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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1절 - 2절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공회를 소집하여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1절). 유대인의 공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종교재판을 마치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 간 이유는
그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로마 정부는 유대나라에 어느 정도의 자치적 권력을 주기는 하였으나 사도 요한의 증거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요18:31).
그러므로 유대 공회는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결의가 총독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빌라도에게 넘기게 된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보다는 죽이려는데 혈안이되어 있는 모습은
다른 뭇 영혼들에 대한 그들의 행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하여 “화(禍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3:15).
나 자신은 다른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있는 삶을 나타냅니까? 혹시 인간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인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정욕적인 것에 목적을 두지는 않습니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강도를 잡는 것과 같이 잡아와서는 재판을 마치고 강도를 결박하는 것과 같이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죄없으신 거룩하신 예수님을 그들이 알고있음에도
그들의 시기와 악한 마음이 찔림받음과 그들의 교권이 백성들에게 무너져내릴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나 자신은 나 자신의 범죄함이 드러나거나 사람들에게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시기하거나 인간적인 악한 생각과 행위를 하지는 않습니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고 묻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셨습니다(2절). 참으로 예수님은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시며, 유대인이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나 자신은 주님께 드려야 할 경배와 헌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보다 인간적이고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시며, 만왕의 왕이심을 인정하며 높이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3절 - 10절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고소했습니다(3절). 예수님은 그들의 고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대답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롭고 복된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또 묻기를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고 하였습니다(4절).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본 빌라도는 깜짝 놀랐습니다(5절). 의기양양하여 고소하는 대제사장들의 고소에 침묵하신 주님의 모습은 거짓 고소로 날뛰는 자들에게 오히려 위엄있는 자세를 나타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장래 주님의 날에 세상의 모든 자들이 주님의 엄위하신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에는 모두가 이실직고하게 될 것입니다(롬14:11-12). 주님을 거짓으로 사악하게 고소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될 것은 두말할 것이없습니다. 유대 나라는 유월절을 당하면 백성이 구하는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6절, 요18:39).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 무렵 강도며,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요18:47절). 무리들이 빌라도에게 나아가서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기를 구했습니다(8절).
그때 빌라도는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준 줄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10절).
또한 유대인들을 무시하는 말투로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 권력자에게 조롱을 당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멸시당한 모습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롬2:24).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조롱과 고난을 당할지언정 주님의 영광을 가리므로 조롱과 고난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기도: 주님의 복되고 은혜로운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됨을 기뻐하게 하옵시며, 주님의 날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선악간에 행한 모든 일들을 직고하게 됨을 확신하게 하옵시며,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11절 - 15절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였습니다(11절). 우리는 다시금 종교지도자들의 부패하고 생명없는 외식적이고 시기하는 악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살인한 강도를 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의 사악함에서 나온 계획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고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옛적 사울 왕이 기름부음받은 다윗을 해하려고 했던 사악한 행위와 다를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거룩한 욕망을 갖습니까? 빌라도가 또 대답하기를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고 했습니다(12절). 빌라도의 말은 예수님을 놓으려고 하는 의도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결코 바른 재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은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13절).
대제사장들의 선동을 받은 무리들은 무서운 폭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인생들이 극한 악으로 치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무리의 모습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줍니다.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의 부추김에 의하여 행동하는 일은 없습니까? 나 자신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나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습니까?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더욱 소리를 지르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14절). 빌라도의 말은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15절).
빌라도는 공정한 재판을 하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나 자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기도: 성령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거룩한 욕망을 갖게 하옵시며, 우리의 죄가 얼마니 극악한가를 깨닫고 주님의 고난을 항상 기억하여 죄를 물리치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15장 16절 - 20절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조롱하는 예의를 갖추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고 말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했습니다(16-19절).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치욕적인 모독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모독했던 모든 자들이 엄위하신 심판주이신 주님 앞에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될 것이며, 심판주이신 주님 앞에 가공할만한 공포 속에서 굴복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머리에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되며, 굴욕의 자리로 떨어지게 될 것이며, 평안이 없는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모든 핍박과 고난과 수치와 조롱을 주님의 날에 주님께서 판단하여 주심을 믿습니까? 군인들이 조롱을 다한 후에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갔습니다(20절).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도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사53:7).
주님께서 고난 받으심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게 함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롬8:36-37).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고난받을 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고 하신 주님의 위로의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기도: 그리스도의 날에 주님을 대적하며 모독했던 자들이 그 이름을 인정하고 굴복하며 영원한 수치에 떨어지게 됨을 깨닫게 하옵시며,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기쁨으로 따라가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21절 - 23절
예수님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끌려가셨습니다. 훗날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이사야가 쓴 두루마리 성경을 펴서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는 구절을 읽고 있을 때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인도하셔서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고난받으신 것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행8:33-35).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군병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해골)라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막15:21-22).
