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가 되면 정말 전도가 너무 쉬워져요!”
1.
제자훈련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어떤 모습일까? 한 영혼을 품에 안고 몸부림을 치며 눈물을 흘려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아픈 부스러기 하나하나 진흙 속에서 감싸고 맴도는 물결을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 좀 더 다가서기 위하여 스스로 시간과 고립된 영혼들에게 진솔한 귀를 기울이며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세밀히 돌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제자훈련의 비밀스러운 열매들이 기쁨을 담고서 이곳저곳에서 포말처럼 풍성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훈련 시작’에서 항상 리더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목회환경에 대한 불확신이다. 진통처럼 꿈틀거리는 목회현장에서는 숨소리조차 만들기 어렵다는 것. “토양이 너무 박하다, 묘목을 심어도 금방 말라 죽는다, 말라 죽지 않으면 밟혀 죽는다”고 말하며,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은 좋은 토양이 갖춰져야지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를 속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교회가 없을까? 있다! ‘세계로교회’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손현보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다. 척박하기로 따진다면, 이 교회는 옥한흠 목사의 예화에 등장하는 바로 그 달동네보다 더 달동네다. 아�, 아예 식물이 자랄 수 없었던 ‘갯벌’이다.
고기를 뱉어낸 배가 잠들고 해송도 붉어지고 모래사장도 붉어져 바다 끝으로 떨어지는 붉은 덩어리 하나만 남아 있을 법한 소금 땅, 그 갯벌에서 제자훈련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2,000여 명의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든든히 서는 ‘또 하나의 홍해를 가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로교회는 지금 교계는 물론 일반 신문에까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장년 20여 명이 모이던 어촌마을 교회가 불신자 전도를 통해 2,000명 이상의 성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한산한 땅에서 푸근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2010년 6월호와 다음 7,8월호 ‘디사이플’ 현장 이야기에서는 ‘세계로교회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적을 향한 항로는 언제나 거칠다
세계로교회가 위치한 곳은 김해평야 바다 끝자락. 부산 강서구와 경남 진해의 경계에 위치해 시내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교통오지다.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가 개발이 풀린 지는 6년밖에 되지 않은 곳. 지금까지도 주거지는 잘 보이지 않고 중소 규모의 작은 공장들만 조금 들어와 있는 모습이 전부다.
원래 이곳은 일반 육지가 아니다. 출렁이던 바다를 국가가 매립하여 만든 쓰레기 매립지역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바다 짠물에 식수조차 조달하기 어려웠다. 인적이 드물어서 낮에도 사람을 잘 찾아볼 수 없었다. 기껏 한두 명 보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소일하며 하루를 보내는 노인들뿐이었다.
담임인 손현보 목사(당시 전도사)가 부임한 것은 17년 전의 일이다. 당시 세계로교회는 몇 가정 되지 않는 성도들이 모여 목회자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40년’이라는 역사를 무색하게 하는 오랜 정체기였다. 그런 교회에 어느 날 손 목사가 설교 부탁을 받고 나섰는데, 그것이 이 교회를 맡게 되는 발걸음의 시작이 되었다.
손 목사가 처음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성도 수는 적어도 세계로교회는 남녀전도회와 성가대 등 기본적인 교회조직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사역과는 무관했다는 것. 기껏 개 한 마리 일년 내내 잘 키워서 여름철 복날에 잡아먹는 것이 남전도회의 사업이었고, 교회 이름으로 젓갈을 팔아서 담임목회자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여전도회의 유일한 사역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관심과 기쁨은 외상으로 가져간 젓갈 값을 차질 없이 제때 받아내는 것이었고, 키우던 개가 병들지 않고 토실토실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
시골 교회들은 가끔 그런 일로 마음을 나누며 지낼 수도 있다지만, 꿈을 안고 부임했던 젊은 목사에게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 그런 분위기에 동조할 수 없었던 그는 당장 개혁을 단행했다. 남녀전도회 기관을 아예 모두 없애버렸다. 그들의 헌신예배도 모두 그만두게 했다. ‘헌신’의 목적보다 ‘헌금’에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아직 성숙되지 않았던 성도들은 세상 재미를 빼앗겨 반감이 생겼다. 대표적인 사람은 당시 이 교회의 행정적인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었던 장로였다. 그 장로의 눈에는 이제 막 부임해온 어린 손 목사(당시 33세)의 ‘당돌한 칼부림’이 거슬렸고 그는 그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불만을 드러낸 사건 중 하나가 일명, ‘마라의 쓴 물 사건’이다. 10년 전, 이 동네에 수돗물이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염전을 막아 생활수를 만드는 동네였던지라 그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 장로가 이 동네에 수돗물 꼭지를 틀어쥐고 있었다는 것.
