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상 12월 순례를 떠나려 하니 스쳐 지나간 시간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흐르게 마련이다. 특히 생명을 지닌 것은 생(生), 과(過), 멸(滅)의 순서를 밟는 것이 운명이다. 시간은 생명의 모든 것을 이끌다 결국 침묵으로 들게 한다. 어느새 12월이라니 독백하며, 오늘 종일 문밖에서 사용하는 하루의 살림을 NAP-SACK에 꾸렸다. 현실은 시간의 흐름에 녹아들어 결국 추억의 이름으로 우리 마음에 멈춰 버린다. 그러나 멈춰버린 추억 속에도 현실에서처럼 감정은 고스란히 남게 된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비명보다는 환호가 좋듯이 추억 속에도 좋은 감정들만 남아 있기를 선호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봄은 성숙의 여름을 만들지만, 여름은 버림의 가을을 만들고 가을은 텅 빈 정적의 속으로 걸어 들어가 겨울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며 준비를 끝낸 후 거리로 나섰다. 모진 바람이 뺨을 스치며 한기를 끌어온다. 음 추리며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여 차에 오른 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강물과 가로등 빛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와 함께 텅 빈 충만을 오늘 순례와 걸음 여행의 화두로 세웠다. 이 무렵 어느새 차는 도착하였다. 점심을 차에 싣고 출발 지로 이동하여 오늘 함께 할 형제들과 만났다. 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휴게소에 들러 두 사람을 태운 후 다시 목적지로 향하였다. 마침내 성스러움 머물고 있다는 뜻을 지닌 성거산 8부 능선 상에 섰다. 볕은 봄빛이었다. 바람도 잦아들었는지 고요했다. 이곳 성지는 천주를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동진 해 나가던 거점이었다. 내포인 충남과 충북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차령산맥 등 줄기 산이 바로 성거산이다.
여사울 이존창, 루또비코를 우린 내포의 사도라 부른다. 사도답게 일생을 전교를 위하여 살다 박 해의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순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의 영향으로 내 포 지방 곳곳은 신앙의 증거 지가 되어 갔다. 신리, 합덕, 청양, 솔뫼, 공주, 홍주, 등등으로 전파된 천주교는 내 포에서 조선 최초의 세 소년 신학생을 배출한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가 바로 그 소년들이다. 마카오 유학 중 최 방제 소년은 풍토병으로 생을 마감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지만 대건, 양업은 만주 소팔가자를 거쳐 사제의 꿈을 이룬다. 어렵게 귀국한 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은이 골에서 사목을 하다 서해에서 체포되어 순교자가 되고 양업 토마스 신부는 충북, 충남, 영,호남을 넘나들며 걸어서 사목을 다니다. 과로와 병으로 길에서 선종 한다. 박해 시기 신자들은 바다로 나가 자신을 감출 수 없어 동쪽 산을 선택하여 동쪽 산으로 피신하여 교우촌을 형성하고 교우들과 함께 하느님을 공경하며 살아나갔다. 다른 박해가 생겨 교우촌이 들통나면 다시 거처를 옮겨 나갔다. 성거산 - 배티 마을 - 진천 - 연풍 - 한실 - 상주 - 퇴강 마을 - 영주 - 대구 등의 깊은 산골로 숨어 들었다.그곳에서 그들은 숯을 굽고 옹기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면서 박해에 대한 정보나 신앙인들의 소식을 동냥하고 생계를 꾸려 나갔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서서 언덕 허리를 꺾어 돌아 제1줄 무덤을 참배하기 위하여 찾았다. 깊고 깊은 정적이 무덤을 휘감고 있었다. 여름 내내 푸르던 풀들은 본 색을 잃은 채 퇴락하고 그 위에 갈잎 낙엽들이 흩어져 있었다. 몇 년 전 설치해 준 새들의 집, 겨우 한 개만 남아 있었다. 나무에 붙잡아 멘 끈이 삭아 떨어져 나간 것이다. 손을 뻗어 하나 남은 새집을 내려 살펴보니 여러 가지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보였다. 설치하였으며 이후에도 관리를 소홀함이 없이 하여 진정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는 반발심이었을까? 나뭇가지 사이 푸른 하늘 등 어느 곳에서도 새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 독백을 속으로 하였다. 그럼 그렇고말고. 금 새 돌아올 것이다. 소나무 널을 자르고 붙인 후 동그란 구멍을 내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하단에는 모이를 놓을 수 있는 받침대도 만들어 주마. 그리고 이번에는 비닐로 코딩한 철삿줄을 이용하여 나무가 상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묶어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마~~ 풀(草)의 기운을 잃은 초분(草墳) 앞으로 모두 모여 섰다. 시선을 모으고 고상과 성모 님에게 기도 드렸다.

기도와 큰절과 각자 묵상으로 참례를 끝내고 다음 행 선으로 이동하였다.
성지 안부는 뜻밖에 따듯하였다. 계단을 넘어 성모님 광장으로 가는 길 초입에 들어섰다. 포장된 언덕 길이 숨을 모으게 한다. 몰아쉬며 단박에 올라서기 위함이었다.


