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영화제목이 우리 눈을 잡아 끈다. 무슨 뜻일까? 이 영화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고 있나? Fahrenheit 911은 화씨 911을 말한다. 물론 단순한 온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911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9.11사태 이후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그 속에서 이글거리는 자유와 진실을 향한 몸짓과 표현들을 영화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이클 무어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9.11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가 이런 엄청난 비극적 사건을 어떻게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연계시키며 이용하고 있는지를 영상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보통 낡은 야구모자와 플레임이 큰 선글래스를 끼고 있는 평범한 차림으로 나타나지만, 미국의 인디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심지어는 조국인 미국의 정치적 편견이나 국수주의적 전쟁을 고발하는 대단히 논쟁적인 다큐멘터리 명성이 높다. 사회악을 고발하는 비타협적인 정신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서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을 표현하고자 한다.
무어는 89년 [로저와 나]는 미국 굴지의 자동차 대기업 GM이 미시간의 주민들을 해고하자, 감독 마이클 무어가 직접 GM의 회장 로저 스미스를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부조리와 구조조정의 문제를 신랄하게 파헤치게 된다. 이 작품으로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이름을 영화계에 알리게 되었고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그에게 큰 명성도 안겨 주었다. 바로 이 영화의 의도가 마이클 무어 감독 작품의 주요 주제이며 기본 구조이다.
94년 인기 TV 시리즈 "TV 네이션" 의 연출을 맡았고, 그 와중에도 95년 [캐나다 베이컨]을 통해 전쟁을 원하는 미국의 우익 정치가들과 군산복합체를 통렬하게 풍자하였다. 이 블랙코미디는 냉전이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냉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미국의 보수우익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97년에는 다큐멘터리 [빅 원]을 통해 미국 문화와 기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세계화'(글로벌리즘)을 비판했다. 무어감독은 신랄한 그의 작품적 경향 중에도 풍자와 유머를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이면서도 전혀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다.
Fahrenheit 911은 그를 정점에 이르게 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드물게 칸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었고 미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노력과 예술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부시대통령은 보란 듯이 재선되어 무어의 정치적 판도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비록 그의 영화가 정치적 입장의 최종 승리를 가져오진 않았지만 선거 뒤 정치 세력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꾸준히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미국의 특정 정치권 세력을 옹호, 또는 반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각국의 정치는 각 당의 특수한 정책과 사상을 배경으로 상호 견제, 보완하며 발전하는 것이며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드러나고 조명받는 부분만이 아니라 숨겨진 면도 엿볼 수 있는 여유와 시각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우리가 접하고 있고 익숙해져 있는 세상의 상황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 정권의 의사와 정책을 대변하는 언론의 사각지역을 조명해 주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는 미국 부시 정부의 은밀한 사우디 아라비아와 왕족간의 담합과 이 과정에서 생기는 이라크의 희생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영상 속에서 표현해내고 있다.
911 비극이 일어난 배경과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을 좀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비록 이 영화가 사실적으로 가감없이 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감독의 의도가 전혀 배제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정보들을 이 영화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