그는 교회에서 손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줄곧 손 목사 가정에 물을 주지 않았다. ‘마라의 쓴 물’을 맛보라는 것이다. 당시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었던지라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를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손 목사는 그때마다 이 ‘유치한’ 저항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하늘만 쳐다보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그 장로는 서서히 공개석상에서 손 목사를 끌어내리려 했다. 그것도 거룩한 주일날, 강대상에서 말이다. 손 목사가 설교를 끝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마치 순서라도 맡은 사람처럼 강단에 올라가 20분, 30분, 어떤 때에는 1시간 동안 그는 손 목사의 잘못들을 험담했다. 교회 차도 손 목사는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 장로가 헌금을 해서 구입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교회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은 교회 마당이 아니라 그 장로의 집 마당.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허락을 받고 운행을 하라는 것이다.
교회 성장을 위해 성도들에게 전도목표를 제시했을 때였다. 만일, 손 목사가 제시한 목표 수만큼 전도가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날 것을 그 장로는 요구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전도하기는커녕, 허락 없이 교회 차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노발대발하기가 여러 번. 결국, 전도결과가 목표 수에 미치지 못하자 그 장로는 ‘이 때가 기회다’싶어 손 목사로 하여금 그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고, 교회를 떠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시끄러워서 기도도 못하겠다!
그런 핍박 속에서 손 목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직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뿐이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죽어가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새벽이고 밤이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명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새벽기도회를 나오던 몇몇 성도들조차 그런 그의 간절함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들의 하소연은 이랬다.
“아이고 시끄러워라! 기도를 하려고 해도 시끄러워서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꼭 그렇게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면서 기도해야 합니까? 계속 그렇게 기도하시면 아무도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손 목사가 시끄럽게 기도하긴 했었나 보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편도에 깊은 상처가 나서 결국 수술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큰 목소리도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하나님께 부르짖는 그의 애절함을 담기에는 부족했다.
성도들조차 잘 모르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손 목사의 얼굴화상 이야기다. 비난만 했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교회를 홀로 지키고 가꾸려다 생긴 일이다. 손 목사는 당시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교회주변 땅을 정리하려고 갖가지 쓰레기를 주워다가 태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만, 손 목사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상처가 다 완치되었다. 하지만 그 일로 손 목사는 햇빛에 피부를 노출시키는 것이 지금도 어려워, 장거리 심방은 비 오는 날에만 다닌다.
고난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그러나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관문이라 했던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고 있는 손 목사의 얼굴에는 원망과 슬픔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한바탕 울고 난 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처럼 평온하고 소박한 미소만이 잔잔히 남아있다.
‘5분 간증’으로 남겨지는 목회 흔적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둔다. 핍박하던 장로도 변했다. 교회 헌물을 자신의 것으로 관리하고 싶어 하던 마음이 변해 이제는 회사까지 팔아 하나님께 드렸음에도 더 드리고 싶어서 안달이다. 기도소리가 시끄럽다던 성도들이 오히려 지금 더 크게 기도한다. 개 잡아 먹던 남전도회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다. 젓갈 팔던 여전도회가 이제는 복음을 판다. 갯벌 땅이 옥토가 된 셈이다.
성도들뿐만 아니다. 교회도 부흥했다. 문지방이 닳도록 사람들이 드나든다. 전도할 사람을 찾아 승합차를 타고 비포장길 20km를 힘겹게 나가야 했던 교회가 이제는 150km 떨어진 포항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로 바뀌었다. 20여 명에 불과했던 성도가 주일출석 2,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더 놀라운 것은 그 2,000여 명 성도들 중 80% 이상이 모두 이 교회에 오기 전까지 ‘예수’의 ‘예’자도 모르던 완전 생짜배기 불신자였다는 사실이다.
