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어요
세살때 등에업혀 전라북도 김제로 이사를 와서 순천에 대한 기억은 없고 내고향은 김제 참새미골이지요
어린시절 시골 먹거리야 뻔한것
우리 밭과 논에서 나는 채소와 열매들이 주가되고
가~끔 엄마가 장에 다녀오시는날에나 비릿한 갈치나 명태를 먹고
더 가끔 명절에 닭고기를 넣은 떡국을 먹는게 육류섭취의 다였지요
아마 국민학교 4학년때쯤인가?
엄마가 아궁이 에 올려놓은 석쇠에 구운고기를 건네준것이 최초의 육고기 맛이었지요
다양하게 먹어본적이 없으니 엄마가 닭고기라하면 닭고긴갑다 하면서 먹었다가 나중에야 돼지라 하니 우웩!하던 기억이,,,
내가다니던 국민학교는 급식 시범학교라 해서 우유와 빵을 지급했고 학교에서 닭도,토끼도 키우고 방죽에서 잉어도 키우고 누에도 키우고 시금치도 키우고 그랬지요
누애도 고학년이 키우느라 잠을 못자고 고생하고
닭과 토끼를 키우느라 늘 고구마순이나 플을 배서짊어지고 다니고
잔듸씨 모으고,송충이 잡고, 겨울엔 꿩잡는다고 눈밭을 헤메고
공부보다는 그런일하다 졸업한 기억이 더많군요 ㅋㅋㅋㅋ
그때는 몰랐지만 우유와 밀가루가 소화안되는 나는 하교길에 매일 배탈로 고생을 했었는데 그당시는 부모나 선생님께 말씀드릴줄도 모르고 그냥 혼자 비지땀을 흘리며 아픈배를 잡고 집에달려가며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요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리떨어진 전주 근영여고에 다니면서
때로는 언니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때론 두시간 가까운 버스통학을 하다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자취를 하기도 하면서
이제 돌아보니 먹고사는것이 그냥 살기위한 최소한의 음식이엇던 시절이 아닌가 싶어요
전주가 보수적인곳이어선지 내가 고지식해서인지
졸업하는날 처음으로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란걸 먹어봤어요
빵집이나 분식집에 가면 큰일 나는건줄 알고 살았거든요 ㅎㅎㅎㅎ
스무살이되어 서울살이가 시작되고
언니와 함께 살면서 부족하지만 음식다운 음식이란걸 먹고 살아본거같고
그나마 언니는 시집을 가고
내가 결혼을 할때까지 미용실 후배들과 내내 자취라는걸 하면서
다시 먹고산다는것이 목숨을 유지하는 정도인데다가
어찌나 미용실이 바쁘던 시절인지
점심이란것은 미용실 게단통로에서 길어야 10분이내인 먹는다기보다는 마시듯이 음식을 먹던 시절을 몇년하면서
가뜩이나 마른 나는 언제나 몸의 어딘가 한곳은 고장나있는 상태로
그것이 늘 당연한듯이 살았지요
그때는 으례껏 나도 동료들도 그러고 살다보니 몰랐는데
되돌아보니 참 안쓰럽고 서러운 시절이었네요
결혼을 하고
시골출신이어도 나름 미식가(?)인 남편덕에
그나마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옷도 고급도 입어보고 즐기면서살게되었지만
워낙 내가하는일이란게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이 살다보니
늘 밥이란것을 급히 먹고 ,그나마도 못먹기도 매일반으로 산 세월이 많았네요
그래서 언제나 얼굴은 누리끼리,몸은 부실,
생리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이런 큰일이 내게 닥칠거란 생각은 못하고
그냥 속담처럼 골골 팔십이 되어 엄마처럼 큰언니처럼 그만큼 긴인생을 살줄알았지요
이제는 의무감으로라도 먹는걸 잘먹어야 한다는데
늘 소식을 하던 습관이
물도 수시로 먹고
배도 고프지않게
영양가 있는걸 먹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내가 이걸 지금 잘먹고 있는건가 자꾸 자문을 하게됩니다
얼마전 가죽 장아찌가 생각나서 구하려다가 뜻하지않게 맹선생님과 여러분들께서 많은 음식을보답을 바라지않고 보내주셨는데
천연재료음식이라는것이 원래가 여러가지 맛이 들어있는것이라 가공 식품보다 더 쓴맛이 나서
