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중국)이 독차지한 지금은 빼앗긴 땅 내몽골, 소수민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흥안령 산맥을 넘었다. 내몽골 자치주 훈룬베이루 에벤키 박물관, 실내 벤취에 앉아 쉬는 유니폼을 입은 에벤키 박물관 안내양 그녀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무심결에 아슬하게 치마도 걷었다. 설마 유심결은 아닐거라며 몰래 카메라를 들이댔다. 앵글에 잡이는 미소도 신경질을 내는 통화 말투도 표정도 다 무심해 보인다. 면전에 맞닥뜨린 전설의 에벤키 여인을 나는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나이 열 여섯에 조혼, 러시안 남편과 대학에 다니는 장성한 자식이 있는 아주머니다.
에벤키 여인 수누얼의 고향 '낙타의 목', 나는 훈른베이르(하일라르)의 에벤키 박물관을 떠나 에벤키 여인 수누얼, 수누얼의 동료 꾸어진진과 함께 그녀의 고향 '낙타의 목'으로 바람을 따라서 남쪽으로 갔다.
특막호주(特莫胡珠), '낙타의 목'이란 뜻이다. 인디언 이름들, '주먹쥐고 일어서, 해뜨는 곳에 사는 자, 말과 행동이 올바른'처럼 에벤키 사람들의 지명도 서정성이 풍부하다. 사실은 한반도도 그랬다. 내고향 원주 치악산 아랫동네 이름이 '행구동(杏邱洞)', 예전에는 '살구둑'이라 불렀다. '살구나무가 많아서 살구꽃이 피는 언덕'이란 뜻이다. 어느누가 무식하게 한자로 바꾸었나, 한심한 일이다.
먼지나는 신작로, 풀밭 초원을 달려서, 다리없는 개울을 건너서 영락없이 나타나는 성황당, 나무에 걸린 파란 헝겁이 바람에 하늘로 흔들거린다. 하늘을 닮고 싶은 소망이 하늘색을 매달아 하늘에서 나부낀다. 무릅을 걷고 개울을 건너, 점심에 출발하여 저녘에 도착했다. 시야에 드는 것은 사방으로 구릉진 초원과 야산에 빼곡한 전나무 숲 뿐이다. 반지르한 갈기, 싱싱한 근육이 조각으로 빠진 갈색 암컷이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황량한 벌판에 흙벽 한 칸 집, 말뚝 네개에 천을 두른 문 없는 변소, 어릴 때 내 어머니가 등물을 부어주던 펌푸, 선풍기 날개보다 조금 큰 바람개비가 장대에 매달려 백열등 하나를 간신히 밝히며 벌판에 부는 바람에 돌아가고, 창고로 쓰이는 게르엔 나무침대 두개가 쓸쓸히 누워 있었다. 드넓은 벌판에 양때와 소때, 갈색 말 한 필 다섯 평 흙벽집에 어머니와 남동생 그렇게 단 둘이 주소도 필요없는 '낙타의 목'에는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별 그리고 사람이 살고있었다.
적막벌판에 오롯한 다섯 평의 행복이다. 나는 구릉진 초원 '낙타의 목'에서 '낙타의 혹'을 생각했다. 제 몸의 곱사등이를 불태우며 맨발로 사막을 걷는 낙타의 눈물 말이다. 고비사막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에 흐르는 눈물의 기억 말이다. 홀본성에서 국내성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눈물로 구비치는 압록강의 물결 말이다. 금강산으로 가는 이중 삼중 철망 사이로 망부석으로 서 있는 까까머리 병사들의 눈망울, 초병들의 그 눈동자 말이다.
보름달의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수누얼의 어머니, 십리는 너끈히 볼 것같은 눈초리의 남동생, 김을 내며 양 한마리가 고스란히 삶아져 쟁반 위에서 몸살을 하고 손으로 뜯어먹으며 연신 손가락을 빠는 나도 몸살을 하고 있었다. 그날의 칭기스칸 보드카와 양 수육은 내가 죽는 그 순간에 기억 될 것 중에 한가지. 인생은 타이밍이고 여행은 오프닝이다. 그리고 인생도 여행도 먹는 것이다. 석양을 따라 노을을 이고 초원을 내달리는 황혼녁 에벤키 여인 수누얼의 말발굽 소리 들으며 나는 또 '낙타의 목'에서 그 몹쓸 '낙타의 혹'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동이에 물 두 바가지, 안경알처럼 닳은 비누로 세수를 하고 수건을 목에 걸고 초원을 걸었다. 새파란 하늘, 새하얀 구름, 깨끗한 바람, 상쾌한 마음이다. 에벤키 여인 수누얼과 꾸어진진은 어제 밤을 설쳤는지 아침 식탁을 차리면서 연신 하품 중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에게 손사래를 쳤다. 어제 밤 침전시킨 물 한동이와 화덕에 걸린 솥 두개로 모든 음식이 차려진다. 수누얼의 동생은 그때 까지 침대 타령을 하다 눈두덩을 비비며 기지개를 폈다. 흙바닥 다섯 평 한 칸, 방이며 부엌이고 거실이다.