해가 갈수록 세례자들도 늘어났다. 2004년 198명, 2005년 257명, 2006년 321명, 2007년 418명, 2008년 589명, 그리고 작년에는 600명의 새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단순한 세례식을 거행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자신의 인격과 삶에서 변화를 맛보며, 소명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성도의 수가 그렇게 늘어난 것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했을까? 바로 ‘제자도’다. 손 목사는 자신과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우리 교회는 전도를 잘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제자훈련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고 있는 교회다.”
그는 성도로 하여금 전 생활 영역에서 예수를 고백하고 증거하는 증인이 되도록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제자훈련. 그 결과가 이렇게 성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제자도를 향한 세계로교회의 흔적들은 모두 성도들의 변화된 삶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 생생한 간증들이 ‘5분 간증’이라는 코너에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18년간 의지하던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염종순 성도).
“4년 전만 해도 음주가무를 즐기며 노래방에서 술 취해 세상노래만 부르던 저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엄용섭 집사).
“아내에게 신의를 잃어 이혼의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신앙을 통하여 가정이 회복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서창우 집사).
“가슴 속 깊이 증오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며 변화된 제 모습은 아내에게 감동을 주어 아내 또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이현수 집사).
포기만 안 해도 가능성은 1%나 된다
29평 조그마한 어촌마을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이 기적 같은 일을 손 목사는 이렇게 평가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될 일도 순식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0%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된다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 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최소한 1%는 되거든요. 그것을 붙잡고 믿음으로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됩니다.”
손 목사의 말은 사실이다. 그가 지금까지 붙잡아 왔던 기적들은 모두가 그 1% 가능성에서 출발했다.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손현보 목사가 부임한 지 3개월이 되던 날이다. 마을 전체를 복음화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성도들에게 “100명의 예배자를 달라고 기도하자”고 선포했다.
어린 아이들까지 다 합쳐서 300명밖에 되지 않는 마을에서 100명을 달라고 외쳤던 것이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설령 100명이 진짜 온다 해도 앉을 자리조차 준비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손 목사는 그런 환경이나 조건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능한 만큼만 목표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제가 5%의 꿈은 이루기 어려워도 30%의 꿈은 이루기 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낮으면 소극적인 마음이 들지만, 최대한의 가능치를 제시하면 거기서 혁신적인 방법들이 나오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배가전도를 부르짖는 교회치고 진짜 배가가 된 적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맞추어 간구하지만, 하나님은 구하는 기도에 따라 역량을 주신다. 그 ‘과도한’ 목표치를 위해 성도들은 하나 둘씩 움직였고, 그로 인해 100명의 목표는 꿈같이 달성되었다. 그리고 4개월 만에 120명의 성도로 불어났다. 예배 공간이 부족해 2부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부족해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교회까지 세우게 되었다.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 그러나 기적을 향한 손 목사의 선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광야라도 복음을 전하라
“이번에는 300명입니다!”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건 정말 무리한 선포였을까? 마을 전체 인구조차 넘어서는 전도목표다. 손 목사의 말에 이제 더 이상 교인들은 동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기저기서 허풍쟁이라고 비웃기까지 한다. 듣고 있으면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가 15km 밖에 있고, 가장 가까운 도시 김해와 장유조차 20km 이상 떨어져 있다. 마을에서 도심지로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도심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손 목사는 보이는 사람의 숫자에 꿈의 경계선을 제한하지 않았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한계란 없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어디에서 복음을 전했나요? 