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월입니다. 이맘때쯤이면 벌써 한해의 끝이 보이는가 싶기도 하고 한해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새삼 돌아보게도 됩니다. 그래도 한가지 감사한 것은 늘 낮기온은 삼백예순날 같은 것 같아도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짐을 느끼게 되는 시월입니다. 시월달은 그레이스 홈 아이들에게도 저희 가족 모두 행복하고도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먼저는 그동안 파야오 학교의 기숙사에 가있던 7명의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그리워 하던 그레이스 홈에 돌아와 오랜만에 동생들과 함께 한달간의 긴 시간을 같이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하영이와 기준이도 열흘간의 짧은 방학을 맞았지만 고아원과 집을 오가며 보냈고 방학을 맞아 바쁘고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던 저는 휴식을 겸하여 방콕에서 열린 교육선교 컨퍼런스와 베트남에서 열린 인차협회의에 참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가 없는 10여일 동안 서양숙 선교사와 한국에서 온 두명, 2주간 미국에서 온 죠슈 형제와 아이들은 더불어 함께 긴 씨름을 하여야 했습니다. 행복하고도 즐거웠던 그레이스 홈의 10월 소식을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 파야오 학교에서 학기말 방학을 맞아 그레이스 홈에 아이들이 내려왔습니다.
지난 5월 그레이스 홈을 떠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다시 그레이스 홈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숙사에 있던 형들이 방학을 맞아 몇 달만에 돌아온다는 귀향 소식에 그레이스 홈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설레며 보고 싶어하던 형이며 오빠며 동생들을 기다렸습니다. 거의 5개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터라 그동안 얼마나 컸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서로 궁금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는데 보지 못했던 몇 달 동안 아이들은 몰라보게 자랐습니다. 키도 불쑥 컸고, 마음도 컸으며 신앙도 신실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그레이스 홈에서 수동적인 생활만하다가 학교에서는 학교 전체 임원으로, 예배시 찬양인도자로, 어린 아이들을 위한 반사로 수고하였던 아이들이 영육간에 강건하여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의 소원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파야오 학교의 기숙사로 보냈는데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앞에 서서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찬양을 인도할 수 있는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이들이 견고한 신앙의 터 위에서 잘 자라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 단기 사역자들의 사랑의 수고로 그레이스 홈 아이들이 하루하루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매번 방학이 되면 그레이스 홈은 시간표를 작성하여 아이들과 함께 보내게 됩니다. 올해에는 좋은 단기사역자들을 보내주셔서 방학 동안이 그리 어렵지 않게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시간표를 작성하여 성경읽기와 성경공부, 영어, 체육 특별활동 등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단기사역자로 온 고준석 형제와, 최희정 자매는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하며 자신들의 성장을 위한 독서와 성경공부외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특별활동과 체육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미국에서 단기사역을 위해 온 죠슈라는 형제도 방학기간 동안 그레이스 홈에 같이 머물며 영어를 가르치고 같이 운동을 하였습니다. 젊고 밝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 죠슈는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형제였습니다. 또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선교사 자녀 기숙사에 머물던 한국 학생도 방학기간 동안 같이 참여하여 팀을 이루어 아이들을 섬겨주어 방학동안 그레이스 홈은 많은 섬기는 손길로 북적였습니다. 그 결과 그레이스 홈의 징치앙과 낍등 큰 아이들은 영어를 통역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자원봉사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를 위해 사랑의 수고를 하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 많은 단기사역자들이 발굴되며 영적으로 지적으로 더 성숙을 경험해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저는 방콕에서의 교육선교 세미나와 베트남에서의 인도차이나 회의에 다녀왔습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지내다 어느 덧 저녁 무렵이 되면 발바닥이 아파옵니다. 피곤함을 느끼며 좀 쉬었으면 하였는데 세미나와 선교사 협의회의 참여는 저에게는 커다란 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저대신 모든 사역을 감당하여야 하는 서양숙 선교사와 단기사역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이 아니면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쉴 겸하여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방콕에서의 컨퍼런스는 세계 각국에서 온 학교 사역을 하는 동역자들을 만나 교제하는 유익이 있었지만 토론도 반론도 없는 일방적인(?) 강의는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재정후원을 위해 강사를 한분이라도 더 세우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이루어지는 세마나는 다시한번 좌절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베트남의 호치민에서도 똑같이 반복된 회의 패턴은 다음번 회의 참여에 대한 재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에 간 첫날 조금의 시간 여유가 있어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호치민 거리의 시장이며 백화점과 시내 전체를 걸으며 손수레를 타며 돌아본 기쁨을 제외하고는 방콕과 호치민에서의 회의 참여는 저에게는 휴식함께 회의에 대한 좌절감을 동시에 가져다준 시간들이었습니다.
