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효자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효행백행지본(孝行百行之本)이라는 가르침이 만고의 진리로 배웠지만 효도를 못하고 살아왔으니 제대로 된 인생살이는 아닌 셈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무슨 병인지 몰라도 2년 이상 읍내의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이전에는 또 어떻게 부모님의 속을 썩여드렸는지 몰라도 약골로 자라면서 병치레를 수없이 하였다. 특히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조강지처를 잃고 실의에 잠겨서 살던 아버지께는 내가 살아서 사람노릇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근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게 해드렸으니 더욱 불효를 하며 살았다.
약을 매일 먹으면서도 어머니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밥맛이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얼굴엔 버짐이 피고..... 늘 핏기 없는 얼굴색을 하며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의기소침하게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덩치도 작고 자신감도 없으니 누구하고 시비를 따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그저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수많은 농사일에 바쁘신 아버지는 병치레하는 둘째 아들의 사정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셨다. 그저 여러 명의 자식 중에 하나이니 제 팔자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대대로 내려오는 문전옥답이 많아서 중농에 속했던 고향집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은 일하는 나날들이었다. 학교에서 방과 후 돌아오면 무조건 일을 해야 하는 농촌생활은 우리 나이 또래의 시골 출신들에게는 거의 비슷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내게 끊임없이 일을 가르치려고 했다. 작두로 여물을 쓸거나 새끼를 꼬는 법, 가마니 짜는 법, 톱질하는 법, 쟁기를 가는 법, 벼 베기, 낫질하는 법 등 아버지로부터 배운 일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노동을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다 성장한 후에 성서에서 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겨울이면 거대한 나무를 자르는 일도 있었는데 어린 나는 아버지와 호흡을 맞추어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흥부톱질을 해야 했다. 한 사람이 당기면 반대쪽 사람은 자연스럽게 밀어주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어야 거대한 나무가 절단되는 것인데,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톱날이 휘어지거나 끼어서 엄청나게 힘이 들게 된다. 잘못하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일!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적이 없다. 무슨 직업을 갖고 살아야 된다고 한 마디로 하신 적이 없었다. 자신의 삶이 바쁘셨기에 얼마 전에 찾아가서 내가 몇 시에 태어났냐고 여쭈어 보아도 기억을 못하실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사셨으니 둘째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 관심조차 가질 여력이 없으셨을 것이다. 다만 끊임없이 일을 시키셨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일이 싫어서 인천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자취를 하면서도 주말이면 일하러 집으로 가야했고 방학 때는 한 달 내내 일하면서 지냈다. 그래서인지 둘째아들 특유의 반항심과 함께 일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나는 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시골집에 가서 농사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마치 내 책임인냥 모내기철 또는 벼베기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고향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는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출가(出家)해서 거의 15년 이상 아버지를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다시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을 거의 연상케 한다. 허름한 옷을 입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 아마도 아버지는 내게 이런 삶을 가르치셨나 보다. 병치레하며 죽을지도 모르는 나에게 아버지는 유일하게 일하는 것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머리로 공부해서 살아가는 법이 아니라 몸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 바로 아버지의 지혜였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고향에 간 적이 있다. 올해 여든 한 살이신 아버지는 지금도 정정하셔서 힘도 나보다 더 잘 쓰신다. 2년 전에 형님이 내 몫으로 주목나무를 구입해서 가식해 놓았는데 가져가지 않는다고 식목일 아침에 전화를 하셨다. 자신의 삶을 판박이처럼 살아가는 둘째 아들이 이제는 대견하신가 보다. 그날 형님은 제주도 출타 중이셔서 나와 아버지는 주목나무를 캐서 내 트럭에 옮겨 심게 되었다. 아버지는 잔뿌리가 상하지 않게 캐는 방법을 연구해 놓으셨고 과연 그 방법대로 하니 쉽고도 온전하게 나무를 캐낼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지금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으며 일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지혜였던 것이다. 이런 지혜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 배워야 하는데.....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삶이지만 저녁이면 항상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는 지금도 늘 한문 공부를 하신다. 명심보감을 옮겨 쓰시는 글들이 방 안 가득한 것을 보면서 나도 덕유산 자락으로 돌아와 오늘도 각종 경전들을 읽게 되는 것이다. 비록 아버지를 모시고 살지 못하는 불효자이지만 아버지의 정신과 지혜만은 내 삶에서 온전히 실천하고 살아가고 싶다.
첫댓글 차니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사시기에는 넘 아까우신 분이시지 세상에 밝고 농사꾼으로는 안어울리게 유식하신분 월곳리를 떠나 도심에서 터전을 잡으셨다면 큰 몫을 하셨을꺼야 대단하시고 존경스러우신 아버님이셔
지금 친구의 생활은 비록 예전의 부모님삶과 는 다르겠지만 아버님의
정신과 지혜만큼은
친구의 삶자체가 아닐까 생각해보네...
삶의 연륜이 더해가면 갈수록 부모님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며....살아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