광야입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에요. 하지만 그 곳에서 복음을 전했더니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등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와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어요. 이런 성경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요. 그래서 저는 환경이나 사람들의 말에 기가 죽어서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손현보 목사의 이런 확실한 믿음에 시골 인심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 둘씩 마음을 함께 해 주었다. 성냥불이 장작불을 만들 듯, 한 사람 두 사람 성도들의 헌신된 삶이 서서히 번져나갔다. 택시비를 대서라도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아침 일찍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나가서도 데리고 왔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전도했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어떤 할머니는 파밭에서 3일 동안 일을 도와주면서까지 전도했다. 간호사 출신인 손 목사 사모는 아픈 사람에게 링거주사를 놓아주면서 전도했다. 돼지를 두 마리 잡아서 이웃동네 잔치를 벌여 주고 사람들을 데리고 오려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교회에 오기로 하고는 몇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화가 나서 술을 먹고 찾아가 따지기도 했다. 이 웃지 못할 전도의 열심을 보신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꿈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허풍과 같았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살기 힘들어 떠나가야 했던 땅에 거룩한 예배자들이 매주일 찾아온다. 그것도 예수를 전혀 모르던 불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모여드는 것이다. 20명에서 100명, 100명에서 300명, 300명에서 967명, 967명에서 지금은 2,000명! 모두 불가능을 건너온 바닷길 발걸음들이다. 꿈을 나누었더니 목표가 되었고, 목표를 나누었더니 계획이 되었고, 그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했더니 결국 꿈은 이루어졌다. 손현보 목사는 이렇게 정리를 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은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엉뚱한 데 빠져서 도무지 복음을 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역사하심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가 가장 기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바로 복음 전파입니다! 그 복음 전파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부흥케 하실 것이고, 날마다 기적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초대 교회와 같은 건강한 교회를 꿈꾸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하면 감히 생각조차 하기 힘들어진다. 트리니티신학교 길버트 빌지키언 교수가 10년 동안 사도행전 2장 40-47절을 강의할 때마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묵상시켜도, “제가 그런 교회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찾아온 사람은 단 한 명 빌 하이벨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꿈은 항상 이루어진다. 아무리 실현 불가능해 보여도 도전만 하면 꿈은 잊지 않고 그 열매를 가져다준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붙잡고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그 꿈을 실현시키신다.
예수가 선택한 어부들의 기질
단순히 성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이 기적일까? 아니다. 세계로교회의 기적은 수에 있지 않고 그들의 능력에 있다. 어떻게 설명할까, 교회에 처음 나온 자가 예수를 믿게 될 뿐 아니라 바로 연이어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어부로 바뀌는 일들을.
열두 제자 중 일곱 명을 어촌 마을에서 모으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왜 이 어촌 마을 사람들이 의미심장한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유인하는 법도 알고, 언제 힘을 써야 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도 안다. 그들의 혈관 속에는 고기에 대한 열정이 흐른다.
설령 언어가 난폭한 바다를 닮아 거칠게 들릴지라도 악천후를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부드럽고 낙관적이다. 부단히 낚싯대를 던지는 끈기도 있다. 그들은 ‘나’와 ‘내 것’에만 관심을 갖고 가꾸는 소심한 연못지기가 아니라 만나는 대로 잃어버린 물고기를 잡아올려대는 ‘마구잡이 어부들’이다.
세계로교회를 알게 된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묻는다. “왜 이렇게 세계로교회는 부흥하는 것이지요? 이런 교회는 처음 봅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어부들의 속성을 지닌 그들이 단순하면서도 거침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이지도 않는 고기를 늘 상상하며 바다로 나간다. 그들은 머리로 사는 법을 배우지 않고, 몸으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익혀나간다. 기후와 상관없이 낙관적으로 복음을 던진다. 그들은 열정적이다. 게다가 끈질기다. 절대 복음의 낚시질을 중단하지 않는다.
