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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께서 전화가 왔는데 새내 이모부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조문을 왔다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중부 관할인 삼정공단과 도당동의 노사분규 때문에 휴가가
안된다기에 숙부님 별세로 하루만 휴가를 내고
오후에 서해안 고속도로로 줄포를 거쳐서 형님네 방앗간에 들려서
인사드리고 새내 이모네집에 갔습니다
이모부님 (88세) 영전에 무릅을꿇고 공손하게 향을 피워드리고
절을 두번하고 나오니 이모님께서 손을 잡으시며 먼디서 오느라고
고생했다고 반겨주셨습니다
좌측손을 잡으신 줄포 외숙모님은 내등을 두드리 시면서
" 막둥아 너언제갈래 "
' 내일 산소일을보고 갈려고요 "
" 잘되얐다 나는 여그서 너를 기달릴테니 이리들어와서 나를꼭 데리고
가야한다이 "
하셨습니다
이모네 집앞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연탄여러개로 큰난로를 두곳에
피워놓고 고스톱판과 짓고땅판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1000원짜리 고스톱판에는 새내 독골 부안촌 춘수리등 인근 동내의
낮익은 얼굴들인데 짓고땅판은 정읍에서온 노름꾼들인성 싶었습니다
잠자리도 여의치 안아서 큰집 방앗간에가서 어머니가 사셨던
아랫방에서 잘자고 아침을 일찍먹고 새내 이모네 집에가니
출상준비를 하면서 아침을 먹고있었습니다
이모님 줄포외숙모님 큰형수님께서는 밥을 차려놨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행여 잊어버리고 그냥 가버릴까봐 줄포 외숙모님께서는
" 너를 여그서 만낭게 참으로 좋구나 늬차타고 가면서 너한태 할말이
참으로 많이있다이 늬가 질이라는 너그 어머니한테 들은말도있고 "
하셨습니다
줄포 외숙모님과 이야기중에 이모님께서
" 응 자네 말이맞어 굽은솔낭구가 선산을 지키드라고 시방야가
저그 오메 아부지와 외할머니 사창 우리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에도
봄가을로 술이랑 짐밥과 (김밥) 먹을것을갖고 댕기면서 성묘를 다니고
있네이 야아니면 누가 댕기것는가 "
이모님이 중간에 끼여들어서 이야기가 어려워지니
" 자세한것은 천천히 가면서 이야기 허자이 "
하셨습니다
외할머니 제사때 신창동 에가서 전에도 줄포 외숙모님한테 여러번듣고
우리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도 여러번 들었던 줄포외숙모님 외삼촌의
가엽고 서럽고 슬펏던 인생사를 여산 신탄진 천안삼거리 안성 죽암
휴게소에 들리면서 아주 자세히 들으면서 왔습니다
산소일을 마치고 이모님댁 에와서 늦은점심을먹고 이모님과
상문형님과 형수님등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외숙모님을
모시고 나왔습니다
음력으로 12.3일 이지만 날씨가 포근해서 다행 이었습니다
외숙모님은 차를타고 오시면서 새내방죽을 유심히쳐다 보시면서
" 야 여그서는 새내 방죽좀 잘쳐다 볼랑게 천천히좀 가그라이 "
하시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여러번 닦으셨습니다
외숙모님께서는 신혼때 춘수리에서 괄세받고 멸시받으면서 살다가
우여곡절끝에 신성리로 제금나가 (분가) 살면서
" 내친정같은 부안촌 너그집에서 한두밤자고 새내에 왔다가 언제나
푸르고 무서운 이곳 새내방죽을 눈물바람 하면서 신성리에 갔드란다 "
줄포 외숙모님은 친정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큰희망을안고 부잣집 면장님네 셋째아들한테 시집을 와서보니 모두들
나를 무시하고 괄세를하고 따돌리기에 하도서럽고 화가나서 줄포로
도망 가버리고 싶었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 야 요셋말로는 사기 결혼인데 내가 둘려가지고 춘수리 너그
외갓집으로 시집을 안왔냐
면장님네 부잣집 셋재아들이고 인물도 훤하다고해서 좋다고
하여서 시집을 왔드란다
큰희망의 꿈을안고 춘수리에 와서보니
시아버지 한사람만 사람같고 나머니지는 모두가다
호세비들 ( 허수아비) 같았다이
연동외숙모나 (이종대 큰외삼촌)
톤날외숙모나 (이종무 작은외삼촌)
부억때기까지 (무보수 식모)
시어머니의 (금산 외할머니) 눈치나
실실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이 꼭 돼야지 우리속의 돼야지
새끼들 같드라 "
라고 하셨습니다
" 그냥반들 두분들은 흉이 아니라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양반들
이었다이 한글로 자기이름 석자도 쓸줄을 모르는 양반들 이었단다
