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25/갈무리]1년농사農事 마무리 “한말씀”

[알록달록]

[찬샘단상 25/갈무리]1년농사農事 마무리 “한말씀”

엊그제 서리태(검은콩)를 베어 말리려 비닐하우스에 세워놓고, 서리맞은 생강을 한 두럭 캐 스티로폼상자에 왕겨를 넣어 15kg쯤 보관해 놓았다. 그리고 어제는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짜고(페트병 하나 나왔는데, 2홉짜리 소줏병에 따르니 5병), 작두콩 6kg을 볶고, 울금을 가루내 가져왔다. 2주 전에는 마늘 2접과 양파 만원어치를 사다 심었다. 벌써 싹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게 너무 신기한 일이다. 이로써 2021년 신축년 한 해 농사 갈무리가 끝난 셈이다. 아니, 정확히는 열흘쯤 있다 콩타작을 해야 하니 마지막 작업은 남았지만, 갈무리를 다 한 거나 마찬가지인지라 아내가 사는 용인집에 올라와 새벽을 맞는다. 이번에는 3년만에 처음으로 열흘쯤 있다 내려갈 생각이다. 모처럼 아내와 제주도에 가 한라산도 바라볼 일이다. 명색이 ‘생활글작자’로서 갈무리를 한 마당에 어찌 소감이 없으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농사꾼은 웃지 못할 실수도 많았다. 시행착오trial and error는 대부분 무지無知에다가 게으름에서 왔다. ‘풀과의 전쟁’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싶었고, 그렇게 방치했다. 제초제를 뿌려야 하는데 엉뚱한 약을 쳤다. 마늘밭에 요소비료를 몽땅 뿌리고 걱정이 되어 몽당비싸리로 청소하듯 쓸어낼 때는 내가 미웠다. 세상에 그런 일이었다. 몸에 논두럭의 풀을 베어야 했는데, 꼬실러라는 친구의 말에 새파란 풀을 태우려고 라이터를 갖고 달려가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준비물을 갖춰 가야하는데, 늘 몸만 갖고 가 왔다갔다 몇 번이고 헛걸음을 했다. 지식이 없으니 요령이 있을 턱이 없었다. ‘농사일기’는 해프닝투성이여서 쪽팔려 쓸 수조차 없는 날이 많았다. 완전 ㅎㅎ이자 ㅋㅋ였다. 그런데도 한 해가 지나고 갈무리를 했다. 백면서생으로선 신통방통할 일이다. 이제 결산을 할 참이다. 무엇무엇을 짓고 어떻게 수확을 하고 얼마나 많이 주변에 나누어주었을까.

프로농사꾼 아버지와 함께 온갖 푸성귀(상추, 쑥갓, 시금치, 당근, 대파, 등)는 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고추 10포기는 여름내내 좋은 반찬이 되었고, 방울토마토는 원없이 따먹었다. 비염에 특효라는 작두콩을 1포기 천원씩 60포기를 심었는데 대박이었다(10kg을 10만원에 팔았고, 20kg쯤 말려 볶아 주변에 나눠주었다). 공짜 씨땅콩을 6두럭에 심어 모두 60kg쯤 캐어 2kg씩 30여명에게 나눠주었다. 땅콩은 심어먹고 캐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한 알에서 수 백알의 땅콩이 달려나오지 않은가. 그건 숫제 희열이자 환희 그 자체이다. 쪄먹고 볶아먹고 조림해 잘 먹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이웃 아주머니가 심다 남았다며 준 감자와 고구마도 심어 캐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나눠먹는 재미는 더 좋았다. 친구가 옮겨 심어준 복숭아나무 1주(3주는 죽었다)에서 농약도 안친 복숭아를 10개도 넘게 따먹었다. 손자가 좋아하는 블루베리와 앵두나무를 사다 심었는데, 완전 다닥다닥, 따주는 재미라니. 생강도 1만원어치 사다 심었는데, 30kg쯤 나왔다. 참나무 토막 60여개에 표고버섯 종균을 심었는데, 물을 자주 주지 않아 실패한 것같다. 30여개를 따먹은 후 종내 무소식이다. 실패. 10포기도 안된 고추나무에서 빨간고추를 3kg쯤 따말렸으니 성공. 가을의 맛과 멋은 역시 대봉시. 작년 혹한에 감나무들이 다 죽어 올해 감농사는 흉년이고 망했다. 다행히 우리집 감나무밭 10여그루에 100개쯤 달려 체면은 유지한 셈.  귀향하여 첫번째 한 일이 대봉 40그루 묘목을 40만원에 사 심었는데, 이것도 올 봄에 싹을 틔우지 못하고 죽은 것같아 무척 속상했다. 그래도 고목에서 100개가 어디인가. 흐흐

이제 처음으로 지어본 논농사 이야기를 할 참이다. 논농사라니? 우리의 주식主食인 쌀을 생산하는 것이다. 과정이 참 복잡하다. 겨우내 언 땅을 쟁기질에, 로타리에, 이앙에, 제때 비료를 줘야 하고, 농약을 쳐야 하고(항공방제 4차례), 물꼬를 수시로 봐야 하고, 드디어 콤바인으로 벤다. 농협에 물수매(RPC)를 하고, 먹을거리로 나머지는 햅쌀방아를 쪘다. 어느 집은 깨씨무늬병으로 한 해 농사를 망쳤다지만, 우리논은 그 병이 달라붙지 않아 천만다행. 4필지(12마지기 2400평)에 투입한 돈만 얼추 350만원(형님들 논세 180만원 포함하면 500만원이 넘는다). 소득은 얼마나 될까? 공판 550만원, 농민수당 60만원, 햅쌀 판매 60만원, 저온피해 35만원에 직불금 120여만원하면 800만원을 약간 웃돈다. 순소득 300만원이 되려나? 나의 연봉은 300만원. 한 후배가 1마지기에 직불금 포함해 25만원정도 잡으면 된다는 말이 딱 맞는 셈이다. 흐흐.

