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저자 author 와 권위 authority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객좌교수
인도에서는 진정한 스승, 구루(Guru)를 찾아 끊임없이 여행하는 것을 진정한 삶의 한 모습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배움은 이미 아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스승과 세계를 찾아 길을 떠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편안한 휴식을 뒤로하고 배움을 찾아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의 그 학구적인 자세에 먼저 큰 박수를 보내며 오늘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영어에서 author는 ‘저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책 한 권을 쓴 사람이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자기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자기만의 생각과 세계를 드러내는 사람, 다시 말해 자기다운 목소리를 세상 앞에 뚜렷하게 나타내는 사람이 바로 author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권위’가 영어로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authority입니다. 이 말은 author에 명사형 접미사 -ity가 붙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순한 어원 풀이가 아닙니다. 이 두 단어의 관계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author가 ‘저자’라면 authority는 바로 ‘저자다움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힘’, 다시 말해 권위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직함 하나를 얻었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권위는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쓰고, 그 글을 세상에 내놓아 독자와 시간의 검증을 받을 때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은 생각을 남기는 일이고, 여러 편의 글을 쓰는 일은 자기 세계를 쌓는 일이며, 마침내 한 권의 책을 내는 일은 흩어져 있던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이름으로 세상에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에서의 권위는 결코 누가 임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글로 자신을 증명하고,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책으로 자기 세계의 지속성을 보여 줍니다. 등단은 그 첫 번째 사회적 인정입니다. 내가 혼자 글을 쓰는 사람에서 문단과 독자 앞에 작품을 내놓는 작가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책의 출간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한 편의 글로는 순간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지만, 한 권의 책은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세계를 바라보고 어떤 언어로 살아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등단이 작가라는 이름을 얻고, 글을 쓰게 하는 일이라면, 책을 내는 일은 그 이름을 자기만의 세계로 채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독자들에게 읽히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불릴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는 작가로서의 권위가 생겨납니다. 다시 말해 권위는 밖에서 주어지는 훈장이 아니라 오랫동안 쓴 글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내면의 신뢰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등단 문인이라도 저서가 없는 사람에게는 문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사는 저서를 가진, 다시 말해 권위를 가진 문인에게 붙이는 호칭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단순히 ‘글을 한번 잘 써 보겠다’는 데 목표를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편을 쓰되 작가가 되기 위해 쓰고, 한 권을 내되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 내야 합니다. 계속 배우고, 계속 쓰고, 고치고, 발표하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author, 곧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 저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저자다움이 오랜 시간 축적될 때, 다시 말해 저서를 많이 가질 때, 여러분의 이름 앞에는 어느 날 자연스럽게 authority, 곧 누구도 함부로 대신할 수 없는 작가적 권위가 생겨날 것입니다.
오늘 이 강의도 결국 그 길을 함께 찾아가는 작은 여행의 시작입니다. 진정한 구루를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우리는 오늘 글이라는 길에서 더 나은 스승을 찾고, 더 깊은 자신을 만나며, 마침내 자기만의 칼라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배움은 작가를 만들고, 글쓰기는 저자author를 만들며, 축적된 작품은 권위authority를 만듭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 안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의 author를 깨우는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