반찬이나 국 찌게의 간도 다내가 맞추어서 안방으로 밥상을 올렸단다
그냥반들은 숭늉을 맛있게 끓이는것 까지도 다나한테서 배웠으니까
처음에는 그냥반들 둘이서 나를 작은각시네 며느리라고 그꼴에
그주제에도 아주 무시하고 우습게 알드라이
함께 지내다보니 심성들은 두분다 아주곱고 한없이 촣은디도 그러드라
심지어 세경도없이 (월급) 밥만 얻어먹고 일하는 부억때기 여편네
까지도 나를 솔차니 무시 하드랑게 "
하시면서 또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 장가온날은 줄포 우리친정에서 하룻밤자고 그이튿날 싻꾼 두명을사서
여러가지 떡이랑 고기랑 간것등을 잔뜩 두짐을 짊어지고 안왔냐
얼마나 있다가 나중에 들으니 원세상에 그싻꾼들에게 밥도 안먹여서
굶은체로 갔다고 안허냐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들로써 할일이것냐 "
이것은 두며느리들과 부억때기 (식모) 등 3명이다 시어머니의 눈치만
보다가 그런실수 발생한것 이었던것 같습니다
" 내가지금 허는말이 거짓말이면 나는 천벌을 받을것이다 "
내목숨보다 더 소중한
우리 두영이 (아들) 우리승주 (손자) 까지도 죄를 받을것이다
시댁에와서 하룻밤을 자고나서 아침일찍 토방에있는 너그 외삼촌
구두를 걸레를 줏어서 반질반질하게 잘닦아 놓으니
시어머니가 어디서 소리도없이 오시더니 신경질적으로 구두를
체갖고 가시더니 아랫채의 작은 시숙님네방 토방에다 갖다놓드라
그래서 나는 이것이 먼일인가 멍하니 서있으니까 이번에는
시어머니께서 우리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장가올때 입었던
명주 저고리 조끼 명주바지와 두루마기를 양손에들고 나오시더니
또 아랫채 작은 시숙님네 방으로 갖다두고 나오드라
시집온 첫날이니까 아침밥 먹기전에 시어머니 시아버지께 문안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너그 외삼촌은 허름한 옷을입고 대빗자루를 들고서
마당을 쓸고나서는 이것저것 허드랫 일만하고 있드라
" 나는 학교다닐때 배우고 우리어머니가 가르쳐준데로 신혼때에는
어른들이 그만하라고 할때까지 문안 인사를 드릴려고 했는데
어이가 없드라 "
하셨습니다
줄포 외삼촌은 금산 외할머니가 시집올때 데리고온 몸종(하녀) 한테서
태어난 천덕꾸러기 아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18살 장가갈 때까지 논일과 밭일등 일만하면서
오로지 일꾼머슴 으로만 살았드랍니다
그래서 학교는 문턱에도 못가봤기에 한글도 몰랐드랍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가 줄포외삼촌이 4살때 군산으로 시집을 가버렸기에
구박만 받으며 천하디 천하게 살았답니다
유일하게 한핏줄 이라고 따뜻하게 사랑해주고 감싸주고 아껴주는 사람은
이복 누님인 부안촌 큰누님 새내 작은누님 그리고 우리 외할머니인
큰어머니 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큰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아버지와 겸상한번도
(한상에서 함께식사) 못해 봤드랍니다
항상 체격이 엇비슷한 두형들의 헌옷이나 헌신발만신고 살았드랍니다
그러다가 부잣집 6년재 국민학교를나온 인테리 신부와 결혼을한것 입니다
그당시 우리 소성국민학교는 4학년 까지만있었고 5학년 6학년은
정읍으로 다녔다고 합니다
줄포는 면소재지 이지만 큰포구 이기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국민학교가
6학년까지 있었답니다
꾸정물통옆에 (음식물 쓰레기통) 밥테기가 몇개만 보여도 이것이 멋이냐
절구통옆에 곡식이 몇알만 보여도 누가 이지랄했냐 등등 사사건건
나헌테만 악을쓰면서 욱박지르고 먼년 먼년하고 욕을 해쌌는데
참으로 못살것드라 시집온지가 한달도 다안되었는데 서너번 인가는
가슴패기도 쥐어박드라
자기의 친며느리 둘은 놔두고 나만 그렇게 볶아먹드라
우리집 에서는 큰소리를 한번도 안들어보고 자랐는데 말이다
너그 외삼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본게 아주 착하고 좋은사람 이드라
어릴때부터 어머니도없이 학교도 못가고 눈치밥만 얻어먹으며 비가오나
눈이오나 혼자서 일만하면서 너무나 고생을 많이도 했드라
내짐작에 춘수리앞 냇가뚝을 쭉타고가면 우리 줄포를 갈수있을것 같드라
그래서 언제 줄포로 도망을 가버릴려고 마음속으로 준비를 했는데
서너달 함께 살았다고 너그 외삼촌이 많이 걸리드라
심성도좋고 남보기에는 키도크고 인물도 훤하고 그럴듯 하기는 했지야
처음에는 면장네 부잣집 셋째아들이고 인물도 잘생겼다고 들었다이
" 우리 아버지의 그말에 내가 사기당하고 속아버린것 이었단다
부안 읍내에서도 내가학교도 다녔고 이쁘다고 욕심낸집도 있었단다 "
시집온지 넉달째된 어느날 큰정지앞에서 (큰부억) 열무를 다듬다가
언뜻대문을 쳐다보니까 우리 친정아버지가 서있드라
