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의 혼이 깃든 그라나다를 찾아서
카루투하 사장교 넘어로 안달루시아의 태양은 떠오르고
세비야 도심의 북쪽 외각 조용한 전원 주택가에 위치한 <세비야 호텔(Hotel Sevilla Suites)의 소박한 시설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세비야를 출발하여 그라나다로 향하였다. 과달키비르 강에 걸려 있는 <카루투하 다리>의 사장교각 너머로 안달루시아의 아침햇살이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만이 맞볼 수 있는 작열하는 태양의 향연이 예상된다. 시가지를 벗어나니 과달키비르 강변 평야지대에 넓은 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들판의 넓은 평원은 대부분이 밀밭들이었다. 시차를 두어 심은 밀밭들이 각기 다른 색 갈을 띄며 겨울 들녘을 가득 채워나가고 그 위로 쏟아지는 散亂한 태양 빛에 눈이 부시다. 높고 낮은 언덕은 곡선을 이루며 대지를 아름답게 나누고 연두 빛 파장은 멀리 하늘 끝으로 번져 나간다. 신이 내려준 아름다운 분할이었다.“직선이 인간의 선이였다면,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하였던 가우디의 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지금 나는 이렇게 드넓은 세비야의 평원을 바라보며 그라나다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세비야에서 추억의 하루 밤을 보내었던 세비야 호텔
고속도로의 안내판을 따라서 그라나다로
그라나다로 향하는 길가 과달키비르 강변 평야 지대에 밀밭은 이어지고
과달키비르 강변의 평야지대가 끝나고 서서히 야트막한 산지들이 늘어나고 그 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지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전후좌우로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끝도 없이 들어서 있다. 올리브의 주산지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올리브의 바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라나다로 이동하는 과정에 Rada지방의 길가에 자리한 <Abades 휴게소>에서 ‘올리브 체험’을 하였다. 구수한 밀 빵에 올리브유를 발라 입속에 지근지근 씹으며 휴게소 주변으로 펼쳐진 올리브나무 바다를 바라보며 그 향기를 가슴속에 쓸어안았다. 동심으로 돌아가‘올리브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길벗들의 모습들이 소년소녀 같았다.
그라나다 근처 낮은 언덕을 따라 올리브의 바다는 이어지고
안달루시아의 상징 올리브 나무의 우람한 모습
올리브 나무 현장 체험을 하였던 아바데스 휴게소 안내판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그라나다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에서 영화[닥터 지바고]의 로케 장소이자 유럽의 스키어들이 꿈에 그리며 찾아온다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준봉들이 흰 눈을 뒤집어쓰고 닥아 선다. 그라나다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로 산맥의 눈 녹은 물이 사시사철 땅을 적신다. 분지는 하얀 사암지대라 사방이 온통 흰색으로 그곳에 들어서 있는 집들조차도 하얀 색으로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마치 백색의 세상에 온 것 같았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그라나다 분지를 감싸고 있는 시에라네바다의 준봉들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반드시 들리어야 할 첫 번째 명소라고 한다. ‘그라나다에서 앞을 못 보는 맹인이 되는 것 보다 더 잔인한 일은 없다’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석류’라는 뜻의 인구 25만 명의 그라나다(Granada)는 코르도바, 세비야와 함께 안달루시아 문화의 眞髓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옛날‘이리베리스’라고 부르던 그라나다는 고대 로마시대 부터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8세기 이슬람 세력의 침입 이후 1492년 <레콘키스타>가 끝날 때 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의 거점으로서 오래도록 번영을 누렸다. 북 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 족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800여 년 간 지배하는 동안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알 안달루스 왕국>이 들어서 있었다.
안달루시아 문화의 진수를 체험하게 될 그라나다
이슬람왕국은 10세기경에 수도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크게 번영하였으나,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레콘키스타 폭풍에 휘말려 쇠퇴하고 왕국은 코르도바, 그라나다, 세비야 3지역을 중심으로 분열 되게 되었다. 오늘날 이들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유적들은 모두 이 시기에 남겨진 것들이라고 한다. 그중에 그라나다는 <나스르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나스르 왕조>는 코르도바 왕국 등이 <레콘키스타> 와중에서 분열 쇠퇴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종말의 향연’인양 화려하고 웅장한 알람브라 궁전을 짓고 그 곳에서 화촉을 밝히며 榮華를 謳歌하였던 것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현재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는 이슬람 문화의 精髓이다.
로마시대 부터 만들어진 요새에 화려한 이슬람 왕조의 영화가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 최후 보루였다. 11세기부터 시작된 <레콘키스타>를 통해 실지회복을 노리던 그리스도교 세력들에게 코르도바(1236년)와 세비야(1248년)가 차례로 점령당하였으나 그라나다만이 이베리아 반도 최후의 이슬람 왕국으로 남아 압박해 오는 그리스도 교 세력과 맞서야 했다. 그라나다의 이슬람 세력이 250여년이나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특이한 지형 때문이었다고 한다. 해발 800m 고도에 자리한 그라나다는 과달키비르 강의 지류인 다로 강(Rio Darro)물이 감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다리와 탑들은 그라나다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라나다는 아랍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원한 고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알람브라 궁전의 난공불락 요새 알카사르
그라나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은 이곳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로 입구부터 붐빈다. 길가에 심어진 오렌지 나무는 탐스러운 열매들을 달고 있었고, 성당을 중심으로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평화롭게 빛난다. 한겨울임에도 그라나다에 쏟아지는 태양 빛은 강렬하였다. 이제 서야 ‘태양이 빛나는 땅’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그라나다는 인구 20만의 도시인 데도 사뭇 크고 넓어 보였다. 새로 개발되는 신시가지 곳곳에는 높다란 골리앗 크레인들이 우뚝 우뚝 서 있어 관광도시라기보다는 신흥 산업도시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도 많은 관광수입을 밑천으로 古都 그라나다도 일부 舊殼을 벗고 새롭게 발전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신시가지의 카페테리아 식당(Res Cafeteria)에서 허기진 점심식사를 하고 그라나다에서의 본격적인 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태양이 빛나는 도시 백색의 그라나다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