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생 거 품 “
'흥부네 집 입춘방(立春榜)'이라는 속담이 있다.
방안에 누워 기지개를 켜면 머리는 벽을 뚫고 나가 별하늘이 눈에 담기고
발은 울타리를 뚫고 나가 한길을 가로막는다는 흥부네 집은
드나들 대문도 없고 어지르고 쓸고 할 마당도 있을 수 없다.
한데도 입춘날이면 흥부는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요,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하는
입춘방(立春榜)을 써다 붙인다.
분에 맞지 않는 체면 지키기를 선행(先行)시키는 한국인(韓國人)의 심성(心性)을 빗댈 때 잘 쓰는 속담이다.
한마을 사람이 어머니 제삿날에 서당 훈장(訓長)에게 축문(祝文)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 축문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누군가가 장모 제사 때 읽는 축문 같다고 했다.
이를 들고 찾아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아 이 사람아, 자네 장모가 죽을 것을 자네 어머니가 틀리게 죽으면 죽었지 내가 틀릴 리가 있나”
하고 휙! 돌아앉았다.
틀려서도 안 되는 훈장 체면을 빗댄 전래 우스개 이야기다.
사람은 각기 세 개의 ‘나’를 지니고 산다.
하나는 내가 보는 나(自我)요, 다른 하나는 남이 보는 나(他我)다.
그리고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에 끼인, 보여지는 나 합해서 세 개의 나다.
이 세 개의 내가 다르지 않는 것이 성인(聖人)이요,
그런 경지를 지향하는 사람이 군자(君子)다.
그렇고 보면 소인(小人)일수록 세 개의 내가 크게 다르고
보여지는 나를 실제의 나보다 부풀리는 데 여념이 없다.
그 보여지는 틀이 좋게 말해서 체면이요, 체면이 바로 인생 거품이다.
최근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기름도 많이 들고 찻값도 비싼 대형의 승용차 선망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체면이라고 했다.
곧 대형차일수록 남에게 보여지는 내가 실제의 나로부터 괴리(乖離)된다.
그 괴리가 클수록 경제적으로 쪼달리고
정신적으로도 불안(不安)한 나날을 살아야 하니 그것이 인생 거품이다.
외제나 유명상표 선호를 못 벗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흥부의 입춘방은 애교라도 있고 축문을 잘못 쓴 훈장은 기백이라도 있다.
금융 거품뿐 아니라 인생 거품도 빼지 않을 수 없도록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것 같다.
~ 이규태 코너 (1997. 12. 14)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