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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영화카페 - 삐따기의 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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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연극,뮤지컬 소식 스크랩 배우 조니 뎁(Johnny Christopher Depp III)
ciel 추천 0 조회 75 08.04.28 22:5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반항아적인 이미지 내면에 감춰진 영혼의 울림


      

조니 뎁에게서는 스물 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던 리버 피닉스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실제로 1970년 생이었던 리버 피닉스와 1963년 생인 조니 뎁은 7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동지애적인 우정을 나눈 사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영화에 데뷔했던 두 사람은 ‘제임스 딘’류의 고독한 반항아적 이미지에 메마른 도시적 감성이 어우러진 분위기를 자아내며 상업성이 판치는 헐리웃에서 주류보다는 아웃사이더로서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고집하는 소수로 남길 원했다. 1993년 10월 31일 조니 뎁이 운영하던 ‘Viperroom’이라는 라이브 카페에 들렀던 리버 피닉스는 카페 입구에서 가장 화려한 20대 초반의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리버 피닉스는 갔지만 남은 조니 뎁은 여전히 그와 함께 나눴던 꿈을 버리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배우의 길을 충실히 걸어왔다.


* 음악가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청춘시대

조니 뎁의 팬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정보이겠지만 그는 애초에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대신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갖추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주를 하며 록 기타리스트로 대성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앞서 언급했던 리버 피닉스도 데뷔 무렵 록스타가 되고 싶었던 꿈과 생계를 위해 CF와 TV에 출연해야 했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남다른 우정이 이해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또한 범상치 않은 성장기를 보냈던 조니 뎁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우울해 했던 그를 위해 어머니가 사준 전기 기타를 통해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고 내면에 감춰진 예술적 기질을 발산하는 통로로서 음악을 선택했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후 학교까지 그만 두며 음악에 몰입하던 그는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16살 나이에 "The kids"라는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마치 서태지의 어린 시절과도 흡사하지 않은가?) 플로리다 지역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후 조니 뎁은 그룹 멤버들과 함께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서울로 가듯 LA로 향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기회의 땅 LA에서 'lggy pop'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하며 자리를 잡는 듯 했던 'The kids'가 와해되면서 조니 뎁은 당장 먹고 자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음악을 접고 가스배달, 펜 판매원 등을 하며 도시생활을 힘겹게 이어 나가던 와중이던 1983년, 20살이 되던 해 분장사였던 로리 앨리슨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 조니 뎁은 아내를 통해 뜻하지 않던 영화인들과의 만남을 갖게 됐다.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자기 삶의 목표로 음악을 설정할 만큼 음악적인 재능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던 조니 뎁이었지만(영화배우로 성공을 거둔 뒤에도 조니 뎁은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P'라는 록밴드를 결성해 음반을 발매해 실력있는 기타리스트라는 인정을 받기도 했다) 사람의 길이란 다 정해진 것일까? 85년 로리와 이혼하기 전까지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영화인들 중 <대부>로 유명한 감독 프랜시스 코폴라의 조카인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만남으로 인해 인생항로가 바뀌게 된다.




* 영화배우로서의 초년시절


조니 뎁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배우로서 연주자 이상으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니콜라스 케이지가 자신의 대행사를 연결해주면서 조니 뎁은 우연치 않게 배우로서의 길에 접어들게 됐고 지금까지 전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는 특급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조니 뎁은 케이지의 권유로 그의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은 후 곧바로 웨스크 레이본 감독의 영화 <나이트 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의 공개오디션에 응모한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젊은 청춘 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B급 공포영화의 단역으로 데뷔하는 수순을 밟으며 영화배우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어 출연한 영화는 조지 보월즈 감독의 코메디물인 <해변의 사생활>(Private Resort, 1985)과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Platoon, 1986). <플래툰>에서 조연이었던 조니 뎁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하도 오래된 영화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전쟁터에 적응하지 못하는 통역병으로 나와 민간인 학살현장에서 괴로워하며 어쩔 수 없이 통역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조니 뎁에게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첫 작품이라 따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조니 뎁이 데뷔한 80년대 중반은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등이 청춘 배우로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였다. 이들 중 한 명으로 뒤늦게 명함을 내밀었던 조니 뎁은 1987년 TV시리즈 <21 Jump street>를 통해 비로서 아이돌 스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반항적인 이미지의 청년 토마스 핸슨 역을 맡았던 조니 뎁은 5년 동안 미국 전역에 방송됐던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비로서 이름을 알리게 됐고 주연급 연기자로 발돋움하며 이후 수많은 명작들에 출연하는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 <가위손>과 <길버트 그레이프>, 그리고 <베니와 준>

