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신의뜻'을 의미하는 오푸스데이(Opus Dei)는 전 세계 10억 카톨릭 신자들의 다종다양한 조직에 극비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극우 비밀결사체로, 정확한 실체는 설립된 지 7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도 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유럽 언론들의 집요한 추적에 따르면 1994년 현재 전체 회원 숫자는 발생지인 스페인의 2만여 명을 비롯해 이탈링라 6천 명, 포르투칼 2,500명 등 전 세계에 걸쳐 8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주요국가를 비롯해 동구권 및 아시아의 카톨릭 국가에도 빠짐없이 비밀회원들을 확보해놓고 있다. 더욱이 이들 회원 대다수는 카톨릭 고위성직자, 외교관, 대학교수, 의사, 언론인, 법조인 등 그 나라의 사율층 구성원들이어서, 오푸스 데이는 이들을 이용해 어둠 속에서 각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푸스 데이 회원의 3대 의무는 절대 복종, 절대 비밀, 절대 금욕이다. 중세 지하조직의 파시스트적 절대 율법을 맹종하고 있는 이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가 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나 바티칸 고위층과의 막역한 친분을 이용해 바티칸과 전 세계 카톨릭 내에서 절대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유럽언론들은 이들을 '교황의 비밀군대' '성(聖) 마피아' '카톨릭의 어둠의 세력'이라고 비판적으로 부르고 있다.
문제의 오푸스 데이는 1928년 스페인 시골교구에서 과도한 공명심 때문에 축출된 호세 에스크리바 신부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들어가 빈민가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비밀결사를 만들면서 탄생했다. 그 후 스페인 전역으로 비밀리에 지하세포를 확장해 나가던 중 1936년 민주주의 진영과 파시스트 진영간에 전면적인 스페인내전(1936-1939)이 발생하자 파시스트들을 이끌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진영에 재빨리 가담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 발발 후 근거지를 프랑코 사령부가 있던 부르고스로 옮기는 동시에, 추종자들을 동원해 당시 유럽의 민주주의진영이 적극 지원햇던 스페인 인민전선 타도에 앞장서서 혁혁한 공훈을 세움으로써 프랑코의 절대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
1939년 인민전선이 진압되자 당연히 에스크리바의 세상이 활짝 열렸다. 그는 1929년 바티칸의 존립을 인정받은 뒤 무솔리니를 적극 지원하던 로마 카톨릭 교황청과 연대해 '성스러운 카톨릭'의 이름으로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해주는 대가로, 오푸스 데이 회원들을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으로 권력 심층부에 대거 진출시켰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스페인 내각의 주요장관직이 모조리 오푸스 데이 회원들에게 장악되다시피 했다. 오푸스 데이가 권력을 잡자 당연히 기업들과 출제시향적 지식인들은 주변에 벌떼같이 모여들었고, 이 과정에서 오푸스 데이는 막대한 권력과 부를 양손에 움켜쥐게 되었다.
권력과 부를 함께 장악한 오푸스 데이는 이것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대표적 작업이 대학 설립이다. 오푸스 데이는 프랑코 총통의 전폭적 지원 아래 1952년 스페인 팜플로나에 나바레 대학을 설립했다. 3천여 그루의 고목들이 즐비한 115ha의 방대한 초원 위에 세워진 이 대학은 오푸스 데이 전위부대 양산의 터전이 되었다. 이곳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학비가 전액 무료인데다가 매달 풍족한 생활비가 지원됐고, 졸업 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병원이나 관공서, 기업에 대부분 취직이 가능했다. 이 대학은 지금도 1,100여 명의 교수가 1만 8천여 명의 학생을 맡아 오푸스 데이 이념을 집요하게 주입하고 있으며, 교내 곳곳에 설립자인 에스크리바 신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오푸스 데이는 스페인 안에서의 교세 확장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최종 타깃은 바티칸이었고, 바티칸을 통한 전세계 카톨릭 지배였다. 그러나 1963년 즉위한 교황 바오로 6세는 상당히 진보적이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푸스 데이는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로 바티칸 추기경들을 하나둘 포섭해 나갔고, 마침내 기회는 왔다. 바오로 6세가 1978년 사망한 것이다. 이때부터 오푸스 데이는 보수적 인물을 교황으로 만들기 위해서 총력을 다했고, 그 결과 마침내 당시 폴란드 크라크스의 대주교로서 우익성향이 대단히 강한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으로 옹립하는데 성공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에 선출되자 오푸스 데이는 마음놓고 세력을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푸스 데이는 특히 1970년대 중남미 등 제3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한 전투적 '해방 신학'이 출현하자 스스로를 보수 우익의 방패라고 자처하며 앞장서서 이데올로기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바티칸 및 전세꼐 카톨릭 보수진영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후 오푸스 데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대단한 요한 바오로 2세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공작에도 깊이 관여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여세를 모아 이 지역에 세포조직을 급속히 심어 나가고 있다.
