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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의 수십억 인구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늘날의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인들이 그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그 땅에 돌아오기 전까지 그땅은 황무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땅 가나안 땅에 귀환하기 시작한 것은 1875년 부터 이며 이것을 1차 알리야라고 합니다. 1897년 제 1차 시온주의 총회 이전에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1750년대에는 완전 황무지로 무인지경이었으며, 1799년 경 시점에서는 나폴레옹이 상륙하여 그 해안지역 인구가 1천명 밖에 안되었으므로 이스라엘 전역의 인구가 1만명 미만이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 무렵 인구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수천명이 거주하였고 기독교인들 순례자들이 수천명이었으며, 그들의 짐을 날라주고 먹고 사는 아랍인들이 몇 백명 있는 정도였습니다.
1830년대 들어서 영국인 기독교 순례객들이 연간 4천명에 달하였으므로 영국인들은 정부가 영사관을 예루살렘에 설치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1838년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설치합니다. 터키 정부의 양해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음의 수많은 증언들은 1880년까지 이스라엘 땅이 황무지였음을 증명하며 이것은
성경의 수많은 예언들이 적중하였음을 증거합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형제모임의 존 넬슨 다비와 다른 형제들이 1848-50년경 언젠가
국가 이스라엘이 건국될 것이라고 예측하기 시작한 것은 훌륭한 예언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수많은 증거들중의 일부입니다.
1. 18세기 중엽의 고고학자 토마스 쏘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Thomas Shaw, Travels and Observations Relating to Several Parts of Barbary and the Levant (London, 1767), p. 331ff. De Haas notes: "Hasselquist, the Swedish botanist, munching some roasted ears of' green wheat which a shepherd generously shared with him, in the plain of Acre,
reflected that the white bread of his northern homeland and the roasted wheat ears symboliz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civilizations' Had he known that Mukaddasi boasted in the tenth century of the excellence Of Palestine's white bread he might have been still more impressed by the low estate to which the country had fallen in seven hundred years....
Hasselquist joined a party of four thousand pilgrims who went to Jericho under an escort of three hundred soldiers. He estimated that four thousand Christians, mostly of the eastern rites, entered Jaffa each year, and as many Jews. The Armenian Convent in Jerusalem alone could accommodate a thousand persons.
The botanist viewed the pilgrim tolls as the best resource of an uncultivated and uninhabited country. . ~ . Ramleh was a ruin." (Emphasis added.) De Haas, History, pp. 349, 358, 360, citing Frederich Hasselquist, Reise nach Palastina, etc., 1749-1752, pp. 139, 145-146, 190.
즉” 연간 4,000명의 기독교 순례자들과 동수의 유대인들이 300명의 병력의 호위하에 얍파( 사도행전 9:42-43욥바, 오늘날의 하이파)에 들렀고 예리코까지 갔는데, 순례객들을 상대로한 영업이 경작하지도 않고 거주민이 있지도 않는 나라의 최상의 수입원이었다, 람레는 폐허로 되어 있었다.”
2. Count Constantine F. Volney, Travels Through Syria and Egypt in the Years 1783, 1784, 1785 (London, 1788), Vol. 2, p. 147.
According to Volney, ". . . we with difficulty recognize Jerusalem.... remote from every road, it seems neither to have been calculated for a considerable mart of commerce, nor the centre of a great consumption.... [the population] is supposed to amount to twelve to fourteen thousand....
The second place deserving notice, is Bait-el-labm, or Bethlehem, ... The soil is the best in all these districts ... but as is the case everywhere else, cultivation is wanting. They reckon about six hundred men in this village capable Of bearing arms.... The third and last place of note is Habroun, or Hebron, the most powerful village in all this quarter, and able to arm eight or nine hundred men . . ."
1783-1785 연간에 여행한 볼르니 백작의 보고 ( 1788 발간)
“예루살렘을 알아보기 힘들었고, 도로에서 멀고, 상업지로 생각될 수도 없었고, 소비처도 없었고, 인구는 12,000에서 14,000으로 추산되었으며,…
두번째 곳은 베들레헴이었는데 흙은 좋았으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경작된 적도 없고.. 이 마을에서 무기를 들수 있는 사람은 6-700명으로 추산했다. 제3의 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마을로서 헤브론이었는데 무장할 수 있는 사람이 800-900명으로 추산되었다. “
3. 톰슨의 여행보고
W.M. Thomson reiterated the Reverend Manning's observations: "How melancholy is this utter desolation! Not a house, not a trace of inhabitants, not even shepherds, seen everywhere else, appear to relieve the dull monotony....