손도안씻고 울면서 얼른달려가서 아버지 가슴에 안겼드란다
대문앞에서 아버지와딸이 부둥켜안고 아주 큰소리로 펑펑 울었드란다
" 내가 잘못힜다 어저께사 들으니 안암팟이 (내외간둘다) 담사리라고
(머슴) 하드라 내가 너한테 잘못힛다 잘못힛어이 "
하면서 시어머니가 듣던지 말던지 친정아버지와 딸이 소리내어서
마음껏 울었드란다
대문앞에서 아버지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들었다고 하시면서
" 지금 나를 따라서 집으로갈래 여기서 살래 "
하시기에 두말도 안하고
" 여그서 살아야하고 전주이씨집 사람이 될랑게 아버지나 어서 그냥가
내가 아버지를 따라서가면 동내사람들이 머라고 하것는가 나는안가 "
했드랍니다
아버지와 둘이서 많이도울고 헤어지면서 친정아버지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돈을한뭉치 꺼내시더니
" 여자도 돈이있 있어야헝게 애껴서 쓰거라이 나중으 (나중에) 또보낼께이 "
하면서 돈뭉치를 손에주어 주시드랍니다
아버지와 둘이서 근한시간동안 대문앞에서 둘이다 눈물을 줄줄 흫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드랍니다
외숙모님은 몇번이나 뒤돌아보시는 친정 아버지가 춘수리 모퉁이를
돌아가서 안보일 때까지 서서 울었드랍니다
그날은 점심밥과 저녁밥을 안먹었어도 배고픈줄도 모르고 눈물만 나드랍니다
저녁에 외촌이 조고만 밥상에 밥을두그릇 가지고 들어와서
" 낮에들에서 장인어른이 오셨다간 이야기를 들었어 너머울면 몸축난게 인제
그만울고 저녁밥이나 먹세이 "
하였으나 밥생각이 하나도 없는데 하루종일 들에서 일하고와서 늦게까지
굶고있는 외삼촌이 안쓰러워서 밥을먹었 드랍니다
" 속없는 목구멍은 몇번훌쩍 거리면서 떠먹으니 빈그릇이 되드라이 "
하셨습니다
둘이 부억에가서 소리가 안나게 살살 설거지를 하고나니 슬픔도 피로도 스르르
풀려버리 드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방안에 있으면서 친정아버지와 딸이 대문옆에서
통곡하는것도 다들었고 나중에 두며느리들과 부억때기 한테도 우리아버지
옷차림과 구두 이야기한것 돈준것 등등을 이리저리 케물었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줄포사돈이 다녀간 후로는 그렇게 미워하고 꼴못봐하던
외숙모님에게 눈에 티가나게 부드럽게 대해주기에 친정울타리를 실감했다고
했습니다
두동서들도
" 친정이 부자인 갑네이 친정아버지가 양복쟁이네이 "
등등 전에 대하던때 하고는 또다르드 랍니다
시아버지는 6년제 국민학교를 졸업한 인데리인 외숙모를 항상 예뻐해 주시고
시어머니한테 아무런 잘못도없이 당하고 난후에는 등도 두드려주고 내편을들어
주시고 위로를 해주셔서 한없이 고맙고 저절로정이 들드랍니다
시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연필과 자끼장과 (노트) 종이를 얻었답니다
그리고 학교 문턱에도 안가본 외삼촌에게는 ㄱㄴㄷ 부터 틈날때마다 한글과
1.2.3.4.와 99단을 가르쳤더니 외삼촌은 공부하는것을 그렇게 좋아하고
고마워 하드랍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좋아하시고 칭찬을 하시드랍니다
외숙모님은 얼마전에 친정 아버지가 주시고가신 쌀한가마니 반값을 다듬이돌
밑에서 꺼내서 외삼촌에게 전부주면서 서울로가서 무슨 공장이든 취직을
하라고 했답니다
취직을하고 방을얻어놓고 편지하면 외숙모님이 올라간다고 했답니다
외숙모님말을 하느님 말처럼 따르는 외삼촌은 깊이새겨 들으면서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드랍니다
어느날 외삼촌이 아침밥을먹고 안방에 들어가서 서울에가서 공장에
들어가서 취직을해서 돈을벌겠다 고하니 집에서는 난리가 났답니다
줄포 외숙모는 사전에 시아버지께는 몰래보고를 드려서 그렇게 하라고
승락을 받았지만 시어머니는 펄펄 뛰면서 악을쓰면서
" 너이년 서울가라고 늬가 시켰제 늬년이 "
하면서 무서운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면서 달려들라고 드랍니다
돌아가는 분위기로봐서 장래를위해 제가 그랬습니다하면 키도크고
힘도장사인 시어머니 성질에 머리끄댕이가 다뽑혀 버릴것 같아서
" 저는 절대로 서울에 가란말을 안했고 삼거리에서 (면소재지) 누구한테
들었다고 그런말을 하기에 어머님과 아버님께 승락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
하고 처음으로 당당히 맞서면서 오리발을 내밀었 드랍니다
그랫더니 시어머니는 의심스러워 하면서도 슬그머니 누그러 지드랍니다
당장 집에서는 외삼촌이 나가버리면 논밭일을할 사람이 없었답니다
큰아들 종대삼촌은 논밭일과는 담을쌓은 백수건달로 지내셨고
날씨만 좋으면 거의 날마다 부안촌과 새내로 큰호말을타고
폼만잡고 다니면서 낭만적인 허송세월을 보내는게 전부였답니다
