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예리한 킬러'라는 친구와
'소리 없는 자객'이라고 우긴 내가 이런 저런 객설을 풀던중.
술 안주 이야기가 나왔는데,
참 없어서 못 먹던 시절, 어른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우리 삼남매의 군것질이 너무도 이상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그것은 다 술안주 아니었던가고 한바탕 웃었다.
어릴 적 먹던 것의 입맛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어른이 되면 못견디게 생각나거나 그걸 먹으면 감기몸살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일이 많다.
그런 것들은 주로 주식이고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식인데,
푸짐하게 잡담을 하다보니 어저면 어린 삼남매가 주로 먹던 간식이 모조리 술안주냐는 것이다.
시대배경으로 보자면 라면땅이나 (요즘으로 치면 새우깡 정도?) 알사탕 하나면
땡 잡은 시절인데, 해삼이나 멍게, 대구포, 문어 말린 것, 깡통에 든 깐포도나 황도
이런 것들이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머니 손에서 크던 여자 아이.
눈만 뜨면 동네 할머니들에 둘러싸여 잘한다 잘한다 하며 1원인가 10원인가를 주시면
그게 돈인지도 모르고 넙죽 넙죽 받아 놓고선 밴딩머신처럼 자동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미자나 남진, 조미미 같은 흘러간 노래를 줄줄이 사탕 엮어대는 여자 아이가 바로 나였다.
1원도 받고 10원도 받고... 왕의 남자 '공길'을 보며 다를 게 뭔가 싶어 잠시 비감했었다.
물론 노래교실을 할 때도 말이 좋아 선생이지, 나는 사당패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비약이 심했나.
그렇다고 직업이 슬펐다는 게 아니라 내 재주라면 '재주', 태생이라면 '태생'이 슬펐다는 이야기다.
대장금처럼 요리에 미치거나 의술을 편다든지
사임당 신씨처럼 시문에 능하다든지 할 것을 어쩌자고 광대 '끼'를 타고 났는지
어릴 때도 막연히 그런 슬픔을 느꼈다는 것이다.
바깥 일에 지쳐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종갓집 종부라서 집에 오셔서도 하는 일이 많았는데
천금같은 고명딸이 밤낮 할머니들에 둘러싸여 흘러간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걸
끔찍하게도 싫어하셔서 할머니께 그것만은 대들고 따져 고부갈등의 큰 요인이었는데,
할머니는 그 다음날 또 친구들과 어울리면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발음도 잘 안되는 네살짜리 꼬마는 뜻도 모르고 불러대고
그 때 벌어들인 돈은 어디에 썼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공금으로 썼을 것이다.
바로 위 오빠는 아무 개념없이 돈만 생기면 싸돌아다니며 먹을 것이나 장난감을 구했으니
아무데나 돈을 흘리고 다니며 달라면 무조건 주는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오빠의 물주 노릇을 하였던 게 아닌가 싶다. ㅋ
물론 어른들께 받은 용돈으로 주로 생활하였으니 울오빠를 나쁜넘으로 생각하시 마시기 바란다.
종갓집 귀한 종손잉께..ㅋ
엄마는 종갓집 제사가 잦으니 대구포나 문어 말린 것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과자는 건강에 나쁘다는 나름대로의 신념과 맞물려 주로 우리들에게 그런 간식거리를 제공하게 되었고,
툭하면 오빠랑 남동생과 셋이서 놀이도 함께 하고 먹거리 사냥도 함께 하던 시절이라,
동네에 자리잡은 길거리아 리어커에서 파는 해삼을 잘 사먹었다.
대구는 아시다시피 내륙지방이라 아마 포항같은 곳에서
당일로 새빠지게 배달하여 저녁 어스름이면 전을 벌인 모양인데
그때야 그런 저런 사정을 알 길 없고 어쩌다 맛 본 해삼에 매혹되어,
오빠랑 나랑은 돈이 생기면 쪼르르 달려가서 그 비위생적인 마차에 매달렸다.
아저씨가 해삼을 빨리 잘라주길 기다리며 까치발을 들고 아저씨의 손놀림을 기웃거리다가
송곳을 입에 넣고 쪽쪽 빨다가 빙초산이 범벅되었을 초고추장을 찍어먹으며
해삼이 내 앞에 놓이길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송곳을 나무 판대기에다 몇 개 쿡 찔러 놓으면 이사람도 쓰고 저사람도 쓰고 그랬다)
어머니가 매우 위생적인 분이시라 엄마가 알면 클난다는 것을 알고
우리 형제들은 비밀리에 잘도 사먹으러 작당을 하고 다닌 것이다.
멋모르고 먹었던 겨울의 참새구이, 여름의 민물매운탕...
어렸을 적 과자는 별로 먹은 기억이 없고 도무지 이 나이까지도 먹은 게 몽땅 안주류였으니,
술과 담배를 전혀 못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술안주를 간식으로 먹고 큰 나는
이제사 안주를 먹고 자란 어린시절을 갖다 찍어붙이며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겨우 맥쭈를 배워 정신 못차리고 늦도둑질을 하고 있다.
첫댓글 아기 이름 작명하러 일요일도 출근해보니 운영자가 되었다는 메일이 왔넹. 휴우~ 웃으며 해야쥐... ^^*
웃으며 하는거...진짜 조은거쥐..^^ 원장님 바쁜 가운데 짬내서 하시는거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