손현보 목사 자신만 봐도 그렇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3년 동안 60번 이상을 찾아갔던 사람이 있다. 물도 맞았다. 소금도 뒤집어썼다. 뺨 맞은 것도 여러 번이다. 어떤 사람은 도끼까지 들고 손 목사를 찾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잡힌 고기를 들어올릴 줄 아는 능숙한 어부다. 또한, 잡은 고기도 건강하게 키워낼 줄 안다. 그 난동을 부리던 ‘물고기들’을 이제는 예수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도리어 전도를 하게끔 했으니 말이다. 손 목사의 어부 기질을 들어보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전도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전도의 밑거름이 되니까요. 뺨을 맞으면 그것이 전도의 밑거름이 되고, 소금 뿌림을 당해도 그것이 그 사람을 예수께 인도하는 중요한 과정이 되거든요. 전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일들이 생생하게 또 다른 불신자들에게 전달되어지니까,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무슨 일을 당해도 그 사람과 나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들 모두는 창조적 어부가 되었다
성도들에게도 이런 어부 근성이 있다. 거친 바다를 만났을 때 습관적으로 그들은 낙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번은 교회 건물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당시 교단적으로 주일학교의 큰 행사를 이 교회에서 맡아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전날 중고등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준비를 하고 돌아갈 즈음, 원인 모를 불이 나 버렸다. 이제 곧 입당하게 되는 170평 신축교회 건물이 모조리 불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세계로교회 성도들은 창조적 어부들이었다. 마치 자기가 실수를 저지른 양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에 나와 잿더미를 다 치웠다. 건물이 사라진 허허 벌판이 오히려 편안한 바다 같았을까. 모든 성도들이 그 벌판에서 더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뱃노래를 불렀다. 그랬더니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은혜로운 집회는 처음이다”라고 말하며 많은 감명과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교회를 향한 거친 파도는 교회 증축을 위해 한참 힘을 모으고 있었던 2003년에도 있었다. 그 해 여름, 매미 태풍이 그대로 교회를 강타하는 바람에 겨우 다 지었다 싶었던 성전, 2억 원에 해당하던 건물이 모조리 다 날아가 버렸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고기가 상어에게 다 뜯긴 꼴이다. 얼마나 허망했을까! 그러나 그때에도 성도들은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한번 지어봤으니까 다시 지으면 전보다도 더 잘 지을 수 있을 거에요”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일체의 불평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부들의 월척은 항상 이런 인고의 기다림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 같다. 건물이 날아간 그 다음 해 37년 동안 묶여 있던 그린벨트가 극적으로 풀리고, 세계로교회는 그로 인해 600평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의 불신은 ‘제자도’로 녹인다
지금 한국 교회와 각 언론들은 세계로교회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현보 목사가 쓴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교회들이 “어떻게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서 20여 명밖에 되지 않던 시골 교회가, 그것도 순수 새신자들만 전도하여 이렇게 2,000명이 넘는 양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을까?”라고 묻고 있다.
매일같이 인근 교회들은 세계로교회를 탐방하여 그 ‘전도비결’을 배우려고 한다. 그러나 손현보 목사가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전도비결이나 새가족 관리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비결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손 목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 목사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증인으로서의 삶, 제자도’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변화되는 교회 체질을 만들자는 것이다. 손 목사의 말이다.
“외부에서는 우리 교회를 분석하여 ‘세계로교회는 가정교회다 혹은 셀교회다’ 등 갖가지의 평가를 하시지만, 저는 그런 세미나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저의 교회론에 유일하게 영향을 주신 분은 옥한흠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으로부터 제자훈련이 무엇인지를 배웠지요. 목회는 한 가지인 것 같아요. 제자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지역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힘든 지역이었잖아요. ‘이 지역이 왜 예수를 믿지 않을까’를 저는 깊이생각해봤어요. 그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반감이었고, 목사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었지요. 저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그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세상으로부터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제자도의 실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교회가 바로 서 있어야 하고, 교회가 바로 서려면 담임목사부터 철저히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는 분’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굳이 강압적으로 권위를 가지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목사를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손 목사는 교회 내에서부터 철저히 제자도를 실천해 나갔다. 빛의 열매는 밝음이다. 그 행실 그대로 지금 세계로교회 모든 성도들은 손 목사를 따르고 존경하고 있다. 성도들은 이렇게 줄줄이 손 목사를 평가한다.
“섬김의 본을 직접 보여주는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의 생각, 말씀, 행동, 마음 등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모델이 됩니다.”
“모든 성도들의 이름은 물론 그 자녀들의 이름까지 이름을 기억해 주는 목사님입니다.”
“누군가가 제가 존경하는 분이 있냐고 물어보시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한 분은 나의 어머니이며, 또 다른 한 분은 손현보 목사님이라고 말입니다.”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
제자도는 어떤 말이나 학문적인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게 되면 그 자체에 예수의 능력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손 목사의 말이다.
“사실 사람들을 전도해 와서 교회 다니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요. 그들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신앙생활은 하나의 종교생활에 불과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변화된 삶을 살라고 주문해요.
부모님을 전도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전에 먼저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실천하도록 일러줘요. 부모와 관계가 아무리 안 좋아도 자신이 먼저 변화된 모습을 삶 속에서 보여주라고 말하지요. 그러면 그렇게 변화된 자식의 모습을 보고는 대부분 부모나 가족들이 교회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전도되는 모습이 조금씩 소문이 나니까, 전도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답니다.”
변화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이것이 결국은 세계로교회를 부흥시킨 원동력이라는 말이다.