1992년 5월 바티칸 과장 앞에 30만 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요한 바오로 2세는 카톨릭 내 양심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묵살하고, 지난 1975년 사망한 오푸스 데이 창시자 에스크리바 신부에게 성인(聖人) 다음 가는 품꼐인 복자(福者)시호를 내렸다. 오푸스 데이의 오랜 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들에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최고의 면죄부를 선사한 것이다. 에스크리바의 뒤를 이어 1975년 이래 지금까지 오푸스 데이 수장직을 맡고 있은 알바로 델 포르틸로 추기경은 이 기념식장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교황의 두 손을 꼭 감싸쥐었다. 어쩌면 그는 속으로 '이제 전세꼐 카톨릭 장악이라는 최종 목표달성은 단지 시간문제'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출처 : 박태견,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길벗(1994), 232~234.
‘다빈치코드’ 등장하는 가톨릭조직 -한국의 오푸스데이 베일 벗나?
출처 : 무지개물감님 작성 , 06-04-05 11:13, http://k.daum.net/qna/kin/home/qdetail_view.html?qid=2dWm0&boardid=GJ.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5월 전 세계에서 영화로도 개봉될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조직 ‘오푸스데이’가 한국에서 은막을 벗고 모습을 드러낼까.
<다빈치코드>에서 ‘오푸스데이’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 낳은 후손들(성배)을 지키는 시온수도회원들을 살해하는 조직으로 설정돼 있다. 예수의 신성을 믿는 현 가톨릭의 교의와 체계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조직을 제거하는 단체로 그려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오푸스데이 한글사이트(www.opusdei.org)는 ‘<다빈치코드>에 대한 미국 오푸스데이의 입장’이란 글에서 “오푸스데이가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지상적 재화와 권력을 얻는 데 혈안이 되어가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거짓된 묘사를 일삼고 있다”면서 “회원들의 고행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실천 행위를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 교황 때 공식화 가능성
세계 60개국 8만명 활동… ‘가톨릭 근본주의’라 불려
‘하느님의 사업’이라는 뜻을 지닌 오푸스데이는 1928년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설립됐다. 로마에 본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8만여 명의 회원이 있다.
오푸스데이는 수도사들이 있는 수도회와는 다르다. 그들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성성을 추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그래서 ‘가톨릭 근본주의’또는 ‘가톨릭 우익 운동’이란 평을 받기도 한다.
오푸스데이는 평신자들의 역할을 중시한다. 오푸스데이의 사제도 평신도회원 중에서 선출된다. 오푸스데이에선 6년 간의 철저한 수련을 거쳐야 종신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창설자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75년 선종했는데, 전 세계 주교 3분의1이 넘는 1300여명의 주교들을 포함한 세계 수천 명 신자들의 청원에 따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해 1992년 복자가 되고, 2002년 성인으로 추대됐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공식적으로 활동 중인 오푸스데이는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절 로마 가톨릭이 보수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푸스데이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1986년 11월 27~29일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42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한국오푸스데이 세미나’가 열린 것이 최초다. 당시 혜화동성당 사목위원장은 국회의장 비서실장 출신으로 훗날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이 된 박정훈씨였다. 이들은 다음해 초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해 허가지원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공식 조직으로 허가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창립자의 전기인 <길>이 부산교구쪽에서 유포됨에 따라 부산 쪽에서 활동이 더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푸스데이[Opus Dei]
출처 : 다음 백과 사전, 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m=all&articleID=b16a1540a#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