작은아들 종무삼촌은 면사무소에 다니는 공무원인데 몸도 퍽약하시고
농사일을 전혀 안해봐서 일을할줄을 몰랐답니다
그날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어떻게할것 이냐며 큰소리로 볶아대는
소리가 들리드랍니다
당시는 일꾼들에게 일년에쌀을 여덥가마니를 주던때 였드랍니다
줄포 외삼촌은 상일꾼 두몫의 일을했으니 난리가 날만도 했답니다
큰외삼촌과 작은외삼촌은 자기들도 어느정도 양심이 있었기에
아무말도 안하고 중립을 지키드랍니다
줄포 외삼촌은 외숙모님한테 들어서 세상돌아가는 물정도 어느정도는
이해를하고 여지껏 종처럼 살아온 자신을 깨닷는것 같드랍습니다
한글도 읽을줄알고 자기 이름은물론 아버지 형들 누님들 이름도 쓸줄알고
새로운 세상을 다시살아야 겠다는 각오가 섯던것 같았답니다
가죽 장화를신고 폼나는멋진 모습을보고 춘수리 사람들은
" 연동대감이 부모 잘만나서 호말타고 유람가네이 소성면서는 제일로
인물이여 풍체도 좋고이 "
(큰외삼촌은 연동리로 장가를가서 연동 양반임)
부안촌 사람들은
" 이종대 좆도 아닌놈이 지랄허고 저혼자 기마이내고 댕기네이 탁떨어져
버려라 씨벌놈 "
새내 사람들은
" 앗따 저호말을 나도한번 타보면 좋것네이 아주 호숩고 (신나고)
좋을것 같네이 "
하였답니다
종대 외삼촌이 말을타고 부안촌에서 동내가운데로 새내를향해 지나가면
큰것들 작은것들이 (큰애들 작은애들) 5-6명씩 말뒤를 따라서 다녔답니다
나보다 8살더먹은 작은형은 부안촌 모정에서 뒷낭갓 (뒷산) 언덕까지
거의 뛰다싶이 말을 따라가다보면 숨이찼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우리 막내 작은아버지가 자기 친정동생을 말에서 탁떨어져
버리라고 욕하고 흉본것을 어머니가 동내사람들한테 듣고는 기분이
안좋아서 길에서만난 막내작은 아버지를 나무라니 민망 해하면서
" 누가 성수한테 그말을 힛을까이 인자는 흉안보고 구경만 헐께라우 "
하드랍니다
우리 형들은 어릴때 큰외삼촌이 춘수리서에부터 부안촌앞 뚝으로해서
마꼴앞까지 갔다가 부안촌 으로와서 서쪽샘에서 새내로 넘어가는걸
여러번 보았고 우리 작은형은 계속 따라다녔다고 했습니다
50년대 중간쯤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몇년간 여름에는
고창에사는 신용욱 이라는 KNA (대한항공 전신) 사장님이
잠자리비행기 (소형 헬리콥터) 를타고 아주저공 비행으로
항골 안틀 등거물 부안촌 춘수리를 거쳐서 눈둘로해서 성내쪽으로
가는것을 여러번 본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나에게는 그잠자리 비행기가 그렇게 신비롭고 동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아주 저공으로 떠다녔기에 조종사인 미국사람 얼굴도 잘보였습니다
그 잠자리 비행기만은 못해도그당시 애들이 우리 종대 외삼촌의
큰호말을탄 모습이 신비롭고 아주 동경 스러웠을것 같았습니다
4.19나 5.16.훨씬전 이승만 대통령 시절이니까 50년대 중반쯤때인
그때 그잠자리 비행기가 우리 고향마을 부안촌 앞들판위로 떠다닐때
왜그리 멋있고 부러웁고 동경 스러웠던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도크면 저것을 꼭 타고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10수년후인 72년도에 제가 월남전쟁터에 갔는데
그작은 잠자리 비행기는 단종되어서 없어져 버렸기에 못타봤습니다
그러나 맹호부대 기갑연대 12중대에서 소대장을 하면서
대대급 작전을 나갈때는 완전군장을 한체로 1개분대가타는
그잠자리 비행기보다 훨씬큰 UH1H 나
1개소대가 타고다니는 히누크는 여러번 타보았습니다
완전군장 을하고 철모를쓰고 M-16 소총을들고 헬기를 탈때마다
어릴때 부안촌에서 우러러 보았던 그멋쟁이 낭만파 신용욱님이
생각 났었습니다
부안촌앞 뚝이나 길에서 좀큰형들은 낮게뜬 잠자리 비행기를 향해서
좆이나 먹어라하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면서 헬기를향해 주먹총을
질러대면 비행기 안에서 신용욱님은 그러지 말라고 손을 내저으시곤
했었습니다
모정에서 동내 어른들은 모두들 웃으시면서 옛기놈으 새끼들하고
나무라시곤 했습니다
잠자리 비행기가 지나가고나면 모정에서는 어른들끼리 가끔 토론이
열리곤 했습니다
" 저것을타면 큰날개가도니 아주 시원할것 이여이
휴발유도 많이 퍼먹을것 같은디
떨어지면 허리랑 다리가 부러져서 골병들것제이
안떨어 질것이여 미국놈 운전수가 운전하는디 떨어지것어
저것이 주먹만히도 뻐스보다 헐씬 비싸것제이 "
등등 토론이 아주 재미가 있었습니다
몇년후에 그 신용욱 사장님은 빚이 많아서 부부가 한강에 투신해서
자살을 했다고 작은형이보던 동아일보에 보도되었습니다
우리어머니는 부안촌 사람들은 불이나면 불은 아주 짤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춘수리 사람들은 부안촌보다 양반이기는해도 불을 잘못끄기에
