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로 그림 따로, 그러나 하나로 어우러진 대위법 그림책

[서정숙]

2011년 4월 열린어린이 서평지 게재

글 따로 그림 따로, 그러나 하나로 어우러진 대위법 그림책

들어가는 말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글이 하는 이야기를 그림이 반복하기도 하고, 글이 하는 이야기를 그림이 보충하거나 완성하기도 하며, 글과 그림이 각각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 글과 그림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그림책을 대위법 그림책이라 한다.

대위법은 작곡법의 하나로 화성법과 대조된다. 화성법이 하나의 선율을 중심으로 그 선율을 조화롭게 조직하는 데 초점을 두는 작곡법이라면, 대위법은 두 개의 선율이 어느 하나에 종속되지 않고 개별 선율의 특성을 지키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는 작곡법이다. 이런 기준에서, 그림이 글에 종속되지 않는 가운데 별개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취한 그림책의 경우, 이를 일컬어 대위법 그림책이라 한다.

최근 대위법 그림책이 늘고 있다. 그림이 단순히 글 이야기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글에서 하지 않은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글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다른 사건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글의 시점과는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몇몇 대위법의 종류별로 그림책을 예시하여 그림책의 대위법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그림책에 더 많은 흥미를 느끼며 그림책을 더 즐겨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글에는 없는 인물을 담은 그림책

『수수께끼 대저택』의 그림에는 글에 표현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글 이야기부터 보자. 토미는 이모 댁에 초대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모가 여행지에서 데리고 온 동물들을 보여주겠다며 토미를 초대한다. 그러나 토미가 이모댁에 도착했을 때 이모는 보이지 않았고, 이모가 적어둔 쪽지만 있다. 토미는 이모의 쪽지를 따라 현관에서 거실, 거실에서 복도, 복도에서 응접실, 응접실에서 다시 온실, 이런 식으로 쪽지가 있는 장소로 계속 옮겨 갔고, 마침내 토미가 다다른 곳은 부엌이었다. 이모는 부엌에서 토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해놓고 토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쪽지 글을 포함한 글에는 토미를 다음 장소로 인도하는 내용과, 간혹 독자에게 그림 속 동물들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면, 그림에는 글에서 언급한 내용, 즉 이모가 남긴 쪽지 내용을 따라 장소를 이동하는 토미의 모습과 갖가지 동물들의 모습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이모의 모습이 부가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토미가 집을 나서서 이모집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이모댁 부엌에 이르기까지 이모는 매 장면에 나타나 토미를 몰래 지켜보면서 토미 뒤를 따랐던 것이다. 만약 처음 읽을 때 매 장면에 나타나 있는 이모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독자라면 글에서 전혀 언질을 주지 않아 미처 몰랐던 이모의 존재를 그림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 기쁨은 더욱 크리라.

글에는 없는 사건을 담은 그림책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는 글에는 없는 사건이 그림에 담겨 있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베란다에서 키우는 토끼가 식구들이 외출한 틈을 타 베란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와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온 토끼는 우선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을 꺼내어 사람처럼 식탁에 앉아 밤참을 먹는다. 다음에는 비디오를 꺼내어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고, 그 다음에는 화장대에 올라가 화장을 한다. 그리고는 옷장을 뒤져 주인집 막내 아이의 돌 옷을 입어보고, 주인아저씨처럼 피아노도 쳐보고 책도 본다. 그 밖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 다음, 토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베란다의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집 안 구석구석에 왜 토끼똥이 있는지,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독자들은 알고 있지 않느냐”는 글 내용을 접하는 순간, 독자들은 글에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하며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피게 된다. 그리고는 알게 된다. 집 안으로 들어왔던 토끼가 글에 표현된 것처럼 밤참 먹고 영화 보고 화장하는 등의 행동만 한 것이 아니라, 냉장고, 비디오, 화장대, 옷장 등 곳곳에 똥을 싸 놓았다는 사실을. 토끼가 집안 여기저기에 똥을 싼 일은 글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마지막 장의 메타픽션 글이 준 힌트 덕분에 그림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을 발견하면서 독자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글과 그림의 장르가 다른 그림책

『동물원』(이수지)은 글과 그림의 장르가 다른 그림책이다. 글은 부모와 함께 동물원에 간 아이가 어떤 동물들을 보았는지를 차례로 서술한 ‘사실 이야기’다. 반면, 그림은 글에서 이야기한 사실 이야기뿐 아니라, 동물 우리 밖에 있는 환상의 공간에서 기린의 목도 타고 새와 함께 하늘을 나는 등, 동물들과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환상 이야기’다. 글에서 아이는 엄마 아빠랑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 곰, 하마, 코끼리, 기린, 물새, 원숭이 우리에 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동물원은 정말 신나는 곳이라고 하면서 “엄마 아빠도 재미있었죠?”라고 묻는다. 만약 이런 글 내용만 듣는다면, 독자는 아이가 동물들을 차례로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아이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 있는 동물 우리 안에는 동물이 없다. 어두운 회청색으로 그려진 현실의 공간인 동물 우리에는 동물이 없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심드렁하다. 그 대신, 환상 세계의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작새를 따라가서 접하는 환상의 세계에는 동물이 있다. 갇혀진 동물 우리가 아니라 개방되고 넓은 자연의 환상 공간에서 동물과 하나가 되어 노는 아이의 표정은 아주 밝다. 작가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의 색조를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를 다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글과 그림의 시점이 다른 그림책