꺼내서 구경만하고 다시 들여놓고 하기를 반복하다가 몇가지는 저땜에 늘 고생하는 언니와 나눠서
언니는 또 성당 교우들과도 나눠 드시고 해서
마치 예수님의 오병이어처럼 뵙지못한 분들의 사랑을 여러사람과 나누기도 하였어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남자에게는 정력에 좋다하고
여자에게는 피부에 좋다하면 먹거리가 날개돋힌듯 팔린다던 우스개 소리가 있더니
지금은 대다수 건강 음식 재료에 항암 효과를 강조하면 잘팔리는지 꼭 써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알고보니 여린 풀들과 열매들이 우리몸을 큰병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던 거였어요
언젠가 옛날에 먹어본 소 막창이 기억난다 했더니
딸래미가 서울 사당동에 유명한 집이라며 늘 노래를 부르니
어제는 큰맘을 먹고 서울까지 원정(?)을 가서유명하다는집 생막창이란걸 먹었네요
나는 그게 노동자들이 막걸리에 먹는 값싼 안주거리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무척 비싼 음식이어서 놀랐네요
나보다는 딸이 잘먹고 즐거워해서 행복했어요
항암 주사 3주째 입맛이 돌아와 간만에 맛을 느끼면서 먹던 날도 다 가고
오늘 오후에는 3번째 주사를 맞으러 갑니다
어지럽고 힘들던 첫번 주사와 같을까봐 걱정이되는데 첩첩 산중이라고 먼저 항암치료했던 분 말씀이 주사보다 나중에 약먹는게 더 힘들다네요
당장 맞아야할 주사도 무섭고 수술도 무섭고 방사선도 무서워서 눈물이나요
그래도 이렇게 몇분들이 들어주니 그거믿고 주절거리고 글쓸수있어서 행복하네요
첫댓글 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네요...저도 일찍이 암에 디스크에 신장까지..
그야말로 내 몸안에 있는 병들과 함께한지도 꽤 오래 되었네요..
두려움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맘을 굳게 먹었다가도 치료하다가 아프고 견디기 힘든 상태가 오면 좌절하게되고...
그래도 그 힘겨운 시간도 지나가더라구요...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는 듯 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감사할게 너무도 많터이다.
항암주사 맞으면 힘겨운 시간을 잘 이기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간신히라도 이길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더이다.
자매님! 힘겨운 시간도 잘 견디며 지나가게 될 터이니 기도속에 함께 하자구요^^화이팅
힘내시고 빠른쾌유를 기원합니다.
반갑습니다~~*_* 제고향도 순천입니다.
정선(일산)님의 아픔을 알기에 마음으로 나마
힘내시고 치료 잘하고 오시라고 기도합니다.
참새미골은 몰라도 김제나 근영여고는잘알지요 ㅡㅡ
완쾌되시고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ㅡ
조급함이 몸을 더 지치게 합니다~~ 무얼 더 먹어야 겠다라고 조급해 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드실수 있는거 드시며 가끔 특별식을 먹어야지~ 이런 맘으로 편하게 식사를 하셔야 돼요.그래야 몸이 버텨줍니다~~ 힘내세요~
사랑하는 울친구 아우도 9차까지항암치료하고
긍정적인 맘으로 올해10년입니다
넘건강하게 잘지냅니다
힘내십시요~
사랑합니다
힘내시라고 꼬옥 안아 드리고 싶네요
저도 암이란 선고를 받은적이 있기에 그마음이 더 절절히 다가옵니다
전주에서도 사셨다 하는 대목에 반가운마음에 그냥 읽다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은 의술도 많이 좋아졌고 완치도 정말 잘되는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용기잃지마시고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건강 지키세요.