Isaiah says that Sharon shall be wilderness, and the prediction has become a sad and impressive reality." Thomson, The Land and the Book (London: T. Nelsons & Sons, 1866), p. 506ff.
“이 철저한 황폐함은 얼마나 우울한 것인가! 집 한 채도, 거민의 흔적도, 목동 하나도,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으니! … 이사야가 말한바, 샤론은 황무지가 될 것이며…. 그 예언은 슬픈 현실이 되었도다… “ 톰슨, 그 땅과 그 책 ( 런던 1866)
4. 영국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 보고서 2권 1939-1941 발간
“ 예루살렘은 많은 집들이 폐허화 되어 있었으며, 정규 고용주도 없고 … 거민들은 15,000으로 추산되는데 인구의 과반수는 유대인들이었다.
1863년 예루살렘의 상업에 관한 보고서. 예루살렘 시의 인구는 1만5천, 그중 4,500 모슬렘, 8,000 유대인, 나머지(2500)는 여러 종파의 기독교인들이었다.”
Jerusalem consisted of "a large number of houses ... in a dilapidated and ruinous state," and "the masses really seem to be without any regular employment." The "masses" of Jerusalem were estimated at less than 15,000 inhabitants, of whom more than half the population were Jews.17
"Report of the Commerce of Jerusalem During the Year 1863," F.O. 195/808, May 1864. ". . . The population of the City of Jerusalem is computed at 15,000, of whom about 4,500 Moslem, 8,000 Jews, and the rest Christians of various denominations. . ." From A.H. Hyamson, ed., The British Consulate in Jerusalem, 2 vols. (London, 1939-1941), Vol. 2, p. 331
5. 갈릴리 호수를 1817-1818년에 여행한 여행가
갈릴리 호수에 배 한 척도 볼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After a visit in 1817-1818, travelers reported that there was not "a single boat of any description on the lake [Tiberias]."
**James Mangles and the Honorable C.L. Irby, Travels in Egypt and Nubia (London, 1823), p. 295.
6. 1827년 독일 백과사전의 수록 사항
In a German encyclopedia published in 1827, Palestine was depicted as "desolate and roamed through by Arab bands of robbers."14
Brockhaus, Alig. deutsch Real-Encyklopaedie, 7th ed. (Leipzig, 1827), Vol. VIII, p. 206
“황폐하였고 아랍 강도떼들만 득실 거렸다.”
7. 톰 소여의 모험, 헉클베리 핀으로 유명한 마크 투웨인의 여행보고.
그는 1867년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 갈릴리를 여행했다.
이 마크 투웨인의 여행보고는 매우 유명하며 여러가지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Stirring scenes ... occur in the valley [Jezreel] no more. There is not a solitary village throughout its whole extent-not for thirty miles in either direction. There are two or three small clusters of Bedouin tents, but not a single permanent habitation. One may ride ten miles hereabouts and not see ten human beings. 22
“놀라운 장면… 이스르엘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어느 쪽으로든 30마일을 가도 단 한 마을도 있지 않았다. 단지 베두윈 족의 텐트들의 작은 집단들이 2-3개 보였고 영구 거주 시설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누가 10마일을 여기 저기 다녀도 열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They met together in full view of the pilgrims, after the battle, and took lunch, divided the baksheesh extorted in the season of danger and then accompanied the cavalcade home to the city! The nuisance of an Arab guard is one which is created by the sheikhs and the Bedouins together, for mutual profit...
마크 투웨인은 또 보고하기를 당시에도 베두윈 습격자들이 수시로 불려와졌고 아랍 호족들은 순례자들을 습격하여 등쳐먹고 사는 것을 보고했다.