그런들 어떠하리. 나는 이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요순시절의 격양가擊壤歌를 부를 수 있다. 등 따숩고 배부르면 됐지, 더 무엇을 바라랴. 하지만 아내와 아버지, 여동생들이 더 이상 밭농사 짓지 말라고 난리블루스이다. 당뇨가 10년이 넘으면서 빠지는 것이 몸무게이다. 한때 77kg 나가던 체중이 1, 2년새 10여kg가 빠져 피골이 상접해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걸 걱정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당뇨눈도, 당뇨발도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고, 10년도 넘게 날마다 먹는 당뇨치료제 두 알만 먹으면 혈당도 크게 높지 않은 걸. 마치 내일모레 어떻게 될 성 싶은 듯 요란이다. 마침내 아내의 특명이 떨어졌다. 섭생을 잘 시켜 70kg는 올려놓을테니 올 겨울은 무조건 올라와 같이 있습니다. 완전히 오 마이 갓!이다. 애초에 아버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당신(당신을 모신다는 이유로) 때문에 식구와 떨어져 산다고 생각한 아버지, "아버지가 안계셔도 이렇게 사는 게 내 삶의 철학"라고 아무리 강조해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내 짐을 덜어주기 위해 당신이 겨울동안은 요양병원에 있겠다’고 생각을 굳힌 것이다.

봄, 여름, 가을은 아버지의 ‘일 욕심’ 때문에 부자간에 갈등이 많았고 심했지만, 겨울엔 기름보일러, 난방문제 때문에 갈등이 폭발지경에 이를 것이 뻔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기름값 걱정에 악착같이 춥게 사는 아버지의 평생 습관은 도회지에서 40년도 더 넘게 산 아들-며느리에겐 차라리 고문拷問인 것을. 실내온도 18도로만 놓으면 기름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귀가 아프게 말해도 내가 돌아서면 얼른 꺼버리는, 극도의 절약습관. 당신 방에 전등조차 켜지 않고 신문이나 책을 보신다. 95세의 나이에 돋보기도 쓰지않고, 전기장판도 딸들의 극성으로 아주 추울 때에야 1,2번을 넣는다. 목욕은 평생 질색. ‘생활의 습習’이 서로 다르다는 게 사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인지는 예전에 미처 짐작도 못하고 몰랐던 일이다. 말하자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고쳐지지 않을 ‘고질병’이다. 당신이 산 보릿고개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이고 ‘소비가 미덕’인 세상이 왔다는 말은 아예 귀에 담지 않는다. 어렵게 산 당신의 세대에서 몸에 배인 ‘생활습’으로 바로본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못마땅해도 너무 못마땅한 것이다. 내 귀에 아버지의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환청처럼 늘 들리는 듯하다. ‘어른 모시고 살기 쉽지 않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일까. 딱 한 세대, 30년 차이의 아버지와의 ‘세대 차이’를 진정 극복할 길은 없는 것일까. 여러 번 생각해본 나의 숙제 중 숙제이다. 나의 30년 후도 내 아들들과 이런 문제들로 갈등을 겪을까. 요양병원이라니? 결국은 ‘현명한’ 당신이 선택한 길이 그 길밖에 없는 것일까. 용인집에서 한 해 농사 갈무리를 하며, 내일모레면 요양병원에 가실 아버지와 당분간 주인없는 고향의 빈 집을 생각하며 한없이 마음이 착잡한 아침이다.

하지만, 나는 열흘만 있으면 다시 내려갈 거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 턱도 없을 거니와 내년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논이 얼기 전에 퇴비를 넣고 쟁기질을 하여 감자를 심도록 고랑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음력 정월 초순께 택배로 받은 강원도 감자씨를 600평 논에 심을 것이다. 하지 전인 5월 20일께 캐면 훨씬 더 비싼 값으로 납품할 수 있고, 그 논에 다시 콩을 심어 명실공히 2모작을 할 것이다. 1필지 수확이 논 3필지 수확을 훌쩍 넘어설 것이 눈에 보인다. 죽어라고 논농사 지어 연 300만원도 못되는 소득보다 2모작으로 300평에 1천만원이 넘는 소득이 생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웃마을 친구의 코치만 제대로 지킨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터이고, 힘은 어차피 똑같이 들게 마련.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그때는 ‘초보농부’라는 딱지를 뗄 수 있을까. 하하.

[따르릉길]

쓴맛 단맛 다보며 어른모시듯
아이 달래듯 짓는 농사가 얼매나 힘들것소?
행여 태풍불세라
장마질세라
노심초사 걱정속에 나락비어놓고
콩타작 해놓으면 한숨이 쉬어지려나?
ㆍ
내년 농사 준비해야쥐
축사에 똥거름내어다 뿌려야지ㆍ
어찌 농사를 배웠을꼬?
그 험한 세상에 농사나 지어야지 하는
철없는 얘기들
농사를 기계가 짓지 사람이 짓냐? 하는
철없는 얘기들이 생각나는
농사쟁이 친구가 장하고 부럽다는 생각이드는
가을바람 지나가는 아중저수지에서의 생각이다

[우포 장준상]

인생 그래프 계속 상향 추세! 정말 부럽네.
해병수색대 출신 아들이 수경당 형수님 닮은 점도 있지만, 아버지도 닮은 것 같구료.

남자는 깡!

그렇다고 주먹은 쓰지~~마소.

[박치원]

우천이 농부 다 되었구만 건강도 지키고 돈도 벌고
난 농사 질 땅도 없으니 산이나 열심히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