“성도들이 하는 일은 그저 빌립처럼 ‘한 번만 와 보라’고 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신자들이 일단 우리 교회 한 번만 와서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도 이제부터 교회 다니겠다고 하거든요. 그러니 전도가 얼마나 쉬워요.
제가 낸 책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라는 제목도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공모해서 정한 것이에요. 성도들이 스스로 제일 많이 공감하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저는 전도의 비결을 알기 위해 탐방 오는 교회들에게 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제자훈련을 하라고 조언해 드리지요. 제자훈련을 통해서 삶이 달라지면, 그 달라진 삶으로 불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전도되는 것이니까요.”
‘저런 사람도 변하는데 나는 못 변하겠나’
실제로 세계로교회는 제자도를 통한 변화된 모습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성도들 간의 간증으로 이어진다. 주일날 예배 시간에도 담임목사가 설교를 하기 전에 ‘생짜배기’ 초신자들이 이제 막 예수를 믿고 변화된 삶을 간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세계로교회는 누구든지 간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공식적인 모임을 가져도 그 속에서 간증을 찾아볼 수 있다. 간증을 들으면서 서로 울기도 한다.
그들이 처한 환경이 남말 같지 않다는 생각에 다들 마음을 함께 한다. 그리고는 ‘저런 사람도 변화되는데 나는 못 변하겠나’ 하며 도전 받는다. 그 점이 영적인 시너지로 작용한다. 모두가 자기 주변에 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을 앞다투어 전도해 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교회 전체에 깔려 있으니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과 인식도 다르다.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정말 ‘성도’로 봐주는 것이다. 예수를 본받는 삶으로 서로 격려하고, 서로의 변화된 삶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들 사이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그 속에서는 불신자라도 전혀 어색하거나 거부 반응이 없다. 자신도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신앙 경륜에 상관없이 서로 같은 입장에서 격려해주고 기뻐해줄 뿐이다.
변화를 위한 그들의 소망이 그대로 주일예배마다 살아 있는 간증으로 들려진다. 꾸밈없이 그들의 삶을 그대로 강대상에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니 예배를 드려도 재미가 있다. 세상 재미가 아니라 영적 즐거움이다. 이런 즐거움이 지난 5년 동안 세계로교회를 폭발적으로 급성장하게 만들었다. 손 목사의 말이다.
“옥 목사님은 어떻게 해서 이 ‘간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게 되셨을까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제자훈련 교재 1권 1과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 한 과만 잘 해도 사람의 의식구조가 180도 바뀌게 되거든요. 그 과만 제대로 해도 훈련생들의 훈련 결과를 다 알 수 있어요.”
손 목사가 제자훈련을 하면서 옥한흠 목사의 교재, 첫 1과 ‘간증’ 부분을 한 주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5주로 늘여서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자도를 통한 삶의 변화와 간증이 교회체질을 바꾸고 교회를 건강하게 가꾸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이유가 있다
매주일 세계로교회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간증으로 한바탕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던 예배 시간도 진풍경이지만, 예배가 끝나면 온 성도들이 말 그대로 소풍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장면이 펼쳐진다. 구역별로 교회 식당이나 교회 마당 넓은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기본 식단 외에 이리저리 가방 속에서 꺼내놓는 것은 각자 준비한 반찬과 음식들, 도심지에서 얼른얼른 구운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푸욱 삶은 고구마, 계란, 옥수수, 감자 등 시골 인심으로 넉넉히 익은 소박한 마음들이다.
식사를 하면서 그들은 무슨 이야기들을 나눌까? 으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대부분 간증과 전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김 집사님, 지난 주에 오기로 되어 있던 이동천 씨, 오늘 왔습니꺼?” “오늘 못 왔어예. 오늘 꼭 오기로 했는데, 제 기도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더.” “아이고 동천 씨가 빨리 교회 나와야 사람이 변할 건데. 다음 주에는 꼭 올 겁니더. 저도 기도하고 있으니까 집사님 힘 내이소.”
모든 관심이 전도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다 보니 세계로교회는 불신자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채 몰래 새벽기도를 나오는 여성도가 있다면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게 한다. 남편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가정을 먼저 지켜주는 모습에 감동하여 남편도 자연히 마음 문을 열고 교회에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교회를 왜 싫어합니까? 제 경험으로는 남자들은 원래 교회를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일어나는 아침 시간에 여자들이 자리에 없고, 교회에 나가 있으면 무척 불쾌해 합니다. 그러면 교회에 대해 마음 문이 완전히 닫혀버리지요.”