Come to Galilee for that... these unpeopled deserts, these rusty mounds of barrenness, that never, never do shake the glare from their harsh outlines, and fade and faint into vague perspective; that melancholy ruin of Capernaum: this stupid village of Tiberias, slumbering under its six funereal palms.... We reached Tabor safely .... We never saw a human being on the whole route
“갈릴리에 왔고…. 이 사람없는 사막들, 황무지의 언덕…,. 카퍼나움의 우울한 폐허…. 이 모든 여정에 인간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Of all the lands there are for dismal scenery, I think Palestine must be the prince ?It is a hopeless, dreary, heart-broken land ? Palestine sits in sackcloth and ashes. Over it broods the spell of a curse that has withered its fields and fettered its energies ?
Nazareth is forlorn; about that ford of Jordan where the hosts of Israel entered the Promised Land with songs of rejoicing, one finds only a squalid camp of fantastic Bedouins of the desert; Jericho the accursed, lies a moldering ruin, to-day, even as Joshua's miracle left it more than three thousand years ago ?
Renowned Jerusalem itself, the stateliest name in history, has lost all its ancient grandeur, and is become a pauper village ?Capernaum is a shapeless ruin; Magdala is the home of beggared Arabs; Bethsaida and Chorazin have vanished from the earth ?
Palestine is desolate and unlovely. And why should it be otherwise? Can the curse of the Deity beautify a land?" ? (The Innocents Abroad (New York 1966) - summary of Palestine visit)
http://www.cdn-friends-icej.ca/guide.html
나자렛은 쓸쓸한 곳으로 베두윈족들의 사막 텐트촌…. 여리고는 폐허,,, 예루살렘은 극빈 마을이 되어 있고 ,, 가버나움은 형태도 없는 폐허요, 벳새다와 고라신은 땅에서 사라졌는가? 팔레스타인은 황폐화되었고 보기 흉하다. 신성의 저주가 한 땅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 ( 순전한 외국들, 마크 투웨인의 여행기록으로 뉴욕에서 1966년 발행된 책자)
8. 위의 모든 여행기록들은 모두 사기극인가?
어떤 이들은 19세기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가 50만에 달했다는 둥, 그런데 유대인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아랍인들을 쫓아냈다는 둥의 말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 보다 먼저 여행하고 그 책들을 100년 전에 출간했던 사람들의 책에는 위와같이 황폐화 되어 있고 인간들은 전혀 살지 않거나, 겨우 2-3만 사는 예루살렘을 서술하고 있지 않는가?
위의 글모음은 다음의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그 사이트에서 인용한 근거 원문은 찾아보면 확실히 그런 내용을 수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http://www.freerepublic.com/focus/fr/604628/posts
9. 아울러 18-19세기에만 그 땅이 황무지였는가?
물론 위의 사이트에 보면, 1590년의 여행기록에도 그와 똑같이 황무지로 있었음을 알수 있다.
In 1590 a "simple English visitor" to Jerusalem wrote, "Nothing there is to be scene but a little of the old walls, which is yet Remayning and all the rest is grasse, mosse and Weedes much like to a piece of Rank or moist Grounde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낡은 벽들과 풀들, 잡초들만 보인다”
Gunner Edward Webbe, Palestine Exploration Fund, Quarterly Statement, p. 86, cited in de Haas, History, p. 338.
10. 십자군 당시의 상황
The Jews and Muslims fought together to defend Jerusalem against the invading Franks. They were unsuccessful though and on 15 July 1099 the crusaders entered the city.[16] Again, they proceeded to massacre the remaining Jewish and Muslim civilians and pillaged or destroyed mosques and the city itself.[17]
One historian has written that the "isolation, alienation and fear"[1] felt by the Franks so far from home helps to explain the atrocities they committed, including the cannibalism which was recorded after the Siege of Maarat in 1098.[18]
As a result of the First Crusade, several small Crusader states were created, notably the Kingdom of Jerusalem. In the Kingdom of Jerusalem at most 120,000 Franks (predominantly French-speaking Western Christians) ruled over 350,000 Muslims, Jews, and native Eastern Christians[19]
http://en.wikipedia.org/wiki/Crusade
위키가 올려놓은 숫자는 항상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대략의 정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십자군은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을 살육하기 위해 나아갔고…” 예루살렘 왕국에는 12만의 프랭크 십자군과 35만의 무슬림, 유대인, 동방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었다. “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 땅이 황무하였든지 매우 적게 거민이 살고 있었든지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경 예언의 적중
1. 아모스 9: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황폐해진 성읍들을 건축하여 그것들에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것들의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예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땅에 돌아오게 하신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본다. 시온주의에 의해서 남이 살고 있는 땅을 갑자기 유대인들이 빼앗아 갔다는 말과는 판이하게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또 여기서 우리는 그 성읍들에 아랍인들이나, 팔레스타인 족이 살고 있던 땅이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황폐해진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심는 것은 예호와 하나님이시다. 인간들이 행한 것이 아니다.
