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소백산 산행
오늘은 서울 등산 동호회에서 소백산 산행을 가는 날이다. 어제 눈이 많이 와서 입산 통제중이라고 말을 들으며 갈 수 있을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하니 다행히 해제되었다고 했다. 이 동호회가 결성된 초기에는 자주 참석 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는 시간 내기가 어려워 자주 가지 못해 오랜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무산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었다.
이번에 가는 소백산은 겨울 산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나름대로 다른 산의 체취가 있다. 계절과 기후에 따른 삼라만상의 변화에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담겨 있다.
7시10분 집결지에 나갔다. 20분까지 모이라고 했는데 먼데서 오는 사람이 있어 기다리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차가 움직이자마자 이번 부터는 산행때마다 선물을 추첨해서 나눠주기로 했다면서 오늘은 당첨자에게 스패츠가 주어진다고 했다. 바로 추첨을 해서 가장 나이가 많은 윤원석 건축사님이 당첨되었다. 그 분은 그것을 받으며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고 미리 정해 놓고 주는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며 흐뭇해 하셨다. 이어 재무가 김밥과 귤 등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짧게 자기 소개와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치고 조용해지니 졸음이 와서 잠을 자며 갔다. 잠을 자다 버스가 회전하는 느낌이 들어 밖을 보니 8시 31분 호법 인터체인지를 지나고 있었다. 중부 고속도로에서 영동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들녘에 흰눈이 덮혀 있었다. 9시 3분 문막 휴게소 도착해 쉬고 다시 출발해 10시 17분 풍기 톨게이트 통과했다.
여기서 보이는, 소백산 부근으로 가로 놓인 장대한 산줄기의 인상은 내게 늘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의 국토에는 그 보다 더 높은 지대가 많이 있지만, 그 능성이는 마치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심원하게 느껴졌다. 희멀건 색으로 가로 놓여 보이는 그 장대한 산줄기는 우리가 평소 닿을 곳이 아닌 속세와 먼 특별한 영역으로 느껴졌었다. 그리고 언젠가 마침내 돌아갈 곳 같은 원초적이고 순수한 장소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 산줄기에 속한 미륵사지 등을 갔을 때는 그렇게 높은 곳으로 느끼지 못했었지만 풍기 등 아래 고을에서 보면서는 마치 하늘의 지붕으로 불리는 알프스처럼 큰 고개를 넘는다는 것이 실감이 났었다.
내가 그 산줄기를 특별히 의식하게 된 것은 부석사 등 이 인근의 문화유산을 보러 다닐 때였다. 부석사를 가기 위해 단양에서 풍기쪽으로 넘어와 인터체인지를 돌며 바라보면서는 그곳을 지나온 것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그 산등성이가 하늘 높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성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차를 몰고 그곳을 지나 갈 때는 잘 모른 채 지나가기도 했지만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그 앞으로 다가갈 때는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 곳을 터널로 지나는 것이 퍽 야만스럽게 느껴졌었다.
이 곳은 높은 지대이기도 하거니와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시절에는 더욱더 넘나들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바라보이는 그 곳이 귀의처로 여겨지거나, 속세와 다른 수도자의 발걸음이 간혹 닿았을 곳이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있는 비로사가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그처럼 평소 각별히 생각하던 그 곳을 오늘 걸어서 오른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의미 있게 여겨졌다.
멀리 새로운 공간으로 찾아들어 평소 지내는 도시와 삶터와 다른 내음을 대하니 평소 내 안에서 망각된 정서가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리고 여행은 이런 맛을 느끼기 위함 같이 생각되었다. 오늘 소백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곳으로 국도를 따라 이동했다. 도로 옆으로 흐르는 겨울계곡을 지나는 동안 간간이 사과밭이 보였다. 들과 산에 서 있는 갖가지 나무들이 저마다 눈꽃이 피어 있었고 잣나무 같은 푸른 상록수들은 마치 흰 비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입체적인 조형미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흐려 있었다.