세계로교회를 살펴보면, 외짝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지극히 드물다. 주일에도 여자들보다 마당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남자들의 수가 훨씬 많아 보인다.
삶의 이유가 같으니 마음도 통한다. 마음이 통하니 교회 분위기가 다르다. 장로와 담임목사가 물총으로 장난을 치는 교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세계로교회에 오면 그런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물이 없으면 콜라라도 머리에 부으며 장난을 치려 한다. 그만큼 격의 없이 지낸다.
“오늘 저녁 외부 집회에 가야 한다”는 말에 겨우 장난을 멈추는 분위기를 상상해 보라. 함께 바다에도 자주 놀러 간다. 목사가 먼저 하든 장로가 먼저 하든 서로 바다 빠뜨리기 장난을 걸며 마음을 나누는 분위기, 이것이 교회다!
사람의 마음을 움켜잡는 사람들
한 주에도 수십 명씩 새신자들이 몰려오더라도 그들의 정착율을 높이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보통의 교회라면 매주 이렇게 많은 새신자들이 몰려들 때, 이들의 ‘관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로교회는 그렇게 걱정되는 것 같지 않다.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손 목사의 말이다.
“저희 교회 성도들은 늘어나는 성도 수와 상관없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삶,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어요. 성도들이 많아도 많다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을 서로 돌보는 것이지요. 어떤 분은 자기가 돌보는 사람을 교회 오도록 해 드리기 위해 여기서 창원까지 약 40km 되는 길을 매주일 운전해 가시기도 합니다. 만일, 구역원들 중 어떤 분이 동태찌개 식당을 개업 하잖아요. 그러면 구역 식구들이 모두 그 집의 연락처와 메뉴를 차에 다 달고 다닙니다. 한 식구가 되어 주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에 불신자들은 쉽게 마음 문을 연다. 남편이 혼자 믿다가 그렇게 친밀하게 가족처럼 대해주는 구역 식구들 모습을 보고 아내가 교회에 다니게 되고, 아내가 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교인들이 헌신적으로 그 가정을 돌보고 있는 모습을 남편이 보고는 결국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나오게 하기 위한 ‘일회성 관심’이 아니다. 매주일, 불신자들은 예배시간을 통해 전체적으로 환영을 받지만, 예배가 끝마치면 일일이 개별적으로 손 목사와 면담시간을 가진다. 사람들이 많아도 기다림이 행복하다. 마치 의사가 환자들을 돌보듯 자신들의 형편이나 사정들을 일일이 기록해 가면서 진심으로 들어주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손 목사의 집에 그들은 모두 초청된다. 그 자리를 통해 보다 자세하게 구역과 교구, 또 전도팀들이 그들과의 만남시간들을 정한다. 모두가 이 일에 자발적이다. 사역의 조직이나 직분들도 모두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세워진다. 열 다섯 명의 장로들도 모두 새가족들을 돌보기에 바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다.
자신들을 왕처럼 귀하게 대접해주는 교회, 자신들의 이름은 물론 그 아이들까지 기억해 주는 사람들. 그러다 보니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도 다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지극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인터뷰 내내 대화의 흐름을 끊는 일이 있었다. 난데없이 아이들이 삼삼오오 찾아오기 때문이다. 주일날 새가족 면담실에는 항상 손 목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이들은 수시로 들락날락 하면서 사탕을 달라고 손 목사를 찾아오는 것이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품듯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손 목사를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정겨운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어떤 현실도 꿈의 영역을 제한할 수 없다. 제한하게 하는 것은 오직 부정적인 생각뿐이다. 그들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오기만 하면 변화되는 교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세계에서 벌금이 가장 비싼 제자훈련’도 서로 받으려고 하는 교회, ‘섬김’의 리더십으로 새신자들을 정착시키는 교회, ‘초신자라도 전도가 너무 쉬운’ 교회, 그렇기에 ‘10만 성도의 꿈’을 안고 오늘도 입을 크게 열고 기도하고 있는 이 ‘당돌한’ 어촌교회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