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즈 인 대창 19탄 “납량특집-대창학원괴담”
1. “내가 아직도 예비군으로 보이니?”
‘빠직!’
수굼푸 끝에 무엇인가 걸렸다. 돌멩인가? 땅에 박은 수굼푸를 빼고 살살 흙을 덜어냈다. 반짝 햇빛을 받은 하얀색 물체가 드러났다. 이게 뭐지? 수굼푸질에 속도를 냈다. 마지막 흙더미를 치우자 기둥 모양의 기다란 것이 모양을 드러냈다. 그걸 잡고 흙을 털어내다 순간, 잡고 있던 것을 내동댕이쳤다.
흙더미 위에서 구르다 멈춘 그것은,
뼈다귀였다.
애들의 웅성거림에 작업을 지시하던 6학년 1반 허춘호 선생이 달려왔다. 뼈를 살펴보는 허선생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사람 다리뼈 같은데, 대창학교가 육이오때 군병원으로 사용됐다더니, 그때 전사한 병사인가….”
잠시 후 허선생이 다시 입을 뗀다
“이거 누가 발견했노?”
“재학이예.”
반 아이들의 이구동성에 할 수 없이 선생 앞으로 나갔다.
“이거 니가 찾았으니까 니가 실험실에 갖다놓고 온나. 사람 뼈인데 주인도 안 찾아주고 버릴 수 없다 아이가.”
사람 다리뼈란 얘기에 기분이 찜찜했지만 거역할 수는 없었다.
‘씨발로무 허풍선 선생, 그냥 말 안듣고 까불대는 강동환이한테 시키지.’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키며 뼈다귀를 받아 실험실로 가져갔다.
온갖 정체모를 해부체들로 가득 찬 대창학교 실험실. 뼈다귀를 어디에 둘까 잠깐 둘러봤다. 애들 눈에 띄는 데 두면 실험실에서 하는 과학수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뼈다귀를 신문지에 둘둘 싼 채 캐비넷 구석에 밀어 넣고 나왔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대창학교에 얄궂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밤만 되면 실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숙직을 서던 남자 선생 여러 명이 교내 순찰을 돌다 저절로 불이 켜져있는 실험실을 발견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내가 해가 진 후 실험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건 순전히 김영호때문이었다. 여자 화장실을 훔쳐볼 수 있는 기막힌 장소를 발견했다는 영호의 말에 속아 따라갔던 것이 실수였다. 영호가 알려준 곳에서 까치발을 들고 화장실 안을 기웃거리는데 옆을 지나던 ‘마녀’ 최순녀 선생에게 딱 걸린 것이다. 눈치 빠른 영호는 이미 토끼고 없었다.
싸대기를 왕복으로 맞는 것도 모자라 벌로 교사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벌써 해가 기울고 말았다. 집에 돌아가기 전 낮에 실험실에 두고 온 가방을 찾아야 했다.
복도로 들어서자 맨 끝 실험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학교 안을 떠도는 소문 따위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해 지고 컴컴해지면 사귀던 이금필과 손잡고 공동묘지 묏등걸로 놀러다닐 만큼 소문난 강심장이 나였다.
‘그날 비석 옆에서 금필과는 정말 짜릿했는데…’
입가에 므흣한 미소를 머금고 걸음을 옮기다 순간 멈춰 섰다. 낯선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서랍을 여닫는 소리 같았다. 이윽고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 도 들려왔다.
한 발, 두 발 갈수록 선명해지는 소음. 그건 실험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과학 선생님이 아직 계신가?’
실험실 앞에 섰다. 남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보였다. 무언가를 찾는 듯 분주히 이곳저곳을 뒤적이고 있었다.
실험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남자가 황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섰다. 의자를 찾아 앉은 그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대창학교 학생인가?”
“예, 그란데예. 예비군 아이씨는 여서 뭐합니꺼?”
“내가 예비군으로 보이니?”
“그라모 똥방우니꺼?”
“후후…내가 잃어버린 게 있는데, 내게는 소중한 거거든. 근데 그게 여기 있는 것 같아 찾는 중이야.”
“그기 뭔데예? 내가 찾아주까예? 소풍 가면 보물찾기 도삽니더.”
“음…”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잠시 침묵하던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찾는 게 말야. 바로…”
순간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채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군복 사내가 가리킨 것은 자신의 오른 다리였다. 하지만 그곳엔 다리가 잘려나가고 없었다. 그는 외다리였던 것이다.
달리는 내 등 뒤로 군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다리 찾아줘. 총 맞은 내 다리…”
그 남자는 두달 전 내가 땅속에서 파낸 다리뼈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6학년 어느 작업시간이었다. 삽질을 하다 정체모를 해부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여러 개 발견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묘했는데, 여름이고 해서 그때 느낌을 살려 함 써봤다. 전설의 고향이었나? “내 다리 내놔” 하고 쫓아오던 그 이야기를 참고했는데 쓰고 나니 납량 특집이 아니고 코미디가 됐다. 여건 되면 2부에는 여자 귀신을 등장시켜볼까 한다.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동창 특정인과 관계없음을 밝힌다.
*사진은 ‘전설의 고향’ 역대 구미호. 왼쪽부터 1977년 한혜숙, 1996년 박상아, 2009년 전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