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하며 수보리야, 보살이 아상我想, 인상人相, 중생상衆生想, 혹은 수자상壽者相에 집착한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수명을, 태어나는 순간 시작되어 죽을 때 끝이 나는 일정한 길이의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전이나 이후를 포함하지 않고, 오로지 수명이 지속되는 동안만 살아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은 모든 것이 죽음이 아니라 삶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개념화라는 이름의 칼이 실체를 조각내어 한 쪽은 삶으로, 다른 쪽은 죽음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시작되고 죽는 순간 그것이 끝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이는 수명에 대한 견해인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의 지혜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태어나고 매 순간 죽습니다. 하나의 수명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삶과 죽음이 있습니다. 뇌세포, 피부세포, 혈액 세포와 같은 우리 몸의 세포는 매일 매일 죽어갑니다. 지구를 하나의 몸이라 생각하면 우리는 그 몸을 구성하는 세포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나 지구라는 몸의 세포가 하나씩 죽어갈 때마다 울부짓고 장례식을 치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삶이 있기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사응부 경전에서 부처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눈[眼]이 존재하려면 인(因:원인)과 연(緣: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인과 연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몸[身]과 의식[意]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고 그것을 꽉 붙들고 싶어합니다. 반대로 죽음은 두려워하고 마주치길 꺼려합니다. 이러한 생각들로 인하여 걱정과 근심이 생격나게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가 수자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 .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잘못된 지각이 바로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네 가지 잘못된 지각이란 아상에 대한 지각, 인상에 대한 지각, 중생상에 대한 지각, 그리고 수자상에 대한 지각을 말합니다. 보살은 이러한 잘못된 지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금강경 중]
명절이라 어른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저의 나이는 헤아리지 않고 연로한 어른들의 변화에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갔습니다.
우리 엄마는 나물을 참 맛나게 무치는 분이었는데, 이번 추석의 나물은 제가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밥을 먹으려 상을 차렸는데 점점 엄마가 한 음식에 손이 적게가려 하는 내 몸짓 그리고 쏜살같이 입맛이 변하여 음식맛도 변하고, 행동도 어눌해지는 엄마가 걱정스레 내 마음속에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지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요.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그랬어요.
그분들의 변화를 인식하여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보다는 못본척 회피하거나, 말하기를 피하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더불어 나의 미래, 어르신들의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슬며시 함께 따라오는 것도 알아차렸지요.
변.화. 그리고 집.착.
아직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몰라서 그렇기도 하고, 오랜 잘못된 생각들이 나를 고통으로 이끕니다.
빨리 늙지않기 위해서 수많은 영양제를 챙겨먹고, 밤낮 없이 운동을 하고, 몸에 좋다는 것만 골라먹으며 아슬아슬하게 사는 것보다, 나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몸의 변화를 자연스레 수긍하며 그것에 발맞추어 천천히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공부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나의 엄마, 아부지가 짠~한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할 바를 다하며 살아오셨다는 것을 인식하며 바라볼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옴_()_
첫댓글 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