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방의 튀밥기계
글 / 김덕길
풀잎이 키 재기에 바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안마당에는 소나기가 하염없이 퍼붓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튀밥을 튀기러 나가지 않으셨다. 대신 토방에 앉아 튀밥기계를 분해해 정비하셨다. 기계를 하나하나 풀어 놓고 닦고 조이고 다시 맞추는 그 손놀림에는 오래된 습관처럼 차분한 리듬이 있었다.
튀밥을 튀기려면 여러 도구가 필요했다. 튀밥기계가 있어야 하고 기계와 풀무를 잇는 고무줄이 있어야 했다. 불을 지필 풀무와 장작도 필요했고, 튀밥을 받아낼 얼맹이도 빠질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튀밥은 튀겨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계를 분해한 뒤 뚜껑을 곤로 불 위에 올려놓으셨다. 쇠로 된 뚜껑에는 납이 들어 있었는데 그 납이 녹아야만 뚜껑의 이빨이 정확히 맞아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는다. 한참 지나면 납이 완전히 녹아 고체였던 것이 맑은 액체가 된다. 아버지는 얇은 철 젓가락으로 그 위에 떠오른 이물질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셨다. 그렇게 맑아진 납 위에 본래의 틀을 얹어 식히면 군데군데 무뎌졌던 뚜껑의 이빨이 감쪽같이 살아났다.
기계 정비가 끝나면 아버지는 얼맹이를 손보셨다. 튀밥을 담는 얼맹이는 철망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래야 튀밥이 터질 때 생기는 수증기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한쪽이 벌어져 그 틈으로 쌀이 몇 알씩 빠져나가곤 했다. 아버지는 철사를 엮어 그 틈을 메우셨다. 손놀림은 능숙했고 꼼꼼했다.
불도 장작으로 지폈다. 불쏘시개는 작게 쪼개야 했다. 재는 적게 나오고 불은 잘 타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늘 장작을 잘라 준비해 두셨다. 도끼를 다루는 솜씨는 어린 내 눈에도 놀라울 만큼 능숙했다.
그날도 정비가 막 끝나갈 즈음이었다. 중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누나들이 튀밥을 튀기러 찾아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저씨, 오늘 튀밥 좀 튀겨 주실 수 있어요?”
“아이고 어쩌나. 비 오는 날은 일 안 하는데….”
“우리 집에 잔치가 있어서요. 엄마가 꼭 튀겨 오라고 하셨어요. 산자를 해야 하거든요.”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기계를 토방으로 옮기셨다. 우리 집 지붕은 양철지붕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에서 실로폰 같은 소리가 났다. 가느다란 실비가 내리면 부드럽고 경쾌한 소리가 흘렀고, 소나기가 퍼붓는 날이면 지붕은 둔중하게 울렸다. 그날 토방에서 튀밥을 튀기던 동안에도 지붕 위에서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얀 교복 저고리에 가지색 치마를 단정히 입고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누나들은 어린 내 눈에 천사처럼 보였다.
“덕길아, 뭐 하냐? 얼른 나와서 기계 좀 돌려라.”
시골 창호지 문에는 늘 손바닥만 한 유리가 붙어 있었다. 문 안에서 손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작은 유리창으로 누나들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예, 아버지! 나갈게요.”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렇게 예쁜 교복을 입은 손님이 우리 집에 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누나들은 나를 보더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라? 여기 막둥이인가 보네. 형은 어디 갔니?”
“동네 놀러 갔어요.”
아마 우리 형 또래였던 모양이었다. 누나들은 내가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머리를 스칠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기가 찌릿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내가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동네에 나가면 어른들은 늘 나를 튀밥장수 아들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그렇지만 나를 가장 쉽게 설명하는 말도 결국 그것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중학교 앞집 튀밥장수 아들이 바로 나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나를 기억해냈다.
지금도 시골집 토방 한쪽에는 녹이 슨 튀밥기계가 남아 있다. 그 기계를 리어카에 싣고 동네방네 다니던 아버지는 하늘에 가신 지 벌써 스물세 해가 지났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제 튀밥 장사를 해보려고 한다.
상호를 지어야 하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튀밥 튀는 시인’, ‘뻥튀기 장군’, ‘튀밥장군’, ‘총각네 튀밥가게’ 같은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아내에게 “총각네 튀밥가게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웃으며 “그럼 유부남네 튀밥가게나 홀아비네 튀밥가게로 하라”고 놀린다. 나는 그 말에 배를 잡고 웃었다.
언젠가 다시 튀밥 기계를 돌리게 된다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튀밥의 수증기 속에서 나는 스물세 해 전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걸어오신 세월을 내가 다시 걸어본다면, 어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도 토방 한켠에서 녹이 슬어 가는 튀밥기계를 바라본다. 그 기계를 돌리던 아버지의 등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김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