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십여년전에 만든 산악회 회원들 십여명과 함께 볼음도를 다녀왔다.
어일우님의 도움으로 마을 회관도 사용할 수 있었고 식당 예약도 가능했고'
조개잡이 체험도 할 수 있어 고마왔다.
어군은 좋은 대학(중앙대학 연극영화과) 나왔으나 도시생활의 소비적 쾌락을 거부하고
평범한 시골 농부로 살고 싶어 같은 대학을 나온 아내와 볼음도에 살고 있는
요즘 보기드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청년이다(볼음도에서 제일 젊다).
나는 이렇게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에 세뇌되지 않고
소박하게 자기 삶을 살려는 청년을 보면 눈물이 날려고 한다.
일년동안 쌀농사 사천평, 고구마 농사 수백평 지어
오백만원 수입도 올리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그가 어떻게 사는지 짐작이 갔다.
아이 기를 자신도 없어 아이도 갖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니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지 생각이 많았다.
나는 그가 어찌하든 잘 버티기를 바라고 애정과 기대가 크다.
볼음도는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타고 한시간 반 정도 가는 거리에 있는
주민 2백 여명이 농사와 어업을 주로 하며 사는 작은 섬이다.
마침 강화에 왔다 돌아가는 오형단님 만나 우리는 금방이라도 고장이 나 멈출 것 같은
그의 고물 트럭을 타고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어릴적 소달구지 타고 등교하던 생각이나 흥분한 마음에 트럭 뒷자리에 타고가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갔다. 심한 대머리라 늘 모자를 애지중지하고 쓰고 다니는데 갑자기
보름달 같은 나의 대머리를 보고 여인들이 깜작 놀라며 박장대소한다.
아내는 작년에도 하나 잃어버렸는데 또 그러냐고 차가 한참 지났는데도 내려서 줏어 오란다.
속으로는 모자는 많고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텐데 하며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의 목소리가 날카로와 반항할 수 없었다.
아내 친구들은 아내의 말투를 흉내내며 나를 놀린다.
나는 하도 실수를 잘하니 의도하지 않은 광대다.
도착하자 마자 두 패로 나누어 한쪽은 어일우씨 안내로 망둥이 낙시와 조개캐기를 하고
한쪽은 오형단님 안내로 소라를 주었다.
마침 심도학사에서 만나 잘 아는 작가 김문흠씨가 볼음도에 와서
나는 장선생과 김작가와 함께 소라팀을 따라갔다.
갯벌을 2키로쯤 걸어 들어가 소라를 줍는데 형단 아우를 따라간 장선생은 백여개를 주웠는데
나와 김작가는 겨우 세개 주었다. 나는 도대체 할 줄 아는게 뭔지.
그러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바람도 서늘하고 여인도 아름다워 나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형은 김작가가 밟고 지나간 발자국을 밟으며 '어 내 발이 간지럽네'하며 웃긴다.
그리고 갑자기 바다 속으로 들어 가더니 뭔가 큰 것을 잡은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김작가에게 바다로 들어와 만져 보라며 자기 발가락을 만지게 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바닷가에서 노는 철부지 어린아이다. 나는 형단 아우가 좋다.
저렇게 낭만적이고 멋진 아우를 여인들은 왜 혼자 살게 내버려두는지.
작년에도 오셨던 장선생이 함께 온 이선생에게 낙시 한번 던지면
한꺼번에 망둥이가 두마리씩 잡힌다며 잔뜩 희망을 부풀게 했는데
십여명이 가서 겨우 망둥이 네마리 잡아왔다. 낙싯대도 여러개 사오고
형단 아우 집에서도 가져왔는데.
오형 말에 따르면 바람부는 날에는 어부 먹을 생선도 안잡힌단다.
그래도 조개잡이 전문가(?) 일우씨의 도움으로 상합조개는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잡아왔다.
도시에서만 살다 섬에 와서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이 좋은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호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인생을 예찬하고 싶다.
'삶은 기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나들길 민박 집에서 점심 먹고 오후엔 느긋하게 산책도 하고 8백년된 볼음도 명물 은행나무를
보았다. 박회장님은 올해 폐렴이 악화되 생명의 위기를 겪었는데
자기가 살아난 것이 작년에 볼음도에 와서 신령한 은행나무 앞에서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 들으니우리 모두는 더욱 경건해져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나는 특별히 바랄 것도 없어 은행나무에 대한 시를 지으려는데
작년에 조개캐러 나갔다 안개가 심해 바다에서 죽은 볼음도 할머니 생각만 났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기 시신을 못찾을까봐 자기 몸을 어망 말뚝에 매고 돌아 가셨다한다.
할머니는 이 은행나무 앞에서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을까?
자식들 위해 기도하느라 바다에 나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 한번 하지 못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바다 한가운데서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자식 생각만 하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은행나무 앞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저녁은 아내가 이것 저것 많이도 준비해 와 포식했다.
박정훈씨는 우리가 왔다고 귀한 농어찜을 해오셨다.
