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의 큰 힘이
요절 :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삿16:6)
믿음의 비밀스러운 그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이 먹고 사는 양식에 있습니다.(필자추가: 그 양식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그 크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소산)인 하나님의 약속의 본질(의미)을 탐구(연구)합니다.(역자주1)
믿음은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로 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 약속의 주인공은 누구이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전능하시며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 약속(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께서 왜 그 약속을 주셨는가를 기억합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 자신의 본성(특성)을 더럽히거나, 그자신의 면류관의 광채를 손상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고로 그 약속은 반드시 굳건히 세워지고 또 계속 존속할 것입니다.(지탱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믿음은 또, 그의 말씀을 성취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로서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역을 생각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또 믿음은 과거도 돌아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그 약속을 져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그 자신 중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으신 것)을 기억합니다. 믿음은 지난날 큰 위험에서 구원해 주셨던 때와 심한 궁핍 속에서 믿음의 큰 힘을 얻었던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부르짖습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나를 도우셨으니 여전히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라고. 그래서 믿음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묵상입니다.
믿음의 힘은 말씀과 성령으로부터 나옵니다.
아멘!
삼손의 인생을 보면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힘이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박윤선 주석』
삿 16:6-9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 (6절) 삼손이 이 때에 그녀에게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이와 같은 요구가 들어왔을 때에 그는 이같은 요구를 다시 하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강경하게 막았을 것이다. 그는 일찌기 딤나 여자의 요청에 따라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려주었다가 실패한 쓴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 들릴라의 요구는 삼손을 해하려는 데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이 그 요구를 아주 외면하지 않고 거짓말로라도 응해 주면서 부드러운 태도를 지켜 나갔으니, 그는 쾌락에 빠져서 위험을 위험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어두운 자가 되어 버렸다.
『호크마 주석』
삿16:6 어떻게 하면...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 여기서 '곤고케 하다'에 해당하는 '아나'(*)는 '억압하다', '비천케 하다'라는 뜻이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삼손에게 이와 같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질문한 것으로 보아 들릴라는 상당히 우둔한 여자였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삼손은 세번씩 거짓말을 하면서 그녀의 질문에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회피했다(7, 11, 13절). 그리고 또 삼손은 들릴라의 질문이 그 당시 블레셋인들과 같이 이방인들의 미신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임을 눈치채고 그럴듯한 미신적인 투로 대답을 한다.
삼손의 힘의 원천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에 충실하였으면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해내는 믿음의 전사로 사명을 다했을 터인데, 언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곧 믿음을 지키지 못하자 큰 환난에 처하게 돼버렸죠. 삼손의 모습은 자주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고 배반하는, 이방인들의 유혹에 취약한 이스라엘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 속에서 회개하고 믿음을 되찾은 삼손의 마지막 모습은 자신을 희생하여 원수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연상케 합니다.
이스라엘에 이러한 걸출한 믿음의 위인들이 있었기에 그 오랜 역사 속에서도 멸망당하지 않고 민족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풍성한 댓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