춘수리에서 누구집에 불나면 홀딱다 타버린다고 했습니다
새내사람들은 부안촌이나 춘수리보다 논밭도 적고 가난한 동내여도
자식들공부 시키는디는 1등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왜인지 항상 춘수리를 좋아했고 높이평가 했었습니다
정읍장에갔다 오면서도 타동내 사람들이 어디사냐고 물으면 춘수리
산다고 대답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춘수리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을 뚜둘지도안고 부안촌 것들처럼 싸움도
잘안하는 양반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춘수리는 군수와 면장을한 당신네 아버지 이희학님
우리 먼친척 아저씨인 면장을 오래하신 오재호님등
면장이 둘이나 있는데 부안촌은 면장 하나도없고 꺼뜩허면 술이나
퍼먹고 싸움이나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춘수리로 이사가제 그랬냐고하니 그렇지 안아도 복용아짐네
기와집을 살려고 했는데 너무나많이 도라고해서 계약을 하다가 말아서
춘수리로 이사를 못갔다고 했습니다
서울가는 문제는 외할아버지와 금산 외할머니 종대삼촌 종무삼촌이
회의를 한결과 3년후에 마랫뜰 논4마지기와 모시밭 말갓지기를 (300평)
주기로하고 우선은 제금을 (분가) 내주기로 하였답니다
그말을듣고 줄포 외삼촌은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드랍니다
외숙모님이 가만히 생각해보고 계산해보니 무슨 꿍꿍이속이 보이기에
저녁에 불을끄고 자는척 하면서 귓속말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니
외삼촌은 기가푹 죽어 버리드랍니다
몇일후 줄포 외삼촌과 외숙모가 부안촌 우리집에와서 그말을하니
외할머니와 우리어머니가 똑같이
" 이머저리 천치같은것아 3년후에 금산댁이 너한테 논밭문서를 주것냐
면에다니는 종무한테 당장에 논밭문서를 늬앞으로 이전을 해놓으라고
해라이 빨리 늬앞으로 이전을 안히주면 서울로 가버린다고 그러라이 "
혼란스러운 외삼촌과 외숙모는 그날밤 춘수리로 가기전에 새내로가서
한참 잠을자는 작은누님을 깨워서 그말을하니 부안촌에서와 똑같은말
이었답니다
춘수리에도 좋은방이 있지만 시어머니로부터 더자유롭고 싶어서
신성리에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만 사는집 아랫체를 공짜로 얻어서
외삼촌과 둘이서 도배도하고 이사를 했답니다
쌀두말 이불 요 솥단지 간장 된장 김치3가지 밥그릇 수저 젓가락
칼 도마 등등 둘이만 사는짐이 많기도 하드랍니다
외삼촌혼자 춘수리를 지게로 4-5번을 다녔드랍니다
논밭도 곧이전해 준다고하고 이제는 사는것 같드랍니다
외삼촌은 언제나 아침밥을 일찍먹고는 춘수리로 출근했답니다
외숙모는 큰일이나 바뿐일이 있을때만 춘수리에 갔드랍니다
외삼촌은 금산 외할머니와 형님들한테 미움받으면 안되기에
날마다 마당과 고삿까지 깨끗이쓸고 논일과 밭일을 마치고나면
날마다 오후에는 큰형이 애지중지하는 호말이사는 마굿간에가서
말이싼 똥과 오줌을 퍼다가 헛청옆 분료통에붓고 지게를지고
냇가에가서 모래를 져다가 마굿간에 뿌려주고 마른짚을 깔아줬답니다
말은 서서자는 짐승이지만 똥과 오줌은 소보다 배는더싸고 오줌냄새는
아주많이 난다고 했습니다
춘수리나 새내사람들은 6..25때도 자기동내 사람들을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숨겨주고 했는데 부안촌 사람들은 그러질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기와의 사적인 감정때문에 빨간권력을갖은 자생 좌익들에게
밀고하여서 우리진외갓집 L형님은 집에서 잠자다가 그것들에게
잡혀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부안촌 사람들은 싸가지가 없어서 어른아 우아래도 없었단다
외갓집 친척동생 이라는 M이란 작자는 너그 아버지보다 열몇살이나
덜먹은것이 구장아래서 반장인가 무슨배슬인가 하면서 부안촌과 춘수리의
좌익들이 공출해온쌀 (강제로 걷어온) 몇가마니 인가를 깊디깊은 순창
가막골까지 보내야 헌다고 짊어지고갈 노무자를 뽑는데 앞으로는 종종
헐일이고 돌아가면서 헐것이람서 너그아버지를 만만히보고 54살이먹은
빼짝마른 영감인 너그 아버지를 데리러 안왔냐 옥신각신 하면서 왜나이먹은
내가 가야허냐 했지만 돌아감서 헌다니 갈수밖에 없었드란다
젊은것들은 놔두고 부안촌에서 60리 70리가 된다는 그먼 순창 가막골까지
쌀한가마니를 짊어지고 가게한것이 잘헌일 이것냐 빨치산이 무서운디
안갈수가 있것냐
" 오직하면 국민학교 다니던 늬작은성 해팔이가 내가크면 저새끼 먼새끼란놈
가만안둘란다고 힛것냐 아이고 가소롭고 갓잔은것들 ㅉㅉㅉ "
당시 가막골은 순창 회문산에있는 전북도당 (도당위원장 방준표 ) 빨치산들의