이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이 얼마나 컸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나 자신은 주님께서 고난받으심이 마땅히 형벌받아 마땅한 나의 허물을 인함임을 깊이 깨닫습니까?(사53:8).
우리는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눅14:27).
크리소스톰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은 옛날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 순종하여 번제에 쓸 나무가지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으로 간 것이 성취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의미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전가하는 시키는 것으로서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게 하셨고, 광야에서 모세가 놋뱀을 든 것과 선지자들이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기도했던 사건을 통하여 오실 그리스도께서 백성들의 죄를 자신이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고난받으실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시고 이루셨습니다. 군병들은 몰약(쓸개)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23절).
이것은 사형수에 대한 마지막 선처로써 마취제를 주어 고통을 덜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인간들의 그 어떤 참여나 도움이나 협력으로 이루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주님만이 담당하셔야 할 고난이었습니다.
기도: 주님께서 고난받으심은 마땅히 형벌받아야 할 우리의 죄를 인함임을 깨닫게 하옵시며,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과 모형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고난받게 하심으로 이루심을 찬양합니다.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24절 - 27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 때에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았습니다(24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군병들에 의하여 자신의 겉옷과 속옷이 찢기고 제비 뽑아 나눠지는 것을 보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제비 뽑힌 것은 옛날 다윗이 대적들에게 고난을 당할 때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8)라고 한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모독과 수치를 당하시고 군병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인간들의 의도대로 된 것이 아닌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은 군병들에게 제비 뽑혀 나누어져 빼앗기셨지만 주님은 의의 옷을 입지 못한 우리에게 영원한 의의 옷을 입혀주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풀핏). 주님께서 부요한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고후8:9). 나 자신은 오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함을 입어 주님의 의를 힙입은 자임을 확신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는 제 3시(오전 9시)였습니다(25절).
십자가의 죄패(罪牌)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이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다고 증거합니다(26절, 요19:20).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을 넣어달라고 하였지만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고 한 말을 증거했습니다(요19:21).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나 자신은 예수님께서 천지의 주재이시며, 나의 마음과 생활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믿습니까?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었습니다(27절).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범죄자 중에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사53:12).
나 자신은 다시금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죄인들과 같은 취급을 받으신 것을 깨닫고 죄를 물리치는 생활을 다짐합니까?
기도: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해 지셔서 우리를 부요케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다스리심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죄를 물리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29절 - 31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말했습니다(29절). 머리를 흔드는 것은 분개할 때의 태도, 악한 농담의 태도, 조소와 모독과 그와 비슷한 태도를 나타낼 때 행하는 것입니다(렌스키).
그리스도의 날에 주님은 악한 자들에 대하여 영원히 얼굴을 돌리실 것입니다. 지나가며 모독한 자들은 공회에서 주님에 대하여 거짓으로 고소하는 자들의 말을 되풀 해서 말했습니다.
거짓을 믿고 행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짖밟는 자들의 예배는 참으로 가증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오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 성전에서가 아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마음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殿)입니다(고전6:19).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엡2:14-19).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조롱하며 서로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원할수 없도다” 고 말했습니다(31절).
그들은 사람들을 얻으면 자기들보다 더욱 지옥 자식을 만들고, 구원을 가로막으며, 율법을 말하며 가르치면서 율법을 거역하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배척하고 십자가에 죽이고 기뻐하는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할뿐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는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조롱과 핍박을 당하지만 이것은 장래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을 얻는 길인 것입니다.
나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형식적인 신앙을 보이며 형식적인 신앙인이 되게 하지는 않습니까? 나 자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르는 것이 고난받는 것임을 확신합니까?
기도: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고난을 받을 때 장래에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됨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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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32절 - 33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없이는 인생들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인 것입니다. 외식과 사악에 사로잡힌 생명없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소망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단들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습니다(고전15:2).