                  


<21 Jump street>의 성공으로 스타대열에 합류했지만 배우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조니 뎁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던 코미디 뮤직컬 영화 <사랑의 눈물>(Cry-Baby, 1990) 이후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0)을 통해 비로서 지금과 같은 연기파 배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독특한 미적감각으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영상세계를 추구하는 팀 버튼 감독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던 <가위손>은 조니 뎁 뿐 아니라 팀 버튼 감독에게도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조니 뎁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여인 킴을 사랑하면서도 차가운 금속성 인조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스스로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 은둔해야 하는 에드워드를 실감나게 연기함으로 팀 버튼이 보여주고자 했던 몽상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애절한 로멘스의 주인공 역할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소화해냈다.조니 뎁과 팀 버튼의 찰떡 궁합은 이후 <에드 우드>, <슬리피 할로우>에 이어 2005년도 신작 <찰리와 초콜렛 공장>까지 이어진다.

세상 어떤 것도 만들 수 있지만 때로 무서운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는 가위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 에드워드는 이후 상업적인 영화 출연을 강요(?)하는 헐리웃에서 자신만의 예술관을 갖고 버텨나가야 했던(지난 편에 소개했던 숀 펜처럼) 조니 뎁의 또 다른 모습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가위손>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조니 뎁은 1993에 이르러 주목할 만한 3편의 영화에 연속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고히 다져나갔다. 조니 뎁에게 이 시기는 연기력과 더불어 흥행의 성공으로 메스컴의 표적이 됐지만 얄팍한 상술에 휘말려 재능을 낭비하는 어리숙한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배우의 길에 다가서는 노력을 통해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성숙함을 보여준 때이기도 했다.


                               

먼저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인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 이 영화 또한 <가위손> 못지 않게 조니 뎁의 필모그라피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집채만한 덩치의 엄마와 정신박약아인 동생(당시 동생 어니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또한 천재 배우가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단한 연기를 선보였다) 등으로 구성된 비정상적인 가정에 속박되어 지루하면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던 길버트가 여행 중인 베키(줄리엣 루이스)를 만나 번민하던 중 마침내 갈망하던 자유를 찾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 조니 뎁은 가정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자유를 꿈꾸는 젊은이의 내면세계를 리얼하게 표현해 인조인간으로 뿐 아니라 살과 피가 통하는 인간으로서도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배우라는 확신을 주었다.

팀 버튼 감독과의 만남처럼 할스트롬 감독과의 만남도 조니 뎁의 영화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할스트롬 감독은 스웨덴에서 TV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전설적인 그룹 아바의 뮤직 비디오인 <아바: 더 무비>(1977)을 만들었고 <개 같은 내 인생>(Mitt Liv Som Hund, 1985) 등의 주옥 같은 영화를 감독했던 명장이다. ‘가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의 새로운 길찾기’를 주로 다루는 할스트롬 감독의 주제의식은 이 영화를 찍은 직후 절친한 친구 리버 피닉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심리적 상처와 더불어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었던 조니 뎁에게 영화라는 장르가 음악 못지 않게 세상을 치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조니 뎁은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할스트롬 감독의 <초콜렛>(Chocolate, 2000)에  출연해 보다 따뜻한 모습의 주인공의 모습을 선보이며 존경하는 감독의 기대에 다시 한번 부응하기도 했다.

주제의식이 분명한 <가위손>과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조니 뎁은 두 편의 괜찮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연기 영역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디아볼릭>(Diabolique, 1996), <어벤저>(The Avengers, 1998) 등을 만든 제레미 체칙 감독의 <베니와 준>(Benny & Joon, 1993)는 일종의 로멘틱 코메디로 예술적 광기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여동생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자 삶의 유일한 낙이라 생각하는 오빠 베니(에이단 퀸)와 단둘이 살아가는 착하고 청순한 준(메리 스튜어트 분)과 사랑에 빠지는 샘(조니 뎁 분)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수작이다. 

