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올레와 정낭
제주도 전통민가에는 대문이 없고 대신 정낭과 올레가 있다. 정낭과 올레가 어우러져 있는 주거경관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제주도만이 갖고 있다. 즉 제주의 주택에서 가장 특징적인 공간인 올레는 길에서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매우 좁고 긴 골목길인데, 이 길은 휘어지면서 안거리의 정면을 빗겨나도록 되어있다. 이런 길의 구조는 거센 바람을 한번 더 완화시키는 풍속 감속기능과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독립된 내부공간을 확보하려는 제주도 선인들의 의지가 투영돼 있는 길이다.
올레의 바깥 끝인 출입구 양 옆 입구에는 구멍 세 개를 뚫은 돌기둥을 세워놓는데 이것을 ‘정주목’이라고 부르며, 그 정주목에 끼워놓는 통나무 세 개가 바로 ‘정낭’이다.
왜 제주에는 대문이 없고 정낭과 올레가 있는 것일까? 대륙지방과는 달리 제주도에는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호랑이, 늑대, 곰 따위의 맹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낭은 왜 필요했을까. 소와 말 때문이다. 제주에는 소와 말을 방목해 키워왔기 때문에 산과 들, 마을 할 것 없이 집 밖은 모두 방목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 어슬렁거리던 소와 말들이 집 마당에서 말리는 곡식이나 우영밭에 심어진 채소며 묘종들을 먹어치울 염려가 있다. 그래서 소와 말이 집 마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나무를 가로질러 걸쳐놓는 정낭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정낭을 서로의 바쁜 생활을 배려하는 정보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곧 통나무가 하나만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한 것으로, 두 개 걸쳐져 있으면 좀 긴 시간을 외출했다는 신호로 삼았으며, 세 개가 다 걸쳐져 있으면 종일 출타중이라는 신호로 삼았던 것이다.
올레는 왜 있게 된 걸까. 올레의 구조를 살펴보면 반드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제주도처럼 우영밭, 장팡뒤, 눌왓 등을 대지 안에 함께 배치하는 경우는 다른 지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집을 지을 때 문이나 울타리를 먼저 쌓으면 좋지 않다는 게 제주사람들의 공통된 인습이다. 그래서 먼저 안거리가 앉을 자리를 정해 완성한 다음, 안거리와 마당을 둘러싸게끔 밖거리나 우영밭, 장팡뒤, 눌왓 등을 배치하는 과정 중에 입구인 올레를 정하는 일은 각별한 것이 된다.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이용해 쌓아진 밭담이나 이웃집 울담을 이용해 곡선의 형태를 갖게 만들어야 안정되게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굽은 판자가 세우기 쉬운 이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