보급창고였고 전북빨치산 훈련소가 있었답니다
동내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쌀가마니를 짊어지고 가막골에 간다는일은 빨치산
세상이 소멸되어 버렸기에 그1회로 끝났답니다
6.25 이듬해 날씨가 선선한 추석 무렵인데 달이밝은 어느날밤에 새내옆
제공 벌안에서 (한씨들제각) 춘수리 부안촌 새내 독골등 신천리 사람들을
전부모아놓고 공산당의 사상교육을 하는데 강사로는 신점사는 산월이다된
배가불룩한 만삭인 젊은 여편네가 우리의 인민공화국만이 잘사는 길이다
멋이다 등으로 연설을 하였드랍니다
초저녁 잠이많은 우리어머니는 강의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았드랍니다
그아무것도아닌 연설이 끝난후 부안촌동내 사람들끼리 무슨전달 사항을
이야기 하고난후 M아저씨는 다른사람들은 안자고 연설을 잘들었는데
높은사람도 와있는데 왜 고부성수만 잠을잤냐고 핀잔을 주드랍니다
" 무어시 어째 잘사는 시상이 우리집의 큰재산인 소를2마리나 끄져다가
잡어퍼먹어 그것이 잘사는 시상이여 "
하였더니 M아저씨는 혼자뭐라고 궁시렁 거리면서 무슨욕을 하면서
피해 버리드 랍니다
부안촌 것들은 너그 아버지같이 작고 만만한 사람은 크고 힘쎈者인
L같은 者한테 항상 뚜들겨맞고 살았단다
힘이장사인 대나실양반이나 동천양반은 노상너그 아버지를 말려준
참으로 고마운 양반들 이었단다
형제간인 두집과는 항상 잘지내면서 꼭 먹을것도 나누어먹곤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금산 외할머니와는 상극이기에 우리외할머니의 억지흉을
보는일과 모략등으로 1년에 한두번은 금산 외할머니와 서로욕도 하면서
크게싸움을 하였드랍니다
그래서 종대외삼촌이 말을타고 다니면서도 우리집에는 안왔드랍니다
새내 이모네집은 말을타고 한달에 1-2번은 꼭갔다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닭을잡아서 점심을 해주면 가면서 닭값의 여나문배는 (10배정도)
주고갔다고 들에서만난 이모부님이 우리 아버지에게 하시드 랍니다
한번은 우리 아버지가 제공앞에서 소죽끓일때 작두로 잘라서 넣어주면
소가아주 잘먹는 소에게는 고기나 다름없는 마른고구마순 줄기를
한짐지고 오다가 동내로 내려오는 언덕에서 말을탄 종대외삼촌을
만났드랍니다
종대외 삼촌은 말에서 뛰어내려서 허리를 굽히면서 절을 하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말타고 다니는 멋진처남이 말에서 내려서 절을하니
짐을진체로 어쩔줄을 몰라하면서 좋아 하드랍니다
그광경을 우리막내 작은아버지가 자기밭에서 그광경을보고 동내에다
소문을 냈드랍니다
동내 사람들이 부러운 칭찬을하며 인사를하면 아버지는 무조건 좋아서
허허 웃으며 좋아하면서 웃었드랍니다
어머니말로는 아버지는 긴가죽 장화를신고 호말을 타고다니는 멋진처남이
말에서 내려서 허리를 궆혀서 절을하니 아주좋아 하면서 한댓세는 얼굴이
남납해갖고 (아주 만족해서) 웃기만 하면서 다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종대외삼촌을 집으로 오라고해서 닭도한마리를 잡아서 해먹이자고
어머니를 여러번 졸랐으나 어머니는 지가오면 닭도잡고 밥을 해주지만
엎드려서 절받는 짓거리는 절대로 안된다고 아버지와 여러번 입다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처남이오면 용돈도 퍽생길 것이고 좋아하는 닭고기도
맛있게 얻어먹을 것인데 무척이나 아쉬워만 하셨다고 했습니다
종무외삼촌은 부안촌 큰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내가가서 상주노릇을
해야한다고 하였기에 외할머니와 우리어머니는 아주고맙게 생각 했드랍니다
그종무 외삼촌은 폐결핵으로 상주노릇도 못해주시고 6,25직전에 외할머니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셔버렸 드랍니다
종무삼촌 에게는 문영이라는 (우리 작은형 호남중 1년선배) 잘생긴 아들이하나
있었는데 중학생때 신태인에서 친척집 돈심부름을 가다가 잘아는 놈한테
돈을뺏기고 살해 당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지금도 손이없는 고마운 종무외삼촌의 오동촌 산속의 묘소에
가끔 성묘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외할머니와 종대외삼촌 종무외삼촌은 그런데로 사이가 괜찮았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춘수리앞 논에갔다가 올때에는 외삼촌들은 둘다 쫓아와서
절을하고 갔다고 했습니다
큰외삼촌은 자기 어머니와 항상 싸우는 큰누님이 미웁기도하고 껄끄러워서
어른인 큰어머니가 계신데도 설에도 우리집에는 세배도 안왔다고 했습니다
춘수리에사는 어머니의 사촌동생인 종선이 외삼촌이 함께세배 가자고해도
