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그룹 총수의 집은 모두 배산임수(背山臨水)형 명당인 한남동.'
'삼성 본관은 보기 드문 양택(길지)으로 태평로빌딩과 삼성생명 사옥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양쪽에서 지켜줘 삼성그룹이 잘 나간다(?)' 한국을 이끄는 기업인ㆍ금융인ㆍ정치인 등은 유독 풍수지리를 많이 따진다.
집이나 사옥 건축, 사무실 배치 등에 풍수전문가를 동원하는 게 일상화됐다. 풍수지리가 종교의 하나로 인식되기도 한다. 풍수지리에 맞춰 사업을 해야 발 복(發福)하고, 최소한 화는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탓이다.
돈을 만지는 은행들도 풍수지리에 민감하긴 마찬가지다. 외환위기로 여러 은행 이 간판을 내린 것과 관련해 은행 본점이 흉터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는 그럴 듯한 해석이 금융권에 떠돌았다. 심지어 최고급 호텔인 조선호텔마저 풍수지리 를 많이 따져 내부 집기 등을 배치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얘기하는 자연적인 명당은 산ㆍ강ㆍ토질이 잘 어우러지는 곳. 도 심에 위치한 건물들은 대부분 인위적 명당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데 이때는 형 태, 방위, 배치방법, 대문, 마당, 도로 등의 조합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게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견해다.
고(故)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자택은 워커힐 부근 빌라였다. 그는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등과 풍수지리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고 '기(氣)'연 구로도 유명했다. 최 교수가 최 회장 자택에 대해 "한강 양수리의 물을 정면으로 받아 흘러가는 곳으로 즐기기는 좋으나 기가 세서 사람이 살 곳은 못되는 것 같다"고 하자, 최 회장은 "그 기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어디든지 괜찮다"며 계속 머물렀다.
하지만 걸출했던 최 회장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들 최태원 회장은 워커힐을 떠나 마포에 집을 마련했다. 최종현 회장은 서울 강남지역에 집무실을 두지 않았다. 강남이 사람이 살기 마 땅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SK그룹은 SK케미칼 정도만 강 남에 사무실이 있다.
고(故)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묘소는 에버랜드 뒤편에 있다. 대표적인 명당으 로 꼽히는데 그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야 자손들이 더욱 융성한다는 얘기 가 나돌았다. 그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현재 에버랜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 겨찾는 곳이 돼 있다. 한남동에 있는 이건희 회장 자택은 뒤쪽으로는 남산을 의지하고 앞쪽으로는 한 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명당으로 꼽힌다. 이 회장의 이태원동 새 자택도 길지 로 얘기된다.
87년 완공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터로 꼽힌다 . 연화부수형이란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이란 의미. 구본무 LG그룹 회장실 은 트윈타워 동관 30층에 있으며, 95년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게서 물려받았 다. 구본무 회장 자택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등과 마찬가지로 서울 한남동에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집무실은 2개다. 한화 본사 27층과 대한생명 27층으로 층 수가 같다. 본사 자리는 을지로 은행타운으로 풍수지리상 돈이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생명 회장실은 원래 54층이었으나 수압이 높아 풍수지리에 안 맞는다는 지적이 일자 27층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 풍수지리에 민감한 금융권 =은행업계를 주름잡던 과거 5대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에는 풍수지리와 관계된 일화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 분 음기가 강하다고 알려진 남산 3호터널의 나쁜 정기(?)를 받는 남대문로 소 공로에 위치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은행 옆에 있던 옛 상업은행. 본점은 '살기'를 품고 있다 는 5각형 건물이었다. 은행측은 살기를 억제한다는 차원에서 5각 방위별로 모 두 문을 냈으나, 70년대에 정치적인 입김으로 남문(한은쪽 문)을 막았다. 그 후 사건ㆍ사고로 바람 잘 날 없었다는 게 은행측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상업은행은 94년 정지태 행장이 자신의 사무실 집기 위치를 바꾸기 도 했으며, 95년에는 한국은행 방향인 남문을 다시 냈다. 바람을 뺀다는 의미 였는데 그해 9월 공교롭게도 한국은행에서 지폐 유출사건이 터져 김명호 당시 총재가 불명예 퇴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민은행은 과거 주택은행과 합병 당시 신축사옥으로 상업ㆍ한일은행 본점 건 물을 매입하려고 했다가 풍수지리와 소송 문제 등으로 백지화한 적이 있다.
상업ㆍ한일이 합쳐진 우리은행은 남산 신축사옥을 당초 매각하려고 했다. 하지 만 5000억원이 넘는 가격에 원매자가 없는 데다 굴착 때 금빛 흙(미사토)이 나 오면서 명당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본점 사옥으로 활용됐다. 공사를 맡았던 삼 환기업이 27m를 파고 들어갔는 데도 물이 안 나왔다는 게 우리은행 관계자의 얘기다. 그 덕분인지 99년 이전 후 큰 사고도 없다.
한때 선도은행(리딩뱅크)으로 부상했던 조흥은행의 경우 본점 외관이 건물색으 로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이다. 87년 종각 맞은 편에 건물을 신축한 제일은행이 해외 매각 1호 은행으로 거론 될 때는 '옛 의금부 터라 원혼이 서린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옛 서울은행 본점(롯데백화점 건너편)은 신축 때 물이 나온 데다 6ㆍ25전쟁 때 인민군이 애꿎은 시민들을 총살한 현장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래서인 지 지난 70년대 서울ㆍ신탁은행 합병 이후 바람 잘 날이 없다가 결국 하나은행 에 흡수ㆍ합병됐다.
◆ 조선호텔도 풍수에 민감 =신세계 계열이며 남산 3호터널과 연결된 소공로변 에 위치한 웨스틴조선호텔도 곳곳에 풍수지리를 고려한 장치들을 배치했다. 풍 수지리를 중시하는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의 의중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호텔측 설명이다.
호텔 서쪽에는 '물'을 많이 배치한 게 특이하다. 20층 중식당 호경전에는 수족 관이 설치돼 있고, 3층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다. 신세계 사무실 전면에는 인공 폭포도 있다. 이러한 배치에는 길 건너편 프라자호텔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 이 나오고 있다. 풍수지리학상 프라자호텔은 '칼날'의 형세로 조선호텔쪽을 향 하고 있으며 칼날의 날카로움을 무마시키기 위해 물을 많이 배치했다는 것이다. 호텔 후문에는 돌사자 2마리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자상에는 붉은색 리본이 항 상 달려 있다. 과거 한 호텔직원이 사진촬영을 위해 리본을 풀었다가 문책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이 붙는다. 호텔 터가 구한 말 고종황제 즉위 뒤 하늘 에 제사를 지낸 원구단 자리로 음기가 강한 곳이어서 이를 누르기 위해 양(陽) 의 동물인 사자와 양기를 상징하는 붉은 리본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호텔 후문 쪽이 허결(虛缺)에 해당하는 위치거나 사사로운 기운이 침투하기 쉬운 곳이라 이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