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
종교에서 지도자의 역할과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들은 신의 대리자로서 인간과 신과의 연결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은 종교 지도자의 위계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로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가톨릭의 중요한 교리와 정책의 최종 결정자라는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의 성향과 언행은 수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신앙적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 사회적 파괴력을 지니기도 하였다.
최근 가톨릭에 대한 인식은 교황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졌다. 요한 바오르 2세의 선종 이후 교황이 된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는 전통을 중시하고 엄격한 교리 해석을 통해서 교회의 보수적인 특성을 강화한 인물이었다. 시대의 개방적인 변화와는 반대인 이러한 경향은 수많은 신자들의 불만을 자아냈으며 교회 내부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스캔들이 터져나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가톨릭의 진보적 변화에 대해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은 교회의 퇴행적 복귀를 우려의 눈으로 보기까지 하였다.
교회 부패 스캔들이 진행되던 와중에 교황의 갑작스러운 사퇴 발표가 터져 나온다. 살아있는 교황의 은퇴는 과거 700년 전에 한번 있을 정도로 전례가 거의 없는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혼돈 속에서도 교황의 콘클라베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교황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교황 ‘프란치스코’으로 선출되었다. 개혁 성향으로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사회적 불평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전쟁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두 교황>은 실제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가치는 서로 다른 종교적 견해를 가진 종교 지도자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대립하는 가운데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에 다다르고 상대에 대한 믿음을 존중하는 모습이 때론 격렬하게 때론 유쾌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화 <두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추기경 호르헤가 은퇴를 결재받기 위해 로마의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교황의 개인 별장과 로마 시스티나 성당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종교의 의미를 주장하면서도 내면 속에 깊이 담겨있던 고통과 회의 그리고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견고한 벽을 무너뜨린다. 교황의 ‘은퇴하겠다’는 내밀한 고백과 추기경 호르헤가 다음 교황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만류하며 자신의 자격없음을 고백하는 호르헤의 이야기는 아르헨티나를 휩쓸었던 1970-80년대의 군부 독재의 비극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였다.
영화 <두 교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해 가졌던 많은 부정적인 인상을 완화시켜 주고 있었다. 영화 속 격식과 전통을 중시했던 인물이 점차 교회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었고 추기경 호르헤와의 만남을 통해서 일상의 즐거움과 소박한 삶의 소중함을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내면적 변화가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숙한 자각에 이르게 하였으며 누구도 하기 어려운 교황 사퇴라는 충격적인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하였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의 진정한 변화는 자신이 고집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오랜 연구를 통해 확신을 가졌던 종교적 교리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바뀌는 것들을 수용하고 개혁하는 것이 때론 ‘타협’으로 비칠 수 있고 정통에서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변화의 핵심과 목표가 인간들을 위한 것이고 삶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전통에서의 이탈이 아니며 예수가 가르쳤던 근원적인 ‘사랑’이라는 가르침에 더 가까운 것이다. 세상을 설득하지 못하는 전통과 올바름에 대한 인식은 결국은 권위와 권력에 대한 집착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베네딕토 16세의 사퇴는 자신의 신념을 완전하게 버리지는 못하지만 자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소중한 인간의 변화이자 자각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성 시스티나 성당>의 화려함을 천천히 온전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유명 장소가 배경으로 사용된 경우는 많다. 하지만 이 영화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중심 무대로 사용된 경우는 드물다. 교황 선출 장면과 두 교황의 대화 장면 속에서 <성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한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그림은 이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기독교 세계를 표현한 <최후의 심판>과 <천지 창조>는 바틴칸의 웅장함과 함께 종교 예술의 극치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영화 <두 교황>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바틴칸의 내부를 공개했을 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보여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종교적인 번민과 고뇌하는 모습을 매우 인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절대적 위치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 또한 보통의 인간들같이 희노애락에 의해 영향받은 존재들이며 무기력과 혼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약점을 딛고 일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바로 그들의 위대함이라는 사실 또한 전달해 주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완고하지만 신념있는 모습, 교황의 직위까지 버릴 수 있는 용기에서 그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인상을 지울 수 있는 계기를 가졌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겪었던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 독재 시절의 경험이 인간의 삶을 좀더 총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보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하였다. 두 교황을 연기한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두 사람이 나눈 매력적인 대화는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 궁금점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초부터 사회의 불평등을 고발하고 새로운 개혁적 정책을 강조했으며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하여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전파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없다. 그의 종교적 정책이 한계에 처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여전히 공고한 교회의 보수 세력과 현실에 대한 제한적인 영향력과 함께 노쇠하고 있는 그의 육체적 변화가 그의 부재를 설명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아무튼 왜 교황은 최근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가?
첫댓글 - 인간의 진정한 변화는 자신이 고집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변화의 핵심과 목표가 인간들을 위한 것이고 삶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 - 교황은 지금도 전세계를 돌며 사목 활동 중.........소외되고 가난한 사람 & 인류 평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