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가 끝난게 맞나 싶게 비도 많이 오고 엄청 더운 가운데 8월의 중순이 되었다. 남편은 휴가첫날을 1박2일의 낚시로 보내고 또 당구장에서 실컷 놀더니 저녁에 시골로 가잔다. 갈 준비는 해 놓고 있었지만 이쯤에서 화가 안나는 아내들도 있을까? 밤늦게 도착한 시골에서 너무 더운데 선풍기는 오랫동안 사용하지도 않은것이 고장이 나있어서 그냥 잘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기다린 덕에 잠은 금새 들었고 새벽을 알리는 주책바가지 장닭덕에 상쾌한 아침이 아니라 아주 아주 짜증나는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을 대비해 오늘은 간절한 아침 기도를 드리고 부억으로 나가 가지무침, 계란지단, 감자조림, 돼지고기감자찌개를 아침반찬으로 준비했다. 결혼 18년차가 되니 이제야 어머니 눈치안보고 내 맘대로 반찬을 준비할 수가 있다. 남편은 깨밭에 약주러 다녀오고 이래저래 상을 치우고 준비를 해서 어머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물놀이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아는 곳도 없고 소문에 들은 칠보물테마파크옆을 지나갔지만 아들의 거부로 주차장에 잠깐 들르기만 하고 함께 발담그고 놀수 있는 물줄기를 찾아 한시간을 더 달려 결국은 내장산에 이르렀다. 내장산.... 시댁이 정읍이어도 결혼 첫 해에 잠깐 입구만 둘러보고 이후로도 가본 기억이 없다가 드디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을 밟았다.
펼쳐진 아름답고 귀한 산의 모습에 감탄하니 금새 정상.... 다시 걸어서 300미터를 더 가면 팔각정이 있다. 예정에 없던 것이라 식구들이 모두 슬리퍼를 신고 나온 것이 너무 우습다. 아니 어머니 마저 분홍 슬리퍼를 신고 나오셨다. 복장은 모두 불량하다.
산이라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힘든데다가 시간이 정오를 조금 넘겨서 무지하게 더운 시간... 산꼭대기인데도 바람이 없다. 이 길을 어머니는 마지막일테데 다시는 못 와볼테니까 가야지...라는 말씀을 오가며 세번정도 읊으신다. 가슴속이 징~하고 울린다.
누군가는 이 삶을 더 연장하려고 항암의 고통과 싸우고, 누군가는 이 삶이 너무 힘들어 빨리 떠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이 삶이 너무 무거워 저 천국이 간절하고, 누군가는 이 삶이 너무 외로워 저 천국에 있는이만 추억하고 산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삶이 다한것 같아 분분초초 마음에 새긴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것을 이제는 카메라에 꼭 담아야 할 간절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회한과 어머니의 미소까지 한컷 한컷 담아본다.
10년 뒤쯤 지금보다 더 가벼워지고 작아졌을지라도 백발의 어머님을 엎고라도 이 내장산 정상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증손주들까지 함께.... 어머님때문에 기쁘고 감사했던 많은 시간들, 영원히 남으로만 느껴질 며느리이겠지만 어쩌면 당신 자녀들보다 더 어머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고 남은 세상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산을 내려와 절 옆의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 어머님도 물에 발을 담그시고 가져간 수박 반통을 잘라 먹으니 이제야 피서온 느낌이 난다. 올해는 유난히 더워 동해바다 물도 30도가 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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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야훼, 나의 시은소 원문보기 글쓴이: 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