『행복한 우리가족』의 글과 그림의 시점은 다르다. 글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일기 형식이다. 점심 도시락을 챙기고 음료수도 사고 교외의 미술관에 가서 사진도 찍고 잔디에 앉아 점심도 먹고 저녁 외식도 하는 등, 아이는 가족과 얼마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지를 일어난 일의 순서대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 말풍선 속 대화를 포함한 그림은 ‘전지적 시점’에서 이 가족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보여준다. 집으로 핸드폰을 가지러 들어간 엄마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느라 이웃을 기다리게 하고, 미술관 안에서 뛰거나 사진을 찍느라 다른 사람들의 그림 감상을 방해한다. 또한, 잔디보호와 음식물 반입 금지 표시가 있는 잔디에 버젓이 앉아 점심을 먹는가 하면, 장애우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한다. 작가는 외부 사태에 대해 아직은 자아중심적인 시각을 지닌 아이 편에서의 글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전지적 시점의 그림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독자는 글과 그림의 서로 다른 시점 표현을 함께 보면서 주인공 아이가 느낀 행복이 나만 좋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동시에 그런 이기적 행복에 갇혀 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불편한 정서와 함께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글과 그림의 표현양식이 다른 그림책

앤서니 브라운의 『헨젤과 그레텔』은 글과 그림의 표현양식이 서로 다른 그림책이다. 글과 그림의 표현양식이 다르다 함은 글(또는 그림)은 심각한데, 그림(또는 글)은 유머러스하다든지, 글은 대중적인데 그림은 예술적이라든지, 글에는 역사성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림에는 그렇지 않다든지, 등의 경우를 말한다. “커다란 숲 언저리에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와 새엄마, 두 아이가 살았습니다”로 시작되는 글은 그림 형제의 옛이야기로,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내용과 다를 바 없다. 아버지와 새엄마는 가난을 핑계로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린다. 처음에는 헨젤의 지혜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다시 버려진 헨젤과 그레텔은 결국 마녀할멈의 집에 갇히게 된다. 헨젤과 그레텔을 과자로 유인한 마녀할멈은 아이들을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지만 실패하고 죽게 된다. 마침내 아이들은 마녀할멈 집에 있던 보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행복하게 산다. 이런 글 내용은 옛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그림에 묘사되어 있는 세부 내용들은 현대적이다. 헨젤은 안경을 끼고 있고, 아버지와 새엄마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복장 또한 현대적이다. 그 외에 텔레비전, 전구, 화장대 등 배경이 되는 소품들도 모두 현대적이다. 옛이야기 글에 현대적 그림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옛이야기를 현대 가족 구조에 비추어 재해석할 여지를 준다.

글과 그림의 내포독자가 다른 그림책

『일곱 마리 눈먼 생쥐』는 글과 그림에서 가정하고 있는 내포독자가 다른 그림책이다. 글은 어린이를, 그림은 어른을 독자로 가정하고 있다. 글 내용은, 빨강, 초록, 노랑, 보라, 주황, 파랑, 흰 색의 일곱 마리 눈먼 생쥐들이 어느 날 만난 코끼리의 실체를 알기 위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차례로 그것을 탐색하러 가는 이야기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코끼리에게 다녀온 생쥐들은 코끼리의 일부만 살펴보고 의견을 내지만, 일요일에 마지막으로 코끼리에게 다녀온 흰 색 생쥐는 코끼리를 전체적으로 살펴본 다음 코끼리라는 답을 내놓는다. 글이 주는 교훈은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림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을 준다. 작가는 코끼리의 일부 특징만을 근거로 그것이 무엇인지 답을 한 생쥐들의 색과 그들이 답으로 제시한 대상물의 색을 일치시켜 그렸다. 빨간 생쥐가 말한 돌기둥은 빨간 색으로, 초록색 생쥐가 말한 뱀은 초록색으로 칠하는 식이다. 작가는 이렇게 각 생쥐의 색과 그것이 탐색한 대상의 색을 일치시킴으로써, 대상의 성격은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자의 마음 또는 능력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는 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이 그림책의 글은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요일, 색깔의 이름을 알게 해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지만, 그림은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자신이 지닌 편견이나 한계를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주문한다.

나오는 글

그림책에서 그림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한 편으로 그림은 마치 하나의 선율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어내는 화성법에서처럼, 글 이야기를 이미지로 보여주거나 글의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두 개의 선율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위법에서처럼,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인물이나 사건을 그림에 담아내기도 하고, 글과는 아예 다른 장르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는 글과는 다른 시점이나 표현양식을 사용하거나 글과 다른 내포독자를 상정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그림은 또 다른 방식으로 글과 별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최근 글과 그림의 관계가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대위법에 기초한 그림책들이 늘고 있다. 또한 그림책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더불어 그림으로부터 의미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능력인 시각적 독해력(visual literacy)을 길러준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대위법에 기초한 작품은 독자를 또 다른 매력의 그림책 세계로 초대한다는 점에서 이런 작품들에 대한 어린이들의 이해 정도나 그 작품들이 어린이들의 시각적 독해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