요, 죽음은 의사라고 했다. 거대한 병동에 현대인들은 신음한다.
물론 천학비재하지만, 다재다병(多才多病)이란 사자성어조차도 요즘 성가시고 게름찍하다.
창과 방패처럼 천가지병에 천가지 약이 존재한다고 했다. 우수마발(牛遂馬勃) 같은 것도 질병을 몰아내던 민간요법들이 현대 과학의 저편에 기죽어 있다.
백세 고령화시대가 전개된다. 건강이 정말 큰 재산이다. 병원 약국 약도 중요하지만 민간요법 또한 중하다.
체질과의 교감이리라. 그 후로 어디를 가도 어지러운 자들이여! 소지라를 드시라고 입이 닳도록 선전한다. 간간이 전화로 확인하는 백형의 뜨거운 관심이 고맙다. 하늘이 내려준 처방으로 감사드린다. (끝)
첫댓글 나도 예전에 어지럼증이 자주 찾아와 괴롭혔는데 그 때 소 지라를 먹었어요.
그것 먹고 나았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네 분명 요즘은 어지러운 티끝조차 없습니다. 씻은 듯이 물론 언제 다시 도질지는 몰라도 ㅎ
여기저기 올리니 몇분이 그전에 그래서 소지라를 먹은 분들이 많더군요. 역시 관습 구전된 것들이라.ㅎ
감사
다행입니다. 메니에르 병 기억해 두겠습니다. 소 지라
내 평생 어지러워 119를 타고 가서 처방받기는 처음-. 늙어가면서 기력이 쇠잔해서 그렇구나 하며
서굴펴 하다가 소지라를 먹었더니 씻은 듯이-.만오천원 비싸지도 않으나 구입이 당장 힘들어요.ㅎㅎ
오늘 아침에 그림을 그려 150명 전국에 돌렸습니다. 어지러울시 꼭 잡수시라고 ㅎㅎ 모두 좋아하셔
원주에 원성호님도 답장 보내와 ㅎ 이 기쁨 이즐거움 이 보람-.병은 자랑하라는 말씀 명언
인터넷에 이번 제 글이 추천되어 반갑습니다. 어지러운 단 한명이라도 이 글을 보고 쾌유되었으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다움에 소지라라고 치니 제 글이 나오더군요. ㅎㅎ역시 설득력이 있음에 가슴부듯합니다.ㅎ
처음 듣는병이라 고개가 가웃등~~~~꼭 기억했다가 실천에 옮기겠습니다.
어지러우면 소지라를 드시라고 ㅎㅎ
중앙시장에 가면 내장만 파는 골목이 있는데 어찌나 쉽게 살 수 있는지 어제도 한개 사다고 ㅎㅎ
나는 달팽이관 어지러움 증으로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었는데.
관리기 운전하다 넘어져서 관리기가 도랑에 처박힌 일도 있고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넘어지기도 했었답니다. 이런 경우에도 지라가 좋은지는 모르겠군요.
춘천 살때 였는데 지금은 깨끗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