              


그리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리조나 드림>(Arizona Dream, 1993). <아빠는 출장 중>(1985), <집시의 시간>(1989), <언더그라운드>(1995), <삶은 기적이다>(2004) 등을 만들었던 유고슬라비아의 거장 쿠스트리차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유일한 영화로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채워진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부조리함을 다룬 블랙 코메디의 완성도 뿐 아니라 물고기의 행태보다 물고기가 어떻게 꿈을 꾸느냐에 더 관심이 있는 어류 연구원역을 맡아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형태를 달리하며 드러나는 조니 뎁 특유의 몽환적인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 거장들과의 만남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50년대 헐리웃 영화계를 풍미했던 실존인물 에드 우드를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순수한 인물로 묘사한 팀 버튼의 <에드 우드>(1994)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연기를 보인 조니 뎁은 <애스트로넛>(The Astronaut’s Wife, 1999)과 더불어 <가위손> 이후 지금까지 그가 주연한 영화들 중 가장 평범한 작품으로 꼽히는 <닉 오브 타임>(Nick Of Time, 1995)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 출연한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 맨>(Dead Man, 1995)을 통해 데뷔 이후 10년 동안 갈고 닦은 내공을 함축해 발산하는 듯한 원숙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데드 맨>은 96년 세계적인 영화전문지 '까이에 뒤 시네마'와 프랑스 '프리미어'가 '올해의 세계 10대 영화'로 선정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자무쉬 감독 특유의 난해한 스토리 전개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는 힘든 작품이다. 이미 <천국보다 낯선>에서 나른한 절망감을 통해 꿈의 허망함을 이야기한 바 있는 자무쉬 감독은 <데드 맨>에서는 1800년대의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수많은 웨스턴 무비의 배경이었던 서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자무쉬 감독이 만든 영화답게 대중적인 서부극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 손에 잡히지 않는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려는 주인공의 몽환적인 나른함을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함으로 다시 한번 거장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명배우열전을 연재하면서 몇 번이고 반복하는 말이지만 배우의 기량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작품과 감독의 선택은 배우의 연기력 못지않게 중요한 전제 조건임이 분명하다. 조니 뎁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누구 못지 않게 영화인생(특히 초반부)에서 훌륭한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한단계씩 발전해온 배우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팀 버튼 감독을 비롯해 제레미 체칙과 쿠스트리차, 그리고 짐 자무쉬 같이 이름만 들어도 그 무게가 느껴지는 명감독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독의 수준이 높은 만큼 감독이 원하는 배우의 기량 또한 뛰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거장급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들의 예술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배우라는 타이틀을 단 모든 이들에게 주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는 평가를 받으며 예술영화를 신봉하는 영화광들과 영화학도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짐 자무쉬 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위상을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니 뎁은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뛰어난 감독과 우수한 작품의 뒷받침을 단단히 받으며 착실히 성장할 수 있었던 선택받은 소수에 포함되는 배우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선택에는 그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하는 감독들이 욕심(?) 뿐 아니라 블록버스터를 거부하고 비상업적인 거장급 감독들과의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연기세계와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는 조니 뎁의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조니 뎁은 <데드 맨> 이후에도 <차이나 타운>(China Town>(1974), <테스>(Tess, 1979), <비터문>(Bitter Moon, 1992), <피아니시트>(The Pianist, 2004) 등을 감독한 로만 폴란스키와 <데스페라도>(Desperado, 1995), <포룸>(Four Rooms, 1995), <신 시티>(Sin City, 2005) 등을 감독한 히스페닉계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등 거장급 감독들과 작업을 이어나가는 와중에 마크 포스터, 젊은 감독들의 작품에도 출연하며 다소 여유로운 행보를 보인다. 그래서인지 초창기에 출연했던 대부분의 작품들이 명작의 반열에 드는 반면 이 시기 몇 개의 범작이 눈에 띄기도 한다. 물론 작품의 질에 상관없이 빛나는 조니 뎁의 연기력은 한결같다는 평가를 받지만 말이다. <진실>(1994) 이후 거의 5년 만에 신작을 연출한 폴란스키 감독의 <나인스 게이트>(The Ninth Gate, 1999)도 마찬가지다. 거장의 작품치고는 다소 실망스러운 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도 조니 뎁은 여전히 자기 몫 이상을 해냈다.

