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전인 바다
임동윤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 시작과 끝이 한 몸이면서 서로 다른 바다.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저 내용 모를 바다를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낸 것을 무엇보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우님이 말한 “시와 바다는 서로 닮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1부 30편, 제2부 30편, 제3부 31편, 제4부 20편. 합계 111편의 시편이 실린 시집을 읽느라 하루 내내 애썼습니다. 그러면서 맨 처음 느낀 점은 이런 시집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1부에 실린 작품 중에서 ‘해벽에 머리 부딪혀 끊임없이 거품을 쏟아내’는 파도를 「자해」로 본다거나, 때론 ‘물 들면 지워져 버릴 헛꽃 피워놓고/ 그것이 좋아 춤출 일인가?/ 춤추며 보고 몰려오다니/ 등신짓 아니면 미친 짓이다’라고 <등신>으로 읽어내기도 합니다.
아래 「건조되는 바다」를 읽어보면, 시인이 바다를 향한 곧고 푸른 시 정신을 읽어낼 수 있겠습니다.
꾸덕꾸덕
갯가에서 바다가 마른다
바다를 등에 지고 온 가자미가
피를 말린다
소리도 없는 바다가
햇빛에 스민다
내다보던 유리창에
흔들리는 물 끝
다릿발 건조한 오징어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리
꾸덕꾸덕 몸이 마른다
목마른 바다가 남는다
위 시에서 시인은 <덕장에 걸린 가자미와 오징어를 통해서 꾸덕꾸덕 말라가는 바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리운 고향>으로 그려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빨랫줄에 내걸린 옷으로 형상하기도 합니다.
제2부의 시편들을 통해서 끝없이 바닷가 마을을 찾아 나서는 시인의 모습을 진솔하게 읽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출구가 막힌 갑갑한 도시에서 탈출을 꿈꾼다면 누구나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다대포해수욕장>과 <광안리 해변>, 가슴 베이기 쉬운 <송도 밤바다>, 생선 비늘 빛 햇살 환한 <송정 백사장>, 그리고 <청사포>의 망부석이 된 곰솔, 섬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 <자갈치>에서 만나는 ‘눈볼대’와 ‘보리숭어’가 정겹기만 합니다.
그러나 자갈치에서 만나는 삶은 치열하기만 합니다. 두 다리가 없어 자벌레처럼 배밀이로 기어가는 <자갈치 자벌레>와 해안 길의 집과 집 사이에 세를 얻어 수선집을 차린 가난하나 착한 할머니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베트남 며느리가 사는 영도 흰여울길 앞바다, 장미 향이 나는 송도 바다, 그 외 월전 경로당과 자갈치에서 만나는 파도 소리에서 강영환 시인의 삶의 현장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앙동 사십 계단이 높아 보일 때는 내게 사랑이 모자라 서다”를 되뇌며 <바다를 더 사랑하기> 위해 “눈썹 끝에 매달린 태종대 자갈마당”으로 달려가는 시인. 거기 벼랑 끝 카페 창가에 앉아 창유리에 그려진 수 백호의 바다 그림을 만나기도 합니다. 기장 대변 해안에서는 반건조 장어로 “살 속에 숨어 있는 짠한 소금기”로 기장 바다를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바람 부는 연화리에 가서는 “먼 수평선에서 수백 필의 말이 달려오는” 풍광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는 시인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시인의 바다 사랑은 시집 도처에서 만나게 됩니다. 임진년 해전의 북소리가 들리는 <안골포>로 달려가거나, 남해 <미조항>, <임랑 바다>와 <사량도 물빛>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제주 <모슬포>에서 파랑주의보에 갇힌 배들을 만나기도 하고 <제주 바다>에서 엄마로부터 물질을 이어받은 제주 해녀의 짠한 생애를 만나기도 합니다.
강영환 시인은 <후기>에서 “이 시집에 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굳이 말하라 한다면 나는 화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화엄은 법계연기(法界緣起)라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은 함께 의존하여 일어나며, 걸림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비추면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장엄한 세계가 <화엄>이라는 것. 바다가 지니는 본성으로 원시와 생명과 화엄을 느낀다는 강영환 시인. 강영환 시인이 펼쳐내는 바다의 실체는 너무 깊고 넓고 푸르르기만 합니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바다의 의미는 끝없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만큼 바다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강영환 아우님의 시집 『내 안에 파도, 내 밖의 바다』는 나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바다 경전>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바다를 소재로 한 시집은 커다란 감명을 주었습니다. 끝으로 아래「멸치볶음」을 시 한 편을 읽으며 시집을 감상한 독후감을 마칠까 합니다.
남해 창선 복국집 점심
밑반찬으로 나온 멸치볶음 한 보시기가 파도를 탄다
식탁 위에서 출렁이는 파도가 멸치들 앞가슴을 친다
어린 것들이 바다를 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금니에 걸려 섬이 된 작은 눈동자에서
출렁이다 부딪혀 깨진 죽방렴
쌉쌀한 파도 맛이 우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