늘 거져 받는 대접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
어쩌면 주는 것 보다 거져 대접을 잘 받는 것이 더 힘들고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미안한 마음을 달랬다.
정훈씨를 알게 되서 기쁘고 감사하다.
저녁 먹고 바닷가에 나와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보았다.
끝없는 바다와 정겨운 섬들, 그 사이로 지는 해를 보며 환호하는 여인들!
사진 여러장 찍고 해 지고도 오랫 동안 어스름 속에 잠겨
아름다움에 취했다.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라 그냥 있을 수 없다며 우리 모두는 해변으로 나가
노래도 부르고 담소도 나누며 두 시간 넘게 4-5키로를 걸었다.
누군가 가슴이 설렌다 했다. 60이 넘어도 마음은 청춘이다.
달밤에 코스모스 핀 시골길을 걷던 첫사랑 생각이 났다.
나는 문득 인생은 달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초생달, 반달, 보름달, 그뭄 달---
낙천적인 나는 반달에서 보름달까지를 오락가락 한다.
나는 우울할 새가 없다.
빈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온다.
언젠가부터 나의 비어있음은 나의 충만이 되었다.
잘난척 하자면 '텅빈 충만'이다.
모든 걸 비우게 될 죽음 앞에서 내 인생은 보름달 같지 않을까?
밤 열시에 나가 열두시에 돌아와서도 들뜬 마음이 가라 앉지 않는지
몇이서 술을 마시며 늦게가지 얘기를 했다.
신장암으로 죽음 앞에까지 가셨던 이선생은 그 경험을 자세히 이야기하시며
사람이 얼마나 약한지를 말씀하셨다.
술을 너무 과하게 드시는게 아닌지 걱정이 됬다.
어쩌다 종교 얘기가 나왔는데 목동 자기 집 앞에 제자교회가 있는데 재산이 수백억 되는 큰 교회가 분란이 생겨 돈 문제로 목사가 구속되고 목사파와 장로파가 갈려 서로 고소를 해 출입금지된 교인들이 있고 주차장에서 천막교회를 하는 이들도 있어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단다.
그래서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도 하고 소송도 했으나 별 소용이 없어 대형 확성기를 사서 주일이면 교회를 향해 크게 뽕작을 틀기도 하고 주민들이 교회 주위를 차로 돌면서 경적을 울리는 시위를 했으나 차 받데리만 나갔다 했다. 이게 무슨 교회이며 기독교인가?
늦게 자고도 새벽에 일어나 몇분이 새벽 해변을 걷고 오셨다.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는지
자다가 소리를 질렀단다. 이런 일은 오랫만이다.
말과 의식 보다 무의식이 자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무의식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한참 했다.
아침 먹고 볼음도 중학교에 가서 탁구를 쳤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나란히 있는데 초등학교는 학생이 한명도 없어 휴교 중이다.
오형 다닐 때만 해도 학생이 2백명은 있었다는데.
방학 중인 것 같은데 강의하는 소리가 들려 교실 안을 들여다 보니
학생 둘이 있었다. 우리 친구 박정훈씨의 아들 성준이와 딸 유진이다.
성준이가 중3이라 내년에 고등학교 가면 유진이 하나만 남는다.
유진이도 혼자 학교 다니는게 싫다해서 내년엔 이 중학교도 학생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이 학교 살리자고 이곳 주민들과 강화도 친환경 농민회 김정택 목사님이 애쓰시는데
어떤 결실이 있을지.
텅빈 운동장에 약간 헤진 배구공과 축구공이 널려 있다.
성준이가 혼자서 축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형은 어제와 오늘 우리와 종일 함께 했다.
오신분들에게 뭔가 주려고 소라와 상합조개를 십여분에게 한봉지씩 나누어 주셨다.
나는 어디 가나 신세만 지고 다닌다.
뭐 해주는게 없어 꼭 기생충 같다.
나이 들어 보니 산다는게 결국 남에게 신세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저 만나는 이들마다 고개 숙이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
배 타고 돌아오는데 아내도 나도 피곤햇는지 깨어보니 외포리다.
사람들이 헤어지기 섭섭하다 해서 풍물시장 왕창식당에 가서 칼국수 먹고
내년에 또보자며 아쉽게 헤어졌다.
왕창식당 여주인은 내가 단골이라며 국수도 더 주고 골뱅이 무침을 서비스로 주셔 감사했다.
이웃사촌엔 피곤해서 가지 못하고 한숨 자고 이 일기를 쓴다.
새벽 한시. 나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어제 오늘 만난 귀한 분들이 정겹고 사랑스럽다.
이웃이 꼭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을 필요는 없겠다.
시드니 박남규씨도 회관에서 뵐 수 있어 기뻤다.
그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의 이웃이다.
산악회 회장님 수고 많으셨다.
섬기는 모습이 아름답다. 배운게 많았다.
첫댓글 글 읽으니 볼음도에 따라가고 싶네요....
어찌하든 잘 버티겠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홍선생님 뵈어서 반가웠슴다. 더우기 이웃으로 생각해주셔서 감사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