10시 30분 출발지인 풍기읍 삼가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며 산행 준비를 했다. 겨울 산행 채비는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모두 준비를 하고 10시 45분 출발했다. 완만히 오르는 포장 좌측에 2-3년생으로 보이는 사과나무 줄기가 빨개져 겨울의 추위에 익은 색감이 곱고 맑게 보였다. 앞에서 두 사람이 노랑색과 베이지회색 포를 씌운 큰 배낭을 매고 가는 모습이 색다르게 보였다. 평소 한번에 20km가 넘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어서인지 오늘 가는 10.8km의 산행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산이 크고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주 능선을 직각으로 가로 질러 올라가는 길이라 산행은 더 험난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11시 15분 눈길 사진 표지판이 보였다. 단체 사진을 찍고 갔다. 표지판에 소백산이 주변이 모두 나타나 보였다. 도솔봉(1314.2), 연화봉(1383), 비로봉(1,439.3), 국망봉(1031.6), 신선봉(1,389), 마당치(1,031.6), 형제봉(1,177.5) 봉우리들이 지리산 쪽에서부 태백산쪽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소백산의 입지는 독특한 면이 있다. 소백산은 중원에 우뚝 솟아 있는 형국이다. 태백산으로부터 북쪽으로 동해쪽에 면한 산줄기야 장대함이 이를데 없지만, 이 산이 있어 지리산까지 가는 과정에서 다시 큰 줄기가 되어 백두대간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삼국시대 나라와 고을의 경계를 심원하게 했다. 인근의 도솔봉은 정상은 영주 부석사의 안산이다. 산세와 자연 기운을 아우르는 터잡음의 의미가 각별한데, 이렇게 멀리 있는 산세를 아우르려 한 기상이 크게 느껴진다. 우리가 오르면 보통의 정상과 같게 여기지만, 부석사에서 볼 때 만큼은 이 곳은 마치 천상의 세계처럼 인식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예전에 신문에 난 이름모를 등산회를 따라와서 연화봉 정상에 다녀간 일이 있다. 그런데 밤에 출발해서 오른 곳이 어디를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7부 능선에 오를 때 쯤 날이 새어 숲 속으로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정상부에서 설경이 펼쳐진 것을 대하게 되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설경의 진수를 느껴 보았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매우 추웠던 기억이 있다. 고사목 지대와 천문대도 인상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천문대 있는 것이 산의 그윽함을 깨뜨린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산행은 근래 비교적 산을 자주 다닌 감각으로서 다시 대하는 의미가 있다. 전에는 산을 하나의 풍경으로 보았었는데, 전통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며 가는 산마다 인근의 현황을 알게 된 곳이 많은 편이어서 그와 연관된 인문 지리적 시각을 조금 갖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것과 함께 종합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주능선 직각 방향으로 가게 된다. 오르면서 눈 꽃이 핀 풍경이 아름답게 보여 사진을 찍고 스케치도 하며 올라갔다. 앙상한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평소와 다른 조형감을 자아냈다. 아까 보였던 배낭이 앞에 보여 지나치며 보니 그 주인공이 남상길 건축사 부부여서 더 반갑게 느껴졌다.