어려운 시절도 잘 참고 살아왔는데...
앞으로 좋은일 많을텐데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죠.
카페 분위기의 멋진 미용실~인정 많은 정선씨~
몇번 만나진 않았지만 항상 다정다감 좋은 느낌이었거든요.
참고 이겨내면 반드시 건강 되찾을 거예요, 화이팅~!
아품을 아파봐야 더 잘안다고 하잔아요
정선님이 이리 글을 올려주시니 모두 정선님 건강 되찾기를 기원할거에요
정선님 힘내시구요 항암치료 잘받으세요~~~~~너무 겁내지마세요 난 한다~~~그런마음 가지시고 완쾌되길 바랍니다
제 친구는 어제 6번째 주사 맞고 9월말에 수술한다고 합니다. 두 분 다 힘내시고 반드시 원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글 잘읽었습니다..열심히 살아오신 분을 뵈며,,,저도 열씸히 살아야겠다는 마음 가져봅니다..
아구 아릿합니다 아직 젊으신데 기운네세요
저두 48세쯤 일산 암센타에서 취장을 수술하구
열심히 살앗는데 내가 왜?
세상을 멀리서 다시 바라보게 되드라구요
요즘 의술 좋아요
수술하러 수술실에 갈때 무섭드라구요
근데 마취에 깨어나니 회복실이든데요
기도해드께요 잘될겁니다
모든 정성스런 댓글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제 주사를 맞은 탓에 오늘 먹는 음식들은 뭔맛인지 당최 모르고 그냥 꼭꼭 십어 삼키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18층 할아버지의 위로에 그냥 눈물이 쏙빠지고
여러분들의 글에또 웁니다
나는 울보가 되었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정선님을 위해 어떤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서 마음을 모아 치유의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꼭 완쾌될 겁니다. 문 닫아 걸고 이웃이 누군지도 모른체 살고 있는 각박한 요즘 세상에 맘 속 깊은 얘기 털어놓을 수 있고 같이 염려하며 격려와 위로 듬뿍 받을 수 있는 전음방이 있음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눈물도 마음의 해독이니 실컷 우세요.
저도 정선님과 같은 병은 아니어도 대중탕에 못가는 신세입니다.
제 남동생이 웃길려고 저를 이렇게 놀려요.
"차카게 살자" 조폭 두목처럼 문신하라고~.
지난달에 머리가 빠지기전에 목욕탕에 가서 문득 생각이나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며칠후면 머리가 빠져 못오고
수술후면 가슴이 없어서 못오고
내가 앞으로는 평생 목욕탕에 못오겠구나
원래 자주다니던곳은 아니건만 안오는것과 못오는것은 참 큰차니구나 싶어서요
@정선(일산)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
평생을 가슴앓이 하며 살았습니다.
남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 받고
안보일 때까지 쳐다보는 시선에 상처 받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까지...
별의별일 다 겪으며 모진 인생 살았지요.
내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세상을 원망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내가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잘 참고 살다보면 정선님도 새로운 세상이 보일거예요.
힘내세요~!
가슴이 없어도 목욕탕에 당당히 다니는 친구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당당한 용기를 보냅니다.
가슴이 없다고 누가 목욕탕에 오지말라합니까?
당당하게 가세요..모진고통 이기었노라 자랑스럽게 당당하십시요...
우리 시누이 가슴 없어도 당당합니다..그리고 10년 넘어 강단에서 암투병 강의 합니다...
응원합니다...힘내세요..많은사람들 같이 기도 합니다...
힘내시고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글을 읽는동안 가슴이 저리네요.
저도 김제가 친정이랍니다.
완쾌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