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제시대 시골 주재소 순사나리 마누라가 씨암닭을 잡다가 반쯤 털이 뜯긴 씨암닭이 도망을 쳐버렸다.
달구새끼는 꼬꼬댁거리며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삽작 밖으로 도망쳤다. 순사 마누라가 뒤쫓아 나왔으나
달구새끼는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흔적도 없었다. 당황한 순사 마누라가 엉겹결에 소리쳤다.
"우와기 벗은 꼬꼬댁 한 마리 몬 바소까?"
2. 어렸을 때 나는 밥 먹다가 제풀에 삐쳐서 삽작 밖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늘 나를 달래려나오곤 했다. 어머니는 그 못된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저녁을 먹다가 삐쳐서 삽작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나오지 않았다.
- 해는 저물어가는데 밥상을 치워버렸으모 우짜노?
걱정이 태산 같았으나 제발로 뛰쳐나간 놈이 핑게도 없이 제발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때 능구렁이 한 마리가
담부랑 사에에서 기어나왔다. 나는 요때다! 싶어 마당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쳤다.
"옴마, 배,배미가, 지게작대기만한 놈이 담부랑 밑에서....."
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큰 일이나 난 듯 호들갑을 떨었으나 어머니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
"와, 배미 심바람 왔나? 배미가 너거 옴마 좀 보자 카더나? 배미한태 가서 말해줘라. 옴마는 배미하고 만날 이유 없다꼬!"
밥상을 이미 치우고 없었다. 나는 저녁도 못 먹고 삐죽삐죽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 다시는 삐쳐서 삽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3. 요새 교회 권사인 우리 마눌님은 신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허밍으로 찬송가를 흥얼거린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새벽기도 삼 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술을 끊은 것이다. 하도 말을 안 들으니 하나님께서 야곱처럼
내 다리를 분질러 술을 못 마시게 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심심하고 같이 어울려 떠들고 싶어 단골술집에는 간다.
- 밤새도록 지 잘났다고 떠들어 봐야 날이 새면 남는 것은 쓰린 속과, 빈 지갑과, 마누라 잔소리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만 옛날처럼 재미가 없었다. 내가 술을 안 마시니 술꾼들이 콩팔칠팔 떠드는 소리가 지겹기만했다.
그래서 내가 맨정신으로 일찍 집에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마눌님 왈,
"내가 사십 년 동안 당한 그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해방됐으니 찬송이 안 나오게 됐소?" 한다.
그러니 어찌 찬송이 저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4. 전라도 장흥 땅에 청주한씨 성을 가진 양반퇴물이 살고 있었다. 물 좋고 경치 좋은 장흥은 엣날부터 법도를 중히여겼다.
한 때는 풍선 (돛을 단 고깃배) 두 척을 부리며 제법 떵덩거리고 살았던 양반 퇴물 한씨는 술 때문에 재산을 다 말아먹었다.
그래도 양반 퇴물이라고 여름에는 새하얀 모시적삼에 부채 들고 에햄 하고 다니며 일이라고는 손끝도 까딱 안했다.
불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마누라 강진댁은 콩밭을 매려 가면서 대청마루에서 자빠져자는 영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혹시 소나기가 오면 마당에 늘어놓은 곡식과 열어놓은 장독 뚜껑을 덮으라고.
강진댁이 팥죽땀을 흘리며 콩밭을 매고 있는데 걱정햇던 소나기가 쏟아졌다. 요놈의 영감태기가 비설거지를 했나?
영감을 못 믿어서 강진댁이 허겁지겁 달려오니 아니나다를가 영감태기는 대청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은 강진댁은 부엌 앞에 있는 구정물통을 냅다 영감태기의 머리에 퍼부어버렸다.
달콤한 꿈속에서 구정물 벼락을 맞은 양반퇴물은 길길이 날뛰며 동네방네 소리치고 다녔다.
"천하의 악처가 하늘 같은 서방님을 무시하고 얼굴에 구정물을 퍼부었다! 세상에 이런 못 된 여자를 그냥 둘 수 있나!"
강진댁은 결국 '칠거지악'에 걸려 마을에서 쫓겨났다. 쫓겨난 강진댁은 먹고살기 위해 장터거리 들머리에 국밥집을 차렸다.
국밥집은 번창했다. 마누라 쫓아내고 알거지가 된 양반퇴물 한씨는 소문을 듣고 강진댁을 찾아갔다.
남남이 된 강진댁은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쏘내기가 오는데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도 안 치우고 열어놓은 장독 뚜껑도 안 닫는 그 잘난 양반퇴물한테는 국밥도 안 파요,
그놈의 양반 꼬랑대기는 꼴도 보기 싫으니 우리집 앞에 얼씬도 하지 마소!"
양반퇴물 눈에는 쌀살맞게 구는 강진댁이 선녀같이 보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