* 스릴러물을 통한 변신


    

그리고 이 영화 이후 조니 뎁은 고전 스릴러라는 색다른 영역에 도전하면서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팀 버튼 감독의 <슬리퍼 할로우>(Sleppy Hollow, 1999)와 휴즈 형제(알버트 & 알렌)의 <프롬 헬>(From Hell, 2001) 등에서 조니 뎁은 18세기말과 19세기말 각각 뉴욕(북쪽의 외딴 시골마을)과 런던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젊은 수사관역을 연기하면서 이전에 보여주지 못한(냉철하고 치밀한) 모습을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나인스 게이트>는 스페인의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알투로 페레즈-레베르떼(Arturo Perez-Reverte)가 쓴 소설 <클럽 듀마>(El Club Dumas, The Club Dumas)를 스크린으로 옮긴 초자연 스릴러물이며, <슬리퍼 할로우>은 워싱턴 어빙이 미국에서 전해 내려오던 <머리없는 말탄 유령>(Rip Van Wingkle)에 대한 민담을 소설화한 18세기 고전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The Legend Of Sleepy Hollow)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19차례나 TV 혹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슬리퍼 할로우>와 시대배경은 다르지만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흡사한 <프롬 헬> 또한 1880년대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마의 원조격 '잭 더 리퍼' 사건을 앨런 무어(Alan Moore)와 에디 켐벨(Eddie Campbell)이 각색한 동명의 만화 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릴러물이다.

   

이 세 편의 스릴러물들 외에 이 시기 조니 뎁이 출연한 작품들 중에서 마이크 뉴웰 감독의 <도니 브레스코>(Donnie Brasco, 1997)와 앞서 언급한 할스트롬 감독의 <초코렛>(Chocolate, 2000)에 비해 조연 등을 수작으로 꼽을 수 있다. <도니 브레스코>는 1970년대 말 뉴욕의 마피아 조직에 잠입해 거물 레프티 루지에로(알피치노 분)와 기묘한 우정을 나눴다는 FBI 요원 존 피스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재미있는(?) 사실은 극중 조니 뎁의 모델이 된 존 피스톤은 영화에서 그려진 사건 이후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의해 평생 도망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보호받는 과정에서 쓴 원작 <도니 브레스코: 마피아에서의 비밀스런 생활>(Donnie Brasco: Undercover Life In The Mafia)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당시 금액으로 50만 달러라는 거금을 벌었는데 그를 노리는 마피아 조직 또한 그의 목에 똑 같은 액수를 현상금을 걸었으며 그 액수는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초코렛>에서는 그리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주인공 비안느(줄리엣 비노쉬)와 사랑에 빠지는 집시 로우역을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 최근에 출연한 작품들


   