예수님 좌우편에 못박힌 강도들도 함께 예수를 욕했습니다(32절). 자신들의 죄값으로 사형을 당하는 자들이 의로우신 구주를 조롱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 자신은 나자신의 허물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이방인 권력자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지나가는 구경꾼들과 군병들에게 치욕적인 조롱당하셨는데 여기에 사형을 당하는 악한 강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형벌받아 마땅한 우리의 죄를 위함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뿐만 아니라 나의 죄를 위하여 고난받으신 주님을 위하여 기쁨으로 고난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 6시(12시)가 되었을 때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9시(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33절). 이것은 일식 현상도 아니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인생들의 죄악이 온 땅에 임한 어두움과 같이 어두우며,
그 받을 심판의 엄위함을 보여주며, 아버지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아픔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얼마 동안의 어두움이 있었지만 장래에 아들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어두움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전에 어두움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빛되신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었음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기도: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빛 안에 거하며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며 주님을 위하여 기쁨으로 고난받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34절 - 36절
예수님은 제 9시(오후 3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의미입니다(34절). 그런데 이 주님의 외치심은
옛날 다윗이 대적들에게 고난을 당할 때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니까?“라고 부르짖었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시22:1). 다윗의 부르짖음은 오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 외치실 것을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면서 아버지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나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는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심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는 것이며, 죽음에서 능히 살리실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하여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증거했습니다(사53:10).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도록 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심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십자가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하고 말했습니다(35절). 초자연적인 어두움이 임했고, 주님께서 외치셨지만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깨닫지 못했고 주님의 말씀은 가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오늘도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고 있음에도 그 주변을 서성거리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 자신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깨닫고 그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이 큰 복임을 확신합니까?
한 사람이 달려가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주나 보자!“라고 말했습니다(36절). 어두움에 속한 자들에게는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는 부끄러움과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고전1:18).
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고난받게 하심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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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37절 - 38절
예수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것은 옛날 다윗이 대적들에게 고난당할 때 “저희가 쓸개로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69:21)라고 한 예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고난받으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을 온전히 이루시는 것이며, 주님의 고난은 우연한 것이거나 비극적인 죽음으로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지한 자들의 어리석은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 자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다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확신하며 증거할 수 있습니까?(고전15:3)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하셨습니다(37절).
사도 요한과 사도 누가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고 외치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외치심은 악을 행하고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자들과는 다른,
십자가 밑에서 서성거리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조롱하는 자들에게는 가려진, 아버지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맡기신 일들을 온전히 이루시는 외침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나 자신은 십자가에서 구원을 온전히이루신 주님을 믿음으로 구속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음을 감사합니까? 주님께서 운명하시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38절).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고 증거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기심으로 우리로 새롭고 산 길인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며, 성전의 대제사장을 통하여 계속되는 희생제사를 종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성령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음을 찬양하여야 합니다(히4:16).
기도: 십자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39절 - 43절
예수님을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신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 사람은 진실로 의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말했습니다(39절, 눅23:47).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조롱하고 배척하고 죽였지만 이방인 백부장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했습니다. 나 자신은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합니까?
멀리서 바라보던 전에 일곱 귀신들렸다가 주님께 고침받았고, 부활의 아침에 주님께 왔던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라고 하는 마리아와 세베데의 아들들의 어머니 살로메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들이며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았습니다(40-41절).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주님을 섬겼던 여자들과 이름없는 여자들은 끝까지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겸손히 주님을 섬깁니다.
나 자신은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신앙의 각오를 가집니까? 나 자신은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헌신의 생활을 합니까? 예수님이 죽으시던 날은 안식일 전날인 준비일이었으므로 저물었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이나 숨기고 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자이며, 존귀한 공회원이며, 공회의 결의에 가타하지 않은 자이며,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42-43절, 눅23:50-51, 요19:38, 마27:57).
나 자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담대한 신앙의 자세를 갖습니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생활 속에서 행합니까?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행합니까? 불법과 진리를 거스리는 자리에 감담치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삶을 살며, 선을 행합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며 주님과 함께 들어갈 그 나라를 바라봅니까?
기도: 의로우신 분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며, 불법과 불의와 비진리에 가담치 않으며, 담대하며, 선과 의를 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게 하옵소서.
가정예배
읽을말씀: 마가복음 15장 44절 - 47절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위험을 무릎쓰고 당돌히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요셉의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었습니다(44-45절).
십자가 형은 오래 오래 시간을 끌면서 죽어가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지 6시간만에 운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하신 간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강도는 다리를 꺾어서 죽음을 재촉하였습니다.
또한 빌라도가 예수님의 시체를 순순히 내어준 것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입니다. 나 자신은 오늘 나 자신의 생활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간섭하심이 있음을 믿습니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쌀 깨끗한 세마포를 사고 이전에 유대인들의 눈을 두려워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가지고 온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함께 세마포로 싸고 예수님이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았습니다(4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주님을 장사한 소수의 주님의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신앙에 도전을 줍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의 새 무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오늘 나 자신은 성령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갖습니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기있는 신앙을 갖습니까?
나 자신의 가장 좋은 것으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감사가 넘칩니까?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둔 무덤을 보았습니다(47절). 이들이 무덤을 본 것은 단순히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연약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지만 향품을 사두었다가 주님께 향품을 발라드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나 자신은 주님께 대한 세심한 관심을 갖습니까?
기도: 생활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간섭하심이 있음을 확신하게 하옵시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담대함과 용기있는 신앙을 가지며,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