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이 불타고 있을 때 나는 텔레비젼 화면을 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짓고 있었다.(그 이유는 잠시 후에 밝혀집니다)
지금, 금진항 서낭당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금진항 이장과 모의를 꾸미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와 전설을 위해서이다.
"성덕왕대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길이었다.
순정공 일행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가에 자리를 펴고 향긋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팜므파탈의 미모를 지닌 순정공의 부인께서 뭇 남성들을 시험하는 도발적인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칼처럼 뾰족한 절벽 위에 핀 꽃-철쭉꽃으로 추정-을 자기에게 꺽어 바칠 사람이 없냐며 아리따운 눈을 슬며시 내리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세미녀의 유혹이라 해도 목숨을 내걸고서 절벽 위로 올라갈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수로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실망어린 표정을 날렸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보건대 수로부인은 대단한 공주병 환자였던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공주병 환자에게는 그를 떠받드는 머슴이 꼭 한 명 있다.
살로메의 치명적인 춤에 넘어가 요한의 목을 자른 헤롯왕이나 서시의 요염한 자태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오나라 왕 부차처럼 말이다.
수로부인이 헛웃음을 날리며 동해의 옥색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던 중에 태권브이처럼 등장한 한 노옹이 있었다.
노인은 손에 임신한 암소를 끌고 있었는데, 수로부인의 청을 받아 들여 주저 없이 절벽 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붉은 철쭉꽃을 한 아름 따서 그녀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노래도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진댄
제 꽃 꺽어 바치오리다.”
노인은 <헌화가>라는 이 노래를 부른 후, 한숨도 미련도 없이 수로부인 곁을 떠났다. 요즘말로 하면 진짜 ‘쿨’한 사람인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바치는 행위는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이다.
꽃은 처녀를 상징하는 것이며 꽃을 꺽는 행위는 처녀성을 정복하고 싶다는 심리적 표현이다.
결국 헌화가를 부른 노인은 수로부인에게 강한 성적 메시지를 전달한 후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경국지색인 그녀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말이다.
수로부인은 미모 때문에 처용의 아내와 같은 영광(?)을 대단히 많이 겪은 미인이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역신과 용, 괴물들이 주야로 나타나 그녀를 납치하곤 했으니 말이다.
순정공 일행이 다시 움직여서 어느 바닷가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사나운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물고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일행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역시 한 노인이 나타나 여러 입으로 떠들자고 선동하였단다.
백성들을 불러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항의의 노래를 부르면 부인을 다시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집회 및 시위를 감행하면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 내 놓아라”
라고 협박하였고 마침내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거북이는 수로부인의 미모를 탐하는 남성의 성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의 헌화가는 성적인 상징과 암시가 곳곳에 배어 있는 노래였던 것이다.
수로부인이 이쁘니까 납치도 많이 당한 모양이다. 옛날이나 현재나 이쁜 여자는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모양이다.
납치 당한 수로부인을 내놓으라고 거북이를 부르는 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로부인을 납치한 좃대가리 큰 남자에게 애원하는 형국이다.
거북이 머리 만큼 큰 좃을 가진 남자라면 필시 대단한 힘을 가졌던 게 분명하다."
위 글은 내가 심곡항에서 금진항으로 이어지는 헌화로 명칭에 유래된 수로부인 이야기에 대한 짤막한 해설이다.
십여년 전에는 심곡항과 금진항은 강릉의 오지 중에 오지였다. 금진항과 심곡항은 가까운면서도 멀 수 밖에 없는, 동해안 절벽이 가로막힌 동네였다. 오로지 갈 수 있는 길은 지금은 등산로로 이용하는 산 길 밖에 없었다.
그것을 강릉시에서 해안 절벽 밑으로 도로를 만들었고, 그 도로의 명칭을 공모했는데, 강릉의 관동대학의 모교수의 헌화로라는 것이 당첨이 되었다.
그 교수의 이유인 즉, 내가 위에 서술한 수로부인 전설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왜냐하면, 헌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도 절벽을 통과하면서까지 강릉 태수로 부임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헌화로 절벽에는 철쭉이 자생할 수도 없고 지금도 철쭉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굳이 갖다 붙히자면 아마 7번국도 밤재를 넘었다면 맞는 말이다.
한마디로, 삼국사기에 적혀있는 단 몇 줄의 기록으로 대학교수가 사기친 것이고, 강릉시는 그것을 모른 채 받아 주고 우매한 대중들은 그것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 음모에 가담하기로 했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금진항 서낭당의 기원을 수로부인 전설에 살짝 끼워넣기로 이장과 합의를 했다.
팜브파탈의 미모의 수로 부인이 좃대가리 큰 놈으로 상징되는 거북에게 납치되고,
그래서 암소를 끌고 가는 태권브이 노인이 수로부인을 내놓으라고 ‘거북아 거북아’ 하고 구지가를 애타고 부르면서 합창한 장소가 바로 금진항 서낭당을 다시 짓는 곳이라고....
그리고, 그에 대한 전설을 새로 편집해서 서낭당 앞의 현판에 버젓이 걸어 놓기로.....
그리고, 모 대학의 문화재 위원인 교수님에게 문화재로 등록을 해 달라고 하기로...
삼국유사의 단 몇 줄의 기록으로 사기쳐서 헌화로 명칭 공모에 당선된 교수나, 그것을 빌미로 금진항 설화가 다시 탄생되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차피 역사와 전설은 민간의 유래를 짓밟고 일어선 것이니까.
남대문은, 아나키스트의 시선으로는 권력의 상징이다.
봉건제와 중앙집권과 권위와 권력으로 대변되는 의미이다.
일제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철거나 남대문 방화나 같은 의미다.
조선 총독부 철거는 애국주의이고 남대문 방화는 매국노라는 발상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남대문을 방화한 그 노인네가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고 진정한 아나키스트였기를 희망했다.
게다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남대문을 복원하기 위해, 강원도 삼척 준경묘 금강송이 수 없이 잘려나가고 그것에 반대하는 동네 주민의 원성에도 아랑곳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대문을 복원하는 대목장이라는 인간문화재 모씨는 강릉을 비롯하여 곳곳에 제재소를 운영하면서 값나가는 소나무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헬기를 동원하여 빼돌린다는 소문은 이미 기정화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권력의 상징물을 위해 세금을 물쓰듯이 쓰는 것 보다, 어촌의 작은 서낭당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욱 귀엽지 않은가?
남대문이 불타는 것을 텔레비젼에서 보면서 미소 짓던 아나키스트는, 지금 동해의 작은 어촌의 서낭당의 유래를 조작 하려고 하고 있다.
만주를 둘러싼 중국과 북한과 남한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의 공방, 그것은 오로지 경계를 지어야 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는 국가주의에 산물에 다름 아니다.
동북아 3국의 역사는 같이 쓰여지고 통합되어야 한다. 오로지 민중의 시선에서 말이다.
국가주의는 민중과는 항상 반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