잊고 있다. 어제 늦은 밤, 급하게 작성하고 인쇄하여 갖고 와 나누어 준, 12월 순례와 걸음 여행 월 보를 꺼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총무님 주관으로 다 함께 봉송 하였다.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성모님 하며 속삭이듯 시작하였다.
성모님
마음 깊은 곳에 당신을 향한 사랑을 모으고 가만가만 생각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거룩하고 경이로운 위대한 겸손의 말씀이 순명이 되시어
주님 강생을 도우셨고 인류 구원의 문을 엷으셨습니다.
두렵고 놀라운 일로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는 중에도
온몸으로 끌어안아 받아드린 어머님의 놀라운 순명을
어머님에게 향한 사랑 마음 하나로 순명을 배웁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거룩하고 지혜로우신 겸손 된 순명과 함께
어느 해인가! 성모의 달 5월에 씌워 드린 아름다운 화관이 떠올리며 제2줄 무덤을 참례하기 위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곳 역시 깊은 침묵이 가라앉아 있었다. 성 거산 성지에서 신분이 밝혀진 순교자는 단 다섯 분이시다. 나머지 분들은 신분을 밝힐만한 자료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화초는 사람들이 욕심으로 키우지만 들에 핀 야생화는 하느님께서 직접 관리하시며 키워 주시는 것처럼 은하수, 구름, 바람, 나무, 별, 아침 이슬 등등이 하느님의 영(靈)이 되어 친구가 되어 준다. 갈잎 낙엽들이 흩어진 꽃잎처럼 초 분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기도 소리가 그사이를 맴돌다 다시 메아리가 되어 성지 창공을 떠돌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은하수의 빛줄기가 되어 다시 초분 위로 소담 하게 내릴 것이다.

아주 한동안 우리들의 기도가 이어졌다. 누군가 입에서 어느 봄날 찾아와 잡초를 제거하던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억이 새로웠다. 같은 방식으로 큰절로서 참례를 끝냈다. 새롭게 순교자의 길로 나갔다. 언덕을 넘어서자 오 솔 길이 이어졌다.
좁고 험한 산길, 그들은 거침없이 내달려 이곳 안부 깊은 곳에 교우 촌을 만든 것이다. 당시 모습을 상상하며 작은 자의 마음 하나로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다시 월보를 꺼내 들었다.

좁은 산모퉁이 길에 서서 모두 다 함께 기도를 드렸다.
순교자의 길
은하수가 쏟아지고 풀 향기가 넘치는 외진 산과 들 길을 걸어 주님에게 다가가는 길
등을 돌려 뒤를 바라보면 부 질 없이 바람에도 떨고 있는 세속의 희미한 등 잔불 서럽다.
모든 인연과 미련을 내려놓고 허영과 교만의 빛마저 영원히 불살라 버렸다.
은하수와 야생화, 풀 향기, 온갖 풀 벌레 교우 삼아, 깊은 산 중으로 주님을 찾아가는 길
육신은 고달프고 힘들어도 마음은 평화가 가득, 은총을 위하여 한 걸음 더 나간다.


이어진 기도처 중간 공사 소음으로 분 심이 생겼다.
올해 9월부터 성거산 옛 교우 촌 터전에 새 성전이 신축 중이다.

공사가 잘 완공되어 하느님께 봉헌 될 수 있도록 소원하는 기도를 공사 현장을 마주 보고 드렸다.


기도 후 다시 기도처를 찾아 기도를 이어 나갔다. 어느새 11시 미사 참례 시간이 다가왔다.

새롭게 설치된 순교와 관련된 조형물을 통해 신앙 선조들의 순교 역사를 조명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겼다.





성지 순례를 끝낸 후 차를 이용하여 성지 아래 경당으로 내려와 입당을 끝낸 후 주례 사제께서 입당하시기를 기다렸다.
미사를 봉헌 후 엽돈재를 넘어 내가 소유하고 있는 산막으로 왔다

일행 일부는 읍내 하나로 마트로 고기와 채소 등을 사기 위하여 떠났다. 남은 일행은 천천히 산막으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걸어 올랐다.

쇼핑 같던 형제들도 전부 모여 함께 파티를 하며 점심 나눔을 갖고 1년 동안 순례하고 걸었던 장소에서 찍었던 사진을 중심으로 달력을 만들어 개개인에게 나누어 아름다운 추억 거리를 남겼다. 서로 나누어 보며 그날을 하나하나 회상하며 즐겁게 지낸 후 올해 인생의 획을 긋는 자매님이 계셔서 축하연을 가졌다. 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포도주를 따르고 촛불을 켜고 끈 후 케이크를 자르고 그동안 성지순례와 걸음 여행 화첩을 만들어 증정해 드렸다. 너무 좋아하신다

이렇게 함께 2016년 한 해를 산막에서 정리하였다. 그리고 차에 올라 기도를 드리며 귀경하였다.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매듭되었다. 함께하신 모든 형제에게 감사드립니다. 2017년은 올해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드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