최근 조니 뎁이 출연했던 작품들 중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Once Upon A Time In Mexico, 2003)와 <네버랜드를 찾아서>(Finding Neverland, 2004) 등이 인상적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는 24살의 로베르토 로드리게즈가 단돈 7천 달러(로드리게즈 감독의 표현을 빌면 할리우드에서 영화 한 편을 제작하면서 배우와 스텝들이 마시는 커피 값 총액에도 못 미치는 액수)라는 저예산을 들여 제작해 화제를 모은 <엘 마리아치>(El Mariachi, 1992)(로드리게즈가 감독, 제작,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음악 등 1인 7역을 맡아 완성한 이 데뷔작으로 그는 일약 스타 감독으로 발돋음했고 선댄스 영화제에 몰려들었던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에 힘입어 관객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안았다)와 그 속편 <데스페라도>(Desperado, 1995)에 이은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영화다. 이 3부작에 뒤늦게 합류한 조니 뎁은 부패한 CIA요원 샌즈역을 맡아 전편에서 화려한 활약을 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엘 마리아치 역)와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특히 눈을 다친 상태에서 감각만으로 상대에게 총격을 가하는 조니 뎁의 처절한 모습은 이 영화가 전편들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며 혹평을 가했던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20세기의 어린이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피터팬>의 저자 제임스 베리의 삶을 다룬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 이 영화에서 조니 뎁의 활약은 군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조니 뎁에 의한 조니 뎁을 위한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할리 베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던 <몬스터 볼>(Monster’s Ball, 2001)을 감독한 마크 포스터의 연출 역량도 대단했다. 하지만 포스터 감독이 전작과는 달리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의 제작의도처럼 “삶에 짓눌린 모두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되어 잃어버린 동심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는 어른의 성숙함과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고루 갖춘 조니 뎁의 탁월한 연기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임스 배리의 희곡 <피터팬>이 연극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극단주 찰스 프로먼역을 맡았던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몬스터 볼>을 본 뒤로 난 언젠가 포스터 감독과 꼭 한번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제임스 배리 역을 죠니 뎁이 맡는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 영화에 호감이 갔다”면서 “포스터 감독과 죠니 뎁이 이 영화에 함께 한다는 사실에 흔쾌히 출연 승낙을 했다”고 밝혔듯이 조니 뎁과 마크 포스터 두 사람 모두 주변의 기대를 모으며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외에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던 <시크릿 윈도우>(Secret Window, 2004)는 공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포 패스트 미드나잇: 시크릿 윈도우, 시크릿 가든>(Four Past Midnight: Secret Window, Secret Garden)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원작의 후반부가 뒷심이 부족했던 관계로 신통치 않은 반응을 받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이야기들 중에서는 중간 수준이지만, 조니 뎁의 연기는 그의 출연작 중 최고에 가깝다"는 평을 받기도 했으니 (인생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 모트가 분노의 화신으로 변하는 과정을 이처럼 리얼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조니 뎁의 연기를 아끼는 팬들이라면 기꺼이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

  

이제 조니 뎁은 데뷔 초부터 인연을 맺었던 팀 버튼 감독의 신작 <찰리와 초콜렛 공장>(Charlie & The Chocolate Factory)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팀 버튼 감독이 32개 국어로 출판돼 1,370만 권이 팔린 로알드 달의 책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영화화한다는 뉴스는 팀 버튼의 영화를 아끼는 팬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조니 뎁과의 네 번째 영화라니…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세계 최고의 초콜릿을 만드는 메이커 윌리 웡카(조니 뎁 분)의 공장 이웃에 살면서도 일년에 딱 한번 생일에만 초콜릿을 먹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 찰리 버켓은 경품 투어에 당첨되어 다른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비밀스러운 목적이 숨겨진 윌리 웡카 공장 견학에 초대된다. 찰리 역의 하이모어는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 함께 작업한 조니 뎁이 그의 뛰어난 연기에 반해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현재 조니 뎁은 오랜 연인 바네사 파라디와 딸 라일리 로즈, 아들 잭과 함께 프랑스 남동부의 농장에서 거주하고 있다. LA에도 집이 있지만 미국 정부가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모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조니 뎁은 독일잡지 <슈테른>과의 인터뷰에서 모국인 미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하기도 했다. “미국은 큰 이빨로 당신을 물어뜯는 어리석고 공격적인 강아지와 같은 나라다. 나는 아직 어린 내 딸과 아들이 미국을 장난감, 그것도 고장난 장난감으로 생각하게 됐으면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니 뎁은 앞서 소개한 숀 펜처럼 과격하지는 않지만 그 못지 않게 자기 생각이 분명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덤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스스로를 내던짐으로 상처받거나 망가질 만큼 어리석지 않게 때문에 대중적 인기에 따라 일희일비하지도 않고 물질적 욕망을 위해 자기 재능을 팔지도 않는다. 오히려 스타덤을 ‘자신의 두 발을 띄우려는 풍선이나 비행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정신없이 띄워올리려는 스타덤에 저항해 자신의 두 발로 굳건하게 자기 선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젊은 시절 영혼의 갈증을 위해 음악을 택한 것처럼 영화는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자기 영혼을 드러내는 수단인 동시에 지향하는 목표다. 항상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영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항상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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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04.28 22:55

    첫댓글 제가 무척 조아하는 죠니 뎁, 그에 대해 잘 정리가 되어있는것 같아 스크랩해봅니다...

  • 08.05.20 10:16

    가위손으로 처음 알게된 배우.큰영화에서 작은영화까지 안가리고 나오는 배우. 팀버튼과 만나면 더욱 커지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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