다음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들어 설명하겠지만, 아랍인들, 소위 팔레스타인인들이라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바, 아랍인들이 다수 살고 있는데 성경 한 권 들고 와서 자기 땅이라고 유대인들이 주장하며 쫓아내서 지금의 난민 처지가 되었다는 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제 이 점을 규명해야 한다.
2. 에스겔 36:
7 그러므로 주 예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손을 들었나니 너희 둘레에 있는 열방들이 자신들의 수치를 반드시 담당하리라
8 그러나 오,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을지니라, 왜냐하면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24 내가 너희를 열방중에서 인도하여 내고 모든 나라들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너희 고국 땅에 들어가서
26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되 너희 육신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로된 마음을 줄 것이며
다시 24절에서 이스라엘을 열국으로부터 불러내어 고국 땅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순서이다. 하나님은 돌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을 먼저 속살로 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바꾼 다음 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신 다음, 회개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 심장한 것은 오늘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격 논리가, 이스라엘은 세속국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3. 에스겔 36 장
34 그 황폐하던 땅이 경작될 것이니, 거기는 전에 지나가는 모든 자들의 보기에 황폐하였던 곳이라.
35 그들이 말하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폐허된 성읍들이 울타리쳐지고, 주민이 거하게 되었도다.
36 너희 주변에 남은 열방사람들이 나 예호와가 폐허화된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예호와가 말하였고 내가 그것을 이루리라
여기서 성경은 이스라엘 땅이 황폐화 되어 있었으며 나중에 그 황무지에 주님께서 폐허화 된 곳을 건축하였고 그 자리에 주님이 이스라엘로 거하도록 하셨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은 오늘날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는 매우 큰 차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에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 예언이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그 예언이 틀렸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왜 이스라엘 땅이 황무지로 있었는가?
오스만 터키의 황무지화 정책 때문으로 보입니다.
(Under the Ottoman empire of the Turks, the policy of disfoliation continued)
오스만 터키는 이스라엘 땅에 인구가 많아지거나 나무들이 많아져서 반란 가능성이 생기는것을 두려워 하였으며 그 땅을 황무지로 유지함이 자국의 안전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땅은 성경 예언대로 수백년 동안 황무지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디언들이 살던 북아메리카 보다 훨씬 더 인구가 희소한 황무지였음을 의미합니다. 북아메리카는 컬럼버스 무렵 인구가 6천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됩니다만 ( 평방 킬로당 5명 정도) 이스라엘은 평방킬로당 1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예언이 그대로 적중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랍인들의 유입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인들과 기독교인들 순례객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그땅에 와서 장사하며 식료품을 팔고자 왔으며 1905년에 예루살렘-하이파 철도가 놓이는 것을 보고 평생 처음 보는 철도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구걸, 강도, 행상 행각을 하여 들어왔으며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유럽에서부터 들어오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위험이 따랐으나 아랍인들은 주로 주변국가에서 몰려왔으므로 훨씬 빨리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1914-18년간의 1차 세계 대전에서 터키는 패퇴하고 그 땅이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기고 국제연맹에서 1922년 결정되자 이후 영국은 그땅을 관할하는데 그 무렵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석유가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아랍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아랍인들에게는 이스라엘 땅에 무제한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하는 한편 유대인들에게는 일년에 15,000 명씩만 들어오게 제한합니다. 그러나 실제 숫자는 그 쿼타의 1/3도 못 채운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하여 1930-1945년간 유대인들은 10만명 밖에 못들어왔으나 아랍인들은 무제한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었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 땅으로 돌아오는데 엄청난 제약을 받고 있었으며 그것은
유명한 영화 영광에의 탈출 EXODUS 에 나오는 사건과 같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당시에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수는 60만이었고 이스라엘인들의 수는 60만으로 동수였습니다만,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매우 쉽게 저지하고 그곳에 살아있는 유대인들을 완전 멸종시키고 완전 도륙할 계획으로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인들은 모두 떠나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자기네 아랍인들을 죽이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인들을 모두 몰살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랍인들은 그 전쟁에서 아주 쉽게 이길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극히 극소수의 병력과 극히 빈약한 무기로 싸웠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벤구리온 장군과 팔마크 특공대 모사드 첩보원등 많은 남녀들의 수고와 분투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쉽게 승리할 줄 알고 이스라엘 땅을 떠났던 아랍인들은
이집트와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돌아오려 하였으나 일부는 돌아오지 못하고 그들 나라들에 정착하였으며 일부는 돌아와 오늘날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지구에 피난민 촌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저들 중에도 그 땅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오래전부터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노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이 그런 진실을 말하면 무자비하게 살해되었습니다.
