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8. 2. 4. 20:44
■ 건양(建陽)에 대하여
글쓴이 : 이민희 中河
[거 ː 냥]
「명」 『역』 조선 고종 때의 연호(1896∼1897).
이것만 보아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해서 정하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 진실이 파묻혀서는 겨레문화 정기를 되살릴 수가 없습니다. 자료를 올려 드립니다.
甲申倭曆亂曰捨陰曆而取陽曆之亂
附倭輩弘夏淵吉之政府告示曰自乙未十一月十七日捨陰曆而取陽曆且年號以建陽作之云云建陽之陽乃陽曆之陽也建陽二字語不成矣捨陰曆而取陽曆云者意成而捨陰曆而建陽曆云者意不成也建之義乃立也陽之義乃陽曆也建陽曆之語意可笑焉弘輩添作建陽多慶四字之句而流布焉積善者受慶云則可也而取陽曆者受慶云則是欺詐之譎計也附倭輩執大筆而寫建陽多慶四字乃貼于大門而誇示焉於是乎儒林人弄之曰不忘陰曆而立春則大吉必來焉立春日以陰曆算之故以大吉稱之也仍叱之曰建陽多慶云者語不成而立春大吉云者語成矣名不正則事不成也如是之叱言處處起而喧之故未過一年而廢之按悲哀王遺稿無所一出建陽二字也悲哀王不欲廢陰曆之心可見於此矣史氏曰弘夏淵吉之無知沒覺在於建陽多慶之語 《老石先生文集/노석(老石) 여구연(呂九淵, 1865∼1938)문집》二 쪽125-126.
[해설]
읽는 이를 위해 배달말로 뒤쳐 드리겠습니다.
병신(1896) 왜력 란은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취한 란>입니다.
부왜배(附倭輩 : 왜 로에 빌붙은 무리, 자팬 말로 ‘친일파’) 홍하연길(김홍집, 졍병하, 죠희연, 유길준) 정부가 고시하기를, “을미년(1895) 11월 17일부터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취하고, 또 년 호를 <건양>으로 지었노라”라고 했습니다.
건양의 ‘양’은 양력 ‘양’입니다. 건양이라는 두 글자 말은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취했다고 하면 뜻은 성립되나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세웠다고 하는 것은 뜻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건(建)’이라는 말뜻은 ‘세우다’이고 ‘양(陽)’이라는 뜻은 ‘양력’입니다. 그래서 ‘건양 력’이라는 말이 우스운 것입니다. 홍집(弘集, 부왜배는 입춘방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넉자 구를 또 지어 류포한 것입니다.
‘선(善)을 쌓으면 경사(慶事)를 얻게 된 다’고 하면 옳은 말이나 ‘양력을 취하면 경사를 얻게 된 다’는 것은 속임수 휼계(譎計: 남을 속이는 꾀)입니다. 부왜 배는 큰 붓을 잡고서 <건양다경> 넉자를 베껴서 대문에 붙이고서 과시했습니다.
이에 유림 인들이 놀리며 말하기를, ‘음력을 잊지 않아 <립춘(立春)이면 대길(大吉)이 반드시 온 다>고 했습니다. 립춘 날은 음력으로 계산한 것인 까닭에 대길이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꾸짖어 말하기를, ‘<건양다경>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으나 <립춘대길>은 말이 성립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꾸짖는 말이 곳곳에서 일어나서 두려워하게 된 까닭에 1년이 지나지 않아서 폐지되었습니다.
비애 왕(이른바 ‘고종’) 유고(주연선집)에는 한 번도 <건양>이라는 두 글자가 나온 바가 없습니다. 비애왕이 음력을 버리지 않으려 한 마음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씨(史氏-력사가)가 이르기를, “홍하연길의 무지몰각함이 <건양다경>)이라는 말에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건양>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부왜 배 김홍집(金弘集,1842~1896), 졍병하(鄭秉夏,1849~1896), 죠희연(趙羲淵,
1856~1915), 유길준( 兪吉濬,1856~1914) 등이 주축이 되어 고시한 년호"를 덧붙여 배달겨레 정기를 바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