11시 23분 비로사 앞에 당도했다. 비로라는 말은 법신불의 이름인데,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도 그와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일 것 같다. 입구 비로사 표시를 보며 삼거리 좌측으로 곧게 난 진입길을 따라 올라가니 스님이 눈을 쓸고 있다가 지나는 여자분들에게 아이젠에 바닥에 패일 걱정을 했다. 나도 그 말을 듣겠다 싶어 조심스레 올라가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올라가니 해우소 앞에 공터가 있고 거기서 주 경내가 위로 높게 보였다. 터가 넉넉한 편이었으나 경내보다 이리 저리 돌아가는 길을 위해 더 닦여 있었다. 그 곳으로 올라가 불전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좌측으로 건너 산세가 아늑히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전체 경내가 불전을 중심에 둔 짜임새 등은 보이지 않았다. 당우들은 터가 넓은 쪽에 앞뒤로 있거나 단을 지워 다시 닦은 위쪽에 따로따로 배치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불전은 비로나자불을 모신 적광전인데 그 곳은 중심으로부터 비켜 있고 터도 좁아 보였다. 산에 와서 주봉의 이름대로 된 사찰에 들러 정신을 가다듬고 가는 길이 의미 있게 여겨졌다. 다시 내려와 입구에서 우측으로 비로봉 우르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11시 33분 다시 등산길로 접어들어 오르니 맨 후미에 위치한 조병섭 건축사 가족이 가고 있었다. 큰 딸이 앞에 가는 제 엄마 옆에 서 있는 나무를 건드려 눈 세례를 주었으나 즐거운 듯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들을 지나 앞서 갔다. 눈길 나무 숲, 공기, 가 모두 맑게 느껴졌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늑한 길을 가면서 몸을 돌리며 돌아보는 것이 각자 낭만에 젖어 걷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11시 38분 길 우측 산길에 출입금지 표시를 해 놓은 곳은 특별히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위로는 우측에 낮은 민박 표지가 세워 있고 길이 나 있었다. 그 곳을 따라가 보니 건물이 보였다. 주 등산로로 돌아와 올라가니 너르고 완만한 공간이 보였다. 아까 본 민박 집등 몇 개의 건물이 보여 소백산이 삶터를 품은 느낌이 들었다.
11시 45분 길 좌측 큰 소나무의 붉으스레 한 표면이 건강하게 느껴지게 했다. 흰 눈과 그 색깔이 조화되어 생동감이 느껴졌다. 거기서부터 좁은 산길이 나타났다. 제대로 등산 길에 접어든 느낌이 들었다. 길에 바위돌 널부러져 있었다. 좌측으로 15-30년 정도 되어 보이는 소나무 숲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내가 살아오면서 학생때나 간혹 회사에서 식목 행사 때 심은 나무들이 생각났다. 수령으로 보아 우리가 심은 것도 저쯤 죄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저렇게 자란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무는 항상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것 같이 느껴왔는데 이제, 내가 그보다 나이를 더 먹은 상태로 보고 잇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눈꽃은 활엽수 가지에 더 멋있게 맺혀 있었다. 큰 나무보다 진달래나 철쭉 등 관목의 가는 가지에 핀 것이 더 소담스럽게 보였다. 그것들의 작은 가지마다 눈이 쌓여 돋아나 보이는 것이 마치 사슴 뿔처럼 보였다. 그리고 늦게까지 열매처럼 맺혀 있는 단풍닢이 특유의 빛깔로 늘어져 있는 것이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각별해 사진을 찍었다. 앞쪽에 김의중 회장 등 일행이 머물러 있는 것이 반갑게 보였다. 함께 우측으로 난 길을 오르다 잠시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다시 앞장서 걸어가니 내 앞에서 전화 받는 다른 일행이 친구와 통화하는 듯 “기름이 떨어져 더뎌졌다”고 너스레를 떨며 천천히 오르겠다고 했다. 경사진 구간과 완만한 길이 번갈이 어어지고 있었다. 앞 쪽에서 부부 사진을 찍어주던 분이 정답게 포즈를 취하라는 뜻으로 “주말 부부가 왜그러노” 했다.
다시 오르막 길을 오르니 완만하게 휘돌아 가는 길의 모습이 더 그윽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눈에 띠어 멈춰 스케치를 하는 동안 뒤에 오던 일행이 지나쳐갔다. 정취에 젖고 점차 지루해진 사람들의 걸음이 점차 느려지고 있는 듯 했다. 12시 5분 오르고 다시 내리는 길이 마치 스프링 보드에서 탄력을 받 듯 걸어가니 앞 쪽에 계단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측에 바람에 날려 없어진 듯 눈이 덜 쌓인 나무숲이 보였다.
