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병이어의 기적
마가복음 8 : 1 – 10
예수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은 닮았습니다. 떡과 물고기를 축사하시고 오천(만오천여) 명과 사천(만이천여) 명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와 일곱 광주리를 남긴 것은 엄청난 물질적인 축복을 상징합니다.
오병이어는 4복음서 모두 있고 설교도 자주 듣지만, 칠병이어는 마치 오병이어에 밀려난 것처럼, 마태와 마가복음서만 있고 설교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보다 칠병이어가 더 복음적입니다.
오병이어는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세다에서 유월절에 유대인들에게 베풀었고,(요6:1,4) 칠병이어는 데가볼리’(열 성읍이란 뜻으로 우리나라 같으면 일개 면과 같음)에서 이방인들에게 베풀었습니다.(막7:31)
오병이어는 제자들의 제안으로(막6:36) 한 아이(요6:9)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베푸셨고, 칠병이어는 예수님의 제안으로(막8:5) 제자들이 주는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베푸셨습니다.
오병이어는 남자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에 담았고, 칠병이어는 남자 사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을 일곱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바구니’는 물건을 담는 작은 그릇이며, ‘광주리’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탈출할 때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렸던(행9:25) 것과 같은 넓고 큰 그릇입니다. 남은 것도 ‘열두 바구니’보다 ‘일곱 광주리’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오병이어의 떡을 먹고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요6:15)
다음날 찾아온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시겠다’는 말씀을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요6:22-59)
그러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하며 그들은 떠나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요6:60,66)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오병이어의 떡을 먹은 그들은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마다 주일이면 예배 후에 성도들이 점심을 먹습니다. 서울 소망교회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기 때문에 교회당 주변 식당들이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곽선희 목사님에게서 들었습니다.
예수님께로 모여든 남녀노소 만오천 명, 만이천 명의 식사는 대단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막6:37) 라고 말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이 천 원씩으로 계산해도 오백 명이면 오백만 원(이천만 원)어치의 큰 트럭으로 한 차가 넘을 정도로 빵입니다. 상상하기도 여렵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2012년 4월에 중국 하남성 정저우(鄭州) 어느 지방 교회에서 통역이 없으면 의사소통이 안되는 중국 본토인(한족)에게 오전, 오후, 저녁까지 3박 4일 동안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서너 시간을 버스를 타고 온 교인들과 멀리서는 7시간을 버스를 타고 왔다는 분들과 200여명의 성도들이 합숙하며 열심히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 지역은 종일 자동차로 달려도 산을 볼 수 없는 광활한 들판에 벼농사는 하지 않고 밀과 보리가 주 농사였습니다. 그들의 주식은 밀가루로 만든 찐빵과 칼국수입니다.
그들은 점심은 교회 마당에서 큰가마 솥에서 끓인 칼국수 한 그릇씩 들고 앉거나 서서 먹고, 저녁은 찐빵 한 개와 밀가루를 풀어 끓인 슈퍼를 마십니다. 아침은 시장이나 길거리로 나가서 찐빵 한 개와 밀가루 슈퍼를 각각 사서 길에 먹습니다.
강사인 저의 식사는 10여 년 전부터 연길에서 만난 통역하는 조선족인 가이드가 전기밥솥에 한 쌀밥을 먹고, 점심은 그들과 같이 칼국수를 먹고, 아침 식사는 가이드와 함께 나가서 시장에서 찐빵을 사서 먹었습니다. 밤에 그들은 예배실 장의자나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입은 옷 그대로 누워 잡니다.
팔레스틴 지방도 보리와 밀 농사를 하기 때문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들어 화덕에 구운 마른 떡이 그들의 주식입니다. 여러 날을 여행할 때는 마른 떡과 가죽 부대에 물과 포도주를 준비해서 가다가 쉬면서 마른 떡 한 조각을 떼어서 먹는 것이 그들의 식사였습니다.
예수님께 모여든 무리도 집에서 가져온 마른 떡으로 식사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라고 물은 것을 보면, 무리 중에 떡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제자들이 미리 준비한 떡을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이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마15:34)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어린아이가 자기가 먹으려고 집에서 준비해서 가져온 것이었고,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는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것입니다. ‘물고기’와 ‘생선’은 반찬으로 소금으로 간을 한 마른 멸치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제자들은 떡을 떼어 무리를 배부르게 먹이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8)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굶주린 무리를 먹여서 배부르게 먹이고 자신이 생명의 떡이심을 가르쳐 믿게 해서 그들에게 영생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떡을 먹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며,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요6:14,15)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가버나움까지 찾아온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요6:27,28)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떡이요 나를 믿은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며(요6:35) 그들에게 영생할 수 있는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느냐’고 하며 수군거렸습니다.(요6:42) 그리고 ‘그 말은 어렵다’고 하며 그은들 스스로 돌아갔으며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했습니다.(요6:66)
그들은 예수님께서 떼어주는 생명의 떡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영생하는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칠병이어의 떡을 먹은 무리와 사흘이나 함께 하시면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성경은 말씀하지 않아서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가르쳤던 영생의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흘을 함께 하고 가르침을 받은 그들을 예수님께서 흩어 보내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마15:39;막8:9)
그들은 사흘이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유대인들처럼 ‘그 말씀이 어렵다’고 하거나, ‘누가 믿겠느냐’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신 것은,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9)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병이어의 떡을 먹은 자들은 스스로 돌아갔기 때문에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칠병이어의 떡을 먹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흩어 보내심으로 목적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면, 사흘이나 그들에게 가르치고, 기적을 베풀어서 떡을 배부르게 먹이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신 것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상 모든 교회와 우리 모두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에클레시아’는 ‘모임’과 ‘흩어짐’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불러 모인 무리를 의미하지만, 세상으로 흩어 보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로 모인 무리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어 먹게 하신 것은 성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흩어 보내신 것은 그들은 세상으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찬의 떡을 먹여 줍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세상으로 흩어 보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 충만하여 큰 무리가 모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모인 무리를 흩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핍박과 박해로 그들을 흩어 보내셨습니다. 흩어진 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병이어의 떡을 먹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혼자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요6:15) 그러나 칠병이어의 떡을 먹은 무리는 예수님께서 흩어 보냈습니다.
흩어 보내신 것은 증인으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흩어 보내심을 받고 가는 곳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으로 먹었던 떡과 가르쳐 주신 영생할 수 있는 말씀을 흩어져 가는 곳마다 전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한 말씀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을 부모 형제가 사는 집이 아닌 다른 먼 곳으로 흩어 보내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와 형제들, 그리고 이웃에게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과 말씀을 전하는 증인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의 교회와 성도인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는 주일마다 모여든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부모 형제와 이웃에게 그 말씀을 전하는 증인으로 흩어 보내야 합니다.
성도들은 교회로부터 배운 말씀을 가족들에게와 이웃에게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만이 증인이 아닙니다. 영생하는 믿음의 삶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 형제와 직장과 일터에서 영생하는 믿음의 삶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오병이어의 떡을 먹고 스스로 돌아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그들을 증인으로 흩어 보내야 합니다. 성도는 칠병이어의 떡을 먹은 이방인들처럼 영생의 떡을 먹고 흩어 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드린 후 흩어져서 예수님의 증인이 됩시다. 부모 형제에게와 이웃에게 생명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삶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셔서 많은 사람을 예수 믿고 영생하도록 합시다. 주님 오시는 날 그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