1880년 이전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던 흔적을 이스라엘 땅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동전도, 국가 역사도, 문화도, 없습니다!
20세기에 새로 만들어낸 역사를 고쳐 쓰고 있습니다!
천년동안 아무도 살지 않던 땅이었습니다!
그땅에 팔인들이 독자 왕조나 건축 문화 유물이나 동전이나 언어나, 역사 기록물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재하지 않은 민족이요, 실재하지 않은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 땅을 파면 팔수록 오직 이스라엘의 문화 유적만이 가득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것들을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훌륭한 문화유적으로 성경 구약시대와 신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증거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황무지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주변국가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이었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도 카이로 태생이었다는 보도를 보셨습니까? 아무도 원래부터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지 않았으며, 그 땅에 살던 소수 아랍인들은 19세기에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속지 마십시오.
가자와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집트와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들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안산 공단에 거주하는 파키 방구라 불체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함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랍인들은 한국땅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생떼를 써서
비자달라고 할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자 받으면 최소한 택시운전이라도 하지 생산직 근로 노동은 필사적으로 안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랍 무슬림들의 생활 방식입니다!
위의 자료 외에 추가 자료를 아래에 올립니다.
Article on Haaretz :
...."But the Palestinian farmers had been cultivating the land for centuries before that"
--In the mid-1700s, British archaeologist Thomas Shaw wrote that the land in Palestine was "lacking in people to till its fertile soil." An eighteenth-century French author and historian, Count Constantine Frangois Volney, wrote of Palestine as the "ruined" and "desolate" land. In "Greater Syria," which included Palestine, Many parts ... lost almost all their peasantry. In others.... the recession was great but not so total.
--In the twelve and a half centuries between the Arab conquest in the seventh century and the beginnings of the Jewish return in the 1880`s, Palestine was laid waste. Its ancient canal and irrigation systems were destroyed and the wondrous fertility of which the Bible spoke vanished into desert and desolation... Under the Ottoman empire of the Turks, the policy of disfoliation continued; the hillsides were denuded of trees and the valleys robbed of their topsoil
Carl Hermann Voss, "The Palestine Problem Today, Israel and Its Neighbors" (Boston, 1953), p. 13.
--The British Consul in Palestine reported in 1857 that
The country is in a considerable degree empty of inhabitants and therefore its greatest need is that of a body of population....
--Professor Fred Gottheil pointed out: "a desolate country"; "wretched desolation and neglect"; "almost abandoned now" "unoccupied"; "uninhabited"; "thinly populated."
--In a book called Heth and Moab, Colonel C. R. Conder pronounced the Palestine of the 1880s "a ruined land." According to Conder, so far as the Arab race is concerned, it appears to be decreasing rather than otherwise.
Colonel C.R. Conder, Heth and Moab (London, 1883), pp. 380, 376
And:
a Saudi Arabian United Nations delegate in 1956 asserted that "It is common knowledge that Palestine is nothing but Southern Syria."
In 1974, Syria`s President Assad, although a PLO supporter, incorporated both claims in a remarkable definition:
... Palestine is not only a part of our Arab homeland, but a basic part of southern Syria."
--Marie Syrkin, "Palestinian Nationalism: Its Development and Goal," in Michael Curtis et al., eds., The Palestinians: People, History, Politics (New Brunswick, N.J.: Transaction Books, 1975), p. 200. Syrkin found that Haj Amin al-Husseini-the notorious Mufti of Jerusalem himself - "originally opposed the Palestine Mandate because it separated Palestine from Syria."