나중에 간다고하며 안왔다고 했습니다
일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던지 종옥이 외삼촌은 정월이면 춘수리에서 몇군데
세배를 얼른마치고 우리집에와서 초하루와 초이틀간 가운데 방에서 문을잠군체
잠을 잣드랍니다
그바람에 종무삼촌도 형의 눈치를 보는라 초여를 경에나 세배를하러 왔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연동 외숙모나 톤날 외숙모와는 우애하면서 아주 잘지냈답니다
자기 시어머니와 싸우고가는 큰시누이를 꼭 부안촌 가는곳까지 전송했고 합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예쁜 외숙모와 둘이만 사는것도 행복하고 즐거운데
논4마지와 밭말갓지기를 곧이전 해준다니 신이난 외삼촌은 요즘같이
행복하게 사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머리부터 배까지 안아픈디가없이 큰몸살이 낫드랍니다
외숙모가 신점의 한약방에가서 한약도 몇봉지를 사다가 잘달여서
먹였으나 소용이 없드랍니다
답답해서 지난번에도 아팟을때 외할머니가 마른고추와 생강과 진달래
뿌리를 많이넣고 식혜를 해주니 그것먹고 낫었든것이 생각 났드랍니다
우리집에와서 외삼촌이 아팟다고하니 외할머니 께서는 아픈증상을
자세히 이야기도 다하기전에
" 한전들고 머리아프고 빽다구가 쑤신다고 허드냐 "
하시면서
" 몸살나고 고뿔든디는 진달래 뿌리넣고 생강하고 마른고추로 식혜를히서
뜨거운놈을 서너번만 먹으면 낫은게 걱정 말거라이 "
하시드랍니다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에게
" 종옥이가 몸살이 솔차니난것 같은게 내가 엿지름 가지고 신성리로
갈랑게 자네는 독골가서 진달래 뿌리좀 케오소이 땅이 얼었어도
꼭괭이로케면 잘케질 것이네 얼른케다가 야한티 (줄포외숙모) 주소이 "
하시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맛있는것도 잘해다주고 옷도 잘만들어주는 예쁘고 인테리인
외숙모를 아주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합니다
" 내가 진달래를 캐갖고 신성리로갖고 갈것인게 어서가서 식혜나
안치시요이 "
하더랍니다
줄포 외숙모님은 우리 어머니가 당골네 집에서 얻어다준 생강과
우리집에서 마른고추를 얻어가지고 신성리에 갔더니
외할머니는 가면서 마른고추를 많이갖고 가셨고 주인집과도 전부터 다녀서
잘알기에 주인집 할머니가 자기 큰아들네 집에가서 생강도 얻어다 주드랍니다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와달리 무슨일이든지 번개같이 잘하시기에
외숙모님은 그냥서서 구경만 했드랍니다
식혜가 다되어 갈때쯤 우리 아버지가 진달래 뿌리를 둠벙에서 찬물로
깨끗이 씻어같고 오셨드랍니다
진달래 뿌리를 물로 행구어서 짜구로 잘라서 팔팔끓는 식혜에 넣었더니
검으스레한 색갈도 아주좋고 달착지근하고 맛있는 약냄새가 나드랍니다
그날밤 외할머니는 외숙모는 방에서 못나오게 하시면서 혼자서
부억에 가셔서 식혜를 데워서 서너번이나 외삼촌에게 먹이드랍니다
몸이 펄펄끓고 땀이나면서 끙끙알턴 외삼촌은 신기하게도 그날 오후에는
거뜬하게 낫어버리 드랍니다
줄포 외삼촌은 일년에 한번씩은 큰감기 몸살을 앓는데 언제나그럴때마다
외할머니께서 그진달래 식혜를 해주시면 그것을 드시고 일어낫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막히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 입니다
어머니가 결혼한 이듬해 동짓달인데 눈이 아주 많이온날 이었답니다
우리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닮아서 초저녁잠이 아주 많았답니다
17살인 그때에도 저녁을먹고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잠을 잤답니다
꿈결에 누가울면서 자꾸무슨 사정을 하드랍니다
꿈을 꾸고나서 언뜻 잠이깻는데 아랫방에서 외할머니가 나무잿털이에
담뱃통을 두드리면서 담뱃재를 터는소리가 나드랍니다
" 어머니 어머니 어째서 여태 안잣는가 "
하니
" 한소곰잣어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자리가 이상히서 껬다이 "
하드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잠이깬김에 할머니 방에가서 꿈이야기를하니
외할머니꿈과 어머니꿈이 거의비슷 하드랍니다
꿈이야기를 맞추어 보고난후 외할머니게서는
" 야 저것들이 먼사단이 낫는갑다
눈이와서 춥든안헝게 미끄러우니 작대기짚고
조심히서 춘수리한번 한번가보고 오거라이 "
하셔서
아버지가 메어주는데로 고무신을신은 양쪽발 신발에 새끼줄을 너댓번씩
감고나니 아주 든든하고 미끄럽지도안고 눈속에서 신발이 벗겨질일도
없드랍니다
( 요즈음 눈올때 등산화에신는 짚신 아이젠 역할같네요 )
