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답사하기
1.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높다. 그럼에도 관심에 비하여 전반적인 이해도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졸업 논문의 주제로 ‘한국 무속에 담겨진 생명사상’을 잡아 자료를 찾기도 했다. 어쩌면 전통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욕구는 문득문득 찾아오는 내면의 갈망같이 등장하는 듯하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며, 내가 가야하는 길에 대한 작은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 때문인지 모른다.
2. 현재 ‘남아있는 날들’의 정체성은 ‘아마추어 연구자’이다. 관심있는 주제에 대하여 자료를 찾고, 필요하다면 현장을 방문하여 깊은 이해에 도달하고 싶다. 그런 행위가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존중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싶다. 핵심적인 연구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지만, 부차적인 연구 주제에는 ‘한국 문화’ 특히 1980년대 문화연구가 포함되어 있다. 한동안 문화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았으며 필요하다면 영상이나 공연장소를 방문하는 문화적 답사를 지속하였다. 그렇지만 생각만큼 이해가 깊어지지도 관심의 증가도 동반하지 않았다. 강렬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문화적 이해는 유홍준이 말한대로 ‘아는만큼 보인다’일 것이다. 지식의 증가는 관심의 폭을 넓히고 그런 과정이 축적되어 문화적 안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 변화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전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 <심청가>를 들으면서 그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3. <심청가>는 5시간이 넘는 긴 시간의 공연이다. 작년 무대 때에도 관심을 가지고 본 공연이었다. 공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전에 집에서 음반을 통해 듣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공연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정보는 늘고 공연의 외면적 흐름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음에도 감동의 정도는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이번 공연은 작년보다 더 큰 공간에 열린 점도 조금은 집중도를 분산시켰지만, 그런 외부적 요인과 관계없이 굥연의 재미가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관람객들 중에는 전문 공연자들도 많이 참가해서인지 곳곳에서 다양한 추임새가 공연의 흥미를 배가시켰지만, 그러한 추임새 또한 마냥 좋게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그것은 지나친 기대에 따른 결과인지 모른다. 이제 어느 정도 판소리에 익숙하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깊은 맛을 찾아야 한다는 약간의 오만과 열정이 오히려 판소리 자체의 맛을 잃어버리게 했던 것이다.
4. ‘순수 예술’(?)에 대한 집중이 어려워질 때, 공허를 달래는 것은 오히려 상투적인 유행가와 팝송이다. 일시적인 만족과 내려놓음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저 익숙한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휴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안함이 도피적 행위에 가깝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힘든 과제에 도전하다 어려움을 확인하고 후퇴하여 취하는 퇴행적 휴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휴식은 일정기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허무로 다가온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도전의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회피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5. 문제의 극복은 ‘도전과제’에 대한 열린 태도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지 모른다. 오랫동안 나의 정신적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나에게 필요하고 가치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순간적인 답답함은 다만 관심의 정도와 그것에 도달하는 기술적 능력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나타나는 불만족 때문에 나타난 현상에 가까울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사랑하되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라는 오랜 사랑의 원칙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소유’의 욕망은 그것을 통해 과시하고 인정받으려는 욕심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날 때,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얻을 수 있다. 때론 지루하지만 결국 깊은 매력을 확인하는 오래 사귄 사람처럼 욕심을 내려놓고 다만 꾸준하게 만나고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런 시간의 축적 속에서 어느 날 진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6. 다음 주에는 안동에서 열리는 ‘세계 탈춤 페스티벌’을 1주일 정도 관람할 예정이다. 이때에도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그저 탈춤이 펼치는 무대를 편안하고 담담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때론 단조롭고 때론 시대에 뒤진 모습을 발견할지라도 그 자체가 가졌던 시대적 의미와 인간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른 성취의 부담도 없고, 연구를 통한 생계적 불안감도 없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내면적 갈망에 담긴 것들을 확인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생각만큼 감동을 주지 않아도 우리의 남아있는 전통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욕심을 버렸을 때 새로운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7-8월 거창 연극제 방문 때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고, 약간의 지방 연극에 대한 폄하적 감정을 지녔었는데, 그것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순간을 경험했을 때, 약간의 희열을 느낀 것처럼, 예상치 못하는 새로움에 마음을 개방하고 춤과 노래 그리고 동작이 종합적으로 만들어내는 ‘탈춤’의 세계로 들어가 즐겨야겠다. ‘문화’와 ‘예술’은 성취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 속에서 경험하고 몰입하는 것이다.
7. ‘한국 문화’에 대한 탐색은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이번 완창 판소리 무대에 조금 실망했지만 10월, 11월 연이어 다른 판소리 무대에 참가할 것이다.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지나친 평가와 비판의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무대에 누가 있든 그들은 전문가적 아름다움을 선사할 있는 능력이 있고, 그들을 통해 현재 한국문화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 탈춤, 연극 모든 공연은 직접 참가했을 때 얻게 되는 매력이 크다. 가능하다면 이러한 ‘한국문화답사’라는 주제의 여행도 좋은 주제가 될 것이다. ‘돌을 찾는 여정’이라는 중요한 답사 주제와 함께, 중요한 답사 주제로 자리잡을 수 있다. 거창에서 연극을, 전주에서 소리를, 안동에서 탈춤을, 진도·밀양·정선에서 아리랑을, 만나러 가야겠다.
첫댓글 - "판소리, 탈춤, 연극 모든 공연은 직접 참가했을 때 얻게 되는 매력이 크다." =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