Stop digging in history books who`s the owner lakshmi because we both can find all we need to prove that the other side is wrong.We have two populations living there and it does not matter if they came from Russia or Turkey they are there and are condemned to live together side by side thus calls for free Palestine and annihilation of Israel are dangerous and stupid.
http://www.haaretz.com/hasen/objects/pages/ResponseDetails.jhtml?resNo=2420266&itemno=886373&cont=2
( This might have been moved now)
2012. 11. 24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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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In a book called Heth and Moab, Colonel C. R. Conder pronounced the Palestine of the 1880s "a ruined land." According to Conder, so far as the Arab race is concerned, it appears to be decreasing rather than otherwise.
Colonel C.R. Conder, Heth and Moab (London, 1883), pp. 380, 376
아랍 족속에 관한한 인구는 줄고 있었다( 1880년 무렵)
위의 여러 문서 자료들이야 '그렇다' 치고, 어떻게 한국의 '안산 공단' 내의 불법체류자들의 관한 상황까지 훤히 꿰뚫어 보시는지 참 놀랍습니다!
가자지구에 팔인이 150만이 살고 서안지구에 250만이 거주하는데, 모두 가나안땅 영내에 있지요. 이스라엘이 700만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학적으로 가령 500년 전엔 팔인이 전체 합해서 50만도 안되었을 듯 하네요.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 합쳐서 7200만입니다. 100년전엔 1200만 정도였네요. 7배정도 불었습니다. 이스라엘 거주 팔레스타인 인구가 현재 410만입니다. 100년전엔 60만 정도였겠고 200년 전엔 20만이나 되었을까요? 중간에 아랍권으로 이주된 인구는 포함 안했습니다. 아무튼 미미했을듯 싶네요.
결론은 현재의 인구 기준으로 생각하면 황무지나 다름 없겠지요.
이스라엘 총면적이 전라도하고 비슷하네요. 22,000km2 이고 대만의 2/3 수준이군요. 저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를 조물락 거리니 어이 상실입니다.
위의 글을 아직도 잘 안읽어보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시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돌아오기 전에는 그땅에 아무도 살지 않았고 다만 수천명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 순례객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총인구는 2만명 미만을 1830년까지 유지하다가 1880년까지는 3-4만을 유지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대부분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돌아오기 전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왕조를 가졌거나 공화국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문화도, 역사도, 도시 건물도, 동전도, 정부도, 유물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땅에 산적이 없습니다!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중동지방을 거쳐간 거의 모든 세 력에 차례로 점령되었다. 그 가운데 이집트·아시리아·바빌로 니아·페르시아·마케도니아 제국과 그뒤를 이은 프톨레마이 오스·셀레우코스 왕조 등의 여러 제국들,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우마이아 왕조,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 십자군, 아이 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등이 꼽힌다. 제1차 세 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영국의 위임통치하 에 놓였다. 이 위임통치는 영국이 정책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유대민족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1917년 밸푸어 선 언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재 팔레스타인들이 역사시대부터 거주했던 후손들은 아닐 것 같네요. 아마도 아랍의 여러나라 혼혈족이 아닐까 싶은데 이에 대한 자세한 PLO 입장이라던지 이스라엘 정부 입장이라던지 있다면 분명할 것 같습니다.
하토브님이 올리신 자료처럼 영국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이주와 아랍족의 이주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일 가능성이 클 것 같군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쓴 사람마저도 상당한 편견을 갖고 있었거나 혹은 인류 전체가 갖고 있던 편견에 대항해 싸울 생각은 없었을 수 있습니다.
십자군 이후에 그땅은 몽고군에게 점령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황무지로 지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안믿겠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땅은 황무지였고, 그 땅에 팔레스타인 왕조도, 공화국도, 자치주도, 분봉국가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허구일 뿐입니다. 단지 유대인들이 유입될 때 아랍인종들이 덩달아 끼어들어왔을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땅임을 주장할 역사와 혈통적 근거를 갖고 있었고
아랍인들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순례객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살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한 채 그 땅에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텐트 천막촌들이 몇십개 잇었을 뿐입니다. 유대인들 이전의 어떤 주거 건물도 유적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능력 이 모든것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외에는 설명할수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