12시 10분 완만한 오름길을 올랐다. 조금후 길 좌측에 큰 나무가 꺾여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옆에 설명문이 있어 보니 2006년 태풍에 꺽였다고 옆에 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연의 힘을 실감케 했다. 점차 숲 위쪽이 환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정상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간혹 길에 사람들이 늘어서 정체되었다. 12시 38분 조금 급한 경사길을 올라서니 좌측이 훤히 트여 보였다. 그 쪽을 보니 뜻 밖에 나무 사이로 평원처럼 넓게 트인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 보였다. 겨울의 검푸른 먼 산의 표정이 가까운 흰눈의 깨끗한 느낌과 조화되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며 큰 산의 품을 오가는 느낌, 큰 산세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 곳 소백산의 눈은 더 오래 쌓여 있다. 눈 소식이 없을 때에도 어느새 내렸는지 오늘 같은 겨우내 설산이 되어 있다. 그 만큼 봄소식도 늦게 와서 유명한 소백산 철쭉은 5월에야 핀다.
거기서 비로봉 까지 1.9km 남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산행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겨울 등산 장비를 갖추고 눈길을 걷고 있어서인지 실제로 움직임이 둔하게 느껴졌다. 또한 겨울 풍경에 취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오르니 12시 43분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어서 마치 계곡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봉우리 좌측으로 지나가다 눈에 띠는 눈꽃을 스케치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1시 비로봉이 1.2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벌써 많이 올라온 듯 한데 그래도 길은 완만한 흐름이었다. 길 좌측에 단단하여 팽이를 만드는 물푸레나무가 보였다. 다시 평평한 길에 이르니 길 옆에서 두사람이 등을 맞대고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지났다. 추워서 그렇게 등을 붙이고 체온을 나누는 것 같았다. 나도 조금씩 시장끼가 느껴왔다. 하지만 혼자 있고 주일행보다 뒤에 있어서 배낭을 풀고 간식을 먹고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침에 차에서 재무가 나눠줄 때 받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초코렛을 먹으며 걸었다.
앞쪽 단이 진 길을 걸어 놀라려니 그 곳에서 아주머니가 멈춰 내려오던 아가씨들의 손을 친절히 잡아 주었다. 우스게 소리로 나도 잡아 보고 싶은데 했더니 웃으며 지나갔다. 잠시 후 숲 위로 희미하게 산세의 위용이 느껴졌다. 정상 가까이의 마지막 구간을 오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좁은 길에 반대 방향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간간이 있어서 구간구간 늘어서 가게 되었다. 점차 힘이 빠져나가서 정취도 덜 느껴지는 듯 했다. 앞쪽에서 내려오다 쉬며 점심을 드시는 분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불어보니 얼마 안 남았는데 마지막 구간 300m가 힘들다고 했다. 나도 그 옆에 앉아서 보온병에서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자시 쉬어 갔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들었던 계단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앞이 트이며 고산 지대 특유의 민둥산 등성이가 펼쳐 보였다. 산에 오면서 경사가 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완만한 구간이 많았다. 시야가 트여 완만해 보이는 정상부의 마지막 구간이 오히려 더 경사가 급한 편이었다. 그 곳에 이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제되어지는 느낌이다. 완만하게 너르게 조성된 정상 부근에 평온함이 느껴졌다. 1시 45분 계단을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진행중인 백두대간 종주가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 가는 것이 되다 보니 이번에 하나의 산을 향해 가는 의식이 다시금 특별하게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정상에 몰려 있었다. 어느 곳보다 감회가 일어났다. 마치 천상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로봉 정상석에 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보니 일행이 모여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늦어서 식사를 시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함께 자리를 펴고 둘러 앉아 점심 준비를 했다. 각자 도시락과 반찬을 내 놓았다.송승원 사무총장이 따뜻한 김찌 찌게를 내 놓았다. 일행이 따뜻한 음식에 동하여 환호했다. 가장 연장자인 윤 건축사님이 술을 꺼내어 돌려 주셨다. 부산 주조 협회 협회장이 준 것인데 그분만 드시는 것이라고 했다. 인삼이 든 청주 맛인데 깨끗한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원 사무총장이 찌게 거리를 나누어 주어 옆에 있던 함께 먹었다. 많은 일행이 있어 한 곳에 모였지만 각자 주변 사람과 모여 먹게 되었다. 이곳 저곳에서 라면 등을 끓이며 음식을 자랑하듯 구미 돋구는 말을 했지만 멀어서 손이 가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국망봉 쪽도 잘 보였다. 맑아져서 시야가 멀리 보였다. 스케치를 했으나 하던 손이 시려 호호 입김을 불었다. 옆에서 갖고 오겠다고 공지했던 토종꿀을 한 숫갈씩 먹고 있었다. 나도 한 숫갈 먹고 반대쪽으로 가 풍경을 보았다. 그쪽은 시야가 더 멀리 펼쳐 보였다. 스케치를 하고 다시 일행이 있는 곳에 돌아와 보니 늦게 조병섭 건축사 가족이 도착했는데 그들이 밥 먹는게 구경꺼리가 되었다. 노란 양은 냄비에 오댕국을 끓였다.
