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오면 / 김붕래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 이은상 <수유리 4.19 기념탑 묘비명>
1960년 4월 19일,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국회의사당(광화문에 있는 현 서울시의회) 앞에 모인 학생 시위대열은 경무대(현 청와대)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부정선거 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요구했던 시위가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학생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시민들도 학생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서울시내는 온통 민주를 외치는 시위대열로 뒤덮였습니다.
배운 대로 바른 대로 노한 그대로
물결치는 대열을 누가 막으랴
막바지서 뛰어난 민족정기여
역사를 차지한 그대들이여
영원히 영원히 소리칠 태양
- 송욱. <소리치는 태양>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의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민중 시위는 마산을 비롯한 각지에서 치열했는데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군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김 군은 막 마산상고에 갓 입학한 17세의 소년이었습니다.
더욱 분노한 군중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는 시위 물결은 전국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4월 18일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던 4천여 명의 고려대 생은 이름 모를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많은 학생이 부상당하기도 했습니다.
의로써 싸웠노라. / 부여잡고 울었노라.
무너진 사직일레
가슴 더욱 메었어도
끝내는 자유를 다시 심어 / 꽃피우던
아 혁명의, 혁명의 4월
- 이순대. <4월혁명 학생의 노래 >
1960년 4월 25일. 피 흘리는 제자들의 희생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대학 교수단도 분연히 궐기합니다.
300여 교수가 시국선언과 함께 거리로 뛰어 나섭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승만 대통령은 4,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합니다.
4월 28일 부통령이었던 이기붕 일가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자유당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60년 8월 장면 내각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여 제 2공화국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밤
너를 기다리던
너의 밥상이
어머니의 가슴에서
언제까지나
식지 않은 눈물이듯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책가방을 끼고
계단을 내려간
마지막 네 인사
오늘도 너는
빈 의자 위에
착한 그의 눈짓으로
돌아와 앉는다.
- 정한모 <빈 의자>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 대열은 의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 를 바로 세웠고
민족 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 <수유리 4.19 묘비 묘비명>
국립 4.19 민주 묘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산 9-1 번지에 있습니다. 4호선 전철을 타고 수유역에서 내립니다.
마을버스 1번이나 일반버스 104, 111번을 타면 금방 민주 묘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봄을 선구하는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광장. 그곳에는 아직도 양심의 소리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