눈이 많이왔어도 춘수리 가는길은 여러사람들이 걸어다녀서 길이아주
잘나 있드랍니다
꽁방쪽 으로가면 가깝지만 상여집도있고 밤이라서 동내앞 뚝길로해서
춘수리에 갔드랍니다
거의 달음질을 하듯이 외갓집에 갔더니 대문이 잠겨있기에 대밭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보니 모두 캄캄한데 큰방에만 불이켜져 있드랍니다
큰방에 들어가니 외할아버지가 왔냐는 말도없고 금산 외할머니는 쳐다도
안보고 목소리만 듣고는 등을돌려 안드랍니다
분위길를보니 이집은 오늘도 한판했구나하고 어색해서 그냥 나와서
군산할머니 방에가서 애기나 보듬어보고 가야겠다 하고있는데 고양이가
우는소리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드랍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애기우는소리 같기도해서 소리가나는 장독대쪽에
귀를기울이니 분명히 애기울음소리 드랍니다
뒷방문은 문풍지를 발라놔서 안열리기에 더듬더듬 부억으로가서
장독대쪽을 바라보니 장독대아래 눈속에서 애기가 응애응애 하면서
양손을 내젓 (흔들 드라는말) 드랍니다
버선발로 얼른 뛰어나가서 애기를 보듬으니 얼음덩어리 같이 차드랍니다
얼른 감싸안고 방에들어와서 젖은 저고리를 벗기고 눈을털고 물기를
닦아준후 횃대에걸린 외할아버지의 고급털잠바로 싸갖고 아랫목의
이불속에 덮어놓고 나서는
앉아있는 금산 할머니를 엎어놓고 악을쓰면서 등판때기를 열몇번을
뚜들겨 팻드랍니다
우리 어머니는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금산 외할머니의 옆굴탱이와 (옆구리)
허벅지도 여남번이나 (10여번) 꼬집어 비틀어 주었답니다
( 그때 안말려 주었다고 외할아버지는 몇삼년을 보대꼈 드랍니다 )
한참을 울면서 실갱이를 하고나니 이마 얼굴 모가지 등에서 땀이
아주많이 낫드랍니다
그난리를 쳤어도 외할아버지 께서는 검다히닷말이 하마디도 없었답니다
참으로 거짓말같은 이기도 합니다
금산 외할머니는 디지게 뚜들겨맞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 부안촌 큰년이 나죽인다 부안촌 큰년이 나죽여 "
하면서 악을 쓰드랍니다
아들들 방이나 딸들 방에서는 아무도 안오고 아무 소리가 없드랍니다
" 아버지 이것 애미는 어딧어 지금 엇다뒀냐고 "
하였더니 한참 있다가
" 광에나 가봐라 광에다나 가돠 놨것제 (가두어) "
" 원세상에 이어린것이 먼죄가 있다고 눈속에다 쳐박어 둘이다
똑같그만이 배락맞어 죽을것들 이네이 이게 먼짓이여 새끼를
멀라고 낫어 멀라고 나응 "
하면서 악을쓰고 나서는
덜덜 떨면서 울어대는 애기를 보듬고 대문옆 아들들 이자는 방에가니
종대삼촌과 종무삼촌이 떠메가도 모르게 잠을자고 있드랍니다
발로차서 깨우니 둘다 일어나면서 깜짝 놀래기에 불을 켜게하고
추워서 울어대는 애기를 이불속에 덮어 주었답니다
종대 외삼촌에게
" 애기를 잘좀 재워라이 금방 이것 엄씨데리고 곧올것인게 "
하고는 미리 짐작하고 10살짜리 종대삼촌의 바지와 웃도리를
가지고 광으로가니 아니나 다를까 홀딱벗겨서 못도망가게 새끼줄로
손과발을함께 꽁꽁묶어 놨드랍니다
한참을 걸려서 새끼줄을풀고 종대삼춘 옷이라 작지만 우아래를 입히고
군산 외할머니 방에 데리고가서 옷을 서너벌씩을 껴입혔드랍니다
애기 걱정을 하기에
" 애기걱정말고 어서 나따라서 애기데리고 우리집으로 가세이
버선이랑신고 눈이와서 미끄렁게 새내키로 (새끼줄로) 발이나 나같이
야물게 꽉감소이 부안촌 우리집으로 가게이 "
단단히 단도리를 잘하고 군산 외할머니를 데리고 외삼촌들의 방으로
갔답니다
외삼촌들 방에가서 울고있는 애기를 달라고해서 우리어머니가
보듬고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한번도 안넘어지고 우리집까지
잘왔드랍니다
눈이 왔기에 많이춥지는 안해서 천만다행 이라고 했습니다
외할머니 께서는
" 이런 천벌을 받을것들이 어디있다냐 이동지섣달에 핏댕이 어린것을
눈밭에다 던져놔 너그는 왕급할 것이다 왕급혀 (왕급?) 모가지를 띨것들
늬가 살라고 조앙님이 선몽히서 살었구나이 다행이다 다행이여 "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방에 장작불을 많이지펴 주셨답니다
군산 외할머니는 그날밤 늦게서야 애기난지 16일만에야 처음으로
우리집에와서 우리 어머니가 마른명태 한마리를 넣고끓인 미역국과밥을
훌쩍이면서 한그릇을 다먹었답니다
우리 집에와서 외할머니가 살펴보니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머리부터
손등 발등까지 성한곳이 한군데도 없드랍니다
이튿날 외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에게 돈을주면서 얼른 정읍에가서
쇠고기와 생조기랑 미역을 좋은것으로 많이 사오라고 했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