김이 오르는 이밥에 오이 두개 메론 세조각, 어제 먹다 남은 곰국과 후식으로 양젖을 발효시킨 수제 요쿠르트. 소식과 절약은 바로, 문명과 과학 이전에 '인간에 대한 겸손, 신에 대한 경의' 그 자체였다. 대량 생산, 과소비의 원천 제공자인 현 문명체제에서 간곡한 찬양이,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통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예견되고 예정된 작금의 기후, 환경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전혀 몰랐던 것처럼, 마치 느닺없는 일처럼, 호들갑을 떠는 제 바지에 똥 싸놓고 더럽다 난리굿을 떠는 자해 공갈범이다.
'녹색 성장', 가능한 일인가? 말이 되는가? 과학과 기술, 그 문명이라는 것이 인문과 도덕이 결핍된 체 일방으로 진행되는 소비적, 소외적 지구살림이 언제까지 가능하겠는가, 엔트로피라 말은 하면서 아직도 더 많은 쓰레기더미를 쌓는 이 누구인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개화시킨단 말인가? 밥상에 떨어진 밥풀, 밥상에 흘린 김치 주워 먹는가? 달관과 체념을 사탕발림으로 부추기는 천박하고 안일한 세태다. 너무 멀리, 너무 빨이 떠나온 곳으로 찬찬히, 천천히 뒤돌아 봐야 한다. 달관과 체념 보다는 행복을 찾아서, 그 행복의 뿌리를 찾아서.
보름동안 내내 만주 벌판을, 내몽골 고원을 쏘다니며 소똥 냄새에, 말똥 냄새에 뒤범벅이된 영락없는 거지 꼴이다. 떡지고 헝크러진 머리, 손톱 밑에 까만 때가, 햇빛에 그을린 몰골이 과관이다. 마중물을 넣어 펌푸질을 하면서 누구나 배고프고 고단한 육십 년대, 서울 변두리 국민학교 시절을 기억했다. 어머니는 일원 짜리 동전을 쥐어주고 물동이를 들려줬다. 일원에 펌푸 물 한동이를 사들고 오르던 비탈길, 6학년 아이에겐 힘든 고개길이다.
석회암 지대라 양철통에 뜬 뿌우연 석회를 한참동안 가라앉히고 머리 감고 이빨 닦으니 하늘은 더 파랬고 바람은 더 시원했다. 손바닥 거울로 오랜만에 면도를 하던 중에 갑자기 바람이 심상치 않다. 멀리서 검은 구름이, 건조한 북방의 초원에 황금비라도 쏟아 줄 태세지만 황금비가 아니라 는개로 내린 비는 양의 눈물로 찔끔거리다 말았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만, 역시 북방은 강수량이 문제다.
바람부는 북방(내몽골)에 밤, 실오라기로 피어오르는 커피 향은 또 다른 고혹한 채취다. 낭만과 고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또 몰려간다. 담배 불 붙히려 나왔다가 인기척에 놀랬다. 누군가 볼일을 보는 모양이다. 깜깜한 사위에 뜨문뜨문 뜬 별은 담뱃불 보다 더 초롱초롱했다. 바람개비가 풍력에 돌면서 겨우 백열등 하나 밝힌 불빛이 좁다란 창에서 옛적 아사달 시절 주막집 등잔처럼 흔들거리며 새 나온다.
아벤키 사람들 그 여인들, 아벤키 여인들은 깔깔거리지 않았다. 아벤키 여인들은 소곤거리지도 않았다. 까만 눈동자, 빛나는 눈동자로 이야기를 토했다. '병든 몸을 치유하려면 몸을 비우고, 몸을 비우려면 소식하는 수 밖에. 마음의 행복을 얻으려면 그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려면 욕심을 버리는 것', 숱한 책에서 보았던 그 흔한 경책으로 들었던 명문과 명언들을 한마디 말도없이 아벤키 여인들은 그렇게 가르쳐주었다. 숲과 벌판, 고원을 지키는 나무와 바람과 달과 별에게 불러주는 노래 몇곡, 오랜 우정으로 밝히는 북방의 밤,
'낙타의 목'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첫댓글 멋진 작품과 여행기 즐겁게 감상 합니다.
고맙습니다.
참 부럽다는 생각 입니다.
죄송해요, ^^
잘 보았습니다.
내몽골은 중국영토가 되었지요.
그래서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몽골사람들은 갖고 있답니다.
몽골에 갔던 추억은 언제나 상큼하기만 하답니다.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원나라(몽골) 쌈질하다그 빼앗낀 땅 속의 보물.
희토류류 장난질치는 중국.ㅋㅋㅋㅋ
가쪽 분이기가 좋와 보입니다