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성결교회(舊 軍威聖潔敎會)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동서4길 6
군위성결교회 구 건물은 1920년에 한옥예배당으로 시작하여 1937년 새로 건립한 목조 예배당은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6년 12월 4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군위성결교회는
1920년 9월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개척자로 파송받은 김병선 전도사는 윌리암 헤스롭(William Heslop)선교사의 풍금을 팔아 헌금한 돈으로 당시 군위면 서부동 한옥집을 구입, 수리하여 그해 10월 15일 교회를 창립하였다.
1937년 교회를 새로 짓는 과정에서 7대 담임목사 이종익(1937년~1940년)목사와 (노성문 집사)가 구 예배당을 철거작업 중에 지붕이 무너져 중경상을 입고 사망하는 아픔을 딛고 완공된 예배당은 목조 단층에 전실 1칸, 교회당 6칸인 7칸의 건물을 건축했고 출입구는 당시 우리나라 남녀유별이라는 풍습에 맞게 남녀의 출입을 구분하는 현관 2개를 설치하였다.
예배 공간도 막을 쳐 남녀 교인의 좌석을 구분하였다.
1937년은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민국을 식민지화하고 교회를 탄압하던 때였다. 일제가 강요한 동방요배(일본 국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일),신사참배(일본 신을 모시는 건물), 일본에 충성하라는 시국 강연 등을 거부하고,오히려 성직자와 교인들이‘금수강산가,슬프다 고려반도’ 등 독립운동 노래를 부르며 거세게 저항하며 신앙을 지켰고 항일운동을 하였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따라서
1943년 5월 일제는 성결교단 교역자들은 대거 체포하였고 예배를 금지당했다.
1943년 12월 일제에 의해 성결교단은 강제 해산명령을 받았고.
1944년 4월 군위성결교회도 교회가 강제 폐쇄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현재 군위성결교회는
성도수 700여 명을 자랑하는 군위군를 대표하는 교회가 되었다. 군위성결교회 구 예배당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20년대의 근대건축사를 연구하는 중요 자료가 되어 2006년 국가문화유산 제29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