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보이네
지난 10일 모처럼 화창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외식 길에 나섰다. 집을 나서며 대전천 천 변 도로를 이용해 시내로 들어갔다. 천 변 도로를 달리며 길옆에 축축 늘어진 식물들을 봐야만 했다.
그것은 지난 설과 입춘을 전후해 밀어닥친 71년만의 강추위가 남긴 동해였다. 지난 해 늦가을 새해 새봄을 바라보며 심어 그 동안 잘 자라온 유채가 그만 얼어붙은 것이다. 날씨가 풀리자 얼었던 유채 잎들이 녹으며 축축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아서는 과연 올 봄에 대전 천 변에 펼쳐지는 노랗게 물드는 아름다운 유채꽃밭 물결을 볼 수 있을까? 도 싶지만...
외식을 한 후 오랜만에 보문산 백곡저수지 쪽으로 가벼운 드라이브를 했다. 시루봉을 올려다보며 넘보살 약수터를 향해 걸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약수를 뜨는 사람 산보를 나온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 저기 긴 나무의자 위에는 햇살을 받으며 앉아 산간에 서리는 봄기운을 즐기는 모습도 많았다. 출산을 위해 친정을 찾았을 만삭의 따님과 함께 나온 친정 부모들은 따님의 한발 한발에 온통 신경을 쓰며 동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친정 아버지는 빈 유모차를 끌고 어머니는 유모차에서 내린 꼬마 외손자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지키느라 바쁘다. 임신부 옷을 한 따님은 힘든 몸 오른 손으로 가끔 허리를 받치며 길옆에 서서 몸을 가누어 이른 봄 첫 걸음처럼 다시 걷는다.
대전 유천동과 문화동에 살 때 10 여 년을 두고 새벽 산행 길에 떠다 먹던 약수 그리워 한 컵을 떠 마셔보니 미지근하다. 봄은 약수에 따스한 봄 입김을 불어넣었나 보다. 나무마다 물이 올라 엷은 연두색 머금은 가지가지는 바람에 부드러운 봄 몸짓이 한창이다.
자주 나가 걷는 근린공원에는 들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고양이 행보 따라 오락가락했다. 암코양이 한 마리 두고 수놈 두 마리가 사랑의 쟁탈전을 하는 모양이다. 이와 같은 고양이 울음소리에도 봄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공원을 찾아 운동하는 사람들의 옷 색깔도 변해 분홍색 노란색 베이지 색 흰색 등 모두 봄 색깔로 아름답다. 뿐이랴. 그들의 말소리는 왜 그리 유쾌하고 청량한지. 그들의 말소리는 입에서 나오자마자 하늘로 피어올라 갔다. 상가에는 봄 새 상품선전물 경쟁이 알록달록 활짝.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여학생들의 머리카락이 바람 타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빛난다.
먼 산에 쌓였던 눈은 아래에서 위로 녹아들어 산 윗자락 쪽에만 잔 설이 지난겨울 얼굴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햇살은 봄이 오는 길목마다 하얗게 햇살 포장을 다 해 놓고 오는 봄 아지랑이 필 흙 길을 열어놓고 있다.
봄이 오는 계절 보문산에서 우연히 만났던 생전의 장인 어른이 혼자 긴 나무의자에 쓸쓸히 중절모를 쓰고 앉아 계시던 모습이 떠오르며 철없던 자신이 다시 부끄러워지는 봄.
(2004. 2. 18.)
첫댓글 며칠전 따사한 어느 골찌기에서 피어 있는 버들 강아지를 보면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적이 있었다네.
천규의 봄을 맞이하는 감성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어. 이 글은 읽으니 봄의 향기가 가슴 속에서 스며 나오는 느낌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