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뒷산으로 넘어간 지 꽤 지났는데도 작업소리가 요란하다. 장정 서너명은 불꽃을 튀기면서 전동절단기를 돌리고 나머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무계단을 만든다.
8시가 조금 넘자 한 인부가 "출근이 좀 늦었다"면서 넉살좋게 손을 흔들며 나타난다. 이 '올빼미 인부들'은 인근 양덕원본당(주임 배광하 신부) 남성 신자들. 다들 직장에서 퇴근하기가 무섭게 달려와 홀몸노인의 집을 고쳐주는 천사같은 아저씨들이다. 농협간부, 병원장, 농부, 건축업자, 호프집 주인 등 직업은 각양각색이다.
이들이 소속된 '진보 50'(회장 전용복)은 "말이 아니라 몸을 던져 일하는 봉사를 하자"고 의기투합해서 결성한 50세 미만 직장인들의 봉사단체. 직장생활 때문에 성당 봉사활동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아, 퇴근 후 7시에 모여 11시까지 홀몸노인들의 집을 수리해준다.
이들이 집수리를 선택한 이유는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살면서도 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노인들이 지역사회에 많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3채를 수리했다. 첫 공사는 전기·수도·난방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한 할머니 집. 움막과 다를 게 없는 집을 보고 놀란 회원 17명은 지난 여름 장마 속에서 수도관을 끌어오고, 보일러를 설치했다.
전용복(베드로, 47) 회장은 "퇴근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왜 안 들겠냐"며 "하지만 보름 만에 끝낸 우리 첫 작품을 보고 할머니가 흘린 눈물을 잊을 수 없어 야간봉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공사가 시작되면 건축업을 하는 회원이 십장(什長)을 맡기 때문에 수리 솜씨가 전문가 못지않다. 집수리경험이 없는 회원들은 허드렛일을 한다. 집수리 자재비는 대략 350만원. 배광하 신부가 강론 테이프와 저서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본당 신자들도 최근 바자회를 열어 자재비를 지원했다.
시각장애인인 집주인 이정랑(80)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그런데 저 사람들이 물 한 모금도 얻어 마시려고 하질 않는데 어떡하면 좋으냐"고 걱정했다.
11시가 넘어 일을 접는 이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때 막내 신상철(마태오, 39)씨가 "형님들, 출출한데 야식집에 가서 소주 한잔…" 하며 바람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