4) 방학 동안의 행복한 일상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방학이 되자마자 같이 계획을 짜면서 언제 소풍을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소풍을 가고 수영도 하고 매일 오후에는 축구를 하고... 단기사역자들에게 부탁을 하여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짬짬이 시간을 내어 특별수업으로 기타, 피아노, 그리고 하모니카를 배우도록 하였습니다. 날마다 영어를 회화 위주로 배우고 아이들과 한데 어울리니 하루하루가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외출은 아이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와로롯 시장에서 낚시며 그물이며 투망을 준비하여 한국 선교사님의 센타에 있는 인공호수에 낚시하러 갔습니다. (태국에서의 인공호수는 집을 짓기 위해 지반을 높이기 위해 흙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해간 식사와 낚시와 투망으로 잡아서 구운 고기들을 반찬삼아 식사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시장에서 사온 떡밥을 고기들은 물지 않자 낚시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서 선교사는 지렁이를 잡아서 낚시밥으로 사용하면 잘 물것이라며 지렁이를 잡아왔습니다. 그후 이곳저곳에서 나도 잡았다며 고함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낚시에 달려오던 고기들도 뜸해지자 싫증이 난 아이들은 물속에 몸을 담그며 놀며 또 배를 타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준비해간 밥과 낚시와 그물로 잡은 고기를 화덕에 구워 반찬으로 먹으려 할 즈음에 50센티 정도의 커다란 고기가 그물에 걸려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달려갔고 고기는 숯불위에 냄새를 피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난 쉴틈도 없이 한낮의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낚시와 수영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더니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자 아쉬움을 남겨두고 서둘러 돌아와야 했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가 본 고기잡이는 아이들에게는 언제가도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두번째 야유회는 저는 없고 서선교사가 송태우(택시)를 두 대 불러 아이들을 태우고 갔다고 합니다. 지난 여름에 아이들과 산속 깊은 곳에 물도 깨끗하고 조용하여 갔는데 이번에는 가서보니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물이 너무 많아 수영을 할 수가 없어 부득불 다른 폭포가 있는 곳으로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미리 준비하여 간 찹쌀밥과 과자 등 아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나가고 싶어 하여 이날도 해가질 때가 되어서야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5) 한달간의 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10월 말이 되자 그레이스 홈에 있던 치앙마이의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먼저 개학을 하였습니다. 파야오 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한주간 더 쉬며 휴식을 취하였고 어느덧 이곳의 생활에도 싫증이 났는지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주일 예배를 마치고 앙들의 짐을 꾸려 파야오로 향했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 아이 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필요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음은 감사한 일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또 자주 올 수 없고 기도할 수 밖에 없으니...
학교에 도착하니 키가 멀쑥하게 큰 녀석(아이들이 이제 모두 다 160을 넘어섰습니다)들이 먼저 내려와 있는 동료들과 반갑게 맞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후일에 우리도 그리 만나리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학교 기숙사에 맡기고 운전하며 먼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이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커가는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또 하나의 이별의 연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나그네임을 잊지말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살자’고 했던 헤르만 헷세의 싯구가 들어와 박혔습니다. 며칠 후 손님이 와서 학교에 다시한번 가게되어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무리속에 하나가 되어있던 아이들은 달려와 하나둘씩 손을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