정상에 머물러 있자니 점차 더 춥게 느껴졌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남상길 건축사가 조병섭 건축사가 끓인 국물을 떠서 맛을 보라며 권했다. 따뜻한 국물 맛이 좋았다. 2시 45분 내려갈 준비를 했다. 정상석 앞에서 프랫카드를 펼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내려가는 방향에 일행들이 늦게 보고 좋아하며 사진들을 찍었다.
3시 하산길을 걸어갔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흰 경사면 눈밭의 평온하고 너른 맛이 일품이었다. 산장을 지날 때 들르니 안에서 취사 열기로 김이 자욱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라면 등을 끓이는 김이 자욱 서려 있어서 내가 휴대한 사진기 랜즈에 금새 김이 서렸다. 그곳을 나와 내려가는 곳부터는 좁은 산행 길이 되었다. 다시 겨울숲 속 길을 걸었다. 주변의 앙상한 나무들 마치 철사 조각 같이 넓게 공간을 이루고 있다.
뒤의 일행이 걸으면서 “올라 올 때보다 여기가 더 좋아요”라고 말했다. 조금 전까지 평온하던 풍경과 달리 아까 올라올 때처럼 눈꽃 핀 풍경이 보였다. 그러나 나무와 숲이 조금씩 달라 오를 때와 다른 느낌이 느껴졌다. 갈 옆으로 완만하고 깊게 펼쳐진 경사지에 나무들이 더 치렁하게 공간을 이루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주목 나무숲은 녹음이 어우러져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가 내려가는 길은 정상에서 넓고 멀리 펼쳐보이던 곳의 한 부분일 것 같다. 거기서 볼 때는 그 끝이 속세와 닿는 곳이 아니라 천상의 어느 부분 같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구간구간은 아침에 오를 때처럼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며 감촉을 느끼게 하는 현실의 장면들이었다. 산행에서 하산 과정은 허전함을 수반하게 된다. 산행의 목적의식은 그 곳을 향해 오르는 과정으로 만 인식되기도 한다. 정상에 도달하여 다시 내려가는 하산길은 이미 목적한 것을 이루고 원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산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리 놓여진 곳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하산은 산을 찾은 의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다.
잠시 후 앞에 큰 주목 고사목이 보였다. 그 곳에 이르러 그것을 스케치 했다. 그곳에서는 다시 시야가 트여 보였다. 그 곳을 지나니 다시 숲속의 좁은 등산길이 되었는데 그래도 아까보다는 길이 더 넓어져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눈으로 뒤덮인 깊은 산세와 나무마다 조형감이 느껴지게 맺힌 눈꽃 등 설경의 정취를 흠뻑 느끼며 걷게 되었다. 그런 풍경을 음미하면서 겨울 소백산은 사람들이 바쁜 일 제쳐두고 찾아와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 산을 오르고 내리며 하루 종인 산, 눈, 나무와 호흡하고 느끼며 지나는 하루였다. 소백산은 많은 산들 가운데서도 특히 크게 와 닿는 산이다. 그런 산에 들면 잠시 속세의 삶을 내려 놓고 내가 그 자연의 느낌에 젖어지는 듯 했다.
