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zul.im/0NkzEZ
청주에서 거점을 둔 적 있는 내가
어릴 적 경험을 풀어본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일이야.
95~96년도.
잠깐 내가 살던 곳을 설명하자면
청주의 봉명동이란 곳이고
꽤 큰 주공아파트 단지였고
큰 길을 기점으로
1단지와 2단지로 나뉘어져 있었어.
내가 살던 1단지 중에서도 내 집은
끝의 끝이었어.
그러니까,
1단지 주공아파트가 끝나는 위치의 끝 집.
아파트...라기엔 2층으로 된 저층 주택이었지만.
(5층짜리도 있긴 함)
여튼 2층으로 된 주택들이
레고 마을처럼 구획별로 이어져 있는 그런 곳이야.
오래된 곳이고 평수가 무척 작아.
재개발 된다는 이야기가 십 몇년 전부터 있어서
사놓은 사람들도 많은 그런 오래된 동네였지.
어느 날인가 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는데
우리 옆 동 1층 끝 집 앞에 노란 줄이 쳐져 있었어.
동네 사람들이 그 앞에 웅성웅성 서 있었고,
경찰차도 있었고 경찰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토하고 있던 걸로 기억해.
이 2층짜리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건물 입구를 들어가야 현관이 있는게 아니라
벽에 문이 달린 게 그 자체로 집의 현관이야.
그 문이 반의 반 쯤 열려 있었는데
나는 그 안을 들여다 보지도 못하고
(키가 작아서 주민들 뒤에서 기웃거리는 게 다였어)
집으로 돌아왔지.
당시 나는 키보이였기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내가 집열쇠를 목에 걸고 다녔거든.
제일 먼저 들어오니까...
피아노 학원 가기 싫어서
집에서 뺀질거리다가 학원에 가려고
다시 밖에 나왔는데
그땐 사람은 좀 줄었는데
경찰들이 여전히 있더라고.
그 때까지도 도둑이 들었나 생각했는데
다음날 학교 가니까 소문이 다 났더라.
강도살인....
주인은 혼자 살던 여자인데
강도가 들었는데 죽였다나봐.
그래서 한동안 그 집은 빈 집이었고
동네가 뒤숭숭했어.
그러다가 그 집에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됐어.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랑,
더 나이 많은 오빠가 있는 4인 가족이었는데
이사온 당시 내가 4학년,
동네 언니들은 대부분 5학년이었어.
그 언니도 5학년이었지.
나는 그 때 눈높이 수학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눈높이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할 때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집집마다 돌지 않고
한 집에서 할 때 동네 애들 2명 정도를
그 집으로 불러서 돌아가면서
그룹으로 지도해줬어.
나는 꽤 자주 그 언니네 집으로 불려갔지.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그 언니도
그 집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던 걸 몰랐으니
그렇다 쳐도
나는 참 무슨 배짱이었나 싶은 게...
그 집은 현관을 들어서면 실내온도가 서늘했어.
여름에도 반팔에 반바지 입고 그 집에 들어가면
추워서 팔을 비빌 정도로.
그 사건은 안방에서 있었다는데,
공부는 그 언니 방인 작은 방에서 했거든.
근데 안방은 진짜 낮에도 어두컴컴하더라.
그 주택 구조가 안방에 창이 커다랗게 있는데 말야.
우리집이나 그 집이나 1단지의 끝 경계선 라인이라
뒤에 큰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집 뒤에는 유치원 하나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그늘이 지더라 집 안에.
그리고 그 언니 방에서 눈높이 할 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방문을 등지고 앉는 걸 죽어도 거부했어.
꼭 방문이 내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으려고 했었어.
빈 자리가 거기밖에 없어도
나는 선생님과 언니 사이를 파고들어 앉곤 했어.
누군가 나 몰래 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거 같았거든.
그리고 학교 생활하면서
학교에서도 그 언니를 자주 봤어.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동네 또래 언니들하고
같이 무리지어서 다니고
활발하게 잘 놀던 언니인데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
표정도 점점 멍해지고,
나는 그 언니가 원래 순한 건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멍한 표정이었어.
말도 느려지고... 말수도 적어지고.
내가 그 언니한테 다른 언니들처럼
좀 활발하게 다니라고 했다가
다른 언니들한테 엄청 깨졌던 기억이 있을 정도니까.
(4학년이 주제넘게 5학년한테 그런 말 했다고...
근데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진짜 점점 사람이 어두워져가니까)
아무튼 그 언니도 나도 눈높이 수학을 했는데,
그 언니가 엄청 잘 하는거야.
초5였는데 중1 단계를 풀고 있었으니까.
근데 그것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단계가 그렇게 점프했대.
원래 공부를 잘 하나 싶었는데 아니래.
이사와서 수학에 그렇게 파고들었대.
공부도 엄청 잘 하게 되고
맨날 집에 와서 눈높이 수학 숙제하고.
선생님이 오죽하면 그 언니는
일주일에 한 권 주는 문제지를 두 권을 줬어.
2주치를 1주에 진도를 빼.
그렇게 살인사건 난 집이라는 걸 모르고 살던
그 집은 동네사람들이 쉬쉬해도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되고는
그 뒤로 몇 개월을 더 살다가
같은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했어.
그 집엔 또 다른 애기있는 신혼이 왔고.
그 뒤로는 그 언니가 좀 활발해졌는데,
내가 뒤늦게 커서 생각했을 때 소름돋았던 건
혼자 살던 그 여자가 은행원이었대.
나도 통장이 있었던 동네 은행 언니였다고.
(새마X금X)
엄청 조용하고 말도 없이 살아서
동네에서는 존재감도 희미했대.
갑자기 수학에 집중하며 말수가 적어지는
그 언니와 죽은 그 여자.
너무 닮지 않았니?
당시 신문에 기사라도 나지 않았을까 싶어
뒤져보는데 지역지 구석에는 좀 실렸을 법한데
지금 인터넷상으로는 못찾겠네.
내가 위에 3학년인지 4학년인지
아리까리하단 것도
그 언니가 이사온 게 4학년이고,
그 사건이 터졌던 건 3학년때인지 4학년때인지
기억이 잘 안 나.
내가 알고 있는 키워드는
살인사건이 난 장소가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주공1단지라는 것과
죽은 사람이 여자라는 것.
아마도 95~96년도 사이라는 것.
정말 죽은 여자의 혼령이
그 언니한테 영향을 끼쳤던 걸까?
해가 안 드는 곳도 아닌데
왜 그 집은 그렇게 서늘했을까?
난 왜 그 집에만 가면
문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어야 안심을 했을까?
누군가 몰래 침입해 자신을 죽였기에
문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마음이
나한테도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지금 나는 그 동네를 떠났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지금도 그 때 그 집이 종종 생각나.
여름에도 오소소 소름이 돋던 서늘한 그 집이.
첫댓글 이사 온 가족한테 심각한 일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네 ㅜㅜㅜㅜ 강도는 지옥에나 떨어지쇼
어우.주소까지 세세하게나와서 더 소름 ㅠㅠ..진짜 강도 꼭 천벌받길
수학귀신..
나 청주사는데 저기 어딘지 알거같아ㅜㅜ지금은 재개발 공사하는데 예전에 치과다닐때 저기 지나다녔었어 진짜 오래된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