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로 간다. 해당화 붉게 피어나는 여름날의 뜨거움도 좋지만, 하얀 눈발이 삭풍에 흩날리는 겨울바다의 냉혹함도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태안반도는 바람도 많은 곳이다. 특히 북서풍이 불어대는 겨울부터 초봄 사이엔 눈뜨기 어려울 정도로 거센 바람이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도 신두리 해안의 모래바람이 으뜸이다.
기나긴 세월 겨울마다 쌓인 모래
“와, 정말로 사막 같아요!”
신두리 해안을 찾은 사람들은 사막 같은 풍광이 펼쳐진 해안 사구(砂丘)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름이라면 푸른 초원 같이 보일 테지만, 모든 사물이 삭막하게 바뀌는 겨울엔 정말 황량한 사막에 들어선 것만 같다.
키 작은 억새가 자라고 있는 사구는 제주의 오름인가 하면, 어느새 텅 빈 대관령 목장이 된다. 그러다 나목 몇 그루 신기루처럼 솟아있는 모래밭에선 어느덧 사막 같은 풍광으로 변한다.
길이가 3.4㎞, 너비 500m~1.3㎞ 달하는 이 모래언덕은 파도와 바람의 합작품이다. 파도가 고운 모래를 해안에 실어 놓으면 순간풍속 17m/sec의 겨울 북서풍이 모래를 육지로 옮긴다.
전문가들은 무려 1만5,000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겨울마다 쌓인 모래가 지금의 사구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한다. 원형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사구의 형성과 고대 환경을 밝히는 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는 평이다.
모래밭이라 척박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은 멸종 위기종인 금개구리를 비롯해 표범장지뱀과 무자치, 갯방풍과 갯메꽃 등 보존가치가 높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명의 땅이다.
그래서 2001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했고, 이듬해엔 해양수산부가 사구 주변의 바다를 ‘해양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정했으며, 환경부는 사구 안의 두웅습지 일대를 ‘습지보전지역’으로 보호하고 있다.
허나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겨울 사구에서 생명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사구의 모래가 왕성한 생명력으로 요동치는 건 요즘 같은 겨울이다.
예전엔 바람이 심한 날이면 밤새 모래 언덕 하나가 생겼다가도 없어졌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쉽게 경험할 수 없었을 자연의 조화인데, 인근 해안에 방파제를 쌓은 후부터 이런 현상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파도와 바람이 약해져 모래층이 점차 엷어지고 여러 잡초들이 모래언덕을 점점 뒤덮으면서 특유의 사막지형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태안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지난 겨울부터 이곳 모래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펜션단지와 언덕을 보호하기 위해 호안(護岸) 블럭을 설치한 쪽의 모래는 오히려 깎여나갔고, 그렇지 않은 쪽은 모래가 쌓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간섭이 모래 언덕을 침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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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사구 앞바다의 굴 양식장.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구경할 수 있다. |
그런데 수십 년 전만 해도 신두사구는 정말로 쓸데없는 모래밭에 지나지 않았으나 1990년대 말부터 서서히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사막지형으로 알려지면서 일반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현재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명제 사이에서 갈등중이다. 모래 언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보호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곳곳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반대하는 표어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이곳 사구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재산권 제약을 받게 된 지역주민들이 반발한 흔적이다.
신두사구 앞바다는 거대한 굴 양식장
신두사구의 모래언덕을 거니는 맛도 제법이지만,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 걷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백사장은 차량도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모래언덕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스러지는 저녁 노을도 놓치기 아깝다.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신두사구 모래 갯벌엔 널따란 굴 양식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민들은 이때 갯벌로 나와 서너 시간 동안 굴을 딴다.
그리곤 경운기로 굴을 싣고 가 집안 마당이나 해안의 작업용 비닐하우스에서 굴을 깐다. 물론 주민들이 갓 깐 싱싱한 굴은 도매값으로 사갈 수 있다. 1㎏에 7,000~8,000원 정도 한다.
신두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방조제를 하나 지나면 소근진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소근진은 안흥진과 함께 군사적으로는 왜적을 막던 요충지요, 삼남에서 올라오는 세곡선이 한양으로 통하는 해상 교통로의 중심지였다.
또 여의치 않을 경우 이곳 소근진에서 원북과 태안을 통해 천안으로의 육로 연결도 수월했다.
지금은 굴 채취를 생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1만 호나 되는 많은 가옥에 사람들이 모여 살 정도로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마을 뒤쪽의 나지막한 언덕에 성터가 있다.
여행정보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32번 국도→서산→태안→603번 지방도→원북면 삼거리(좌회전)→634번 지방도→1.5㎞→삼거리(좌회전)→6㎞→신두리. △서울남부→태안=고속버스가 매일 20~30분 간격(06:30~19:10) 운행. 2시간20분 소요. △대전동부→태안=매일 30~40분 간격(06:50~19:30) 운행. 4시간 소요. △태안공용터미널(041-675-6674)에서 신두리행은 하루 4회(6:15 8:50 13:20 17:55) 운행. 40분 소요, 요금 1,770원.
숙식 신두리 해안에 자작나무(041-675-9995), 마로니에(041-675-1671), 하늘과 바다사이(041-675-1988) 등 새로 지은 펜션이 많다. 찌개, 백반 등을 차리는 바다횟집과 경양식집이 있다. 신두리 가는 길목의 원북면 소재지엔 원이식관(041-672-5052), 원풍식당(041-672-5057) 등 박속낙지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다. 1인분에 1만2,000원. |
첫댓글 우리나라에 사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