3시 55분 소백산 옹달샘이 30m 남은 표지가 보였다. 거기서 천동리가 4.5km 남아 있었다. 아까와 달리 주변에 안개 낀 곳이 나타나 마치 눈 오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안개 낀 눈길 마치 전설속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산행 구간은 오를 때보다 내려가는 거리가 휠씬 더 길었다. 해지기까지 시간으로 볼 때 산 정상에서 출발이 늦은 편이었다. 거리로 보아 해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나 하산 길이어서 짐작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걸어갔다.
잠시 후 동덕골 3.2km 비로봉 3.4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거리가 아까 보았던 것보다 불과 200m 줄은 것이 조금 불만스럽게 느껴졌다. 가끔 길가에 세워둔 이정표가 나타났으나 거기에 쓰여진 거리는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스케치를 하다보니 맨 뒤에 오던 조병섭 건축사와 김의중 회장이 함께 가고 있었다. 나는 지나쳐 가면서 김회장에게 시간이 늦으면 어두워질텐데 랜턴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다고 했다. 나는 랜턴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부터는 멀리 갈 수 없었다. 그는 조병섭 건축사 가족과 함께 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이들 때문에 걸음이 느려서 가다가 멈춰 스케치를 하고 보면 도착하고 또 걸어가다 만나기가 반복되었다.
4시 5분 산장이 나타났다. 차가 닿는 곳이라 거기서부터 길이 넓어졌다. 그 건물 옆에 마지막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특히 여자들에게 보라고 해 놓은 것 같았다. 경사진 길을 가면서 앞서가던 남녀가 가며 대화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남자가 “비료포대 타고 가면 그냥 가지겠다“ 하니까 여자가 “원 빵이야” 하고 말했다. 앞에서 조건축사와 함께 걷던 둘째딸이 넘어졌다 일어났다. 알고 보니 아이젠을 한짝만 차고 있었다. 가족이 반짝씩 나눠 차고 있었다. 완만하고 긴 하산길이 소백산의 품을 더 크게 느껴지게 했다.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주변이 온통 눈이 쌓여 오늘은 정말 설경에 흠뻑 베이게 되었다. 그러한 특별한 느낌에 젖어 보는 것도 좋았지만 어두어질까봐 염려하는 마음도 지니고 걷고 있었다. 앞에 곧고 높게 뻗은 낙엽송 숲이 보였다. 그 느낌이 좋아서 수동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스케치도 했다.
4시 55분 청동이 2,5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그 아래로 내려가며 신선2교, 신선1교를 차례로 지났다. 그 주변의 계곡 설경이 더 특별하게 보였다. 바위위에 쌓인 눈이 바위 형상을 더 둥글고 매끄럽게 보이게 했는데 그러한 조형감과 깊고 맑은 계곡의 느낌이 어우러져 있었다. 물은 흐르는 곳만 녹아 물이 보였다. 5시 10분 소나무가 꺾여 길에 쏟아지듯 떨어져 있는 곳을 지났다. 그리고 그 앞쪽에 길 옆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다. 김의중 회장이 아이들에게 서게 하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숲에서 눈을 이고 있는 나무들이 가지가 쳐져 평소 다른 형태로 느껴졌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자연은 어떤 상황에 되어도 스스로 멋을 지니게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자연의 모습일 듯 했다. 조금 아래쪽에는 단풍나무도 부러져 있었다.
오늘은 오가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깊은 산이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어서 더 멀리 느껴지는 듯 했다. 5시 16분 천동 2교를 지났다. 나무들이 쳐져서 더 아늑한 공간의 길이 되었다. 다시 트이고 게곡에 앞산이 가로 막고 서 있는 공간을 지났다.
소백산 북부 사무소가 600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날이 어두워질까봐 이정표에 더 눈길이 갔다. 길 옆의 소나무가 눈 무게를 견디며 부러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휘어져 보였다. 말로만 듣던 겨울에 소나무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다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길 옆으로 개울이 계속해서 있었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물량이 많아져서 소리도 크게 들렸다. 다시 소나무가 많이 부러져 있는 곳을 지나며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번에 온 눈으로 피해를 많이 입은 것 같았다.
다시 길 옆에서 계곡 폭포소리가 크게 들려 바라보니 아까보다 수량이 더 많아 보였다. 그 개울 건너에 뿌리채 넘어진 나무가보였다. 그리고 좌측과 앞을 가로막 듯 나타난 산은, 어두워지는 설경의 느낌을 띠고 있었다. 그 산에 선 나무들에는 잔가지들이 많아 섬세한 느낌의 풍경이 앞에 보였다.
비로봉을 6km 지난 표지가 보였다. 이제 정말 마칠 구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점차 어두워지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앞쪽에 소백산교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북부사무소에 도착했다. 아직 주차장까지는 더 가야 되었지만 눈이 반사되어 평소보다 더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완전히 어두워지게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아래에 소백산 유스호스텔이 나타났다. 수련의 전당이라고도 쓰여 있었다. 그 곳 주변 숲 속에서 방가로 등에 켜 놓은 조명 불빛이 보였다.
5시 50분 주차장에 당도했다. 정병협 부회장과 송승원 사무총장등이 추운데 뒤에 오는 일행을 걱정하고 이었던 듯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5시 55분 그 곳을 출발해 6시 20분 식당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관광객들을 맞기 위해 즐비하게 지어 놓은 상가지역이었다. 평소 같으면 자연 안에서 거추장스럽게 드러나 보였지만 밤이고 쉴 곳을 찾아드는 시간이어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려 미리 예약이 되어 있는 서울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메뉴로 나온 버섯전골이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다. 상차림이 다 되어 있어서 밥을 내 주어 바로 식사를 했다.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박기현 서울 등산동호회 회장을 대신해 정병협 부회장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기뻐하는 의미로 건배 제의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깜깜한 밤중이었다. 커피와 둥글레차를 마시고 차에 올라 7시 10분 서울로 출발했다. 8시 18분 문막휴게소에 들렀다 다시 출발해 9시 15분 동서울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9시 45분 아침 출발지인 교대역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080112)
첫댓글 함께해서 더욱 즐거웠고요 후기글 넘 잼나게 읽고 갑니다''''아자~
참 운영자 이상 지기님 카페 용양좀 키워주세요 3000원에서5000원정도 투자하시면 회원전체가 빠르고 편하게 이미지 사진등등을 열어 볼수 있을 겁니다'''^^*용량이적어 이미지 파일이 자꾸만 다운되고 시간도 무척 오래 걸립니다'''ㅋ~1시간이 넘게 다운받고 있는중인데 저먼 그런가요?
도저히 소백산설경은 다운받아 볼수가 없네요 김석환건축사님 '''풍경사진방에 올려주시면 감사히 퍼 가겠읍니다'''아자~
내용이 상세해서 다시가본느낌입니다.....^^*good~~~~
비로봉 에서 잠깐 비찬 햇쌀에 쭉 펼쳐진 장관이 다시한번 파노라마 처럼 스치는 순간입니다 ^^
손이 시려울텐데도 계속해서 스케치하며 사진을 찍는 김건축사님의 열정은 누구도 따를 수가 없네요.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오랫만에 산의 장엄한 기운을 느끼며, 겸허히 대하는 마음을 갖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조병섭 건축사님 가족 사랑이 아름다우십니다. 모두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자연경관이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무자년 새해에 눈꽃 입은 산을 바라보면서 자연속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였구요.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일이 계획하시는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공식 사가입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